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58
757화 서로 다른 (3)
“네, 앞으로 14시간 17분 남았어요. 2시간 전부터 카운트다운 메시지 창 띄워 드릴게요, 허니.”
[응. 아직 다른 방법은 없지?]한유진의 목소리가 메시지 창으로 전달되어 나타났다. 보는 사람도 없건만 신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초월자들이 몰려가고 적어도 이삼 일은 시스템을 통한 세계 이동은 불안정할 거예요. 우선은… 최대한 버텨 주세요.”
[버티는 것까진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 좀 불안해서.]신입은 한유진이 걱정하는 대상을 떠올렸다. 체인, 유사 근원. 어린 혼돈으로부터 초승달이 그를 새로운 근원으로 만들 생각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신입으로서는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저기, 허니 주위에서도요, 체인을 포기하자고 하진 않아요?”
짧은 침묵 뒤 메시지가 전해왔다.
[아무래도 그렇지.]“하지만 허니는 싫은 거군요.”
[적어도 내가 먼저 그러긴 싫어.]성현제가 그를 기다리겠다는 신호를 보내 주었으니까. 신입은 한유진의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체인은 인간이라기엔 이미 많이 벗어난 존재였다. 그럼에도 한유진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설사 체인이 무너져 초승달이 원하는 근원이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한유진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허니는 나도 좋아한다고 했어.’
까마득한 과거이면서, 여전히 갇혀 있는 탑이 있었다. 모든 이가 그가 탑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언제든지 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서도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탑에 갇혀 있었다. 그것이 존재의 가치이자 이유였기에.
초월자가 된 후에도 같았다. 엇나가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애정을 보았다. 탑을 부수고 나간다 해도. 그로인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해도. 그래도 허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시스템이 완전히 적용되면 허니 세상의 사람들은 더 이상 꿈 세계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할 거예요. 초월자와 그 종속들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겠죠.”
[꿈꾸는 사람은 꿈만을 인식한다는 거지? 걱정 됐었는데 다행이네. 꿈이 정신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꿈의 주인과 관련이 있거나 강력한 환상계 스킬을 지녔다면 예외겠지만요.”
[그래? 결이가 걱정이네.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그 마리라는 분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런 식으로 꿈에 들어온다면 꿈속에서의 사망이 현실에 영향을 주게 될 거예요. 쇼크사나 가사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허니 일행은 현실이니까 더더욱 위험하고요.”
[그러니 어떻게든 애들이라도 먼저, 유현아, 놓아주지 않겠냐. 예림아, 그 줄 내려놔라.]“전 허니가 제일 걱정이에요.”
[나야 뭐. 시스템 적용되면 은혜도 있고. 아, 무해의 왕의 서랍 말이야. 사용해도 될까? 거기서 버티는 건 어때?]“사용은 가능하겠지만 꿈의 세계에서는 아공간의 방어력이 약해져요. 꿈꾸는 사람들이 상상력만 잘 발휘하면 공간이동을 쉽게 할 수 있잖아요? 공간의 경계 자체가 옅은 세계라 쉽게 뚫고 들어올 거예요.”
[…아쉽네. 하긴 인형술사도 뚫은 적 있는 곳이니까. 장비 백업용으로나 써야겠다.]그 밖의 정보가 오가고 메시지창이 사라졌다. 신입은 소맷자락 아래로 손을 맞잡고 꼬물거렸다. 지금까지는 다른 이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왔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해진 길이 사라졌다.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짜내고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탑 밖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시스템 적용 – 75.91%]그 창 아래에.
[98.66%]또 다른 창이 있었다. 한참 전부터 멈추다시피 느릿이 올라가던 수치. 그 창을 바라보는 신입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허니는 분명 원하겠죠.’
또 하나의 방법이 신입의 손에 있었으며 한유진은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렸지만 신입은 허니를 가장 좋아했다.
“저 녀석도 고집이 만만치가 않아.”
어린 혼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입은 시스템 창을 끄며 돌아섰다. 허공에 열린 문을 통해 나온 혼돈이 쯧쯧 혀를 찼다.
“대장장이 씨는 괜찮은 거예요?”
“일단 재워 놨다. 역시 아직은 일러.”
“그렇죠, 아직은요.”
신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진의 상황을 알게 된 유명우는 자신이 직접 꿈의 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통로를 열려고 시도했다. 그는 그 세계에 속하는 존재이자 시스템 관리자이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수년 후였다면 말이다.
“시스템의 마나 부하를 대장장이 씨가 버티지 못해요. 제가 도와주기엔 저는 저 세계 사람이 아니니까요.”
“첫째보다는 낫다만 저 녀석도 몸뚱이가 능력을 못 따라가는 거지. 그래서 나무는.”
“아, 나무 선배는-.”
[준비됐어.]공간이 갈라지며 커다란 잎을 탄 나무인형이 나타났다. 조그만 모양새의 나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쩌다 이 난리인지는 모르겠지만.]“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나무 선배!”
