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18
717화 어린 미래 (2)
구구궁- 다시금 공간 전체가 크게 뒤틀렸다.
“괜찮아요?”
“한설 군이 지탱해 주고 간 덕에 버틸 만해. 침범보다는 소환에 가깝기도 하고.”
“다행이네요. 건강하셔야죠.”
내 방 쪽은 아직 접근해 온 사람이 없었다. 인어여왕은 포식의 왕처럼 보낼 종속이 마땅찮았던 것일까.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지만,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리도 없으니 안심해선 안 되었다.
“그럼.”
업적 보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키를 가볍게 넘어가는 창은 몸체부터 손잡이까지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끈했다.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축제에 쓰기 위해 백옥이나 진주로 만든 랜스 같았다. 마상창에 비하면 훨씬 짧았지만.
손을 뻗어 창을 쥐었다.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내가 한 손으로 뽑아 들고 휘두를 수 있을 정도였다. 무기 상태를 확인하자 눈앞에 정보창이 나타났다.
[세 번의 신살(神殺) – 미정거짓 된 신의 몰락을 위한 한 줄기 백광.
미약한 어린아이의 손에 들릴지라도 초월자를 꿰뚫는다.
※한유진 귀속]
초월자를 살해하는 무기. 흰 창을 세워 들었다.
“거짓 된 신.”
내 업적을 확인하고 시스템은 그렇게 판단했다. 신이 아닌 초월자들. 그러나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세계를 휘두른 자들.
무기 정보창을 다시 한번 세세히 살펴보았다. 초월자를 죽이는 힘이나 세 번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채터박스까지 포함해 세 명의 초월자를 살해한 업적에 따른 이름일수도 있다. 또는 이 창이 지닌 힘으로는 초월자를 세 명까지만 없앨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후자라 하더라도 충분했다.
“준비하시죠, 파트너 씨.”
“나를 그렇게 부르면 애 보는 파트너 씨가 울지 않을까.”
“울든지. 보고 싶긴 하네요.”
협력 관계에 있으면 파트너지 뭐. 그래도 괜히 미안해져서 슬쩍 덧붙였다.
“그쪽이랑은 아직 친구라 할 만한 관계는 아니니까요.”
“섭섭하군.”
뭐라는 거야. 자기는 툭하면 나더러 그 한유진이 아니니 어쩌니 해놓고선. 뱀이 죽은 자리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짙다 못해 액체화하여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농밀함이었다.
“…은혜야, 부탁한다.”
– 삑!
힘차게 대답한 파랑새가 팔찌의 보석으로 스며들었다. 푸른 보석이 반짝, 짧은 빛을 냈다. 대화로 끝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창을 인벤토리에 넣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설이 덕분에 훨씬 더 넓어진 공간이 마나로 가득 찬다.
투둑, 툭
까마득히 높은 천장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닿는 곳곳마다 풀이 돋아난다. 싱그러운 새싹과 작은 물웅덩이. 여린 줄기가 굵어지며 가지를 드리운 나무로 자라나고 맺힌 봉오리가 톡톡 터지며 색색의 꽃잎이 쏟아져 나온다.
실로 신이 임하는 것처럼 공간이 뒤바뀌었다. 깨지고 흐트러진 대리석 바닥은 사라지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야생의 들판이 펼쳐졌다. 그 위로.
스르르-
금적색 비늘이 기었다. 풀밭 위에 쌓아올린 보석더미처럼 선명하게 물결치는 붉은 뱀의 몸뚱이. 잘그랑, 금속 장식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한껏 젖혔다. 깎아 지르는 기암절벽처럼 버티고 선 배와 가슴. 그 위로 내려다보는 뱀의 눈이 있었다. 어깨 바로 위까지 늘어지는 귀걸이가 가볍게 흔들릴 때마다 종소리가 쩌엉 쩌엉 울린다. 실제 그 크기가 대종과 맞먹을 것이다.
