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51
750화 속삭임 (1)
“아, 정말!”
– 캬르르!
박하율이 허둥지둥 용의 머리에서 몸을 피하고 키메라가 이빨을 드러냈다. 자유롭게 풀려난 몬스터가 본능적으로 가까운 인간, 유현이와 예림이를 노린다. 카각,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고 접혀 있던 용의 날개가 펼쳐졌다. 크게 휘어진 용의 머리가 불을, 산양의 머리가 독기를 각각 유현이와 예림이를 향해 뿜어냈다.
화르륵!
거친 불길이 유현이의 몸을 뒤덮었다. 기세 좋게 솟구치던 것도 잠시, 불길이 자석에 이끌리듯 동생의 손아귀로 모여든다. 불에 대한 속성 지배력이 유현이가 한참 웃돌기 때문이었다. 드래곤 머리가 당황할 틈도 없이 화염 브레스가 검푸르게 물들며 한층 뜨거운 창으로 변화하고.
콰득!
단숨에 원래의 주인을 꿰뚫었다.
염소가 흩뿌린 독기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진득한 독은 예림이가 끌어올린 물에 잠겨 스며들었다. 예림이에게는 조금도 닿지 못한 채 물에 갇혔다가.
“나도 돌려줄게~.”
쩌저적- 서늘한 독이 감도는 수십 개의 얼음 창이 되어 키메라를 향해 쏘아졌다. 키메라가 피하려 하였으나 네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 크륵!
흘러넘친 지하수가 어느새 몬스터의 다리를 얼어붙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음 창이 순식간에 염소 머리를 박살 내고 버들잎을 밟으며 공중을 미끄러진 유현이의 검이 사자 머리 마저 단숨에 베어 버렸다.
쿠웅! 키메라의 거체가 차가운 땅 위로 쓰러진다. 박하율은 그새 새로운 몬스터를 불러냈다. 도망치려는 건지 비행형 몬스터였다. 하지만 유현이도 예림이도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몬스터는 공격해도 되는 거였죠?”
촤아악! 높게 치솟은 물이 단단하게 굳으며 몬스터 앞에 거대한 얼음벽을 만들어 냈다. 괴조가 당황하며 파닥거리고 그 등에 타고 있던 박하율도 악, 하고 소리쳤다.
“떨어지면 다치니까 날 공격하는 거라고!”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예림아, 망설여지면 건드리지 마.]유현이처럼 확고하게 단순한 장애물 취급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조심하는 편이 낫다. 박하율이 힘의 사용이 어설퍼서 그렇지 지금도 여전히 S급은 가볍게 능가할 터였다. 정신 차리고 쓰니 이내 저렇게.
콰앙!
손짓 한 번으로 얼음벽을 산산조각 낸다. 그대로 도망치나 싶은 그때.
카가각, 검은 칼날이 길게 굽어지며 괴조의 목을 가른다. 눈앞을 스치는 검에 박하율이 기겁했다. 놈이 풀쩍 뛰어 공중에 섰다. 어설픈 비행이었다. 푸른 버들잎이 사방에 흩날리고 예림이가 거리를 벌인다. 예림이의 주위로 물방울들이 퐁퐁퐁 생겨나고.
“한유현, 간다!”
부딪쳐도 무해한 물방울이 박하율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건 공격 아니에요! 장난이지~.”
기껏해야 옷이 젖을 뿐이니까. 이어 내가 소리쳤다.
[유현아, 저 물방울 전부 터뜨려!]“응.”
유현이가 대답했다. 동생은 박하율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유현이의 발끝이 버들잎을 박찬다. 예림이가 물방울을 교묘하게, 재빠르게 조종하고 그것을 칠흑의 검이 뒤따른다. 휘익, 공기를 가르며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박하율의 머리 바로 뒤로 돌아가는 물방울을 향해 군림자의 검을 내찔렀다.
“악!”
터엉! 박하율이 급히 방패를 만들어 유현이의 검을 막았다. 급조한 방패에 금이 간다. 물방울이 약이라도 올리듯 박하율의 뒤쪽에서 맴돌고 유현이의 눈은 여전히 물방울만을 직시하고 있었다. 박하율의 존재는 그저 쓸데없이 단단한 나무나 바위일 뿐이었다.
치워내야 한다. 그래야 내 말에 따라 물방울을 터뜨릴 수 있다. 카가각, 방패를 길게 긁으며 유현이의 몸이 맴을 돌았다. 버들잎을 디딘 한쪽 발끝이 빙글 미끄러지듯 하며 다른 쪽 발이 박하율의 허리께를 거칠게 두들긴다.
“억! 이, 이게 왜 공격이 아닌 거야!”
전투 경험이 없는 탓에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들겨 맞은 박하율이 공중에서 훌쩍 날려갔다.
[그냥 치운 거잖냐, 치운 거.]당연히 공격이 아니지. 길 막고 있는 바위 밀어낸 거 가지고 바위를 공격했네~ 하는 거 봤냐?
