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43
742화 슬리핑 뷰티 (2)
텅! 터터터텅!
일제히 들어 올려진 방패가 요란한 소리를 울린다. 유현이가 나를 잡고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으르렁거리는 피스를 향해 얼른 손짓했다.
“물러나! 예림이 데리고 가!”
움찔 한 피스가 예림이의 옷을 물고 당겼다. 예림이는 버티려 들었지만 피스의 힘을 이겨내진 못했다. 방탄복이라 질기기도 질겨 그대로 성현제 일행이 있는 쪽으로 끌려간다.
“윽!”
방패를 두드리는 가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헌터가 머리를 꿰뚫리기 직전 놀란 외침과 함께 사라졌다. 꿈에서 깬 것이었다. 우리 앞을 막아 선 문현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한소장이 있으면 중화기는 못 써!”
나와 유현이는 휘말렸다간 정말로 죽어 버릴 테니까. 일단 물러나야 하나.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 위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피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성의 가시덤불 위로 떨어진다. 우리와 충분히 거리를 두었지만 열기가 화악 퍼져 나간 직후.
“소용없습니다!”
헬기에서 군인이 소리쳤다. 가시덤불도 성벽도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피어올랐던 화염도 지워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문현아가 혀를 쯧 찼다. 방패를 든 헌터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일단 후퇴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뒤로 몸을 돌리기도 전에.
쿠르릉-
땅이 울리며 우리 뒤쪽에서 덩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콰득, 콱! 땅을 헤치고 흙과 돌을 튀기며 가시덤불이 순식간에 높은 담을 이룬다.
“아저씨!”
예림이의 목소리가 덩굴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박하율 이 망할 자식이!
“젠장, 두 사람을 감싸! 헬기로 인원 보충 요청한다!”
문현아가 나와 유현이 뒤쪽으로 빙글 몸을 돌리며 방패를 높이 치켜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앞뒤에서 가시가 비처럼 쏟아진다. 미처 후방을 막지 못한 헌터 몇이 사라지고 보충 인원을 태운 헬기들이 날아들었다. 담을 넘어서는 헬리콥터를 향해 돌연 덩굴 하나가 길게 쑥 뻗어간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덩굴이 그대로 헬기를 꿰뚫었다.
콰앙!
날개까지 단숨에 부서진 헬기가 내던져지듯 바닥에 추락하며 화염에 휩싸였다. 그 뒤를 이어 덩굴들이 하나둘 굵직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채찍처럼 휘익, 내리친 줄기에 방패가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납작 눌려진다. 동시에 그 아래 헌터가 사라졌다.
입 안이 메말랐다. 무사히 담을 넘은 헬기에서 헌터들이 뛰어내려 우리를 에워쌌지만 덩굴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쓸려나가는 건 순식간이다.
‘어떻게 해야.’
박하율을 설득하는 방법 외엔 없다. 저 망할 놈은 내가 아닌 유현이를 노렸다. 다시 말해 나에 대한 기이한 호감은 그대로라는 뜻이었다. 유현이가, 내 주위의 S급들이 사라지면 아마 잠잠해지겠지. 하지만 문현아나 다른 헌터들과 달리 유현이는 꿈이 아니다. 진짜로 죽는다.
“박하율!”
가시덤불을 향해 소리쳤다. 뭐라고 하지, 일단 미안하다고 해볼까. 아니, 그보다는. 이곳은 성이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은 성에 갇혀 왕자님을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쿠웅, 덩굴이 바닥을 내리치고 헌터들을 향해 크게 휘둘러진다. 방패 째로 우르르 헌터들이 밀려나간다.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다시 가시덤불을, 성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기 있는 건 박하율이 아니다. 유현이다. 동생이 날 기다리고 있다. 감정을 가득 담아, 진심으로.
“현아 씨, 잠깐만요.”
“형님, 위험해!”
“유현이 좀 부탁해요.”
“형! 뭘 하려고!”
“날 해치진 않을 거야.”
앞으로 한 발 나아갔다. 성을 바라보았다. 유현아.
“보고 싶었어.”
나를 향해 굽어지는 가시덤불을 향해 말했다. 저 안에 있는 건 내 동생이다. 목 안이 살짝 묵직하게 막혔다.
“계속 찾고 있었어.”
너를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한시도 잊은 적 없이, 널 생각했어.”
그러니까. 덩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가시 비가 그친다.
“문을 열어 줘.”
한 발 더 내디뎠다. 헌터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음, 슬슬 쪽팔리기 시작하네. 아니 제가 박하율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고 말입니다. 아무튼 연기인데!
쿵, 끼이익. 닫혀 있던 성문이 벌어졌다. 사람 한 명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틈이었다. 역시 나만 들어오라는 모양이었다.
“형, 안 돼.”
유현이가 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현아 씨도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날 공격하지 않는 거 봤잖냐. 말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 끌면 다시 난리칠지도 몰라. 현아 씨, 뒤를 부탁할게요.”
“알았어. 조금만 참자, 도련님. 퇴로도 막혀서 다른 방법이 없어.”
