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64
763화 검은 나비 (1)
“저 자고 있는데요?”
“이렇게 잘 돌아다니고 있잖아. 일단 초승달은 어때? 널 감시할 수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박하율이 으음, 하고 눈을 감고 끄덕끄덕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예 이 세계에 관여하질 않고 있어요.”
“그래? 확실해?”
“네. 저 이 세계 주인이라니까요! 힘도 더 강해졌고 더 강해지고 있어서 모를 수가 없어요. 더 센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거든요~.”
더 센 사람들이라니. 설마 벌써 초월자의 종속자가 아닌 화신까지 도착한 건 아니겠지.
“내가 기절하고 얼마나 지났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냐?”
“어, 두어 시간쯤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싸우고 있는 거 같아요.”
두어 시간이라니. 급히 상태창을 열어 키워드 적용된 이름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다들 무사…….
“뭐야.”
[박하율(?)]박하율의 이름이 감화 완료 대상자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뭐지. 키워드를 사용한 적 있지만 분명 거부당했었는데. 하율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멀건 얼굴이 방싯방싯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낯짝이었다.
‘물어볼 수는 없고.’
혹시 박하율에게 먼저 적용된 양육자 스킬류가 취소되어서 뒤늦게 내 키워드가 적용되기라도 한 건가? 내가 잠꼬대로 사랑한단 소리라도 했나? 이게 잘된 일인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하율아, 혹시 내가 부모님 같은 양육자로 느껴진 적이 있냐? 갑자기 말이야.”
“있죠! 형이 저 구하러 나타났을 때요!”
“그러냐.”
그럼 감정 변화는 없었을 거고. 노아 씨 때문에 간간히 상태창을 확인했을 땐 안 보였던 거 같은데. 노아 씨 이름이 앞쪽에 있어서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것일 수도 있지만.
‘등급이 물음표네.’
S급은 가볍게 넘겠지. 더 강해졌다니 L급쯤 될까. 어쩔 수 없이 좋지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L급의 두 배. 박하율이 공을 던져 주길 기다리는 개처럼 나를 바라봐왔다.
“…너는 진짜.”
“왜요?”
제가 또 뭐 잘못했어요? 하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에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유현이를 비롯한 내 주위 S급들 죽이겠다고 설칠 때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사람은 다면적이고 변하기도 한단 소리를 널 통해서 느끼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다.”
“전 연예계 출신이잖아요. 당연하죠~.”
박하율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뭐라는 거야 진짜. 마지막 보은을 적용받는다면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양심 이전에 박하율이 사라지면 이 세계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아, 그러고 보니.
“사육소 쪽 전쟁터 됐을 텐데 넌 괜찮냐?”
“잠들어 있잖아요. 여긴 제 꿈인 셈인데 제가 잠들기까지 했는데 누가 건드리겠어요? 자고 있을 땐 초승달의 지배력도 안 통해요.”
꿈에서 꿈을 꾸니 이중으로 보호받는다는 건가. 아무튼 안전하다는 소리였다. 박하율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였고. 덕분에 차라리 마음 편했다. 근데 마지막 보은 상대가 자연사해도 적용이 되나?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그냥 혹시나 싶어서.
“하율아, 지금 네 힘이 두 배가 되면 초월자보다도 강해질까?”
“음, 그건 아닐걸요? 초월자 엄청 강하댔잖아요. 저도 초승달 때문에 맛보기로 느껴 봤는데요, 어림없을 거 같았어요. 한 열 배?”
“…그 정도냐.”
그래도 초월자의 씨앗인데. 물론 씨앗과 다 자란 나무의 차이는 어마어마하지만 열 배라니. 아니면 초승달이 유독 강한 걸까. 몇 안 되는 아주 오래된 초월자이니 그런 걸지도.
“막 저보다 더 큰 세계 같고 그렇던데요.”
“뭐, 자기 세상을 삼키고 초월자가 된 자들도 있긴 하지.”
보은 스킬은 일단 접어 두었다. 솔직히 박하율이 아니라 초화운 놈 상대라 해도 쓰기 꺼림칙한 스킬이긴 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죽은 사람의 힘과 기억을 받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하율이 너 잠든 채로는 외부에 영향을 조금도 줄 수 없는 거냐?”
“안 될 거 같은데, 제가 제 능력을 잘 몰라서 모르겠어요.”
“당당하게도 말한다. 그래도 네가 만든 세계잖아. 자면서도 들여다보는 건 할 수 있지 않냐. 한번 느껴 봐.”
“음… 으음… 으으으음!”
박하율이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힘을 주었다. 어설픈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S급들에 비하면 걸음마나 겨우 하는 수준이었다.
“…너한테 스킬 쓸 테니까 거부하지 말고 받아라.”
선생님 스킬 대상자 등급이 오르긴 했어도 박하율에게 통할까 싶었는데, 현실이 아니라서인지 적용되었다. 감각을 공유해 박하율의 서툰 마력을 천천히 이끌어 주었다.
