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24
723화 나의 바다 (3)
시작은 작은 귀걸이였다. 시스템 오류로 튀어나온 몬스터를 사냥한 보상으로 준 창랑의 인어여왕 귀걸이. 큰 의미는 없었다. 패륜아들은 자신이 초월자가 되기 전 사용했던 아이템을 곧잘 보상으로 등록하였고 귀걸이 또한 그중 하나였다. 수 속성 힘을 지닌 각성자에게는 유용한 장비이기에 그간 거쳐 온 주인들도 많았다.
한유진은 그 귀걸이의 인연을 빌미로 인어여왕의 힘을 요구했다. 그때도 초월자의 요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던 인어여왕은 박예림에게 물의 지배자로서의 힘을 건네었다. 단 한 번의 경험이었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박예림이 얼음 대신 물을 주로 다루게 되고 빠르게 성장해 갔지만 그것은 한유진의 영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 …나를.
인어여왕은 폭풍우 속에서 선명히 빛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금이 간 창을 들고 찢어진 지느러미 날개를 펼쳤다. 거친 바람결에 흔들리는 기다란 물의 머리카락 사이로, 새파란 눈동자가 당당히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물의 길을 따라 왕의 앞에 다다라 선, 창을 겨누어 오는 소녀.
인어여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어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낡디 낡은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뭉치고 뭉쳐지다 크게 부풀어 오른다. 전신을 두들기는 그 감정이 터져 외쳤다.
사랑스럽다.
오래전 흐려지고 사라진 그녀의 길을 다시금 걷고 있는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 나아가 그 너머까지 바라보는 소녀가, 인어여왕을 향해 동경을 말하였다. 칭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소녀는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수하고도 선명하게.
그 모습을 어찌 아니 사랑할 수 있을까. 더없이 강력한 애정이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제아무리 긴 세월을 살아온 초월자라 하여도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었다.
– …그래. 그랬었어.
홀로 남은 왕이, 더는 무언가를 남길 수도 이어가게 할 수도 없는 존재가 잊고 있었던 사실.
둥지를 떠나 성장하는 무수한 미래.
그녀는 그 등을 지켜보는 왕이었다. 자유롭게 나아가는 이들의 발판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아주 오래전에는.
‘여자아이들이란 보통 그렇죠.’
엉망이 된 소녀를 다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 소녀는 모든 바다를 아우르는 왕이 되었다. 따스한 눈길 속에서 제멋대로 성장하여.
자신 또한 그러하였으며 이제는 바라봐 줄 차례였건만. 외로운 왕은 어느 순간 폭군이 되었다. 왕은 모두의 토대였다. 시스템 또한 그러했다. 그 위로 무엇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는 그녀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틀렸어.
새벽녘 첫 파도의 이름을 지닌 인어가 인정했다.
“돌아가겠어! 어떻게든!”
새로이 몰아치는 어린 파도를 향해 머리 숙였다.
박예림이 금이 간 창을 힘껏 내찌른다. 바다가 그를 뒤따른다. 인어여왕은 두 팔을 벌렸다. 기뻤다. 물은 끊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흐른다. 그녀가 눈감고 돌아선 그 순간에도 조용히 샘솟아 넘쳐흐른다.
콰아아아-
바다를 휘감은 창이 푸른 비늘을 꿰뚫었다. 우드득, 창대가 부러지고 높게 튕겨 나간다. 박예림의 몸뚱이 또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도 사이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창끝은 확실하게 꽂혔다.
박예림이 눈을 깜박였다. 바람이 잦아들고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파도가 가라앉으며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인어여왕의 손끝이 가슴에 박힌 창날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 어디로든 흘러가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피를 머금은 창날이 가슴을 빠져나왔다. 흩어진 조각들이 모이고 매끄러운 푸른 창대를 이룬다. 물결과 바다의 보석을 담은 창이 박예림 앞에 내리 놓였다.
인어여왕이 긴 숨을 내쉬었다. 무거워져 가는 몸으로 자신의 힘을 끌어내었다. 한유진은 자신의 세상을, 박예림의 세상을 시스템으로부터 끊어 놓았다. 그러나 아직 초월자들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를 위한 도움을. 완벽한 보호까지는 힘들더라도 그것을 위한 밑받침이 될 물을.
“어, 저기요?”