웬만한 S급 헌터라도 절로 머리가, 허리가 숙여질 위상이었지만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공포 저항 메시지가 깜박거렸지만 무시했다. 기둥과 같은 기다란 손톱 끝이 자신의 몸 주위를 맴도는 비구름을 툭 건드린다. 빗방울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난데없는 소나기를 흠뻑 맞고 눈을 깜박였다. 눈썹에 고인 물기가 망막에 어른거렸다.
– 작디작은 것아.
거산의 메아리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 길게 묻지 않겠다.
그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린 듯도 했다.
– 너는 네 세계를 지키겠느냐.
바쳐 마땅한 세 개의 조각을 움켜쥐고 버티겠는가. 자신의 종속을 죽였음에도 포식의 왕은 아직 내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내가 조각들을 내주겠노라 말한다면 순순히 물러날 것이다.
“길게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어떠한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해도 답은 하나다.
“예.”
그곳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터전이며 나 또한 살아갈 땅이다.
– 그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유쾌하다는 듯이 뱀들의 왕이 웃었다.
– 제아무리 작고 작은 것이라 해도 약하진 않다. 강자에게 맞서는 자는 무참히 패배한다더라도 강자다. 미약한 자란 제풀에 고개 숙이는 것들뿐이니!
흥이 어린 목소리만으로도 전신이 떨려왔다. 몸을 약간 낮추었다. 단 한 순간, 그것으로 끝난다. 성현제가 우리를, 나를 바라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그러니 너는 분명 사랑스러운 살아가는 자다. 오너라.
관대하게. 포식의 왕이 두 팔을 벌렸다.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까마득한 높이. 내 발이 닿는 곳에 발판이 생겨난다. 성현제가 만들어 주는 계단을 딛고 다시금 도약했다.
가장 낮은 바닥에서 한없이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초월자의 눈높이. 그 시선이 닿는 곳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발판은 끊임없이 나타나 아래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쌓고 또다시 쌓아가며 가장 높은 곳으로.
포식의 왕은 웃고 있었다. 오르고 오르는 작은 것이 기특하다는 듯 크게 웃는다. 그러나 내가 그와 눈높이를 마주하는 순간.
– 이제 떨어지거라.
자비 없는 징벌이 내리친다. 비늘 돋은 손아귀에 어느새 곡이 진 검, 샴쉬르가 쥐어졌다. 맨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 낼 수 있는 상대건만 무기를 들었다. 극명한 힘의 차이가 나는 강자에게 그럼에도 덤벼드는 자에 대한 예우.
금으로 장식된 붉은 칼날이 나를 향해 휘둘러진다. 그 여파만으로도 전신이 휘청거렸다. 눈이 멀어 버릴 마력의 폭풍우 속에서 낙엽처럼 흔들리는 내 앞으로 또 하나의 발판이 나타났다. 한 걸음 더,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한 디딤돌.
쩌엉-!
검이 내려친다. 붉은 검 아래 푸른빛이 번뜩인다. 단 한 순간, 초월자의 공격조차 막아 내는 피해무효화. 세상 가장 단단한 물질에, 반투명한 팔찌에 희미한 금이 갔다. 동시에 마지막 발판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초월자의 눈높이보다 위로.
새하얀 창이 내 손에 들렸다. 독기를 머금은 금적색 검이 크게 휘어지며 재차 들이닥친다. 팔을 뒤로 당기고 내찔렀다. 스탯 F급의 D급 찌르기 스킬.
– 그건-!