“너 정도 되면 스킬의 제한을 벗어나는 게 가능해. 네 세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뭐든지요?”
“우선은 네 세계를 바라보자. 흐르고 있는 마나와 그 속의 움직임들. 깨어 있을 때 비슷한 거 해 본 적 있지? 자고 있을 때도 같아.”
눈이 닿지 않아도 세상 그 자체를 감지할 수 있다. 박하율이 보이는 거 같다며 끄덕거렸다.
“화면 만들까요?”
“그래. 내가 있는 곳부터.”
창이 나타났다. 소파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아래 엎드려 있는 피스와, 익숙한 거실. 예전 집이었다.
‘유현아.’
동생은 거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군림자의 검을 한 손에 들었다. 언제든지 빼들 수 있게끔.
“이렇게 보니까요, 아까 본 형 동생이랑 다르긴 하네요. 형도 달랐지만요. 나이 말고요, 분위기가요.”
무표정에 가깝게 가라앉은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형, 깨워 줄까요? 그 정도는 될 거 같은데.”
“…아니. 지금 깨어나면 유현이가 다시 기절시킬 거야. 창만 켜 놔 줘.”
예림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피스는 있었다. 만약 집 근처로 종속자가 접근한다면 나를 피스에게 맡겨 두고 유현이 혼자 나가 싸우려 들 것이다. 그때 깨어나는 편이 나았다. 지금은 다른 수를 쓸 겨를도 없이 바로 제압당하겠지. 그럴 표정이고.
“다른 사람들은 어때? 예림이는?”
“잠시만요.”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법 굵은 빗줄기에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예림이는 물론이고 성현제에게도 물은 도움이 되는 속성이다.
콰과과과-!
도로를 길게 긁으며 커다란 덩치가 밀려 나갔다. 아스팔트 더미에서 고개를 드는 머리는 인간과 흡사했다. 그 앞으로 창이 날아든다. 종속자의 검이 문현아의 창을 튕겨내는 동시에 그자의 발아래 고인 빗물이 매끄럽게 얼어붙었다. 종속자의 균형이 일순 아주 작게 흐트러진다. 튕겨나간 창이 그대로 빙그르 돌며 창대가 갑주로 감싸인 가슴을 크게 쳤다.
[좋아, 이번엔 잘 맞췄어!]현아 씨가 외쳤다. 칼날 같은 얼음 조각들에게 둘러싸인 예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주위를 살핀다.
[아저씨 없으니까 힘들긴 하다.] [그래도 잘했는걸!]예림이의 중얼거림에 산호가 박수를 짝짝 쳤다. 빗물을 끌어들이며 예림이가 작게 웃었다.
[선생님 스킬, 엄청 편했는데.]물러나는 종속자의 경로를 따라 얼음 칼날이 쏟아졌다. 동시에 문현아가 뒤쫓는다. 얼음날이 아슬아슬하게 문현아의 팔을 스쳤다. 예림이의 미간 사이에 골이 생겼다. 선생님 스킬의 도움을 받을 때처럼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잘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많이 겪어 봤으니까.’
스킬이 없어도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고 상대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맞출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 내가 없이도 괜찮았다. 뿌듯하면서도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안개와 얼음 조각들로 방어도 잘하고 있고. 탄식 범위도 더 넓어졌네.’
콰르릉! 멀찍이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제였다. 계속 마석 주워 먹고 있을 거 생각하면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렇다고 종속자에게 당해서도 안 되니.
“하율아.”
박하율이 재빨리 화면을 하나 더 만들어 냈다. 좀 기특해지려고 하네. 화면 안에 성현제의 모습이 비춰진다.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세성 길드장도 힘든가 봐요.”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찢어진 옷자락. 지금은 멀쩡하지만 팔을 크게 다쳤었는지 핏자국이 아직 짙게 남아 있었다. 저 정도 흔적이면 거의… 팔이 잘려 나갔을 텐데.
“얼굴은 아직 멀쩡하지만.”
표정만큼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사슬이 그의 주위를 천천히 맴돈다. 사방은 폐허였다. 익숙해야 할 서울 한복판이건만 어디인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약간 떨어진 곳에 송 실장님의 모습도 보였다. 역시나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부러진 검이 그의 발치에 꽂혀 있다. 그 옆으로 뜯겨 나간 파충류의 팔뚝이 나뒹군다.
[역시 만만치 않구나.]새롭게 나타난 종속자가 성현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 없이 금색 눈이 그를 향했다. 사람이 아닌 가볍게 쓰고 말 물건 대하듯 건조한 시선이다. 사실상 성현제에게는 마석 이상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터였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종속자가 길게 찢어진 입을 벌린다. 사슬을 휘감은 전류가 강해졌다. 이어 빛이 터졌다.
