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49
748화 깨어나세요, 용사여 (1)
방어 목적의 튼튼한 성벽 안의 성은 알록달록한 동화풍에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섞인 모습이었다. 서양식 저택 느낌도 났다. 너른 정원에는 예쁜 연못과 꽃 덩굴이 휘감긴 그네의자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걷기 힘들지 않아?”
유현이가 나를 부축해 주며 물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분위기를 눈치챈 건지 피스가 얼른 내 품에서 벗어나 아래로 뛰어내렸다. 괜찮은데.
“잠깐 눈 붙여서 그런지 멀쩡해. 오래는 못 버티겠지만.”
“박하율이 아저씨 다리 원래대로 돌려놓지도 않은 거예요?”
예림이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단다. 심지어 팔에 눈까지 가져갔지 뭐냐.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인 척하더니 마왕이 따로 없다.
“그럼 형님에게 키스를 해줘야 하나?”
“…네? 아니 왜요 갑자기!”
“보통은 그렇잖아.”
현아 씨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납치된 공주님에게 건 저주를 풀려면-.”
“아 전 제 발로 나왔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해보는 게 어때요? 자요!”
– 끼앙.
예림이가 피스를 내 앞으로 들어 올렸다. 피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피스라면야 뭐. 예림이가 원하는 대로 쪽 입을 맞춰 주었다.
“이것 봐, 아무 변화 없잖아. 애초에 난 아니라고.”
공주님은 무슨 공주님이야. 성 안으로 들어서자 너른 홀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결이와 마리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빠!”
“한유진 님!”
둘이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폴짝폴짝 뛰어오는 결이를 안아 주었다.
“설명은 들었어요. 박하율이 한유진 님의 다리를, 어머나! 다리만이 아니네요?”
“알 수 있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박하율의 꿈이었다고요. 그러니 다는 아니어도 살짝 엿보기 정도는 가능하거든요. 한유진 님, 여기 보세요.”
마리가 손뼉을 짝짝 쳤다.
“지금부터 셋을 세면 한유진 님은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하나, 둘, 셋!”
짜악! 유독 큰 박수 소리가 들리고 내 몸이 덜컥였다. 마나를 밀어 넣어 강제로 움직이고 있던 사지에 감각이 되돌아온다. 유현이에게 의지하고 있던 시야에도 내 것이 더해졌다.
“…쉽게 풀어지네요?”
“전 박하율의 꿈에서 벗어난 존재잖아요~. 음, 말하자면 박하율은 한유진 님에게 악몽을 덧씌운 거예요.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꿈이요. 꿈은 깨어나면 사라지지만 그게 쉽지가 않죠.”
하지만 마리는 깨어난 꿈 그 자체이기에 날 악몽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되찾은 팔다리를 약간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른 성이었지만 사람은 몇 없었다. 여기 있는 우리가 다였다.
“박하율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있어요.”
“그래서 몇 명 빼고 다 나갔어, 아빠.”
결이와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동시에 우리 뒤쪽에 서 있는 인형술사를 흘끔거렸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긴데, 일단 박하율이 더 급하니까요.”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어요!”
“이번에도 다들 도와주기로 했어!”
둘이 앞 다투어 내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 길지 않은,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럼 박하율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싸울 준비도 해야죠. 전 박하율이 가까워지면 피해야 해요.”
“결이가 아이템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거지만 많이는 안 돼.”
결이의 힘이 필요하긴 했지만 여기 있으라고 하긴 망설여졌다. 혹시나 싶어 인형술사를 돌아보았다.
“조상님, 보시죠.”
“오는 내내 억울하다고 칭얼거리더니.”
아 몰라 필요하다면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조상님 삼고 명절마다 제사도 지내줄 수 있어.
“귀엽지 않습니까. 제 아들이에요. 심지어 시그마랑도 빼닮았죠. 따지고 보면 걔한테도 먼 후손쯤 된다니까요.”
결이가 무슨 소리야, 아빠 하고 작게 투덜거렸다. 조금만 참으렴.
“아직 이렇게나 어린데 어른들 싸움에 끼어들게 할 순 없잖습니까.”
“아빠도 참.”
“우리 결이는 이미 많이 도와줬잖아, 응? 마리 누나랑 같이 가자. 동생들도 기다릴 거야. 조상님, 어린 후손은 당연히 지켜 주셔야지요.”