새롭게 탄생한 창을 든 박예림이 당황하며 인어여왕을 바라보았다. 치명상은 분명 아니었다. 그저 긁힌 정도일 텐데 반응이 이상했다. 인어여왕이 그녀를 향해 미소 지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나는 이제 잠들 거란다.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잠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초승달과 그녀의 손아래에 사라져간, 사라져갈 세상들에 대한 걱정은 남았다. 그와 동시에 확신이 들었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는 날,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게 될 것이다.
– 나의 어린 바다.
인어여왕은 행복한 꿈속으로 가라앉았다.
* * *
물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더욱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문은 닫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졌다. 툭.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이 떨어졌다. 유현이가 옆에서 나를 부르는 듯했지만 귀가 먹먹했다. 모든 목소리들이 멀었다.
입을 열었다. 말을 하고 움직여야 했건만 숨소리만 새액 빠져나왔다. 이럴 때가 아닌데, 정신 차려야…….
“-러니까 형!”
유현이의 외침 뒤에 당연하다는 듯 이어져야 할 아저씨! 가 없었다. 오래된 환청처럼 머릿속에서만 메아리친다. 여전히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 숨이 막혔다. 발치에는 풀잎이 바스락거리건만 나는 아직 물속이었다.
“…지금, 그.”
갈피를 못 잡는 손에 유현이의 팔이 닿았다. 정신 차려야 해.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 정신 차려야 해.
“형님! 정신 차려!”
“괜찮을 거예요, 유진 씨!”
– 끄우웅, 끼앙
목소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눈을 깜박였다.
“구하러 가자, 형.”
유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당연히. 당연히.
“…인어여왕은, 예림이를 해치진 않을 겁니다.”
내 잘못이다.
“후계자 칭호를… 주기도 했고요.”
내가 예림이를 남게 만들었다.
“원래 목적은 저였으니까, 인질로 쓰기 위해서라도 붙잡아만 둘 겁니다.”
내가 남으려 한 것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곳에 어린애를 데리고 와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초월자들을 믿어선 안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제가 나선다면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지요.”
“일단 앉게.”
성현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누가 가져다줬는지 모를 의자에 유현이가 나를 앉혔다. 노아가 피스를 들어 내 품에 안겨 주었다. 그새 몸을 말렸는지 붉은색 털이 보송하게 부드러웠다.
“인질 교환 같은 소리는 하지 마.”
문현아가 딱 잘라 말했다.
“예림이는 분명 어리지. S급이라더라도 보호받을 나이고 그래서 형님이 당황하는 것도 이해해. 나도 놀랐고. 하지만 어린애들도 존중은 필요해.”
현아 씨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강한 눈길을 바로 대하기가 힘들었다.
“형님을 내주고 예림이를 데려오면 결국 예림이가 나선 건 헛수고가 되어 버려. 완벽한 실패지. 그래서야. 형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림이를 위해서.”
“…하지만.”
“우선적으로, 인어여왕의 태도는 확실한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여왕이 예림이를 해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불안할 겁니다. 혼자 붙잡힌 거잖아요. 어른이라고 해도 무서울 텐데!”
“…알아. 몸은 멀쩡하더라도 마음은 다치지 않기 힘들지. 그리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덜 다치는 쪽을 선택해야 해.”
조금이라도 덜 다치는 쪽. 다치지 않을 수는 없다. 예림이가 나섰다. 내 행동을 보고 나아갔다. 그것은 예림이의 선택이었고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인어여왕에게 곧장 나를 데려가고 예림이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내가 편한 방법이었다.
“…송 실장님, 이럴 때는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인질의 안전이 확실시된 상태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각성자, 지금은 초월자로 더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질 교환은요.”
“…각성자보다 비각성자를, 상급 각성자보다 하급 각성자를 우선시합니다. 또한 인질이 중급 이상 각성자일 경우 공조가 가능하기에 인질과 연락할 방법을 찾습니다.”
“신입아.”
내 부름에 겹꽃과 같은 옷자락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연베이지색 곱슬머리 아래의 붉고 둥근 눈이 나를 바라봐왔다.
“예림이와 연락할 수 있을까.”
[잠시, 기다려 주세요.]풀밭 위로 내려서며 신입이 말했다. 밟힌 풀잎은 꺾어지지 않았다. 실체가 아닌 환영이었다.
[문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파괴된 것은 시스템의 일부지만 영향은 전체에 미치고 있어 지금 당장 인어여왕 몰래 작은 물방울에게 접근하는 건 힘들어요.]“시스템이 정상화되면 예림이에게 말을 걸 수 있어져?”