펑! 박하율 뒤에 숨어 있던 물방울이 검에 베여 터져 나갔다. 유현이의 눈길은 단 한 번도 박하율을 제대로 담지 않았다. 놈은 어디까지나 물방울 주위의 사물 1일 뿐이었다. 손등은 아무런 표식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비틀거리며 겨우 추락을 면한 박하율이 기막힌 얼굴로 유현이를 쳐다보았다.
“형 동생 진짜 이상해요! 사람이 어떻게 저래!”
[아 동생이 형 말 잘 들으면 착하고 좋지 뭐!]평범한 건 아니긴 하다만… 근데 애초에 타고나길 그런 걸 뭐 어쩌라고. 그런 걸로 정상 비정상 나누며 이상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원래 외눈박이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이상한 거라 그랬다. 세상 사람이 다 유현이 같으면 유현이가 보통이야!
퐁, 퐁, 퐁! 물방울이 다시금 솟아난다. 이번에는 훨씬 수가 많았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물방울이 박하율 주위로 무수히 쏟아지고.
화르르- 그것을 바라보는 유현이 앞으로 불길이 크게 일어난다. 이어 차라락, 유현이의 인벤토리에서 SS급 검들이 나타났다. 진짜는 아니었다. 결이가 만들어 준 꿈속의 무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꿈에서는 진짜나 마찬가지이니.
도검 포식자. 스킬이 발동하며 SS급 검들이 검푸른 불길을 머금으며 녹아내린다. 금속성 타오르는 액체가 유현이를 빙그르 한 바퀴 맴돌고는 수십 개로 나뉘어져 날카로운 가시화하였다. 뜨겁게 열을 품은 수십의 SSS급 가시 검. 주인의 손길을 따라 그대로.
피잉-!
물방울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 앞의 박하율을 향해.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화끈한 열기가 쏟아지는 것만으로도 물방울들이 빠르게 증발한다.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 박하율이 허겁지겁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캉! 카각! 카앙!
방어막에 금이 간다. 물방울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박하율 뒤로 모여 피한다. 등 뒤만이 아니라 얼굴 앞, 팔 주위로도 어느새 숨어들어 있었다. 튕겨 나간 가시검이 다시금 빠르게 비행하며 방어막을 두들겼다. 그럼에도 간신히 버티는 방어막에 박하율이 안심하는 순간.
화악!
구름처럼 뿌옇게 차오른 수증기가 단숨에 갈라지며.
쾅!
흑검이 방어막을 내리쳤다. 유현이였다. 무시무시한 힘을 담은 칼날이 방어막에 잠시 멈추었다가 그대로 꿰뚫는다. 박하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와장창, 기어이 산산조각 난 방어막 아래의 박하율이 힘겹게 흑검을 피했다. 그러나.
“악! 아파!”
가시검들이 남아 있었다. 이리저리 도망치는 물방울을 가시검이 뒤쫓는다. 그 가운데 박하율이 있었다. 놈의 몸 곳곳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뜨거운 열에 피부가 달아오르고 상처가 계속해서 늘어난다.
“아프다고!”
박하율이 짜증을 내며 가시검을 피해 도망쳤다. 상처도 이내 회복한다. 응용력은 바닥이지만 몸뚱이는 튼튼하다 이건가. 게다가 여전히…….
[박하율.]“형! 너무해!”
[넌 여기서 죽을 수 있어.]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우리처럼 이 꿈 속에서는 진짜야. 꿈이 아니야. 원래의 너는 꿈이었겠지. 죽지도 않는 꿈.]표면에 드러난 박하율은 초월자의 씨앗이 꾸는 꿈과 다름없었다. 본체는 잠들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의 그는 진짜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세계.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꿈의 세계의 주인.
[하지만 이제는 죽어.]“사, 사람이야 원래, 죽죠!”
박하율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초조함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는 좀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만약 네가 참지 못하고 우리 애들을 공격해서 힘이 약해지면, 그땐 내 손에 확실하게 죽어. 그러니 끝까지 발버둥 쳐 봐. 그편이 목숨 건질 확률이 높을 테니까.]“형! 난 진짜 형 좋아하는데!”
바닥에 굴러떨어진 박하율이 방향을 틀었다. 내가 있는 성벽을 향해 뛰었다.
“진짜예요! 악!”
퍼엉, 박하율 앞의 물방울을 꿰뚫은 가시검이 폭발했다. 뜨거운 열기의 폭풍에 박하율이 휘말리며 데구르 엎어진다.
[조심해.]유현이와 예림이에게 작게 말했다. 내가 경고해 두었지만 궁지에 몰리면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는 거 나한테 타격이라도 입히고 죽겠다고 독한 마음 먹을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할 정신도 없는 듯하지만.’
너 죽고 나 죽자 할 성격도 아니긴 하고. 그래도 계속 이대로 정신 못 차리게 몰아붙여야 한다. 박하율이 뛰었다. 예림이가 땅을 얼리고 그 위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언 땅을 녹여.]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하율을 향해 불길이 휘몰아쳤다.
“우아악!”