어른이 되어서 말이야. 인형술사가 결이 앞으로 다가왔다. 결이가 약간 흠칫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리가 내 뒤쪽에서 작게 속삭였다.
“진짜 조상님이세요?”
“대충 비슷해요.”
원래는 내가 만든 인형인데 어쩌다 보니까 말입니다. 하여간 세상엔 별일도 다 있어.
“이렇게 나오지 않아도 도와주긴 할 거야. 저놈을 지키긴 해야 하니까.”
인형술사가 성현제를 쳐다보고 결이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봐왔다.
“아빠랑 닮았는데… 달라.”
아니 왜. 나도 성현제 안 내다버리고 지키고는 있는데.
“우선은 한유진.”
인형술사가 내게 손을 뻗어 번쩍 들어 올렸다. 아니 잠깐만. 가볍게 흔들더니 웃는다.
“이제 슬슬 날 좋아해야지.”
“아, 아니 왜요!”
“그래야 박하율이 공격하지 못하니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게 되면 그렇잖아도 약해진 힘이 더욱 줄어들게 될 거야.”
“…사람 마음이 쉽게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애들을 길들이는 건.”
인형술사가 나를 테이블 위에 앉히고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간식이지.”
사탕이었다. 이 겉 젊은 노인네가 내가 결이 또래로 보이나. 설마 시그마한테도 이런 짓 한 건 아니겠지.
“형은 딱딱한 사탕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걸 좋아합니다.”
지켜보던 유현이가 거들고 나섰다.
“한유현 칭찬해 보세요. 아저씨 거기에 제일 잘 넘어가요.”
예림이도 팁을 주었다. 그게, 맞는 말이긴 한데. 아니 그래도.
“네 동생 잘생겼어.”
“그, 그거야 그렇지만요.”
“착하고.”
“우리 유현이야- 아니, 거 참.”
“둘이 사이도 참 좋더라. 동생이 너 많이 좋아하지? 그래 보였어. 헬기에서 내리는데 너밖에 안보더라. 귀엽기도 귀엽고.”
“…그, 뭐.”
“너도 착하고 귀여워.”
“아니 갑자기 뭘! 그 얼굴로 말해 봤자 징그럽기만 하거든요!”
“자, 이거 먹자.”
인형술사가 결이가 만들어 준 과자를 내 입에 가져다댔다. 내키진 않았지만 인형술사를 좋아하긴 해야 하니 받아먹었다.
“어디서 먹어 본 맛인데.”
“…저게 만들어 준 거 흉내 내긴 했어.”
결이가 미간을 조금 좁히며 말했다. 성현제가 애들 열심히 돌보긴 했었지.
“네 애도 참 착하네. 아빠 말도 잘 듣고 똑똑해.”
“결이가 저한텐 과분한 아들이긴 하죠. 인형술사 씨가 봐도 그렇죠? 인기도 엄청 많아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애들 칭찬하는데 기분 좋을 수밖에 없잖아. 게다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 듯하고. 솔직히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인형술사가 나를 스윽 가까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젠 내가 좋아?”
“절 너무 쉽게 보시네.”
“그럼 싫어?”
“그건 아니고, 뭐 좋긴 하네요.”
얼굴에 점이 나타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현아 씨가 형님 정말 쉽다, 하고 중얼거렸다. 어, 인형술사는 일단 날 도와주긴 했으니까 말이야. 구해 준 거잖아. 호감 가져도 이상할 거 없지 않냐고.
“형, 앞으로 모르는 사람이 주는 간식은 절대 받아먹지 마.”
“아저씨, 우리 칭찬한다고 다 좋은 사람인 건 아니에요.”
유현이와 예림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안다, 알아!
“당연히 아무한테나 안 그래! 인형술사야 따지고 보면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시그마도 보호하고 있고.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다.”
진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는 이렇게 쉽게 넘어갈 일 없다. 머리 세게 얻어맞고 기억이라도 잃지 않는 한은 말이야. …쌓이고 쌓인 과거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제 나도 박하율로부터 공격받지 않게 되었으니 내 힘으로 주위의 마나를 안정화시킬 거야. 스탯도 원상복귀 될 테고 시스템이 없어도 몸에 깊게 새겨진 스킬은 쓸 수 있겠지.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어때?”
인형술사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한 번씩의 안전한 기회가 있으니까.”