“기분 나쁜 녀석이요?”
[정원사.]나무가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끝 모를 초원이었다.
[더 넓어야 할 것 같은데.]“정원사 선배? 님과 사이가 안 좋아요?”
[선배는 무슨. 정원사잖아. 당연하지.]땅을 가볍게 톡톡 밟아 보며 나무가 말을 이었다.
[동물은 식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니까. 정원사가 하는 짓이 뭔데. 멋대로 식물을 옮겨다 심고 가지를 자르고 번식시키고. 납치 개조 강제생식에 유전자변형까지 하잖아. 정원사란 식물 학대범이라고.]“그, 그런 거 같네요.”
[그 이전에 개인적으로도 기분 나쁘지만. 나와 비슷한 종족 출신 초월자들은 다들 그래. 정원사를 꺼림칙하게 여기지.]나무의 말에 신입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자기 정원 밖으로는 나서는 일 없이 중립적인 초월자라고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더 꺼림칙하잖아. 갑자기 무거운 엉덩이 들고 이 난장판에 끼어든 것이. 그리고 저 세계는.]나무의 뿌리가 천천히 땅을 파고들어갔다.
[인어여왕이 지키는 곳이니까. 방어막 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물방울과는 오래된 사이기도 하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친구의 마지막 행적을 보호하는 것에는 힘 좀 보태야지. 자, 피해!]신입이 훌쩍 날아올랐다. 어린 혼돈 역시 뒤로 도약했다. 대지를 파고든 뿌리가 끝없이 뻗어나간다. 나무 인형의 형태가 부풀어 오르며 순식간에 굵고 굵은 나무기둥으로 솟아난다. 가지가 뻗었다. 하늘을 온통 가리며 푸른 잎이 우거진다. 오래전 어느 한 세상에서 모든 생물의 우러름을 받았던 나무, 세계수. 그 본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르릉, 신입이 만들어 놓은 공간의 끝에서 끝까지 뿌리와 가지가 닿았다. 마나의 밀도가 높아지며 마치 물에 잠긴 듯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까마득한 나무에 온갖 생명들이 숨 쉰다. 뿌리에 숲이 이루어지고 밑 둥의 갈라진 틈에 늪이 생긴다. 너른 가지에 초원이, 움푹 파인 옹이구멍에 호수가, 잎새 틈 강한 빛이 내리는 곳에 사막이.
한 그루의 나무가 다양한 생태계를 품었다. 한때 그곳에 자리 잡았던 도시가 열이요 마을이 백이 넘었었다. 그런 나무였다.
[자, 신입아.]“네.”
신입이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들의 앞에 너른 공간이 펼쳐졌다. 우주와 비슷한, 별이 반짝이는 어둠이었다. 시스템이 꿈의 세계에 완전히 적용되기만을 기다리는 초월자들의 대기소. 그 시스템 공간 가운데에 푸른 구가 보였다. 인어여왕이 감싸 안은 세상.
“둘째가 좋은 걸 가르쳐 줬지.”
나뭇가지 끝에 서 있던 어린 혼돈이 검을 손에 쥐었다. 신입이 시스템을 조정했다. 어두운 공간이 더욱 선명해지며 푸른 구를 향하는 수많은 선들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저 선들이 길이에요!”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 내는 길들. 때가 되면 저 길을 통해 침입이 시작될 것이다. 어린 혼돈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의 몸에 깃든 저주가 흔들린다. 소년이 몸이 빠르게 성장한다. 그는 다른 초월자들을 먼저 공격하지 못한다. 힘들게 만들어 낸 길을 자르는 것 또한 공격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저 거미줄 같은 건 모른다.”
붉은 두 눈이 감겼다. 예리한 감각은 그럼에도 느꼈지만, 잊었다. 선은 그저 사물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뻗는 팔에 감겨오는 거미줄에 불과하다. 인식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다. 검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나무 베기는 오랜만이군.”
검을 갓 든 어릴 적처럼. 세계수가 가지를 뻗었다. 수많은 길들 위로 끝없는 가지가 얽히고설킨다. 이어 거대한 굵기로 치솟으며 가장 오래된 검을 향해 그 몸을 눕힌다.
구우웅-
나무가 쓰러지듯 느린 움직임처럼 보였다. 하나 실제로는 더없이 빠르고 무겁고 단단했다. 혼돈이 손이 퉁, 튀었다. 칼날이 부드럽게 반원을 그린다. 그려진 선이 갈라지고 갈라진 틈이 커지고 커져간 틈이 모든 것을 삼킨다.
서걱
가지가 베어 먹힌 듯 고요히 잘려 나갔다. 그 주위의 모든 것도 함께 휩쓸린다. 어지럽게 반짝이던 선이 지우개로 크게 문지른 듯 사라지며 어둠만이 남았다. 그 너머의 별들이, 초월자들이 일제히 항의의 뜻을 흘려내나.
