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70
769화 표류 (1)
“네 목적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고.”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인형술사는 숨기고 있는 게 많은 듯했다. 난간 위에 내려선 인형술사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것 봐라, 취조를 하려 드네.”
“애초에 왜 말을 하질 않은 건데? 시그마를 보호하기 위한 게 사실이라면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잖아. 적어도 나는 도와주려 했을 거야.”
성현제는 경계할 수도 있다 싶지만 나는 아니지 않냐고. 예림이와 현아 씨도 마찬가지고 송 실장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버릴 성격이 아니다.
“나를 죽일 생각이었나.”
그때 성현제가 불쑥 말했다.
“한유진 군이 선수 치지 않았다면, 말이지.”
“갑자기 무슨 소리래.”
인형술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성현제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기, 성현제 씨. 인형술사 씨는 저한테 댁 지켜 달라는 조건으로 계약도 했었습니다만. 지금도 시그마를 보호하기 위해선 그쪽이 무사해야 한다잖아요.”
“정원사의 종속자를 묶어 두기 위해 나를 미끼로 삼았으니.”
“…유현이가 성현제 씨를 죽이려 들긴 한 모양이지만요. 하지만 그때도 보호해 준 거 아니었습니까.”
죽이려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잖아.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침묵한 성현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원사의 종속자가 쫓던 것은 시그마. 나와 달리 잠들어 있다 하니 위치만 찾아내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겠지. 그럼에도 인형술사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시그마에 대한 보호가 완벽하다는 뜻일 거라네.”
“어… 그렇겠죠?”
“동일한 존재 탓에 잠든 것이라면, 내가 사망하는 순간 시그마가 깨어나겠지. 동시에 위치가 노출되는 건가. 시그마는, 자신의 인형과 달리 성장하지 못한 모양이로군. 정원사의 종속자보다 약한 상태.”
그, 그렇겠네? 성현제의 말에 인형술사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애의 시간은 내내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너희들과 만났던 그때 그대로야.”
그때 그대로. SS급이라 하나 등급 체계의 차이가 있어 우리 세상의 S급보다 조금 강한 정도였다. 회귀 전의 유현이에 비하면… 확실히 약할 것이다.
“하니 나를 미끼로 사용해 정원사의 종속자를 처리 후 시그마를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었겠지. 미끼로 쓰기 위해선 내가 죽어야만 시그마의 위치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을 테고. 황림이 시그마 곁에 있나.”
“황림이요?”
인형술사가 나타난 이후로 내내 안 보이긴 했는데. 성현제의 설명에 인형술사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쟤는 저언혀 안 귀여워. 징그럽지 않냐.”
“진짜 황림이 시그마와 함께 있는 거 맞아?”
내 물음에 인형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 노출되면 바로 튀어야 하니까. 새로운 대피소 마련해서 황림에게 가르쳐 줬어. 누가 나타나든 적어도 한 번은 무사히 피할 수 있도록.”
그럼 결국은.
“내가 세성 길드장을 안 죽였으면.”
“내가 죽였겠지. 정원사의 종속자도 끌어들이고 다른 초월자들 이목도 쟤한테 쏟아지게 하고. 딱 좋잖아.”
일순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나한테는 성현제 지켜야 한다더니!”
멱살을 잡으려 내민 손을 인형술사가 가볍게 피했다. 난간 위에서 빙그르 춤추듯 맴을 돈다.
“한 번 이상 죽으면 곤란하니까. 너무 일찍 죽어서도 안 되고. 그래도 계약은 성공한 걸로 쳐줬잖아?”
“성현제가 잘못되면 시그마도 위험하다면서!”
“지금은 맞아.”
지금은이라고? 아, 시그마가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받아 우리 세상에 합류하게 되면 상관없어진다는 건가?
“시그마가 분리되기 전에 저 인간이 잡혀갈 수도 있잖아!”
“그 정돈 버티겠지. 진정하고 얼굴 펴라, 아가야. 이래서 말 안 한 거야. 눈치 빠른 녀석이 있어서 들통났지만.”
인형술사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진정? 얼굴을 펴? 그게 말이냐.
“성현제가 너한테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엄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겠단 소릴 뻔뻔하게도─!”
“그야 나한텐 시그마가 제일 중요하니까.”
탁, 탁, 나를 피한 발걸음이 경쾌하게 난간을 울린다. 장난이라도 치듯 무게감 없는 동작 사이로 긴 머리칼이 흔들렸다.
“나머지야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람. 난 내게 소중한 것만 지키면 돼.”
“아니, 그래도!”
“관심도 없는 사람 챙기다가 우리 애 잃으면?”