뜨겁긴 해도 녀석의 능력치를 생각하자면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을 텐데, 박하율은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성벽 앞 가득하던 몬스터들도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어쩔까.’
하필 저놈이 이 세계를 유지하는 중심이라 죽일 수도 없고. 이대로 계속 위협해서 이 꿈의 세계에서 십 년간 얌전히 잠들어 있겠습니다, 라는 계약을 하도록 만드는 게 좋겠지. 이 세계를 오래 유지할 필요는 없으니까.
“성벽 가까이 가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쿠웅, 쓰러뜨린 몬스터를 밟고 뛰어넘으며 문현아가 말했다. 성큼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박하율이 제풀에 놀란 비명을 질렀다. 그걸 본 문현아가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 봤자 아직…….”
박하율이 더 강하지.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거지 박하율은 헌터보다는 일반인에 가까우니까. 전투경험이 없는 사람은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더 유리해도 겁을 먹으면 끝이다.
철벅! 유현이의 발이 쓰러진 박하율의 머리를 스치며 물방울을 밟아 터뜨렸다. 반쯤 기어 도망친 박하율이 결국은 소리친다.
“사, 살려 줘요!”
그럼 이제.
[하율아-]잘 달래어 설득하려는 순간.
잘랑.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히 내리비치던 달빛이 차갑게 경질화되며 박하율을 감싸듯 내리꽂힌다.
문현아가 유현이 앞을 막아서며 급히 거창을 들었다. 박하율을 노리던 가시검들이 무서운 속도로 주인을 감싸 보호한다. 순간이동 할 틈도 없이 주위의 물로 자신을 감싸는 예림이 앞으로 금빛 사슬이 길게 가로 뻗어졌다.
차앙! 캉! 은빛과 금빛이 뒤섞인다. 거칠게 밀려나 떨어지는 예림이를 성현제가 낚아챘다. 그의 몸 곳곳을 달빛이, 은색 사슬이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문현아의 창이 조각났다. 카득, 콱, 뜨거운 가시검들이 차디찬 달빛 아래 식어 떨어지고 군림자의 검이 다 쳐내지 못한 은빛이 유현이의 어깨를 꿰뚫었다.
뒤이어 콰앙!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박하율 주위의 모든 것을 거친 파도처럼 밀어낸다.
“윽!”
유현이와 문현아가 쓸려 성벽 근처까지 내동댕이쳐졌다. 예림이와 성현제도 한참을 밀려났다. 강소영과 코메트가 휘날려 성채에 부딪치고 시시오를 비롯한 다른 헌터들도 바닥을 뒹군다.
“성녀님!”
“걱정 마세요, 바로 치료할 테니까!”
예림이와 성현제는 그래도 박하율과 떨어져 있어 상처가 심하지 않았지만 유현이와 현아 씨는 피투성이였다. 두 사람이 침착하게 몸을 파고든 은색 사슬을 뽑아내고 에밀리가 곧장 치유 스킬을 썼다. 그것을 제대로 확인할 틈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으…….”
박하율이 눈을 찡그렸다. 짙은 베일과 같이 그를 감싼 달빛 사이로 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은색 인영이 박하율 앞에 내려선다.
“누구…….”
박하율이 주저앉은 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우뚝 멈춘다. 그의 시선이 인영을, 초승달을 향해 못 박혔다. 마치 홀린 듯이.
‘…잠깐만.’
설마.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초승달은 박하율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분명 영향은 주었지만 박하율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박하율은 힘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초승달이 완벽하게 지배하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급히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박하율!”
“어, 형…….”
여전히 초승달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 채 박하율이 중얼거렸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야! 너 그러다간 초승달에게 먹혀! 정신 차려!”
“하, 하지만.”
초승달의 형체가 한 걸음 박하율에게 다가갔다. 박하율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린다. 사람들이 영원히 잠을 자지 않을 순 없었다. 이대로 박하율을, 그의 힘을 초승달이 차지해 버린다면.
“인형술사 씨, 어떻게 못 막습니까?”
“지금 마나 안정화를 멈추면 네 일행이 위험해. 초승달의 마력에 짓눌릴 거다.”
박하율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왔다. 저 멍청이가 이렇게 될 거였으면 그냥. 아.
“아무나 공격해! 당장!”
박하율의 눈이 커졌다. 녀석이 허둥거렸다. 성벽 구석에 처박혀 있던 빈사의 몬스터가 놈의 지배를 받고 일어난다. 근처에 있던 송태원을 향해 힘겹게 덤벼들었다. 몬스터의 머리가 박살 나고, 박하율은 계약을 어겼다.
“윽…….”
눈앞이 어질했다. 박하율의 힘 절반이 내게 옮겨왔다. 초승달의 지배력의 절반 또한.
[한유진.]내게로. 초승달이 속삭여온다. 옆에 서 있는 인형술사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나는, 이미 주인이 있어!”
인형술사가 혀를 쯧 차며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해 감쌌다.
“이 녀석 말대로야.”
그의 시선이 초승달의 인영을 향했다.
“내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