[아직 허니에게 속한 팀원이니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완전 정상화까진 아니고, 조금만 더 손보면 돼요.]“부탁할게.”
신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용히 사라진다. 그렇게나 엉망인가.
“몸부터 말리자.”
유현이가 불길을 일으켰다. 이린이 내게로 건너왔다.
“박예림을 구하려면 형 몸도 챙겨야 해.”
“도련님 말이 맞아. 형님이 멀쩡해야지.”
“아, 저 뭔가 먹을 거라도 찾아볼까요?”
눈치 보며 숨죽이고 있던 마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따뜻한 거요. 속이 따뜻해지면 기분도 나아지잖아요. 불도 있고, 굽거나 데우거나 끓이면 되고.”
“…고맙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걱정 끼치긴 싫은데 그러기가 힘들었다. 헌터인 이상 예림이가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맞닥뜨리자 예상보다 충격이 더 컸다. 내 행동으로 비롯된 일이라 더욱 그랬다.
“기억하게나. 한유진 군은 피해자야.”
성현제가 말했다.
“분명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일에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막을 수 있었다고 해도요?”
“가해자를 지워 보게. 무슨 일이 일어났겠나.”
“…아무것도요. 다 함께 여기 도착했겠지요.”
인어여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예림이가 붙잡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야.”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더 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자꾸만 초조해졌다. 아무리 강한 모습을 보여도 그래도 어린아이인데. 분명 무서울 텐데. 이럴 때 떨어져 있는 게 무슨 보호자야. 누군가 예림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없음에도 부디 누군가가.
[허니!]신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결됐어?!”
[그게, 나무 선배가!]스르륵, 허공에 덩굴이 피어난다. 푸른 잎과 붉은 잎이 달린 덩굴이 얽히며 네모난 문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어 그 안의 공간이 열리고 연결되면서.
“아저씨!”
예림이였다. 펼쳐진 너른 바닷속에서 예림이가 나타났다. 첨벙 물을 튀기며 내 앞으로 뛰어내린다.
“저 돌아왔어요!”
활짝 웃는 얼굴을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예림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팔을 뻗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끌어안았다.
“어, 저기, 아저씨…….”
목이 꽉 막혀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서 오라고, 괜찮냐고 말해 줘야 하는데 할 수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내 몸을 예림이가 마주 안았다.
“걱정… 많이 했죠.”
당황한 예림이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였다.
“저는,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예림아.”
“근데, 무서웠어요…….”
“…아저씨도 무서웠어. 정말로.”
둘이 끌어안고 훌쩍거렸다. 눈물은 나왔지만 떨리던 몸은 점차 가라앉았다. 예림이가 세수하라며 물방울을 만들어 주었다. 늘 그랬듯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진정하고 물었다. 예림이보다 신입이 먼저 말했다.
[나무 선배가 데리고 와줬어요!] [물방울에게 부탁받았어.]문을 이룬 덩굴이 흐트러지고 그 안쪽으로 잎사귀를 두른 작은 나무인형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그 애를 신입에게 데려다주라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희를 한 번은 도와달라고.]물방울이면 인어여왕이? 갑자기 왜? 내게서 떨어진 예림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빛냈다.
“칭호 말이에요, 받았어요.”
“뭐?”
“저 말고 얘가요.”
– 아, 안녕하세요!
예림이의 손바닥 위로 물이 모여들었다. 조그만 인어의 형체를 한 물이 나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 예림이의 물의 정령 산호라고 해요!
물의 정령이, 그러니까.
“아, 안녕. 깨어났구나. 그런데 칭호를…….”
– 마, 맞아요. 제가 예림이 대신 칭호를 받았어요! 그게, 전 예림이의 정령이라 후계자 칭호를 받아도 인어여왕에게 종속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산호가 인어여왕의 후계자로서 물의 지배자의 힘을 제게 전해 줬어요! 힘 자체는 인어여왕과 동등해서 맞서 싸웠는데 경험치는 엄청 차이나잖아요.”
– 무서웠어요…….
“그래도 한 방 정도는 먹이려고 덤벼들었는데, 갑자기 인어여왕이 절 보내 주겠다는 거예요! 아, 제대로 찌르긴 했어요! 창도 부서졌는데 인어여왕이 고쳐 줬고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니까.
“인어여왕과 동등한 힘?”
“지금은 아니에요.”
