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42
741화 슬리핑 뷰티 (1)
비행기가 착륙하고 몬스터를 향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내에 잠시 대기해 달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빠!”
그중 가장 앞에 결이가 있었다. 결이가 내게로 뛰어와 와락 안겼다.
“결아! 언제 여길 들어왔어!”
“아빠 잠깐만 보고 갈 거야. 결이가 성녀님 모셔왔어.”
결이의 뒤쪽으로 에밀리 스펜서가 다가왔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으며 한쪽 팔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꿈이 참 좋긴 좋아요. 스탯은 F급이라 세월은 못 이겼던 몸뚱이인데.”
“안녕하세요. 한국어 정말 능숙하시네요.”
“아이템이에요.”
“결이가 성녀님은 스킬도 아이템도 쓸 수 있게 모셔왔거든! 한 명 정도는 할 수 있어.”
내 품에서 빠져나오며 결이가 우리를 차례로 휙 돌아보는 척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몬스터가 많으니까 다친 사람 있으면 치료해 주려고.”
성현제 귀가 꽤나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거니 저거니 퉁명스럽게 대해도 우리 애가 착해서 말이야.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 성현제 씨, 뭐 합니까. 얼른 오지 않고서.”
어린애가 걱정이나 하게 만들고 말이야. 말을 내뱉으며 성현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흥미를 담은 채 결이를 향하는 금색 눈이 보였다. 낯익은 눈빛이었다. 나 또한 여러 번 받아 본 적 있는 시선. 반사적으로 다시 결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기특하군.”
“결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십쇼.”
“칭찬을 했을 뿐이건만.”
성현제가 섭섭해하며 에밀리에게로 걸음을 옮겨갔다.
“원래도 어린애들은 손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친애하는 파트너의 뜻에 따라 더욱 조심하고 있다네. 좋은 보호자 노릇도 해주었지.”
“접근금지를 30년간 알아서 실천하시겠다니, 고마워라.”
“그 기준에 따르면 한유진 군도 어린아이가 되겠군. 다시 한번 보호자 제안을 해볼까.”
“전 서른한 살이고요, 원래 자기 자식은 백 살 먹어도 앱니다. 서른이면 많이 봐준 거죠.”
우리 결이 지금도 똑똑하니까 세상 경험 30년쯤 더 하면 대왕 능구렁이도 쉽게 퇴치할 수 있겠지. 성현제의 사라진 귀를 본 성녀님이 어머나 하고 박수를 쳤다.
“정말로 귀 떼먹었네요. 얼굴 관리는 잘해야죠, 아까워라.”
지금은 더더욱 얼굴밖에 안 남았으면서 말이야. 에밀리가 스킬을 사용했다. 성현제의 얼굴 한 쪽에 짙은 안개처럼 마나가 모여 뭉쳤다.
“재생은 곧장 되는 게 아니라 5분쯤 걸릴 거예요. 자아, 여러분. 부상은 없으셔도 나란히 서세요. 제가 깨어나더라도 스킬은 유지된다 하니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부드럽고도 힘찬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보호, 강화, 재생력 등의 치유 계통 보조 스킬이 우리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지 시간을 늘리고 효과를 약화했다지만 그래도 몸이 훨씬 가뿐해졌다.
“그리고 이건 꿈의 세계 재료로 만든 포션입니다.”
에밀리의 경호원이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 작은 플라스틱 물병이 가득 들어 있었다.
“던전 부산물은 없어서 정제수에 비타민C를 넣고 치유 스킬을 사용한 거라 중하급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포션에 비타민C가 들어가는 거였군요.”
“아뇨. 겨울이니까요. 감기 예방에도 좋고 레몬 맛이 난답니다.”
데우면 레몬 티와 비슷해요, 라며 성녀님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사이 성현제의 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멀쩡한 게 보기 좋긴 했다. 결이가 아쉬워하면서도 성녀님과 함께 꿈에서 깨어나고 헌터 협회와 기타 국가기관 소속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고 다가왔다.
“알프스 산맥을 미리 조사한 결과입니다.”
유창한 한국어와 함께 노트북 화면이 켜졌다. 재생되는 영상 속에 눈 덮인 산맥 끝자락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성이 비추어진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으로 디○니의 슬리핑 뷰티 성과 흡사 합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 경우엔 왕자라고 해야 하나. 박하율 그놈이 뷰티가 맞기는 한데 거참. 성 주위에는 가시덤불도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자각몽에 능숙한 사람들이 성 안으로 공간이동을 시도해 보았으나 전부 실패했습니다. 성 주위 반경 약 1km 내로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꿈의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확실히 여기겠군요.”
그래도 이렇게 나 여기 있소, 하고 알려 주니 편하구만. 어디 구석진 곳에 숨어서 잠들었으면 찾느라 시간 다 보냈을 거다.
“방탄복을 준비했습니다. 가급적 냉병기 사용을 권유하고 있으나 이 주변은 한국과 총기 소지자가 많은 곳입니다. 총화기를 쉽게 상상하고 사용하겠지요. 때문에 몬스터보다 오히려 유탄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차량 또한 방탄입니다.”