구우웅- 포식의 왕의 검 끝이 멈추었다. 시간이 정지한 듯 굳은 검이 하얀 빛에 휘감긴다. 수백 수천 마리의 뱀처럼 흰 빛이 검을 따라 그 주인의 팔로, 그리고 몸으로 휘감아 번져 나갔다. 일순간에 모든 공간이 창백해지고.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공중에서 추락하는 나를 금빛 사슬이 몸을 감아 안전히 내려서도록 도와주었다. 발아래 젖은 땅이 첨벙거렸다. 그 앞으로 포식의 왕이 보였다. 인간의 두 배쯤 됨직한 크기로 줄어든 그의 모습이 흐릿했다. 빗방울조차 막지 못하고 젖어 든 금빛 섞인 붉은 머리카락. 뱀은 그것이 신기하다는 듯 뺨이며 이마에 달라붙는 머리칼을 손끝으로 젖혔다.
“놀랍구나.”
그가 흰 창을 바라보았다. 생이 곧 끝남에도 미련 없는 시선이었다.
“어쩐지 후련하게도 보입니다.”
“그러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위압감은 사라지고 포식의 왕이 젊은 청년처럼 웃었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도 긴 시간을 살아왔다. 순환하지 않는 일직선의 길을.”
“그럼…….”
“죽고 싶었다는 뜻은 아니다. 길이 있는 한 걸어 나가고 살아가는 것이 생명이니. 그리고 이렇게 스러지는 것 또한 생명이다.”
포식의 왕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익, 작은 소리와 함께 내 팔의 팔찌들이 뱀으로 변했다.
“나는 잡아먹고 또 잡아먹으며 계속해서 살아왔다. 그것에 한 점 후회는 없으나 내 일족의 가능성조차 내게 잡아먹힌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가능성을요?”
“그래. 나누지 않고 모든 것을 포식한 자가 변치 않는 생을 누리고 있으니.”
기다란 손톱 끝이 어린 뱀의 턱 아래를 간질였다. 포식의 왕이 지닌 마력이 서서히 퍼져 나간다.
“썩어 스러진 시체에서 싹이 트노라.”
짐작조차 하기 힘든 긴 시간 속에 쌓여 온 힘이, 이제는 그의 일족을 위한 양분으로 흩어진다. 곳곳에 뿌려 놓은 씨앗들에게로. 눈앞의 두 어린 뱀에게로.
어쩌면 포식의 왕은 오래도록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는 죽지 못한다. 일부러 패배하지도 못한다. 만약 그가 패할 정도로 강한 초월자에게 진다면 이런 식으로 흩뿌려지지 못하고 모두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초월자가 아니다. 초월자에 비하면 짧디 짧은 생애에 어린 아이들을 품고 이어져 가는 사람이다.
“포식의 왕 님은-.”
“르하나히. 너희 세계의 언어로 석류 알이다. 나는 알에서 홀로 태어나 이름 지어 줄 자가 없었으니, 햇살이 스미는 석류 열매를 보고 직접 붙였다.”
“예쁜 이름이네요.”
그의 모습이 더욱 흐려졌다. 반투명하게 등 뒤에 풍경이 옅게 비칠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좀 아쉽기도 하네요. 나름 도움도 받았고… 다른 초월자 하나는 자기가 먼저 죽어라 덤빈 주제에 저주를 남겨 놓고 갔는데.”
“속이 좁은 놈이로구나.”
“잊히고 버림받을 거라나. 죽어가며 저주하는 초월자들 꽤 있대요.”
어르신도 많이 받았다고 하고. 포식의 왕이, 르하나히가 눈매를 휘었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축복하마. 너는 수많은 아이를 가질 것이다.”
“…예?”
축복은 감사하지만 뭔가 좀 묘한데. 이미 너무 많습니다만.
“아이들은 너를 잊지 않고 사랑할 것이며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설 아이를 네 손으로 품게 되리라.”
“가, 감사합니다.”
애들 훌륭하게 잘 클 거라는 말씀이 참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포식의 왕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몸을 흘끔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근원이 무한한 생명의 탄생지는 아닐 것이다.”
“네? 근원이요?”
“근원은 세상을 만들어 내고 다시 삼킨다. 패륜아들은 그것을 무도한 짓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하는 입장에서야-.”