– 힘을 끌어내는 대상인 인어여왕이 잠들었거든요. 후계자 칭호 덕분에 다른 어린 정령보다는 강하고 성장도 빠르겠지만요.
정령이 수줍어하면서도 당당히 가슴을 펼쳤다. 인어여왕이 잠들었다고? 어…….
– 뭐야 저게에에!
이린이 내 어깨 위에서 불을 뿜었다.
– 최초의 정령은 린인데! 이 세상에서 린이가 제일 강해야 하는데!
빙글빙글 맴돌더니 유현이를 향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 유현아! 나 그거 삼킬래! 뜨거워도 참고 삼킬 거야! 린이도 그거 먹으면 저거보다 더 세질 수 있어!
최초의 불의 조각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불의 정령도 못 견딜 정도로 뜨거웠는데 그러다 탈나면 어쩌려고. 린이를 토닥여 주었지만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 시끄러워라.
예림이 어깨 뒤에 숨어 머리만 쏙 내민 채 산호가 중얼거렸다.
– 아저씨 도움이 없으면 조용해지죠? 그거.
– 뭐? 린이도 금방 혼자 말할 수 있게 될 거야!
– 예림아, 불의 정령은 항상 시끄러워. 난폭하고.
음, 부정은 못 하겠다. 린이가 좀 그렇긴 하지. 예림이가 웃으며 손가락 끝으로 산호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 줘. 다른 사람들이랑도.”
– 응, 예림아. 하지만 난 예림이 네가 제일 좋아.
“응, 나도 산호 네가 좋아.”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이린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예림이랑 산호는 정말 다정하구나.
“…유현아, 너도 린이 좀 잘 대해 줘라.”
“도움은 되고 있어.”
“그, 린아. 유현이도 널 좋아하고 있을 거야.”
– 아닌데요.
린이가 딱 잘라 말했다.
– 유현이는 형만 좋아해요! 그치 유현아!
“응.”
– 린이는 그래서 유현이가 좋아! 유현이가 린이 좋아하면 안 되죠. 그런 유현이는 유현이가 아니라서 싫어요! 미적지근하다고요! 형은 계속 말해도 몰라!
불의 정령이 흥, 하고 유현이에게로 돌아갔다. 그, 그래. 네가 좋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유현이와 린이도 참 잘 맞기는 했다.
“아무튼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어여왕이 예림이 널 풀어주고 잠들었다는 거지?”
“네. 왜 그런 걸까요.”
[허니! 물방울 선배가 자기 힘으로 허니 세계를 감쌌어요!]“뭐?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호하는 거예요! 어, 지금 상황이 복잡해졌거든요. 내기는 효도중독자의 승리니까 허니 세상의 조각을 줘야 하는데, 근데 시스템 연결을… 대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끊어져서 가져갈 수 없게 되었거든요. 근데 또 대표자 중 포식의 왕은… 사라졌고 물방울 선배는 잠들었고…….]축약해서 엉망이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일단은!] [내가 회의를 소집하기로 연락했어.]나무가 말했다.
[하루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방법을 찾아야겠지. 물방울이 물결로 허니의 세상을 감쌌지만 완벽하진 않아. 그 물결을 바탕으로 방어를 굳건히 해. 대략 한 달 남짓만 버티면 시스템 연결의 흔적까지 전부 사라지겠지.] [나무 선배, 저희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물방울의 부탁이니까. 그녀에게는 신세를 졌고 그 보답이야. 그래도 계속적으로는 아니야.]나무인형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물방울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어. 허니의 세상을 보호하는 것까지는 도와주겠지만 그 후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그래도 감사해요!] [신입 너는.]나무가 신입을 바라보았다. 신입이 귀를 길게 늘어뜨렸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허니를 돕고 싶어요.] [그래. 내가 시간을 끌 테니 넌 정리를 해.] [네!]나무인형이 무수한 꽃무더기로 변하고 그대로 흩어 사라졌다. 신입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일단 시스템부터 안정화시키고 방법을 찾아봐야 해요. 시간을 느리게 해놓을 테니까요, 하루 이틀 정도는 쉬셔도 괜찮아요.]작은 돔형의 천장이 사라지고 너른 하늘이 나타났다. 초원 또한 끝없이 펼쳐지고 낯익은 집이 보였다. 이어 명우와 어린 혼돈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숨이 탁 놓였다. 쉬어도 된다. 인어여왕이 왜 그런 건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불투명했지만 그래도. 잠시만.
“형!”
스위치가 꺼지듯 의식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