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32
731화 꿈의 도시 (4)
터엉-! 삽 머리에 두들겨 맞은 머리통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옆에서 노아가 곡괭이로 좀비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정확히는 좀비화한 헌터들이었다.
“좀비 엄청 많다! 고향에 온 거 같아~.”
리에트가 삽으로 또 다른 좀비를 두들겨 패며 웃었다. 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급 좀비 느려서 다행입니다.”
“원래는 더 빨라야 하는데 말이야.”
중화냄비를 든 황림이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아 다른 셋에 비해 힘 또한 많이 약해진 박예림을 주로 보호하고 있었다.
“꿈이라서 그런가. 대중적인 좀비가 영향을 끼친 거겠지.”
“빠른 좀비가 대세 된 지가 언젠데요. 요새 느린 좀비가 어딨어요.”
“그래도 고전은 느린 좀비랍니다. 좀비 하면 역시 기어 다니다 팔다리 뚝뚝 썩어 떨어뜨리는 몰골이 매력이지.”
“납치범 아저씨 의외로 촌스럽네요.”
박예림의 말에 황림이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 난생처음 듣는다고, 꼬마 헌터님.”
“하와이안 셔츠 입고 등장했으면서.”
“아니, 그건 분위기가-.”
“원래 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더라. 자신 있으면 변명 대신 몸으로 보여 주는 법이라고요.”
“몸 하면 내가- 리에트! 나 그쪽으로 가면 안 될까! 꼬마 아가씨랑은 대화가 안 통해!”
리에트 대신 노아가 황림에게 박스 테이프를 던져주었다. 황림이 테이프를 뜯어 스스로 입에 붙였다. 박예림이 뭐 하는 짓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중국 헌터들이 다수 좀비가 되어 대륙 각지가 뒤집어졌던 일 때문일까, 의외로 몬스터보다 좀비가 더 많이 나타났다. 덕분에 상대하기는 오히려 더 쉬웠다. 마나가 없다면 짐승형보다 인간형이 훨씬 잡기 수월했다.
“여기도 키 없어요.”
노아가 길가에 세워진 차를 확인하고 말했다. 리에트가 뭐? 하고 되묻자 아차하곤 프랑스어로 다시 열쇠가 없다고 알려 주었다.
“노아 오빠 한국말 진짜 많이 늘었다니까요.”
“평소에 한국말 쓰려고 했어요. 빌딩에서는 통역 아이템 끄고 있었어요. 통역 아이템이 있어서 사람들 몰랐지만요. 억양은 어색하죠?”
“쪼끔요. 통역 아이템이 서툰 한국말까지 제대로 번역해 줄 줄이야. 신기하네요.”
통역 아이템을 쓸 수 없게 되자 의사소통이 문제였다. 다행히 황림은 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노아도 불어와 영어, 한국어를 익혀서 서로서로 통역해 줄 수 있었다.
“납치범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긴 해요.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읍읍읍.”
“대체 왜 자꾸 입 막는 건데요? 보기 이상하게.”
황림이 테이프를 슬쩍 떼며 말했다.
“목줄은 괜찮고?”
“수상쩍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인형술사라는 초월자와 손잡았다면서요. 그러니 어떻게 믿어요. 또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데.”
“억울하네. 우리 진이를 위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애를 돌봤는데.”
“아저씨 납치 한 번, 실장 아저씨 납치 미수 한 번. 결이도 사실은 납치하려고 했던 거 아녜요?”
“진이를 걸고 맹세컨대 아니야.”
“왜 우리 아저씨를 걸어요? 그래서 인형술사는 뭘 노리는 거예요? 송이네 아저씨는 왜 납치하려고 했고요.”
와장창! 리에트가 삽으로 쇼윈도우를 깨부쉈다. 노아가 한숨을 내쉬며 쇼윈도 옆의 유리문을 열었다. 리에트가 재밌잖아! 라고 소리쳤다.
“그건-.”
황림이 박예림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박예림이 살짝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비밀이랍니다.”
“…뭐예요!”
박예림의 손에 들려 있던 소방도끼가 부웅 바람을 가르며 황림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황림이 나 지금 비각성자야! 하고 엄살을 부렸다.
“반가울 얼굴이라는 것만 말해 둘게!”
“반갑긴 뭐가요!”
“나도 보고 놀랐다니까~.”
“그 테이프 도로 붙여요! 도움이 안 돼!”
“앗 저기 휴대폰!”
