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45
744화 슬리핑 뷰티 (4)
“뭐, 이 상황에 허튼짓했다간 돌 맞아 죽지.”
“방금 좀 두근거렸어…….”
수많은 이들이 동경하고 우러러보는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그것을 넘어서 감사 인사를 받았다. 자신을 지켜 달라고 의지해 온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가슴이 부풀고 어깨가 절로 당당하게 퍼졌다.
차 앞으로 다가온 송태원을 향해 성현제가 속삭였다.
“지금 우리가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네.”
그들의 보호를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하는 것. 성현제가 손을 내밀었다. 송태원이 낯설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 손을 바라보았다. 송태원은 보호받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지키려 나섰다.
송태원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성현제는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당당하게 누군가를 구해 주고 적에 맞서는 자랑스러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송태원 또한 머리를 숙였다. 각관실 헌터들이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쁨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다들 웃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뿌듯하게 충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이상하네. 보통 이럴 땐 자기들끼리 싸우던데.]박하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부 배신하진 않더라도 둘로 나누어져서 다툼이 일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단단히 뭉친 것만 같았다. 한유진이 기어코 덩굴을 씹어 끊어 내곤 퉤, 뱉어 냈다.
[난 저 기분 잘 알지. 아주 죽이더라. 목숨 한번 걸어 볼까 싶을 정도로.]심지어 지금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상황이다. 한유진의 말에 박하율이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렸다.
[형은 정말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니까요. 그러니까 세성 길드장이랑도 친하게 지냈죠!] [야, 저 잘난 인간이 날 보호해 주겠느니 했어도 걷어찼다! 쉽게 믿었으면 일찌감치 성현제 자택 구석에 처박혔거든? 그러다 관심 잃고 버려져서 술이나 들이부었겠지!]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요!]한유진이 욕을 했다. 육두문자가 노랫소리로 들리는지 박하율이 형도 참, 하고 웃으며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그냥 밀어 버려야지. 몬스터를 잔뜩 보내서~] [박하율 너.]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한유진이 말을 이었다.
[아직 힘을 제대로 쓰진 못하는구나. 아니면 제약이-] [아, 형!]영상이 사라졌다. 성 위의 용이 커다랗게 울부짖고 성벽 주위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 덤벼!”
“I’m a dragon slayer!”
“나도 드래곤 슬레이어! 매니 드래곤 킬!”
“In game?”
“モンハン!”
“대충 다 알아듣겠네요.”
“방패, 실드 앞으로! 어, 프론트!”
“Spear! Lance, shield gap!”
방패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어설프게나마 앞으로 나선다. 군인과 헌터들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 보완을 해 주었다. 쿵, 지축을 울리며 몬스터 무리들이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선 거대한 물소가 뿔 달린 머리를 사납게 휘저었다. 달빛이 소환한 몬스터보다 더 크고 강한 놈들이다.
-무어어!
쿵! 뿔이 방패를 들이받고 방패를 든 사람째로 공중에 휙 던져 올린다. 연달아 콰앙, 쿵 몬스터들이 방패로 돌진했다. 전열이 우수수 무너진다. 진짜 전쟁이라면 기가 죽어 도망칠 광경이었지만 사람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가 비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더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리라도 잡고 깨자!”
“콘서트 끝났어! 오프! 여기로 다 몰려올 거래!”
“My monster!”
기세 좋게 들이닥쳤던 몬스터 무리가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러곤 이내.
-쿠르룩
발톱이 바닥을 긁는다. 발굽이 지이익 긴 선을 그린다. 몬스터 무리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 * *
내 실수였다. 박하율에 대해 과소평가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대화가 헛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인 줄은 몰랐다. 분명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건만 외국인보다 더 말이 안 통했다.
“그건 비밀이라고요!”
“전능한 신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하는 짓은 별거 없잖아.”
박하율의 능력이 제법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성을 만들어 내고 가시덤불과 몬스터를 소환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덤불과 몬스터의 능력치 또한 중하급 정도로 보였다. 그나마 드래곤은 중급에서 상급 가까이인 듯했지만.
“이 세계의 마나가 아직 불안정해서인가?”
“제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서 그래요! 이런 거 처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금방 신처럼 될 거라고요.”
“소원은.”
입안이 말라 가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얼마나 대단한 걸 들어줄 수 있는데? 완전히 깨어난다면 말이야.”
“음, 잘은 모르지만 많이 대단할걸요! 왜요, 형도 바라는 거 있어요? 세성 길드장 찌르고 올래요?”