가늘게 웃음기를 머금은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게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너는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냐고. 타인을 챙기다 소중한 것을 잃어도 괜찮으냐고.
유현이가 생각났다. 가슴 안쪽으로 서리가 맺힌 듯했다.
“…그래도.”
“야. 이 어린 것아. 나는 너와 달라.”
인형술사의 손이 어느새 내 머리를 누르듯 매만졌다. 그 손을 떨쳐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도 저것도 마찬가지지.”
인형술사가 성현제와 송태원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선과 악이니 사회적 약속이며 보편적 가치 따위를 떠나서 말이야. 제각각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있지. 난 세상 다 망하고 주위 모든 것을 제물로 삼을지라도 우리 애부터 챙기기로 했고~. 그게 나야.”
“…나도, 내 동생을.”
“난 그래도 잘 살겠지. 시그마도 괜찮을 거고. 하지만 넌 아니잖아.”
나는.
“네가 나처럼 굴면 죄책감에 깔려 죽을걸? 그럼 네 동생도 같이 황천길 가는 거고.”
…그럴까. 나를 우선시하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또 이게 정말 옳은 걸까 의심이 들었다.
“그쪽이 너무 당당하니까, 내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지잖아. 아니, 나도 유현이를 정말로 아끼는데…….”
“원래 남과 부딪치면 흔들리는 거란다.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고 뛰어가던 사람도 한 번쯤은 진짜 맞나 의심하는 법이고.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게 더 이상한 거지. 주위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다는 소리잖아.”
살아가면서 계속 충돌하고 고민하며 흔들리고 바뀌어 가는 게 보통이긴 하겠지만.
“나한테 비하면 이제 막 걸음마나 떼는 수준의 어린애긴 하지만 나름 너로서 살아온 시간이 있잖아. 흔들릴 순 있어도 휩쓸리지 마.”
“꽤나 생각해 주시네요.”
“그야 네가 아 이제라도 내 동생만 챙겨야겠다! 하고 성현제 버리려 들면 곤란하니까. 정원사의 종속자가 네 동생인 마당에는 더더욱.”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거 아니냐. 인형술사를 향한 시선을 돌려 성현제와 송 실장님을 바라보았다. 여기 없는 사람들도 떠올렸다. 모두 다 다르지. 원하는 것도, 그것을 위한 방식도.
“어쨌든 성현제 씨 건드릴 생각 마시죠.”
“이미 할 거 다 했어.”
미끼로 쓰겠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시그마를 지키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말했으니까. 적이 같으니 일단은 함께 간다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되지 싶었다.
“제가 동생을 정원사로부터 되찾는다면 시그마도 안전해지겠지요. 종속자 계약을 해지할 방법이 없습니까?”
“세 가지 정도 있지. 상호 동의하의 계약 해제, 계약자 중 한쪽의 사망, 더욱 강력한 힘에 의한 무효화. 종속 계약에 따라서는 마스터 쪽의 일방적인 해제도 가능해.”
그러니까 정원사와 유현이가 좋게 서로 관두자고 하거나 정원사를 죽여 버리거나, 잠깐만.
“유현이는… 살아 있는 상태라고 하기 힘들, 텐데요.”
“음, 네 동생의 경우엔 사망 후의 육신까지 묶여 있는 것일지도. 보통은 죽으면 끝나지만 특이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정원사는 얼마나 강합니까?”
“세 번째 방법은 힘들 정도지.”
하얀새와 엮여 있다는 말을 듣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그렇구나.
“손꼽히게 오래된 초월자 중 하나야. 이름 그대로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지. 목표도 어찌 보면 초승달과 비슷해. 창조의 힘을 손에 넣길 바라거든.”
“근원의 힘 말이군요.”
“다만 근원을 없앨 생각은 아닌 모양이더라. 스스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해. 근원 자체는 손대기 힘드니까 유사 근원인 성현제와 그와 연결되었고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시그마를 노리는 거지.”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하얀새가 정원사와 손잡은 걸까요. 정 안 되면 초승달 대신 정원사가 성현제를 차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서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정원사로서도 나쁜 계약은 아니었을 거야. 설사 월식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송 실장님이 희미하게 반응했다.
“달을 삼킨다 해도 그 남은 것은 정원사의 소유가 되었을 테니까. 그걸로 연구를 해볼 수 있었겠지. 월식이 실패하면 시그마와 성현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 계약에 제약 또한 있었던 모양이군.”
성현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송 실장님을 향했다.
“월식이 실패할 때까지 나에 대해 발설하거나 손댈 수 없는 등의. 회귀 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모양이니.”