“성 주위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을까요?”
“꿈의 힘이 약한 장소이니 가능합니다. 자각몽에 익숙한 사람들은 비행이나 순간이동도 할 수 있어서 다른 곳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하더군요.”
“다들 들뜨기도 했고요.”
지금도 밖에서 난리다.
“예. 그래서 슬슬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지속된다면 현실을 버리는 사람도 생겨날 테니까요.”
“그건 걱정 마세요. 길어야 며칠이면 끝날 겁니다. 미리 말해 두는 것도 괜찮겠지요. 꿈의 세계는 일주일 전후로 사라진다, 하고요.”
시스템이 적용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진짜 세상이 아닌 초월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이니까. 신입이나 다른 패륜아들이 평범한 꿈이 되도록 조절하지 싶었다.
“알겠습니다. 앞다투어 휴가를 내려 하겠군요.”
너무 깊게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될 텐데. 말 그대로 휴가 정도로만 즐겼으면 좋겠다.
“혹시 노아 헌터, 리에트 헌터에게서 연락이 오진 않았습니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나마 명우의 도움으로 내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키워드 적용 목록에 멀쩡히 남아 있으니 크게 잘못된 건 아닐 터였다.
준비된 차량들이 비행기 앞에 서고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우리를 보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다. 몬스터는 계속해서 소환되고 있었지만 나타나기 무섭게 인파에 뒤덮였다. 이거 몬스터 입장에서는 좀비영화 엑스트라가 된 기분이 들겠는데. 꿈이라 죽지 않으니 목숨 아끼지 않고 덤비는 데다가 죽어 깨어나도 다시 잠들어 올 수 있으니까.
“SF! SF!”
“Rêveur!”
“Get lost! Feet!”
SF나 드림이나 F로 시작하는 욕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금 대충 나도 헌터다, 하고 외친 거 같았어. 통역 아이템이 정말 편하긴 편했지. 예림아, 아저씨도 전 세계 한국어 통일을 비마.
“몬스터는 걱정 마!”
“다 잡는다! 올 킬!”
한국어도 제법 들려왔다. 피스는 덩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형차에 따로 타고 나머지는 차 두 대로 나누어졌다. 차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공포 저항을 끈 상태에 몬스터는 여전히 가득하고 온갖 폭력적인 소음이 터져 나왔지만 조금도 무섭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창밖 어디를 봐도 즐거운 얼굴들뿐이었다. 마치 축제의 한복판에서 행진하는 듯했다.
방송국 직원들이 꿈에서도 일하고 있는지 차에 달린 TV에서 뉴스도 나오고 있었다.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어깨동무를 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노인들이 손에 든 지팡이를 일제히 구식 총으로 뒤바꾼다. 풍선과 과자를 나눠주는 사람도 보였다.
‘이대로 잘 끝나기만 한다면.’
다들 좋은 추억을 가진 채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에펠탑 앞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입니다.]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명 스타들을 최대한 섭외했습니다. 대중의 시선을 그쪽으로 끌면서 군인의 수를 늘려 몬스터 사냥에서 벗어나가도록 유도할 예정입니다.]“나도 보고 싶다!”
“그럼 갈래?”
내 말에 예림이가 확 인상을 찌푸렸다.
“아저씨 아직도 혼자 박하율 상대할 생각 하시는 거죠.”
유현이가 가만히 내 팔을 붙잡았다. 현아 씨도 혀를 쯧쯧 찼다.
“한 소장 저건 안 변한다니까.”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는데요. 옛날 같았음 말 안 하고 이미 사라졌습니, 윽, 유현아. 아프다.”
“지금이라도 묶죠.”
“뭐, 형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문현아가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현실에서처럼 우리 형님이 F급이고 나머지가 S급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큰 차이 없잖아.”
“그렇다니까요.”
“냉정하게 말해 나머지가 짐이 될 가능성이 높아. 특히 박하율은 형님에게만 호의적이니까. 나 같아도 혼자 갔어.”
“언니!”
예림이의 외침에 현아 씨가 팔을 뻗어 예림이 목을 감싸 붙잡았다. 예림이가 바동거렸지만 현아 씨는 꿈쩍도 하지 않고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예림이, 아직 어리지.”
“아, 언니이!”
“나는 꿈이니까 형님 따라가도 된단다~.”
“치사하게!”
“너희들이 붙잡히기라도 했다간 형님은 꼼짝도 못 해.”
발버둥 치던 예림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다가 입을 연다.
“…알아요. 제가 잡히면 안 된다는 거요. 그때도 아저씨는 분명 안 좋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인어여왕에게 붙잡혔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뭔가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싶은데 예림이가 에휴, 하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잘 빠져나왔지만 무섭기도 많이 무서웠고요. 야, 한유현.”
내 팔을 끌어안다시피 한 유현이가 예림이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아저씨한테 맡겨 봐야 할 거 같아.”
