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73
772화 물의 성벽
예림이는 아직 눈뜰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귓가에 희미하게 어린 정령의 기운이 보였다. 예림이를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딱 달라붙어 반짝거리고 있다. 정 안 되면 나도 잠들어서 데리러 가면 되긴 한데.
“시그마를 데리고 오면 유현이는 성현제 씨가 아니라 시그마를 바로 노릴 텐데요.”
“그러니까 저 애가 중요한 거야. 네 말대로라면 네 동생이 아까보다 더 강해질 거란 소리잖아.”
“…어쩌면 두 배쯤?”
악몽 던전에서 나는 던전 속의 나와 스킬을 공유했다. 유현이도 그게 가능하다면 버프 중첩을 배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종속자들까지 합세하면 저 녀석을 지키기 힘들어져.”
“그건 시그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앤 얌전히 자고 있고, 쟨 어디로 튈지 모르지.”
아… 그건 그랬다. 나와 인형술사와 송 실장님과 현아 씨가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을 쳐다보았다. 성현제가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다. 응,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인간이야.
“성현제가 한 번 이상 죽을 확률이 높다면 차라리 시그마를 데리고 와 보호하는 편이 나아. 네 동생이야 시그마가 여전히 다른 공간에 감추어져 있는 줄 알 테니까 들통나기 전까진 성현제를 쫓을 테고.”
“그럼 예림이 쪽은 시그마를 보호하고, 성현제 씨 쪽은 유현이를 유인하면서 다른 종속자들을 해치우면 되겠군요. 성현제 씨가 있으면 종속자들을 끌어들이기도 좋을 테고요.”
대략적인 작전을 짜고 팀을 나누었다.
“문현아 씨는 우리 애랑 같이 있어야 해. 황림은 데리고 가든지.”
“보트 가라앉을 거 같은데요.”
성현제 송 실장님에 황림이라니. 셋이 나란히 서면 나는 보이지도 않겠다. 노아 씨가 정말 많이 그리워졌다. 물론 노아 씨도 나한테 비하면… 뭐.
“이것도 저 애가 물을 유지할 수 있을 때의 일이지만. 일어날 때 안 되었냐?”
“제가 잠들어서 확인해 볼게요. 그러니까.”
내 말에 현아 씨가 손바닥을 세워 들어 올렸다. 응, 그 방법밖에 없겠지. 예림이도 아마 저렇게 잠들었지 싶었다.
“안전하고도 안 아프게 잘 해줄게, 이리 대.”
안 아플 리가 있나요. 그리고 이내 기절했다.
* * *
“아저씨!”
“형!”
예림이와 박하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번쩍 눈을 뜨자 눈부신 햇살이 전신을 찔러왔다. 해변의 파도 소리가 쏴아아 밀려들어온다.
“윽, 예림아?”
“계에속 연습했는데요, 못 하겠다고 말하긴 싫은데 이건 진짜 못 하겠어요!”
예림이가 으아아 소리를 치며 말했다.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뜻한 나라 휴양지 같은 풍경이었다.
“못 하는 건 그냥 못 하는 거지 뭐 어떠냐. 초월자의 힘이잖아. 유치원생이 어떻게 금메달리스트만큼 달리겠어.”
“그래도 제가 인어여왕이랑 팽팽하게 싸운 적도 있는걸요.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그러니 유치원생은 되는 거야. 그것도 반에서 제일 잘 뛰는. 평범한 사람은 뒤집기나 겨우 하고 있을걸?”
S급이라고 해도 초월자 앞에서는 걸음마 수준일 테니까. 살아온 세월만 봐도 그렇고. 예림이가 파도 위에 동동 뜬 채 두 팔을 파닥거렸다. 그래도 분하긴 분한 모양이었다. 첨벙첨벙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형, 저 봤어요.”
예림이가 물장구를 치는 사이 박하율이 슬금 다가와서 속삭였다.
“형 동생이요.”
“어, 응. 그게. 예림아.”
“네, 아저씨.”
“유현이가 돌아왔어.”
“네?”
“회귀 전의 내 동생이.”
예림이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현아 씨 앞에서 감정을 한차례 털어 낸 덕인지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진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말을 듣던 예림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까맣게 몰랐어요! 그럼 아저씨는, 아저씨는…….”
“난 괜찮아. 오히려 이제야 내가 바라던 대로 동생을 데리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걸.”
“…꼭 그럴 거예요!”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정원사로부터 풀려나면 유현이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지.
“그래서 물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해. 세성길드를 포함해서, 지금만큼은 아니더라도 넓게. 스킬을 흡수하는 힘을 지닌 채로 말이야.”
“세성길드요?”
“응. 미니포털로 들어갈 수 있는 완전 밀폐 된 방이 있다더라고. 산소공급 시스템도 설치해서 일주일 이상 버틸 수 있대.”
수면보다야 수중이 더 안전할 테니까.