박하율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이 나를 눈이 내리는 나무로 보내 주고 유현이와 함께 돌아오게 해 줄 수 있을까. 창 너머에서 스며드는 달빛에 시선을 두었다. 스물다섯 살의 동생에 대해 말하기에는, 많은 것이 불안했다.
‘…저 미친놈은 유현이를 싫어하기도 하니.’
“우와, 사람 엄청 많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영상은 지웠지만 바깥 풍경은 여전히 눈앞에 떠 있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에 박하율이 울상을 지었다.
“저러다 성까지 오겠어요.”
“갈수록 더 많아질걸. 용도 움직이지 않는 거 보니 처음의 브레스가 다인가?”
“성에서 멀어지면 유지하기 힘들어진다고요! 성벽 더 강화해야지. 그래도 형을 구하진 못할 거예요.”
박하율이 자신 있게 말하며 새로운 영상을 켰다. 그 속에 유현이가 비춰졌다.
“…내 동생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형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이 정도 시련은 통과해야죠~ 걱정 마세요, 형. 무사히 여기까지 오면 다들 멀쩡하게 돌려보내 줄게요. 형이 부탁했던 대로~”
돌려보내주겠다는 대상에 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방법이 있으니까.
‘저 녀석이 속아 준다면 가능해.’
나사 몇 개쯤 빠진 듯 허술한 놈이니까 될 것이다. 숨을 크게 내쉬고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박하율을 바라보았다.
“약속한 거다. 그리고 이거 좀 풀어. 도망 안 가.”
“자꾸 제 머리 때리려고 하잖아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 그랬어. 안 때릴게.”
부숴서 열어 봤자 든 것도 없을 거다. 락스 팍팍 뿌려 청소한 화장실처럼 텅 빈 채 반짝거리기나 하겠지. 박하율이 으음,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나를 풀어 주었다. 테이블과 의자가 나타났다. 테이블 위의 화병에 꽃도 풍성하게 꽂혔다.
“형, 배 안 고파요? 커피 마실래요?”
“안 고파.”
지금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겠냐. 차와 케이크를 만들어 주는 박하율을 무시하고 영상을 바라보았다. 성현제 쪽은 괜찮았다. 성현제도 송 실장님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몬스터 무리를 조금씩이나마 밀어냈다. 피해는 우리 쪽이 훨씬 컸지만 몬스터에게 당한 인원보다 새롭게 나타나는 인원이 더 많았다.
‘심지어 공격당해 깬다 하더라도 다시 자면 그만이니까.’
놀라서 깨면 다시 잠들기 쉽진 않지만 그래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근데 황림 놈은 어디 있는 거지. 내내 안 보이던데. 노아 씨와 리에트의 소식이 아직 없는 게 불안했지만 지금 상황으론 계속 피해 있는 편이 나았다.
‘문제는 유현이 쪽이지.’
어둑한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선두에 문현아가, 그 뒤에 유현이가, 마지막에는 피스가 서고 피스 앞에 예림이가 걷고 있었다. 아직은 다친 곳 없이 무사했지만 박하율이 아무런 장치도 해 놓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나도 좀 봐줘요, 형.”
“그럼 너도 목숨 걸고 싸움이라도 하든가.”
“치이.”
성은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 풍이었다. 그럼 분명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만 보고 있으려니 입 안이 바싹 메말라 왔다. 던전에서 몬스터 상대는 많이 해 봤지만 함정은 낯설 텐데. 그때 현아 씨가 손을 들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 소리와 함께 탄환이 벽 여기저기로 튄다. 그 직후.
콰득!
벽에서 창이 튀어나와 반대편에 꽂혔다. 몇 번 더 확인을 마친 후 문현아 혼자 앞서 걸어간다. 문현아가 디디는 장소를 유현이와 예림이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통로를 거의 지나칠 무렵.
달칵.
문현아의 발 아래가 작은 소리와 함께 움푹 들어간다. 현아 씨가 급히 몸을 날렸지만 그보다 빠르게 휘익! 화살이 쏟아졌다.
[윽, 꿈이라도 영…….]현아 씨의 팔에 화살이 꽂혔다. 눈을 감고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더니 화살을 뽑아 낸다. 피는 튀지 않았다. 상처 역시 이내 사라진다.
‘꿈이니까.’
마인드 컨트롤을 잘만 하면 저런 것도 가능하겠지. 이어 유현이와 예림이가 안전한 바닥에 표시를 하며 건너오고 피스도 표시를 보고 훌쩍 뛰어 넘었다.