“…….”
유현이도 모를 리는 없었다. 다만 위험요소보다도 내 곁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터였다. 함께 있으면 죽고 떨어지면 산다고 했을 때 지금의 유현이는 전자를 원할 테니까. 나까지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고민은 좀 하겠지만.
“일단 근처까지 가서 생각해 보자. 애초에 성 안에는 나만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하긴 그렇지. 형님한테만 문 열어 주는 거 아니냐.”
혹은 성현제나. 하지만 성현제를 들여보내는 건 너무 위험했다. 이제 와서 네, 댁네 작은 달 가져가십쇼 할 순 없잖아. 역시 성현제는 어디 방공호 같은 데 묻어 둘까.
길이 점차 좁아지며 주위의 사람들도 줄어들어 갔다. 대신 전투기며 헬기, 보병부대가 빈자리를 채웠다.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하늘 아래 달빛은 변함없이 고고했다. 셀 수조차 없는 오랜 옛날 내가 마주쳤던 달빛을 떠올렸다. 나를 바라봐오던 밤의 눈.
‘이제 와서 대화로 풀 수는 없겠지.’
서로 물러설 수도, 양보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손 놓지 못한다. 동생을 되찾아야 했다. 초승달은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새로운 근원을 만들어 세상이 삼켜지는 일 자체를 막으려 들고 있다.
‘…비교하니까 진짜 개인적이구만.’
내 일이 아니면 내가 좀 물러나라, 싶었을 거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결론은 같았다. 설사 한 번이 아닌 수십 번을 회귀하여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되어도 나는 매번 이러고 있을 것이다. 수십 번 다시 만난 사람들을, 수십 명으로 늘어난 동생을 전부 끌어안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
“뭐 먹을 거 없나.”
모르겠다. 간식이나 먹자.
* * *
“여기서부터 입니다.”
차에서 내려선 내게 동양인으로 보이는 지휘관이 말했다. 우리나라 군복은 아니지만 한국인인가? 외국인도 군 지휘관이 될 수 있나. 없을 거 같은데 귀화하셨나.
“저기 보이는 것이 슬리핑 뷰티 캐슬입니다.”
산맥 끝에 우뚝 솟은 성이 보였다. 가시덤불로 높게 울타리 친 사이로 커다란 성문이 있다. 길도 동화책 삽화처럼 널찍하게 잘 닦여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꺾자 달빛이 걷어 묶은 커튼처럼 비스듬하게 내리는 것이 보였다. 성을 피해서.
‘이곳에서만큼은 박하율의 힘이 초승달보다 강한 걸까.’
아직 초승달에게 완전히 종속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몬스터들 또한 성 쪽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보죠.”
방탄차량 대신 위가 뚫린 군용트럭으로 옮겨 타고 느린 속도로 나아갔다. 달빛이 일정 영역 밖에서 빙그르 맴을 돈다. 몬스터의 소환도 멈추었다. 성을 백 미터쯤 앞에 두고 섰다.
“일단 성현제 씨와 송 실장님은 절대 들어오지 마세요.”
초승달이 손에 넣고 싶은, 없애고 싶은 두 사람이다. 박하율의 성에 들어가 좋을 건 없었다.
“황림 너도 얌전히 기다리고 있고.”
“어른들의 시간은 오면서 충분히 가졌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며 황림이 투덜거렸다. 성현제는 그렇다 쳐도 송 실장님은 개무시를 했겠지. 성현제도 황림에겐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고. 나라도 끼어 있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 모를까, 따로 두면 좋아할 만한 타입이 아니긴 하지.
“피스야, 유현이와 예림이를 부탁해.”
– 크흥.
피스가 자기를 두고 갈 걸 눈치챘는지 불만스럽게 꼬리를 탁 내리쳤다. 유현이도 뚱한 표정이었다.
“성문 앞까지는 같이 갈게.”
“저도요, 아저씨!”
“딱 문 앞까지야.”
여기서도 잠잠하니까 괜찮겠지. 송 실장님이 무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조심하십시오.”
“네. 잘 부탁드릴게요, 송 실장님.”
성현제에 이어 황림까지 맡기려니 죄송했다. 그나마 각관실은 물론 해연과 세성 등의 한국 헌터들도 다시 들어올 준비 중이었다. 결이와 마리 씨가 힘을 합쳐 약하게나마 스킬 사용이 가능할 거라나.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꿈이라서 죽지 않는 현아 씨가 앞장서고 다른 헌터들 몇도 우리를 둘러쌌다.
“노크라도 해야 하나?”
가까워지는 성문을 올려다보며 현아 씨가 말했다. 초인종이 있을 것 같지는-.
드드득-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다.
콰득!
“형!”
유현이의 외침과 함께 어깨가 뜨끈해졌다. 가시덤불이 꿈틀대고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덩굴이 정확히 유현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가, 내게 가로막혔다. 박하율 이 새끼 진짜.
“막아!”
헌터들이 소리치고 가시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