“너무 세성길드를 중심으로 하면 티가 나니까 지금 상태에서 적당히, 자연스럽게 줄이면 될 거 같은데 가능할까?”
“으으음, 네. 될 거 같아요. 얼마나 깊이요?”
“세성길드 상층은 남겨 줘. 반쯤 잠기게끔.”
“네. 하율이 오빠, 도와줘!”
예림이가 박하율을 불렀다. 박하율이 응 하고 의자에 앉았다. 둘이 그새 좀 친해진 건가. 하율이 녀석 애들이랑 잘 놀 거 같긴 하지만. 예림이도 파도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주위의 공기가 묵직하게 젖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느려?”
“네가 빠른 거라고. 천천히 해, 천천히.”
“그냥 확! 쏟아부어도 될 거 같은데.”
“악, 넘친다, 넘친다!”
“잡았어! 잠깐, 다시, 다시!”
둘이 잠시간 그러더니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림이가 흐르지 않는 땀을 닦는 척했다.
“아저씨, 줄여 놨어요. 서초 쪽으론 물 빠졌고요, 반포랑 사당 쪽은 수위가 낮아졌어요.”
“잘했어! 스킬 흡수하는 것도 그대로지?”
“네. 이건 제 힘이 아니라 잠든 바다의 힘이랬거든요. 어, 꿈의 세계의 바탕이라 꿈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데, 그게 대충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럼 더욱 강해진 유현이라 해도 섣불리 공격해 오진 못할 것이다.
“다만 멀리 떨어지면 유지하기 힘들어져요.”
“응, 예림이 넌 시그마를 지켜 줘. 유현이가 시그마의 위치를 알게 되면 결국 부딪치게 될 테지만.”
예림이 도움 없이는 맞서기도 힘들 것이다.
“하율아, 유현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코엑스 근처에 있었는데, 물이 빠지고 이동 중이에요. 형 동생 중 버들잎이요. 나비 동생은 가려져서 잘 못 찾겠어요. 다른 종속자들도 가려진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고 그래요.”
“그 나비는, 정원사의 힘이라서 그럴 거야.”
가려진 다른 종속자들도 소속 초월자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자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상대였다.
“너 혹시 나와 시스템 연락은 못 하냐? 내가 다시 관리자 권한을 쓸 수 있게 되었거든.”
“어, 메시지 전달은 되지 않을까요?”
“좋아. 그럼 계속 눈에 띄는 종속자들의 움직임을 메시지로 알려 줘. 예림아, 나가자.”
“또 놀러 오세요, 형!”
박하율이 우리를 깨워 주었다. 눈을 뜨고 얼른 일어났다. 수위는 확실히 낮아져 있었다. 그래도 10층 이상 높이였지만.
– 예림아!
산호가 깨어난 예림이의 뺨을 와락 끌어안았다. 예림이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지금 상태로 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내 말에 인형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성길드로 가자.”
다시 보트에 올라탔다. 현아 씨까지 한 명이 더 늘었지만 다행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노를 저을 것 없이 예림이가 파도를 일으켜 순식간에 세성길드 앞으로 밀어 주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한때 신세도 졌었는데.”
“한유진 군이 폭파시키기도 했었지.”
“기억도 날려 먹으셨나 그쪽이 터뜨린 거잖습니까.”
나는 어쩌다 휘말린 무고한 시민이었지. 세성 길드의 옥상 정원 중 하나로 올라갔다. 예전에 방문한 메인 정원이 아닌 뒤쪽에 가려진 상대적으로 작은 테라스였다. 그래도 웬만한 정원 크기는 되었지만. 직원들 휴식용인지 테이블과 의자에 자판기도 있었다. 오, 자판기 공짜다.
“물에 빠졌는데도 멀쩡하네.”
평범한 물이 아니라서인가. 아니면 꿈을 바탕으로 한 물건이라서일지도. 혹은 둘 다거나. 음료수는 물론이고 이것저것 들어간 멀티 자판기도 있었다. 컵라면이랑 컵밥도 있잖아. 도담에도 이런 거 하나 설치할까. 간식비 제한은 없지만 공짜 자판기는 느낌이 다르지.
“문현아 씨.”
인형술사가 문현아를 바라보았다. 현아 씨가 여전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우선은 시그마를 마중 나가 데리고 와 주십시오. 그게 시작입니다.”
“현아 씨에게 해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죠?”
얼른 물었다. 시그마도 무사하길 바라지만 현아 씨한테도 아무 문제 없어야지.
“당연히 없어. 우리 애 자리 잡게 해줄 보호자가 잘못되어서야 안 되잖아.”
“저기, 인형술사 양반. 그 보호자 역할이라는 게 정확히 뭔데?”
“말 그대로야. 전통적으로 설명하자면 문현아 씨에게 우리 애가 입적한다, 라고 할까.”
…입적? 잠깐만. 보통 이런 상황에서 입적이라고 하면.