유현이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걱정 말라고 하곤 나 혼자 성문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가시덤불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 통과했잖아. 아님 내가 직접 도끼질이라도 해? 며칠 걸릴 텐데.”
저거 치우자, 하율아. 내 말에 높게 솟아나 있던 덤불들이 사라졌다. 그래도 말 잘 듣네. 담 너머로 가려졌던 피스와 예림이도 보였다. 성현제와 송태원도 어느새 예림이 옆에 서 있었다. 예림이가 나를 향해 두 팔을 흔든다. 마주 손을 흔들어 주곤 몸을 돌렸다.
‘말이 아주 안 통하는 건 아닌데.’
내 주위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니 문제지. 내부는 전형적인 화려한 성이었다. 너른 홀의 높은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둥글게 굽어지는 높은 계단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엘리베이터 없냐.
‘보나마나 꼭대기 층이겠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방에 있을 것이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계단을 올랐다. 빙그르르 계단을 올라서자 정면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내 초상화였다.
‘…쪽팔려 죽겠네.’
화려한 자수가 들어간 연회복 차림에 진짜 무슨 왕실 초상화처럼 그려 놓았다. 아, 얼굴 화끈거려. 나 혼자 들어와서 다행이구만. 하율이 이 자식은 대체 뭐가 문제냐. 그때 구해주질 말았어야 했나. 얼른 돌아서서 다시 계단을 올랐다.
‘갑자기 나타나서 구해 준 게 좀… 왕자님처럼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나름 극적이긴 했지. 그래도… 아……. 다음 층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성체 피스가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나였다. 그… 영웅적인 동상 같은, 뭐 그런……. 도로 내려가서 성문 밖에다 대고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어졌다. 이건 박하율이 만든 거고 제 의견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피스는 멋지네.
다시 계단을 올랐다. 이제 꼭대기까지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마지막 계단 위로 발을 디디며 멍하니 벽을 쳐다보았다.
초거대 태피스트리였다. 박하율을 구하는 나와 쓰러진 헌터들의 그림이 짜 넣어져 있었다. 왜 좋은 일 하고도 이런 고통을 느껴야하는 건가요. 사람 구해 준 것도 죄냐. 그땐 이런 미친놈일 줄은 몰랐지.
‘…성에다가 핵이라도 날려 버리자.’
꿈이니까 괜찮잖아. 대통령도 핵폭탄 버튼 한 번쯤 눌러 보고 싶었을 거야. 박하율 이 자식은 날 진짜 왕자님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근데 왜 납치를 하고 지랄이야. 구해 준 게 고마우면 명절날 한우라도 보낼 것이지. 그러고 보니 추석 때 선물 못 받았던 거 같은데. 새해에도 인사 한번 없었고. 이번에 순순히 도와주면 그거 다 받은 걸로 치마. 설에도 내가 한우 보내준다. 투뿔로.
“어머나 옷이 그게 뭐예요!”
짜랑하게 울리는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을 찬 허리춤에 손을 내리며 급히 돌아섰다. 동글동글한 형체 셋이 둥둥 떠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가셔야죠!”
“맞아, 맞아. 이쪽으로 우세요!”
그… 동화책 단골손님인 요정 같은 건가.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마지막 방에는 못 들어간다는 말에 순순히 요정들을 따라갔다. 다행히 평범한 연미복이 내밀어졌다. 현대식 왕자라 다행이야. 잔뜩 부푼 소매는 그렇다 쳐도 딱 달라붙는 그 스타킹 같은 옷은 좀…….
무기를 챙기는 내게 요정들이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내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꼭대기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크고 둥근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아래 놓인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그 침대에 박하율이 잠들어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드레스 차림은 아니었다. 평범한 잠옷이었다.
“흠, 하율아.”
친절하게, 다정하게. 지금은 저 녀석 비위 맞춰 줄 필요가 있으니까. 꽃다발을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박하율.”
얘 왜 안 일어나냐.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보았지만 감긴 눈은 떠질 줄을 몰랐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잠자는 숲속의 공주…….’
나도 알지, 그 동화. 왕자님이 사랑을 담은 키스를 하자 공주님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마에 해도 되나.’
그 전에 사랑 따윈 개미 눈곱만큼도 없습니다만. 다시 한번 혼자 와서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현아 씨나 성현제가 여기 있었단 봐라 평생 놀림감 하나 생기는 거다. 황림 놈도 자기도 키스해 달라고 주둥이를 내밀었겠지. 어쩌면 유현이도. 내가 남한테 해주는 건 자기도 받고 싶어 하니 말이야.
“그, 하율아. 다른 거 하면 안 되겠냐. 백설공주…도 입술 박치기 했던가. 신데렐라라거나. 신발은 신겨 줄 수 있는데.”
일단 이마에다가 해보자 싶어 침대에 바싹 붙었다. 박하율은 잘도 자고 있었다. 이불도 가슴께까지 덮고 자세도 똑바르다. 어차피 자는 척하는 걸 텐데, 왜…….
