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59
758화 금 (1)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헬기 두 대가 내려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예림이와 문현아, 그리고 헌터협회 사람들이 헬기에서 짐을 꺼내고 있었다. 이어 새로운 헬기들도 도착했다. 바로 옆의 해연 빌딩에서도 헬기가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A급 이상으로 잔뜩 쓸어 왔어요!”
예림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현아 씨가 내 휴대폰으로 파일을 전송해왔다.
“아이템 정보는 거기 다 있어. 지금도 다들 열심히 움직이고 있고.”
“네. 감사합니다.”
결이가 깨어나게 되면 만들어 준 아이템들은 사라지게 된다. 대신 시스템 적용이 끝나면 현실의 아이템을 그대로 복사한 꿈 세계의 아이템들은 원래의 성능을 찾게 될 거라고 하였다. 꿈이니까 실제 아이템도 아니고, 남아도는 거 열심히 써야지 내버려 둘 필요가 있나.
“한 소장!”
시시오가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결이에게 얼른 시시오의 통역 아이템을 쓸 수 있게 해주라고 부탁했다.
“이건 내가 아껴 놓은 아이템들이오. 1회성이라 해연 길드장과의 전투 때도 들고 가지 않았었지.”
큼직한 상자 하나가 내게 내밀어졌다. 이어 걸치고 있던 화려한 외투를 벗어든다.
“SS급 장비 천 년 철목 잎사귀요. 방어 특화 형이지.”
“…그거 장비였어요?”
“원래 밋밋한 청동색이었던 걸 염색하고 장식을 달았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오!”
시시오가 하하하 자랑스럽게 웃었다. 맞춤옷인 줄 알았는데 장비였구나. SS급이지만 입기 좀 쪽팔렸다. 나한테는 너무 크기도 하고. 장비의 크기 조절 기능도 한계가 있어서…….
“음, 현아 씨. 이거 입으실래요?”
“…SS급이라고?”
“네. 능력치는 현아 씨한테 좋을 거 같긴 해요.”
현아 씨는 근접계니까 방어력도 필요했다. 문현아가 조금 떨떠름해하면서도 외투를 받아 걸쳤다. 붉은색에 흰색과 금색 문양이 섞이고 금속과 털 장식까지 달린 과한 옷이었지만 현아 씨에겐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멋지네.
“여기 S급 무기들도 있소이다. 한 소장의 동생이 얼마든지 녹일 수 있는 양이지. 단검이지만 SS급도 있고.”
시시오가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그윽한 눈길을 보내왔다.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감사하다며 한껏 미소 지어 보였다.
“인형술사 씨가 문현아 헌터 한 명만 연결 도와줄 수 있다니까요.”
마리와 결이의 능력으로 S급 헌터들을 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건 가능했지만 당장은 위험할 거라고 신입이 경고했다. 초월자들의 개입으로 마나가 요동칠 테니까. 다만 현아 씨는 인형술사가 보조해 주기로 하였다. 아마 시그마 때문이겠지.
‘역시 현아 씨에게 맡길 생각인 걸까.’
옥상 정원 입구 부근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송 실장님을 슬쩍 바라보았다. 송 실장님은 성현제를 책임지기로 마음먹었다. 목숨을 걸고서. 그러니 또 다른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란 힘들 터였다. 인형술사로서는 현아 씨가 더 마음에 들겠지.
성현제 쪽으로도 헬기가 내려섰다. 강소영과 에블린에 이어 반테스 씨도 있었다. 반테스 씨가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가방을 성현제 앞에 내려놓았다. 대화가 오갔지만 헬기 소리에 막혀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노아 헌터는 아직 소식이 없는 모양이네요.”
유럽 쪽 아이템과 함께 온 에밀리가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저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건만.”
“포션이라도 열심히 써야죠. 어쩌면 길이 엇갈렸을지도 몰라요.”
아직 무사는 하니까. 이 정도로 소식이 없는 거 보면 우리가 남긴 메시지를 보고 둘이 함께 프랑스로 향한 게 아닐까 싶었다. 걱정은 들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라면 별문제 없겠지. 초월자들의 우선 목표는 성현제이기도 하고.
시스템 창의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어갔다. 온갖 아이템을 들고 와 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30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어르신이라고 했었지.’
초월자들이 만들어 내는 길을 끊어내는 어린 혼돈. 검은 하늘 한쪽의 빛이 일시에 쓸려나간다. 새카맣기만 하던 하늘에 다시금 하나둘 빛이 나타난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절반쯤 줄었다.