단 한 번은 마음껏 박하율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니 인형술사가 혼자 힘을 휘두르기보다는 다른 헌터들의 능력을 되살리는 방식이 분명 나을 것이다.
“그럼 아이템과 스킬은 결이가 보조해 줄 수 있어.”
“결아!”
“성안에만 얌전히 있을게. 아빠, 결이는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어.”
동그란 금색 눈이 나를 올려다봐왔다.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가 신호하면 무조건, 곧장 잠에서 깨어나기다?”
“응. 약속할게.”
짧은 작전 회의가 오가고 마리 씨가 밖에 알리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박하율이 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려면 두어 시간은 더 걸리지 싶었다. 그동안 푹 쉬라면서 결이가 소파며 침대, 먹을 것 등을 여기저기 만들어냈다.
“침실도 여럿 있어! 욕실이랑, 갈아입을 옷이랑. 옷은 결이가 깨어나면 사라질 테니까 조심해.”
우선 배부터 채우고 욕실로 가 씻었다. 따뜻한 물에 푹 잠겼다 나와서 푹신한 소파에 늘어지자 좀 살 것 같았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유현이가 굳이 옆에 앉아 내 머리를 말려 주었다.
‘…박하율을 잡는다 해도 초승달이 문제인데.’
꿍꿍이가 분명 있는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한유진 씨.”
그때 내 앞으로 송 실장님이 다가왔다. 약간 그늘 진 표정의 실장님이 말을 이었다.
“저 초월자가, 한유진 씨가 만든 인형이라 들었습니다만.”
“아, 네. 참. 그때 송 실장님은 안 계셨었죠.”
송 실장님은 일본에 함께 가지 않았었다. 당연히 던전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그래도 누가 설명을 해주긴 한 모양이네.
“원래 제 도플갱어 인형이었어요. 그게, 먼 과거의 성현제 씨가 머물었던 세계라고 할까요. 거기서 시그마라고 과거의 성현제 씨가 실제가 되어 그 세계를 벗어나면서 제 인형을 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그 인형이 오랜 시간이 흐르며… 도깨비 아시잖아요. 그 비슷하게 자아를 가진 사람이 되면서 초월자까지 성장한 거죠.”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
송 실장님이 침묵하셨다. 저쪽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현아 씨가 키득키득 웃었다.
“…과거의.”
“성현제 씨요. 근데 지금 성현제 씨와는 다르게 더 순진하다고 할까요. 착해요.”
“우리 달이가 착하긴 착했지. 세성 길드장보다 훨씬 어려! 송 실장도 봤어야 했는데!”
“맞아요, 성현제 씨랑은 완전 달랐다니까요! 얼굴만 같아요, 얼굴만.”
“얼굴도 어린 티 나지 않았냐.”
“음, 그래도 지금 성현제 씨도 젊은 얼굴이긴 한데.”
“에이, 훨씬 더 싱싱하지.”
“현아 씨! 보호자분 여기 계십니다!”
문현아가 흠칫 조용히 앉아 있는 인형술사를 돌아보았다. 인형술사가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애 아직도 귀여워.”
“…그렇대, 형님!”
갑자기 달이가 보고 싶어지네. 나와 현아 씨의 주거니 받거니 속에서 송 실장님의 표정은 점점 더 그늘져만 갔다. 아니 송 실장님, 시그마는 진짜 다르다니까요.
“즐거워 보이는군.”
씻으러 갔던 성현제게 홀로 내려오며 말했다. 문현아가 맥주잔을 들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역시 차이 난다니까?”
뒤이어 내려 온 예림이도 뭐가요? 하며 끼어들었다. 시그마 이야기라는 걸 알자마자 아, 하고 현아 씨와 함께 성현제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무들 하네, 얼굴은 똑같은데.
“그 시그마라는 분을 문현아 헌터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송 실장님이 말했다. 나와 현아 씨가 동시에 인형술사를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야. 그 애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속하는 세계가 필요해. 다행히 이 세계는 그 애와 동일한 존재, 성현제가 속해 있기에 그 애도 거부당하지 않고 쉽게 들어갈 수 있지. 하지만 동일한 두 개체가 같은 곳에 머무는 한 그 애는 깨어날 수는 없어.”
“잠들어 있다고 했었죠.”
“그래서 이 세계에 속하는 보호자가 필요한 거야. 성현제가 아닌 시그마를 별개의 개체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저 세계의 인연이.”