‘잠깐만.’
고개를 숙이려다 말고 다시 들었다. 동화 속 공주님 노릇 하겠답시고 자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혼자 깨어나진 못하는 거라면.
‘…박하율은 마리 씨 대신 꿈이 되어 잠들었지.’
박하율이 꾼 꿈, 마리는 전형적인 공주님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처음에는 어머니, 마리사가 시키는 대로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하려 드는 소녀였다. 왕자님을 납치하긴 했지만 그것도 박하율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율이 놈도 날 납치했으니까.
다시 말해 지금의 박하율은 전형적인 공주님 노릇을 하고 있으며, 마리 씨에 의해, 타인에 의해 잠든 것이었다. 마녀에 의해 잠든 공주님은 혼자 깨어나지 못한다. 왕자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몬스터가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함에도 초승달은 계속해서 공격해 왔지.’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아는 초승달이라면 이내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혹시 그게 내가 박하율을 깨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면. 위기감을 주고 쫓기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 박하율을 도움을 받게끔 부추긴 것이었다면.
‘초승달의 공격이 없었으면 이렇게 서둘러 박하율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과도한 억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여기서 박하율을 깨워도 괜찮은 것일까. 박하율의 도움이, 그의 힘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하율아, 미안하지만 내가 혼전순결을 맹세했거든. 남자든 여자든 결혼 안 할 사람이랑은 입술은 물론이고 팔짱도 끼면 안 되고 손도 못 잡는단다.”
방금 전부터 그러기로 했다.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지킬 건 지켜야지. 결혼 못 할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가시덤불도 움직이는 거 보니 완전히 잠들진 않았을 거고, 요정 불러다 대화할까? 일단은 네가 싫어하는 S급들부터 돌려보내는 건 어때? 다치겐 하지 말고, 집에 보내주면 깔끔하잖아.”
벌컥, 문이 열렸다. 세 요정이 둥실둥실 날아 들어온다.
“키스! 키스!”
“공주님을 깨워 주셔야죠!”
“자, 어서요!”
이런 젠장. 재빨리 침대 옆에서 벗어나려는 내게 요정들이 덮쳐들었다. 둥글둥글한 형체가 내 팔을 붙잡고 등에 매달리고 다리에 엉겨 붙는다.
“야! 놔!”
“깨우세요!”
“왕자님, 어서!”
“난 왕자가 아니라 시민이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꽃다발로 요정을 내리쳤다. 꽃잎이 흩날린다. 내 몸이 비틀거리며 침대 쪽으로 기울어졌다. 쓸데없이 넓은 침대 위로 엎어져 굴렀다. 박하율 얼굴 쪽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다. 꽃다발이 이리저리 휘둘러지다가 박하율의 얼굴을 퍽, 두들겼다. 장미꽃 봉우리가 부서지며 꽃향기가 짙게 풍긴다.
“장미꽃을 입술에!”
“로맨틱해!”
“이게 바로 장미키스!”
요정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개소리야. 요정들의 아무 말 속에서 박하율이 눈을 떴다. 렌즈 끼고 잠들었는지 새파란 두 눈이 나를 바라봐왔다.
“…형! 날 구하러 와줬어, 또 다시!”
일어나 앉은 박하율이 감격하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요정들이 어느 새 사라지고 몸을 일으킨 나는 떨떠름하게 박하율을 쳐다보았다.
“어, 하율아.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나 좀 도와주라.”
“응, 형.”
박하율이 웃었다. 그래, 말만 잘 들어주면…….
“헌터를 전부 없애 버리자!”
“…이 미- 나도 헌터야!”
절로 튀어나오는 욕을 간신히 삼켰다. 박하율이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품을 했다. 울컥하는 화를 억누르며 녀석을 살살 달랬다.
“그러지 말고 그냥 돌려보내자. 사람이 사람을 해쳐선 안 되는 거야.”
“형은 너무 착하다니까.”
박하율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으로 스며들던 햇살이 달빛으로 뒤바뀐다.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색 눈이 나를 향해 미소했다.
“깨워 줘서 고마워.”
“…깨운 적 없다만.”
“형이 반드시 날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 모든 위험을 물리치고! 처음 만날 때부터 느꼈거든!”
“…뭘 느꼈다는 거야.”
위험이라고 해도 가시덤불 그거 니가 만든 거 아니냐.
“흐릿한 세상 속에서 형만이 빛나고 있었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설마 내가 회귀했기 때문인가? 박하율은 초월자의 씨앗이니까 무의식중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느꼈던 걸지도.
“세성 길드장도 좀 반짝거렸지만.”
아니면 그냥 능력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성현제는 잘 감추어졌지만 초월자 이상의 힘이 쌓여있는 존재고 나는 양육자니 드래곤 슬레이어니 스킬 등급이 유독 높으니까.
“하율아, 그러지 말고 다른 사람들 다 보내고 형이랑 있자. 응?”
“미안하지만 안 돼.”
박하율이 낯선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난 이 세상을 멸망시켜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