황림이 저만치 붙은 간판을 가리켰다. 박예림이 얼른 그쪽을 돌아보았다. 낮익은 휴대폰 회사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맞지? 도움 되지?”
“중국어 몰라도 로고 보면 폰인데요. 쓸모없어.”
“휴대폰 쓸 때-.”
“요즘 휴대폰 언어 변경 다 되거든요?”
“납치범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라고 말한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레이디.”
“십 분 만에 쓸모가 없어지다니, 반성하세요.”
“…역시 우리 진이 가족다워!”
이내 박예림의 손에 휴대폰이 들렸다. 통화는 할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박예림이 SNS 앱을 깔았다. 로그인을 하자 한유진의 사진이 보였다.
“아저씨다!”
한유진이 어색해하며 웃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멀쩡해 보였다.
“아저씬 한국 부산이고 집에 가는 중이래요. 우리도 사진 찍어요!”
얼른 다 같이 사진을 촬영한 다음 SNS에 올렸다. 박예림이 희미하게 드리워졌던 그늘을 벗어 던지고 활짝 웃었다.
“어서 집에 가요!”
이어 키가 꽂힌 자동차도 발견했다. 넷은 비행기 탈취를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 * *
마나가 희박하다. 화염뿔사자는 성체로 돌아간 자신의 몸뚱이가 평소보다 훨씬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동시에 눈앞의 인간이 지닌 존재감이 확연히 약해진 것 또한 눈치챘다.
피스는 테이밍된 몬스터였다. 하지만 유체 시절에나 간신히 적용시킬 수 있었던 테이밍 스킬의 등급은 낮았고, 아이템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지금은 더더욱 그 영향력이 옅어진 채였다.
현재의 한유현은 자신보다 약하다. 여느 인간들에 비해서는 분명 강했지만, 마나가 희박해진 지금도 일반적인 존재들에 비해 상당량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무엇보다 체급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평범한 사자만 해도 몸무게가 200kg을 넘기기도 했다. 화염뿔사자 성체는 그 배를 넘는 덩치를 자랑했다.
칼을 휘두른다 해도 스킬도 아이템 효과도 없는 지금은 치명상을 입히기조차 힘든 체구였다. 반면에 인간은 훨씬 작았다. 한유현은 체격도 키도 상당한 편이었기에 같은 인간이라면 이기지 못할 상대가 거의 없을 터였다. 최소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종 자체의 체급이 심하게 차이 나는 이상 제아무리 노련한 헌터라 하더라도 승산은 낮았다.
– 크훅.
피스가 낮은 숨을 토해냈다. 발톱 끝이 가볍게 바닥을 긁는다. 맹수를 등 뒤에 둔 채 한유현은 차분하게, 하지만 초조함을 다 숨기지 못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집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알파벳… 러시아?’
영어는 수준급이었고 일본어와 중국어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통역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보아도 무방했다. 큰 도시도 아닌 듯하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유현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붉은빛 도는 금색 두 눈이 그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이를 드러내진 않았다. 하나 오히려 그것이 더욱 위험한 신호였다. 대등하게 맞서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조용히 덮쳐들어야 하는 사냥감을 앞에 둔 태도. 그 섬뜩한 공기 속에서 한유현은 물러나 피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형을 찾아야 한다.”
피스의 한쪽 귀가 움찔 까닥였다.
“위치 재정립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은 안 돼.”
피스가 자신의 위치를 높이고 견고히 하고 싶다는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망설였던 것 또한 그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본 한유진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 크르르.
그러나 한유진은 이 근처에 없다. 한유현을 내리누르는 일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한유진이 얼마나 눈앞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지 피스는 잘 알고 있었다. 피스는 어리지 않았다. 한유현을 짓밟고 벗어나 독립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랐다.
“만약 무사히 이곳으로 왔다면 형은 분명 집으로 향할 거다.”
집. 피스의 꼬리가 크게 휘둘러졌다. 탁, 바닥을 한번 내리친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깨끗하게 세탁해 보송해진 시트 위에 몸을 만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떠나야 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성체가 된 이후 내내 발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거렸다.
– 크흥!
하지만 눈앞의 인간을 봐라. 피스는 금색 눈을 가늘게 떴다. 한유현은 강했다. 강하긴 해도 몸은 덜 자란 박예림과 달리 부모인 한유진보다 훨씬 큰 덩치를 지녔다. 제 무리를 만들어 가지고 리더로서 이끌고도 있었다. 비록 짝을 만들 기미 없이 한유현의 몸에서 나는 다른 동족의 냄새는 한유진뿐이었지만 독립하고도 남을 완벽한 성체였다.