어둠이 길게 어릴 때마다 가슴에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막막하기 그지없는 저곳에도 든든한 내 편이 있다. 고작해야 며칠이나 지났다고 괜히 보고 싶어졌다.
“결아.”
내 어깨 위에 걸치듯 올라타 있던 결이가 머리를 들었다.
“이제 결이도 가야지.”
– …응.
분홍색 요정용이 팔랑 날아올랐다. 걱정이 그득한 눈망울이 나를 바라봐왔다. 두 앞발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연다.
– 기다릴 거야, 아빠.
“그래. 결아.”
괜찮을 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결이도 모르진 않을 것이라 더더욱 변명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심장 안쪽이 쓰라렸다.
“아빠도 집에 돌아갈게.”
– 알고 있어. 집은 걱정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한번 꼭 안은 뒤 결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선생님 스킬을 썼다. 동시에 금빛이 눈앞을 내리찍는다.
카라랑!
시시오의 창을 내 앞에 세웠다. 창의 손잡이를 황금색 사슬이 휘감고 인형술사의 손이 내 손 위로 덮어졌다. 파지직! 전류가 튀었다. 그러나 은혜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나와 바싹 붙어 있던 인형술사 또한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팽팽히 당겨진 사슬 끝을 붙잡고 성현제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운 눈을 하더니, 냉정하군.”
“물러 나. 말 했잖아. 피스 너도.”
유현이와 예림이, 피스가 거리를 벌렸다. 저 셋은 아직 등급도 스킬도 회복되지 못했다. 문현아 또한 뒤로 풀쩍 뛰어 팔짱을 꼈다. 송실장님의 미간이 좁혀졌다. 성현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그쪽이 날 어떻게 대했는데. 1년도 채 안 지났거든요?”
예전 일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바뀌었다고 해도 말이야, 잊기엔 난폭한 짓 많이 하셨지.
“사람을 발밑에 처박아 내리누른 적도 있으신 분이잖습니까.”
“…형?”
“저 인간이 그런 짓도 했어요?!”
예림이가 미친 거 아니냐며 화를 냈다. 아니 그게.
“예전엔 예림이 너랑 유현이 없애 버릴 생각도 했던 인간이잖냐. 아무튼 그때로 돌아갔다면, 뻔하죠.”
그때의 성현제라면.
“성현제 씨에게 저는.”
“유용한 아이템.”
“예, 그거 아닙니까.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는 더더욱 챙겨야 할 아이템.”
공격 스킬 두 배도 무척 유용할뿐더러 은혜를 사용해 방어구로도 쓸 수 있다. L급 해독, 해주에다 상대의 정보도 일부나마 볼 수 있었다. 그에 더해 선생님 스킬도 전투예지 보조가 가능했다.
“시스템이 적용되기 전에 빼돌리는 게 편할 테니까 말입니다.”
결이의 능력은 귀찮으니 애가 사라지길 기다렸을 것이다. 내 말에 성현제가 아쉬운 척을 했다.
“한유진 군이 나를 꽤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넋 놓고 방심해서 질질 끌려가길 바란 겁니까? 그럼 처음부터 연기를 하든가. 속내 다 드러내 놓고 바랄 걸 바라셔야지.”
“나는 나를 아낀다 하지 않았던가.”
아, 네. 내가 자신의 감정 일부를 되찾게 하려면 알려 줘야 했겠지. 정말이지 과거의 성현제는 재수 없었다. 대체 내가 어쩌다가 저런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걸까. 나도 참 이상한 놈이야.
카드득, 창대에 휘감긴 사슬이 천천히 맴돈다. 옅은 전류와 함께 창대에 흠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현제에게 쓴 선생님 스킬로부터 반발이 밀려들었지만 버틸 만했다. 인형술사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초월자가 아닌 S급 정도로 약해진 상태지만… 이 악 물고 인형술사에게 선생님 스킬을 사용했다. 순간 골이 울렸다. 숨이 격하게 토해졌다.
“너 정말 무모하구나. 그러니 여기까지 왔겠지만.”
속삭임과 함께 인형술사의 팔이 내 허리를 붙잡았다. 동시에 콰득! 사슬에 갈린 창대가 조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다. 창대 조각과 함께 천둥이 친다. 쿠르릉! 정원을 새카맣게 그을리며 튀어 오르는 강력한 전류가 인형술사의 손길을 따라 모인다. 이어 내가 그 앞에 섰다.
퍽.
전류는 은혜에 의해 무효화되었지만 그 여파가 가슴을 둔탁하게 두들겼다. 차르륵, 금색 사슬들이 조각조각 나누어진다. 일부는 우리를 노렸지만 남은 고리들은 물러난 사람들을 향했다. 성현제 저 망할!