“확실히 황림은 회귀 후에 정원사의 손에 들어갔을 거야.”
인형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성현제에 대해 너무 빨리 알려지… 응?
“근데 하얀새로서는 차라리 빨리 초승달의 계획에 대해 들키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새로 근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초월자들도 많았을 테고, 애초에 미래를 본다고 했으니 미리 훼방 놓는 것도 쉬웠을 거고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성현제가 만월에 가까워지도록 손 놓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 초승달을 상대하기 힘들었다기엔 혼자도 아니었잖아. 정원사라는 조력자도 있었고, 어르신도 알았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아예 최초의 성현제를 빼돌릴 수도 있었잖아. 내 말에 인형술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미래예지종이잖아. 막으려 들었다가 더 큰일이 터지는 미래라도 봤나 보지.”
“…그럴까요.”
“미래 보는 애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려 들면 안 된다더라.”
하얀새는 진짜 뭘 보고 이러는 건지. 아무튼 결론은.
“제가 동생을 되찾으려면 정원사를 죽이는 방법뿐이겠군요.”
“교환 또한 가능하지 않나.”
“성현제 씨가 절 위해서 정원사에게 가주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유사 근원을 내어줄 테니 내 동생을 돌려 줘, 하면 정원사도 어 그래 하겠지. 어쩌면 참 좋은 거래네요 하면서 덤도 얹어 줄지도 모른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시고요.”
“이곳에 있는 넷 모두.”
…넷 모두? 성현제가 말을 이었다.
“종속자를 무사히 제압한다면, 쓸 수 없게 된 종속자보다야 또 다른 초월자, 월식, 그리고 양육자가 더욱 탐나겠지. 나야 말할 것도 없고.”
“정원사가 월식도 회수하고 싶어 하긴 해. 월식을 심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해도 자아가 멀쩡한 상태로는 쉽게 손댈 수 없거든. 양육자도 나름 괜찮은 실험 대상일 테고.”
“그렇다면 제가 만나 보겠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송 실장님이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요.
“무슨 생각을 하셨든지 안 돼요!”
“박예림 헌터가 저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한유현 헌터를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정원사가 연락해 오겠죠. 뭐냐, 신입이 종속자 말고 화신으로 직접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고 했어요. 종속자를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채터박스처럼 자기 힘 깎아서 나타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혹은 한유현 헌터를 인질로 삼겠지요.”
송 실장님이 차분하게 말했다.
“한유진 씨는 버티기 힘들 겁니다. 단순한 시신이 아닌, 움직이는 것을 본 이상은.”
“…….”
“또한 현재의 한유현 헌터의 행동 방식을 본다면 스스로를 인질 삼아 성현제 헌터를 포기하기를 요구해 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든 막을 거예요.”
“그리고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송 실장님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향했다. 검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한유진 씨. 저는 저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야 합니다.”
“…송 실장님.”
“저를… 아껴 주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감싸 지켜 주는 것만이 그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던전에서 저를 잃고 기억하는 이들을 보고, 이곳에서 저를 보호하는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나아가 지키고 스스로 해내는 기쁨. 보호하는 것도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지만 보호받는 것 또한 사람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안 됩니다.”
담담한 목소리임에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다른 무엇도 아닌 송 실장님 스스로에 대해 알기 위한 일이라면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섣부르게 교환 같은 거 하시진 말고요. 정원사와 대화부터 해보고요. 아시겠죠?”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유현이를 붙잡고 정원사와 접촉하고. 그리고, 다른 종속자들과 초승달도 남아있지. 잔잔하게 펼쳐진 물을 보았다. 우선 예림이부터 찾아야겠네.
“현아 씨가 예림이와 함께 있을 거예요. …이곳 어딘가에요.”
물이 대체 어디까지 차오른 거지. 이렇게나 많은 물이 밀려들었음에도 건물은 비교적 멀쩡했다. 역시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이 물, 스킬도 마나도 흡수해. 씻어 낸다고 해야 하나.”
“네. 휩쓸렸을 때 느꼈어요.”
“거리가 떨어졌을 때도 말이야. 그래서 나도 나 혼자만 이동 가능하다만. 그 마수도 오래는 못 날걸? 이 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형술사가 성현제와 송 실장님을 바라보았다. 이동 스킬이 없지. 둘 다. 물론 나도 없었다.
“…헤엄치는 것보단 뗏목이라도 만드는 편이 낫겠죠. 차는 있는데 배가 없네.”
전투기도 전에 꺼내어 써 버렸고. 결국 송 실장님을 도와 자재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현제도 협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