“희생 없는 재생은 없다. 토끼는 풀을 뜯고 여우는 토끼를 잡아먹는다. 죽어가는 것들은 다시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키워내는 힘은 잡아먹어야만 생겨나는 것이다. 알고 있느냐. 최근의 근원은 세계를 만들어 내는 힘이 약해졌느니라.”
르하나히의 말대로 근원의 힘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면. 만들어 낸 세상을 수확해 먹어야만 창조의 힘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패륜아들이 하는 짓은 토끼를 보호하고자 여우를 모두 잡아 죽이는 것과 같다. 수없이 늘어난 토끼는 결국 땅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멸망을 받아들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삶이지 않느냐. 모두가 살아가나 일부는 죽는다. 그 모두 또한 언젠가는 죽는다. 그래도 시스템까지는 토끼에게 보다 질 좋은 먹잇감을 제공하는 정도일 터다. 여우로부터 도망칠 힘을 주기 위한.”
“문제는 과도한 개입이겠지요.”
포식의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초월자가 탄생하며 삼켜지는 세계들. 본래 초월자는 세계를 삼키지 않았다. 근원의 멸망이 부추겨 내는 극히 낮은 가능성 속에 스스로 성장하였다.”
“초승달에 대해 아십니까.”
“나와는 거리가 먼 성향이라 잘 알지는 못한다만, 초승달이 관계가 있느냐.”
“예. 분명히.”
뱀의 눈이 하얀 창을 바라보았다.
“초승달 아래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수많은 초월자가 있다. 그 창 한 자루로는 힘들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초승달에게 닿기도 전에 힘이 다할 것이다. 심지어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여럿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창을 가졌다 해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원래는 르하나히 님, 당신을 상대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었죠.”
르하나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하구나. 모든 세계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 내 앞의 너처럼.”
“그, 사실 모든 세상을 구하려고 나선 건 아니지만요. 저는 그저… 지키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단 한 명. 내 세계는 그토록 좁았었다.
“본디 거대한 자는 없다. 시작은 모두가 씨앗이니.”
포식의 왕의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이, 찬란한 빛을 머금은 마석을 향해 모여든다.
“그러니 잘 부탁하마. 내 아버지여.”
“…예? 네?”
잠깐만, 뭐라고요? 눈앞이 폭발하듯 밝아졌다가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포식의 왕이 사라진 자리에 마석 대신.
“저, 저기요!”
금빛을 띤 붉은 알이 놓여 있었다. 아니 그쪽 애들 맡기다 못해 아예 댁까지 키우라고? 심지어 알이잖아! 저 알은 아직 부화 성공한 적 없습니다만!
“아니 이게 뭐야!”
“축하하지. 애가 하나 더 늘었군.”
성현제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런 축복을 해준 이유가 이거였냐? 진짜 평생 결혼하긴 글러먹었네! 그래도 일단 알을 주워 명우 주머니에 넣었다. 이러다가 각성자 및 이종족용 교육시설 우리 애들로 다 채우겠다.
한숨 푹 내쉬면서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흰 창이 다시 내 손에 쥐어졌다. 포식의 왕의 말대로 곧장 초승달에게 덤벼들 수는 없다. 대신.
“준비는 되었나.”
“제가 할 소리입니다만.”
성현제가 시스템 창을 펼쳤다. 나 또한 그를 보조했다. 거대한 화면이 나타나고 그 속에 셀 수 없는 수의 마나 회로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다.
“시스템 제작자 권한, 인증 요청.”
가장 깊숙한 중요 시스템 설정으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월자들이, 제작자들이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 내고 근원과 연결되기까지 한 힘이다. 하지만 그중 일부분만이라면.
성현제가 우리 세상과 연결된 시스템을 끌어낸다. 초월자들이 접근하는 통로. 창을 한껏 당겨.
콰드드득-
내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