스르르- 인형술사의 소맷자락에서 실오라기가 풀려나왔다. 하늘거리는 실들이 순식간에 퍼지며 금빛 고리를 꿰어 얽매었다. 전류를 품은 고리는 허공에 멈추었으나 그 주인은.
“착하지.”
장갑을 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실 가닥을 크게 잡아당기며 인형술사가 나를 잡고 몸을 회전시켰다. 손아귀가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다가, 아래로 뚝 떨어진다. 동시에 인형술사가 뒤로 순간이동 했다. 허공을 긁은 손끝이 부드럽게 거두어진다.
“멈추십시오!”
송 실장님이 소리쳤다.
“제가 성현제 헌터를 도우려는 이유에는 한유진 씨의 안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현제가 목을 살짝 기울였다.
“설사 내가 한유진 군을 살해한다더라도, 송태원 씨는 나를 구하겠지. 그렇지 않나.”
“…성현제 헌터!”
“그러니 이대로 한유진 군을 붙잡아 사용해야 하건만.”
찰강, 고리들이 다시금 서로 엮이며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적극적인 마음은 들지 않는군.”
“왜요, 벌써 제가 마음에 들기라도 한 겁니까?”
“잡아가도 어떻게든 도망칠 듯해서.”
금색 눈이 느릿이 깜박였다. 그 시선에 약간 곤혹스러운 감정이 섞인 듯했다.
“확률은 낮아. 하나 한유진 군의 행적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네.”
“제가 일을 많이 벌이긴 했죠.”
“단순한 계산으로는 한유진 군을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건만.”
그러나 스탯 F급이 여기까지 올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 낮은 확률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성현제로서도 나를 확실하게 제압해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으리만큼.
“이 기억, 꽤 귀찮군.”
성현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감정이 지워진 기억이라고 해도 영향이 없진 않겠지.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19분.
“차라리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세요. 제가 들어줄 거란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글쎄.”
성현제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글쎄는 뭐가 글쎄야. 기억은 그대로라며. 난 성현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한유진 군 주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텐데.”
“뭐, 성현제 씨만 버리자고 하긴 하겠지만요. 그래도 절 노리는 초월자도 있긴 있을 거고-.”
“부서져 가고 있으니.”
금색 눈이 다시금 나를 담았다. 송 실장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초승달은 이미 알고 있어. 시스템이 적용된다면, 저들에게도 알려지겠지. 방해꾼은 적은 편이 좋을 터이니.”
“…무슨 소립니까 그게.”
“한유진 군의 몸 상태.”
마른침이 꼴깍 삼켜졌다. 송 실장님이 시선을 피했다. 유현이와 예림이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성체에게는 근원의 극히 일부가 들어가 있지.”
극히 작은 근원의 조각이. 그 비율이 크면 태생 S급으로 태어나기도 하며 유현이처럼 인간이 아닌 어느 한 속상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근원.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는 영혼과 같은 핵.”
성현제의 목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한유진 군, 자기 자신의 본질 자체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만.”
대답은 빨랐다. 너무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현제가 웃었다.
“내 감정을 되찾는 조건은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네.”
“…예?”
“정확히는 애초에 감정을 묻는 일 자체를 하지 않았을 조건이지.”
“그게, 무슨.”
“내가 죽기 전, 한유진 군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였을 경우.”
심장이 덜컥였다.
“한유진 군에게 기대어 희망을 품으려면 우선은 한유진 군이 무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스스로의 이상상태마저 숨긴다면, 의지하기란 힘들지.”
“…형, 저게 무슨 말이야.”
유현이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아왔다. 나를 바라봐오는 두 눈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진 거 아니었어?”
“괜찮아. 나는.”
“형!”
“전에 분명 수명도 늘어났다고 했었고…….”
시스템 연결을 끊었을 때의 감각은 단순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르신도 별말 없으셨잖아.
“그래, 이상이 있었으면 어르신께서 또 야단치셨겠지. 그렇잖아?”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어갔다. 공기 중의 마나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안정적으로 스며들고 너르고 고르게 퍼진다.
[허니! 얼마 안 남았어요! 이제 메시지 전송도 어렵지 않고요, 최우선으로 허니부터 관리해 줄게요!]신입의 메시지에 이어.
[스스로를 아끼렴.]또 다른 초월자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초승달일 것이다. 직후 옆에서.
“어? 메시지 창 떴어요.”
예림이가 말했다. 유현이와 문현아 또한 메시지 창을 바라보고 있다. 막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메시지가 이어진다.
[너는 금이 가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