그럼에도 부모 품을 파고들어 웅크렸다. 한유진 또한 어린 새끼 취급을 했다. 피스는 혼란스러웠다. 성체는 독립해야 한다. 본능은 그렇게 말했지만 한유현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 자리는 따스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성체도 머무르고 있다. 그러니 그보다 약하고 어린 화염뿔사자도, 비록 성체라 해도 계속 머무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한유진의 종족은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 게 아닐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동은, 헬기를 빌리는 편이 낫겠지.”
한유현이 돌아섰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등을 내보였다. 피스는 낮게 크르릉거렸다. 아직 한유진의 손길이 좋았다. 그가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 놓고 뒹굴 수 있는 공간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유체화할 수 없으니 네가 탈 만한 크기로 구해야겠군.”
한유현 자체도 나쁘진 않았다. 피스는 발을 떼었다. 겅중 단번에 앞서 걸어가던 한유현을 따라잡았다. 위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꿈틀거렸지만 마나가 다시 풍부해지면 한유현 또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피스는 조금 더 참기로 하고 몸을 낮추었다.
– 캬륵.
고갯짓하는 몸짓에 한유현이 피스의 등 위로 올라탔다. 붉은 털과 금빛 갈기를 휘날리며 화염뿔사자가 도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 *
“에취!”
성현제가 보란 듯이 재채기를 했다. 서늘한 바람이 젖은 몸을 휘감았다. 송태원 또한 비슷한 몰골이었다. 운 나쁘게도 바다에 빠졌지만 육지가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러다 감기 걸리겠군.”
원래 세상의 시간은 1월이었다. 이곳은 다행히 겨울치곤 춥지 않았지만 젖은 채 오래 있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S급 각성자일 때라면 모를까 마나가 옅어져 하급 각성자 수준으로 떨어진 지금은 몸이 슬슬 떨려왔다.
“가까운 도시를 찾아…….”
“약탈을 해야지.”
장난스러운 말에 송태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꿈을 모아 만들어 낸 세계라 하였다. 그럼에도 타인의 물건을 훔친다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이곳에도 세성 길드원이 있지 않습니까.”
“잠들어 있다면. 꿈도 꿔야겠군. 모든 사람이 꿈을 꾸며 자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어쩌면 상사에게 칼 한번 꽂고 싶다는 꿈을 지닌 자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
“제가 아는 세성 길드원이라면 가능성 낮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의 속은 모를 일이라네. 내 눈앞의 누군가도 속은 꽤나 다르니.”
그렇지 않냐는 물음을 무시하며 송태원이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도로가 나타났다. 잘 닦여 있는 것이 오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도중에 나타난 표지판에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 도로를 따라가는 둘의 피부가 점차 창백해졌다.
“저체온증으로 사망은 처음 겪는 일일지도 모르겠군.”
“…죽지 않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위험하다 싶으면 말하게. 속은 아직 따뜻하니 도움이 될 거야.”
“대체-.”
송태원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속도를 올렸다.
“화났나 보군.”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을 희생시켜 살아남을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주위에 피해를 주면서 살아. 적정선을 지키려 노력할 뿐이지.”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은퇴하면, 무얼 할 건가.”
송태원이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하는 성현제가 사라진다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길게 돌려 묻는 말에 송태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현제가 작게 재채기를 했다.
“감기약도 찾아봐야겠어.”
살짝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생소한 감각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얼마쯤 이동했을까, 마을이 나타났다. 한적하지만 제법 큰 곳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상가를 찾아갔다. 몸에 맞는 옷을 찾긴 힘들었지만 급한 대로 갈아입었다.
“한유진 군이 무사히 이곳에 왔다면 집으로 향했겠지. 휴대폰은 없나.”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길가에 세워진 바이크로 다가가며 송태원이 말했다.
“당신은 한유진 씨를 죽이려 했습니다.”
우선 목적은 초승달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것일 터였다. 또다시 한유진의 몸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진심이기도 했다. 성현제는 한유진을 정말로 죽이려 하였다. 헐렁한 셔츠를 불만스럽게 잡아당기며 성현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일단 한유진 군을 만나 봐야지. 화내려나.”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겠지요.”
“한유진 군의 고질적인 문제지. 점차 나아가곤 있다 하나.”
성현제의 입가에 의미 모를 미소가 맺혔다. 어둑한 하늘 위로 희미한 달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