“칼 앞에 선 놈이 잘못이다. 불만 있으면 덤벼라!”
어린 혼돈은 되레 큰소리를 냈다. 정말로 덤빈다면 저 세계로 침입할 힘을 잃을 때까지 신나게 두들겨 주면 그만이다. 몇몇 초월자들이 다시금 길을 만든다. 운 좋게 재앙을 피한 초월자들은 자신의 길을 보호했다. 혼돈이 검을 고쳐들었다.
“오늘 칼춤 한번 제대로 춰 보자.”
나뭇가지가 그에 응하듯 퍼져 나갔다. 모든 초월자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는 확실히 줄일 수 있을 터였다. 뻗어가는 가지 위를 달리며 혼돈이 눈길이 푸른 구를 향했다.
‘어떻게든 버텨라. 살아남아.’
제아무리 막막해도 살아 있으면 방법이 생기는 법이니.
* * *
흔들림이 전해져왔다. 그 속에 섞인 흥분과 기대감이 느껴졌다. 초승달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낡고 낡은 초월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짙은 감정들이었다. 유사 근원의 존재란 그들에게 있어 완전히 새롭고도 놀랄 만한 것이니.
세상들 틈새, 시스템에 엮인 초월자들의 공간이 흔들리는 그 틈새로 깃털 하나가 날아들었다. 하얀 깃털이 바람을 타고 달빛을 미끄러진다. 초승달의 시선이 깃털을 향했다. 흔들흔들, 달빛과 함께 흐트러진 은빛 머리카락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다시 훅 날아오르고는.
“안녕.”
인간의 형태로 변하였다. 새하얀 여성체였다. 머리카락 대신 깃털이 풍성히 내려앉아 발치를 넘어섰다. 검은 두 눈이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하얀새.”
“오래전 남겨 놓은 깃털 하나일 뿐이야. 그것이 여기까지 왔구나.”
하얀새가 미소 지었다.
“지금의 너는 어디에 있지.”
“말해 줄 수 없어. 하지만 나는 행복해.”
“원하는 것을 이루었나.”
“완전히는 아니야. 다만 네게 말해 주고 싶었어.”
미래예지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초승달. 너는 실패하더라도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
“내게는.”
“지금의 네게는.”
검은 눈동자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내 전부를 걸고 수많은 길을 헤맸어.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기 위해서. 끝없이 갈라지고 갈라지는 길에서 하나의 길을 찾아냈지. 보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결과를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길.”
“네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구나.”
초승달이 나직이 말했다. 오랜 시간 하얀새는 침묵했다. 수많은 것을 보았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라는 길이, 그 끝이 정해졌기에.
“누구나 다 같아. 행복해지고 싶어.”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한 가지를 대답한다면.
“나는 너를 좋아했어. 다른 모든 이들처럼. 그러니 늦게나마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야.”
“네가 바라는 대로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지금까지는, 아마도.”
초승달은 조용히 하얀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이 흐릿해져 간다. 깃털이 하나둘 흩날렸다.
“그 길의 중심에는 한유진이 서 있는 건가.”
“그 아이가 필요했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그 아이의 동생이 시작이었지.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 그 세계의 모든 사람들.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하나하나가 모두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극히 낮은 가능성에서 시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길의 끝을. 초승달은 그녀의 아이를 놓지 못하는 인간을 다시금 떠올렸다.
“처음부터 특별하지는 않았을 텐데.”
“평범해. 특별한 점 없는 그냥 사람이야. 다만 한 가지를 제외하고.”
“한 가지?”
“딱 하나. 그뿐이야. 우리는 씨앗을 심었고 싹이 트일지 어떻게 자랄지는 선택할 수 없었어.”
하얀새의 모습이 사라졌다. 깃털 하나만이 훌쩍 날아오른다.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어.”
힘을 잃은 평범한 깃털이 바람을 따라 흘러간다. 초승달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 * *
[02:00]타이머가 떴다. 품에 안고 있던 별이의 입을 닦아 주었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응, 아빠.”
“설이가 잘 지켜보겠지만.”
설이가 고개를 끄덕했다. 결이와 별이에 비해 반응이 적은 설이였지만 별이 일에는 꼬박꼬박 대답을 해왔다. 게다가 가만히 보니 결이의 의견도 꽤 잘 들어주었다. 별이와 관련되어서는 말이다. 나름 결이의 지식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결아, 동생들이랑 꼭 함께 있어야 해. 별이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더더욱 결이가 필요해요.”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맡기고 싶진 않았지만 결이가 꿈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 좋을 듯했다. 결이 성격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더 맘 편히 기다리기도 할 테고. 우리 애가 정말 착한데 너무 빨리 어른스러워지려 한다니까.
“걱정하지 마, 아빠. 둘 다 결이가 잘 보호할 거야.”
“고마워, 결아.”
별이를 품에서 내려놓으며 줄어드는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한 버티고 싸우면서 업적 치 갱신을 노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