“뭐야, 너무 쉽게 통과하잖아.”
박하율이 투덜거렸다. 머리 딱 한 대만 더 패면 안 되나.
“그래도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고요.”
빨랫줄에 걸어 넣고 먼지 팡팡 털어 주고 싶구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커피. 아주 뜨겁게.”
“네~ 형~ 여기, 악!”
커피를 받자마자 어이쿠, 하고 박하율에게 내던졌다.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쓴 박하율이 폴짝폴짝 뛰었다. 착한 어린이도 어른도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형!”
“실수야.”
“이젠 뜨거운 거 안 줄 거예요!”
“그럼 얼음 동동 띄운 사이다를 주렴.”
물론 사이다도 박하율 얼굴로 직행했다. 투덜거리는 박하율에게 상냥하게 말해 주었다.
“원래 친한 사이엔 이러고 놀아. 너 못 들어봤냐. 내가 성현제 머리에 와인 쏟아부은 거. 내 주위엔 S급이 대부분이라 친근감의 표시로 컵 던지고 술병 깨부수고 그래. 성현제 집도 사실은 내가 날려먹은 거란다.”
“…진짜요?”
“그러엄.”
멍청이.
계단을 오르던 문현아가 벽을 쳐다보았다. 유현이와 예림이, 피스도 같은 곳을 바라본다. …내 초상화였다.
[좀 소름 끼치지 않아요?]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예림이와 현아 씨의 말을 유현이가 흘려들었다. 두 사람이 왜 질색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1층에 동상도 있었잖아요.] [줄줄이 열 개가 넘었지.]젠장, 나도 소름 돋아.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가는 그때.
쿠르릉!
계단이 뚝 끊기며 무너져 내렸다. 유현이가 재빠르게 문현아의 옷자락을 잡고 뒤로 쓰러지듯 무게를 한껏 실어 버틴다. 동시에 예림이가 문현아를 같이 잡아 끌어올려 주었다.
[와, 꿈 깰 뻔했다. 그냥은 못 뛰어 넘겠는데.] [피스는 뛸 수 있을걸요. 저기 아래층 커튼 뜯어서 줄 만들어요.]예림이가 피스와 함께 내려가 커튼을 가지고 올라왔다. 커튼으로 긴 줄을 만든 뒤 피스에게 건네준다. 세 사람이 물러나고 피스가 도움닫기를 해 단숨에 무너진 계단을 넘어섰다. 그러곤 차례로 줄을 타고 건너갔다.
“한 명쯤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음번엔 못 피해요!”
박하율이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내 주먹이 무심코 꽉 쥐어졌다. 계단 끝에 너른 방이 나타났다. 현아 씨가 기다리라고 손짓하곤 먼저 방에 들어선다. 중간쯤 가로질렀을 때.
콰아앙!
[언니!]폭발이 일어났다. 불길이 높은 천장까지 치솟았다가 서서히 사그라든다. 반사적으로 박하율 놈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미친놈아!”
“에이, 고작 한 명… 어?”
[이런, 씨. 진짜 놀랬다.]문현아였다. 시커멓게 그을린 그녀가 옷자락을 탁탁 털어 내며 전신을 부르르 떤다.
[이번엔 거의 깼어.]“뭐야! 왜 자꾸 버텨!”
박하율이 억울해하며 소리치고 예림이가 현아 씨에게 달려가려다가 멈추라는 손짓에 우뚝 섰다.
[마저 확인해 보고.] [언니, 괜찮아요?] [괜찮아. 아직은 버틸 만해. 어차피 꿈이잖아. 안 깨면 그만이지.]…보통은 깰 텐데. 현아 씨 진짜 대단하다.
“저거 사기잖아요! 버그 캐릭터라고요!”
박하율의 멱살을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현아 씨 응원이나 해야지. 그 뒤로도 현아 씨가 몸으로 함정을 막고 해체했다. 유현이와 예림이도 손발 착착 맞춰 가며 보조한다. 힘이나 속도 등이 필요할 땐 피스가 활약하였다.
[성문을 열어라!]다른 쪽 영상에서는 인파가 점차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벽도 성문도 꿈쩍도 하지 않자 사다리가 걸쳐진다. 몬스터들이 막으려 들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하나둘 성벽을 넘고 성 본체에 다다랐다.