‘마나 소모가 심할 텐데.’
포션을 잔뜩 챙겼다고 해도. 그나마 비가 내려서 예림이는 괜찮겠지만 성현제는… 아.
“하율아!”
“네?”
“너 말이야, 날씨 조절 못 하냐?”
“날씨요? 형, 제가 무슨 신… 비슷한 거긴 한데.”
“이 세계는 네가 만든 거잖아. 거기에 지금 먹구름 잔뜩 꼈고, 자연적으로도 번개 칠 만한 날씨인데.”
“형, 번개 좋아하세요?”
“…싫어하진 않지만 지금 번개 치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겠냐!”
예림이가 비나 강, 바다에서 마나 소모가 적어지는 것처럼 다른 속성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많이 불면 그와 관련된 스킬을 쓰기 좋고 큰불이 나면 역시나 화 속성 스킬 쓰기 좋고. 그리고 성현제는 전류다. 인공적인 전기도 쓸 수 있겠지만 저 상황에 전선이 무사하긴 힘들었다. 출력도 산업용이라 해봤자 그리 강하진 않았다. 하지만 번개는 다르다. 낙뢰의 전류가 분명 어마어마하다고 했었지.
“어떻게 안 될까? 그냥 잠꼬대 정도잖냐.”
“형이 도와주면 될 거 같기도 한데요… 이미 구름 많고 비도 내리니까요. 근데 벼락은 어떻게 해야 치는 거예요?”
“검색해 봐. 정보 찾는 것도 가능할걸.”
정보 또한 우리 세상에서 받아 온 이 세계의 일부니까. 박하율이 집중해야 한다면서 바닥에 카펫을 깔고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30초 후 불편하다며 엎어진다.
“그냥 의자에 앉아. 옳지, 잘한다, 잘한다.”
박수도 짝짝 쳐줬다. 내 칭찬에 박하율이 더욱 집중했다. 녀석의 마나가 일정한 흐름을 타고 움직인다. 화면 너머 하늘을 채운 구름이 점차 짙어져간다. 구물구물 먹구름이 뭉치고 또 뭉치다가.
콰과광!
빛을 토해낸다. 근처로 떨어지는 낙뢰에 성현제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물이 스미는 금안이 깜박이다가.
“…저 인간 정말.”
화면을 똑바로 바라봐왔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설마 진짜 눈치챈 건가. 우연이겠지 싶었지만 더럽게 눈치 빠른 세성 길드장 씨는 이내 창대까지 금속으로 이루어진 창을 바닥에 세로로 꽂았다. 송 실장님에게 물러나라고 수신호를 보낸다.
“하율아, 저기다.”
저 창을 향해서. 성현제와 싸우던 종속자가 가시 털을 부풀린다. 놈의 주위로 땅이 검붉게 녹아내렸다. 성현제는 고요히 서 있었다. 박하율이 마나를 움직인다. 검은 구름이 꿈틀거리고 종속자가 눅진한 바닥을 박차는 순간.
콰르르릉!
엄청난 번개가 쳤다. 창을 향해 내리꽂히는 낙뢰. 동시에 성현제의 손이 전류의 기둥을 향해 파고들고 화면 전체가 빛으로 뒤덮였다. 차르르, 금속성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며 새하얗던 사방이 다시 분간이 간다.
“우와, 완전히 날아갔어요!”
수백 개의 폭탄이라도 터진 듯 주위가 깨끗이 쓸려 나갔다. 너덜너덜해져 숨이 끊기기 직전인 종속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서 성현제만이 유일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좋아. 이대로 보조해 줘. 나 없을 때도 말이야. 유현이는 아직 그대로인가.”
“근데 형. 번개 치느라 제 세계를 자세히 확인했는데요. 이런 게 있었어요.”
박하율이 내게 자기가 발견해 준 것을 말해 주었다.
“그건…….”
그래, 그랬었지. 이 세상은. 박하율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율아, 한 가지만 더 부탁하자.”
지은 죄 갚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 주렴. 그럼 내가 형 감량이나 특별사면도 생각해 보마.
* * *
하늘이 울렸다. 이번에는 초월자의 영향이 아니었다. 검은 구름 사이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소리가 연신 낮게 들려온다. 그 사이로 빛이 언뜻 언뜻 보인다.
“어떻게 된 겁니까.”
몸을 피했던 송태원이 성현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 또한 조금 전의 벼락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젖어 피부에 달라붙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성현제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명밖에 더 있을까.”
“…설마 한유진 씨입니까. 하지만 무슨 수로.”
“글쎄. 한유진 군이니.”
놀랍지만 놀라울 것 없는 일이었다. 한유진과 관련된 기억에는 그런 것들이 가득했으니. 성현제의 말에 송태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또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덕분에 편해지겠어. 상냥도 하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빗줄기도 찾아오는 자들도. 새롭게 이 세계를 향하는 길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