‘…결혼?’
반사적으로 현아 씨와 성현제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 아무래도 그거지? 그거 말하는 거 맞겠지? 괜히 내 가슴이 쿵 뛰었다. 겉만 보면 잘 어울리긴 해. 성현제라면 솔직히 반대지만 시그마는… 괜찮을 거고. 두 사람 사이도 좋았잖아.
‘그래도 현아 씨가…….’
기분이 묘했다. 현아 씨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싱숭생숭해졌다. 아니, 현아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도 감히 그런 쪽으론 생각하기 힘들었고, 아무튼, 그. 인형술사의 말을 들은 현아 씨가 진지하게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결혼 같은 거 할 생각은 없지만.”
없지만! 역시.
“그래도 달이만 한 아들은 좀 부담스러운데.”
…예?
“동생도 되나? 엄마 허락도 받아야겠지만 우리 엄마 성현제 얼굴은 좋아하거든. 동생 놈이랑 바꿔도 괜찮을 거 같고.”
아니, 잠깐만요. 왜 아들에 동생이야. 보통은 결혼 쪽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입적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지 후견인도 괜찮아요.”
“그거면 원래도 해줄 생각이었어. 달이가 따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현제한테 맡기긴 불쌍하잖아.”
“귀여워 해줬었네만.”
“그새 애를 괴롭혔었냐.”
현아 씨가 혀를 쯧 차며 말했다. 그, 음.
“세성 길드장과는 가급적 떨어져 있어야 해. 둘 다 무사히 돌아간다면 말이지만. 시그마가 그 세계에 완전히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마주치지도 않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거든.”
인형술사의 말에 송 실장님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감이 떠올랐다. 시그마는 그래도 얌전한 편이지만 송 실장님은 잘 모르시니까. 성현제가 둘이 되어 함께 사고 친다고 생각하니 내 눈앞도 깜깜해졌다. 그럴 거면 송 실장님도 한 명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형술사가 길을 열겠다면서 손끝을 펼쳤다. 가닥가닥의 실이 휘리릭 펼쳐지며 주위의 나무를 쓸어 공간을 만든다. 내 옆에 선 예림이가 내게 작게 속삭여왔다.
“현아 언니가 시그마 씨랑 결혼하는 줄 알았어요.”
“나도야.”
솔직히 이런 상황이면 그거 아니냐고. 혹시 현아 씨 연하로 느껴지는 상대는 귀여워만 하고 연애 대상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건가? 그럼 역시 송 실장님? 아무리 그래도 성현제는 아니겠지. 어쩌면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일을 더 우선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애들 우선이지.
“물의 주인님, 이 주위로 물의 벽을 세워 주겠어? 공간 연결 흔적을 감추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네, 잠시만요.”
물이 얇게 치솟으며 돔 형식이 되어 정원을 감쌌다. 이어 둥글게 입구가 열렸다. 인형술사가 문현아에게 정중히 손짓했다.
“데리고 와 주시죠. 거기 있는 문지기는 무시해도 좋아요. 알아서 뒤따라 나올 겁니다.”
“아, 예. 기분 좀 이상하긴 하네.”
현아 씨가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곤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났다. 두 팔에 이불에 칭칭 휘감긴 시그마를 안아들고서.
“이것 봐, 형님! 진짜 안 변했어.”
들어갈 때와 달리 기분이 좋아 진 현아 씨가 우리를 향해 시그마를 들어 보였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시그마의 머리가 작게 덜렁였다.
“그대로네, 그대로야.”
“진짜 똑같네요! 세성 아저씨랑 같은 듯 다른 그 느낌 그대로예요!”
맞아, 그 느낌. 오랜만이다 정말. 송 실장님에게 다가가 쿡 찌르며 말했다.
“어때요, 겉만 봐도 확실히 다르죠?”
“…잘 모르겠습니다만.”
“깨어나면 진짜 다른데!”
눈떠서 표정 짓는 걸 봐야 하는데 아쉽다. 그럼 송 실장님도 확실히 다른 사람이구나 하실 텐데.
“이 정도면 진이 전용 보모라니까. 저쪽도 얼굴은 같고 말이야.”
아직 열려 있는 문 너머에서 황림도 나타났다. 쟤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될 거 같은데. 일단은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해줬다.
“보고 싶었어, 우리-.”
“오지 마, 달라붙지 마! 너 정원사 쪽 사람이라며!”
“아직은. 그래도 종속자 수준은 아니야. 정원사의 종속자 무시무시하던데? 눈에 꽤 익은 불이기도 했고.”
혹시 하는 시선에 무심코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래, 내 동생이다.
“동생이 둘이야.”
“쌍둥이?”
“쌍둥이겠냐. 둘이지만, 하나지.”
황림에게도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놈은 오 그렇구나 하고 신기해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럼 이제 종속자들 잡으러 가야지.”
그리고 내 동생도. 집에 돌아올 시간이란다, 유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