[창문 부숴!] [저기 위쪽에 난간 있다!] [크르르르!] [Dragon! Dragon!]성의 지붕 위에 버티고 앉아 있던 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거대한 덩치가 쿠웅, 땅을 향해 날아오른다. 뿜어지는 브레스에 수십의 사람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벽을 넘어오고.
[드래곤 내려왔다!] [헬기!]용이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헬기와 전투기가 출동했다.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대형 헬기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린다. 훈련받은 전투원이 성의 난간으로 정확히 달라붙고 튼튼한 줄사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발코니며 창틀에도 내려서며 연이어 줄사다리가 걸쳐졌다.
“짜증 나!”
“왜. 네가 바라던 풍경 아니었냐. 성에 갇힌 공주님을 구하러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잖아.”
“형! 진짜 왕자님만 들어와야 하거든요!”
“저중엔 기꺼이 네게 키스해 줄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 그거 때문인가?”
박하율 놈이 나를 돌아보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키스 받지 못해서 덜 깼나 봐요. 형!”
“야! 따지고 보면 지금은 내가 공… 주 역이거든? 왕자님의 키스는 딴 데서 찾아!”
“브레이커 길드장이요?”
어울리기는 했다. 현아 씨 진짜 왕자님 상이지. 그사이 문현아가 불화살이 날아드는 복도를 돌파했다. 동상의 방패를 뜯어다가 급소만 막은 채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확실히 멋있어.
[저 위에 스위치! 도련님!]유현이가 도움닫기를 하며 뛰어오른다. 그 발밑을 향해 문현아가 방패를 힘껏 던졌다. 정확한 위치에 다다른 방패를 재차 밟으며 유현이의 몸이 천장 가까이 솟아오른다. 한껏 뻗은 손이 막대형 스위치에 닿았다. 그대로 잡아당기자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린다. 떨어지는 유현이를 피스와 예림이가 커튼을 펼쳐 안전하게 받아 낸다.
“거의 다 왔잖아! 사람들이 성안에도 막 들어오고 있어!”
“약속 지켜라.”
“무슨 약속이요?”
“다른 사람들은 무사히 돌려보내 주기로 했잖아!”
박하율이 뻔뻔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형, 전 세상을 멸망시키는 악당이라고요. 악당은 원래 약속 같은 거 안 지켜요~”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 망할 놈이! 슬리핑 뷰티는 무슨, 공주인 척 한 마왕이지! 박하율 놈에게 달려드는 내 팔과 다리를 어느새 자라난 덩굴이 휘감아 묶었다. 쿠르릉, 성 전체가 크게 떨린다.
“근데요. 이젠 아까보다 훨씬 강해진 거 같아요. 제 힘이요.”
“박하율!”
쾅! 닫혀 있는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이어 다시 쿵! 거친 소리가 두어 번 일고 문이 부서진다.
“형님!”
“형!”
“아저씨!”
셋이 잡혀 있는 나를 보고 움직임을 멈춘다. 피스 역시 으르렁거리면서도 쉽게 덤벼들진 못했다. 박하율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엉망이야.”
콰르릉! 성이 또다시 흔들리며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붕과 주위의 벽이 사라지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중 몇이 우리를 발견하고 무어라 외쳤다. 그 위로 성벽이 쏟아진다. 쾅, 쿠르릉, 먼지가 일고 용의 덩치가 더욱 커졌다. 높게 솟은 성탑이 쿵, 쿵, 쿵, 한 칸씩 무너졌다. 우리가 선 곳은 이상하리만치 요동 없이 낮아지기만 했다. 고작 두어 층 높이가 되자 박하율이 유현이 일행을 노려보았다.
“형은 나랑 같이 있을 거라고!”
젠장. 위험하다. 등골이 쭈뼛해짐과 동시에 소리쳤다.
“하율아! 난 언제든 돌아갈 수 있어!”
유현이를 공격하려던 박하율이 멈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시스템만 적용되면, 곧장 여길 떠날 수 있다고!”
“어… 그럼 인질을 잡아야 해요? 형은 왜 자꾸 도망치려고 들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왔다. 높게 일었던 먼지구름이 가라앉아 간다. 성현제와 송 실장님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 계약하자.”
“잠깐만, 형님!”
문현이가 나를 말리려는 듯 외쳤다. 예림이도 당황한 눈치였다.
“나도 못 깨는 등급의 계약서, 만들어 낼 수 있지?”
“될 거 같아요.”
“내가 네 것이 되겠다는 계약을 하는 거야. 그럼 난 도망칠 수 없어.”
절대로. 박하율이 눈을 깜박거리다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