인형술사가 문현아와 송태원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지금으로선 저 둘이 후보에 가장 적합해. 우리 애를 해치지 않고 책임감이 강하며 한 명은 원래의 시그마를 알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성현제의 존재 자체와 연이 깊으니까.”
“돌보는 건 아저씨도 잘하는데.”
“이 이상은 안 돼.”
예림이의 말에 유현이가 재빨리 잘라 말했다. 인형술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쟨 너무 많이 끌어안고 있잖아. 반대의 이유로 한유현도 안 돼. 한유진 한 명 외에는 담지 못하는 그릇이니까. 차라리 박예림이 낫지.”
“애한테 애를 맡기면 안 되죠. 확실히 현아 씨와 송 실장님이 제일 낫긴 하겠네요.”
나라도 저 두 사람이다. 성현제가 흥미 어린 눈빛으로 문현아와 송태원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나이기도 한데, 내 의견은 참고하지 않는 건가.”
“성현제 씨는 누가 좋은데요?”
“안정적인 쪽은 브레이커 길드장이지만 재미있는 쪽은 역시 각관실 실장님이시겠지.”
그… 솔직히 나도 송 실장님이 시그마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긴 했다. 송 실장님이 머뭇거렸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거절할 성격은 아닌데, 하필 그게 어린 성현제라서 말이야. 현아 씨가 송 실장님에게 다가가 팔꿈치로 쿡 찔렀다.
“반반 할까? 내가 한 달, 송 실장이 한 달.”
“생각을, 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서 홈스테이는 얼마나 해야 하는데? 1년쯤?”
구그긍- 현아 씨의 말을 자르며 땅울림이 들려왔다. 멀리서 울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져온다. 다들 몸을 일으켰다. 박하율이다. 밖에서 왔다!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결아, 꼼짝 말고 여기 있어.”
“응, 아빠. 조심해야 해.”
피스가 몸집을 키웠다. 성 밖으로 나가자 무장한 헌터들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한 명 나가서 마리 씨에게 오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내 말에 헌터 중 하나가 얼음물을 뒤집어썼다. 화들짝 놀라며 그의 모습이 이내 사라졌다. 성벽 위로 올라가자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뿌옇게 이는 것이 보였다. 요요하게 흔들리는 달빛 아래 대군이 지축을 울리고 있었다.
쿵, 쿵, 쿵! 북소리 같은 발구름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온갖 괴물이 무수하게 뒤섞인 위로 비행형 몬스터 떼가 진득한 먹구름처럼 까맣게 물결친다. 그 모습이 빠르게 선명해져갔다.
– 크르르르!
선두에는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키메라가 섰다. 사자와 용, 산양의 머리가 저마다 사나운 소리를 내뱉는다. 그 가운데 용의 머리 위에 박하율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놈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형! 무사했네요! 다행이에요!”
네놈이 내뱉을 소리냐. 날 납치했던 범인이 너다, 너!
쿠르릉, 먼지구름을 몰아내며 몬스터가 성벽 앞에 멈추어 섰다. 거친 숨소리가 여기까지 훅훅거리며 들려온다. 하늘은 날갯짓과 괴성이 뒤섞여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난 나를 도우러 여기 오는 사람들을 전부 좋아해. 박하율 넌 공격할 수 없어.”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준비를 했잖아요~.”
박하율이 웃으며 몬스터 군단을 가리켰다.
“얘들 다 풀어 주려고요. 그럼 제가 공격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놈이 성벽을 바라보았다.
“성벽도 좋아하는 건 아니죠, 형? 애초에 사람도 아니니까.”
강한 마력이 박하율 주위로 일렁거리기 시작한다.
“부숴도 되겠다. 그쵸?”
짙은 초록 안개가 나타났다. 부식의 힘을 품은 그것이 성벽을 향해 밀려든다. 인형술사가 앞으로 나섰다. 하얗게 방어의 힘이 머금은 위로 녹색의 파도가 철썩, 성벽을 두드리고.
“…어?”
인형술사의 보호막은 산산조각 났지만 성벽은 굳건했다. 박하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살살 하긴 했지만, 여기선 내가 더 강한데? 어?”
놈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뭐지? 좀 약해진 거 같아……?”
박하율의 힘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 * *
– 웨에에에에엥!!
사방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TV에서도 휴대폰에서도 경보음이 연신 울려퍼진다.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지금 즉시 잠에서 깨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