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76
775화 동생을 찾습니다 (3)
“…유현아.”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조카의 후손을 죽이면 어떡하니.”
“왜- 응……?”
유현이가 멈칫했다.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방금 죽인 뱀의 조상이 네 조카다.”
대충 그럴 것이다. 비늘의 반짝임은 별로 닮지 않았지만 섞이다 보면 변할 수도 있는 거고. 아무튼 저렇게 크고 지능 있는 뱀의 족보를 따라 올라올라가다 보면 르하나히가 나오겠지. 유현이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농담으로 치기엔 내 말이 너무도 진지했다. 대충 사실이고.
“무슨…….”
“유현아, 너는 잘 몰랐겠지만 사실 너한테 조카가 여럿 생겼다. 귀여워.”
애들 한번 봐야 하는데. 자전거에서 내려섰다. 잔불이 타닥타닥 뱀의 비늘을 태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결혼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사실 다들 인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인간은 아니거든.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뭔가 무책임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정말로 어쩌다 보니까였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말이야. 별별 일이 다 있었거든. 우리 집 북적북적해. 그러니까, 여기 사진 같은 것도 있을 텐데.”
당장 찾기는 힘들었다. 휴대폰으로 검색이라도 할까 하다가 인벤토리 속의 그림을 떠올렸다. 명우가 그려 줬던 그림을 꺼냈다.
“너 노아 씨는 모르지? 이때 노아 씨와 리에트가 싸웠었는데. 이 두 사람도 가족이야. 남매. 리에트는 너처럼 태생 S급이고.”
다들 웃고 있었다. 고작해야 몇 달 전의 일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다른 그림들도 꺼내 보았다. 명우가 그려 준 그림에는 아쉽게도 애들은 없었다. 그땐 결이도 태어나기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대신 애들이 그린 그림은 있었다.
“이거 네 조카들이 그린 그림이야. 이게 나고, 그리고 예림이랑. 지금의 너도 있어.”
피스 발바닥도 찍혀 있다. 그걸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잘 살고 있어.”
유현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뭐, 몸뚱이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실인데. 그래도 나는 즐거웠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살고 있었어.”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나비의 날갯짓 사이로 드러난 창백한 얼굴이 무표정하다.
“다만 한 가지.”
단 하나.
“너를 잃어버린 것만 제외한다면.”
아무리 즐겁고 기쁜 일이 가득하다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검게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유현아, 나는 계속 찾고 있었어. 회귀 전에도, 네가 집을 떠난 그 순간부터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시간을 돌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짊어지고 붙들고 있었던 목표.
“그러니 나는 널 데리고 돌아갈 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다. 유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생을 찾아 데리고 갈 것이다. 그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초월자든 근원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어떻게든.
“내가 나를 걱정-.”
“미안해.”
침묵하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나직이 식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형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어.”
“뭐? 아니, 그게 왜 미안해!”
“형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어.”
유현이가 말을 이었다. 나를 향한 눈동자가 유독 어둡게 느껴졌다.
“넌 나를 지켜 줬어. 계속 몰래 보호했잖아!”
“아니. 형을 붙잡고 있었지. 형이 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지.”
“야, 내가 어떻게 널 포기해!”
가족이고 동생이다. 내가 키운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응. 그래서, 기뻤어.”
차가운 입술 위로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형이 계속해서 나를 붙잡으려 드는 것이. 모른 척하고 밀어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어.”
“유현이 너…….”
“형, 지금도 다양한 아이템과 스킬이 있지만 몇 년 후에는 더욱 많아졌다는 거, 형도 알고 있지.”
“그야, 알지만.”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길함이 밀려들었다.
“덕분에 충분히 가능했어. 사실 준비도 해놓았었고.”
“…무슨 준비를.”
“형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준비. 사실 간단했어.”
나를 안전하게…….
“형이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나야. 그러니 나에 대한 기억을 지우면 되었지.”
“…한유현! 너 대체!”
기억을 지운다니, 유현이에 대한 기억을!
“부작용 없이 기억의 일부를 지우는 아이템도 스킬도 있었어. 형의 기억을 없애고 외모도 적당히 바꾸고. 상태창 때문에 이름까지 바꾸진 못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거야. 그리고 던전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는, 적당히 한적한 도시로 보내면.”
그러면. 유현이가 쓰게 웃었다.
“형은 분명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었겠지. 나만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들과 얼마든지 쉽게 어울렸을 테니까. 다들 형을 좋아해 주었을 거야.”
…유현이 말대로였다. 기억을 잃은 불안감은 있었겠지만 나는 아마도 잘 지냈을 것이다. 위험한 짓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못 했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를 향한 시선이 슬프고 아팠다. 목을 조여 왔다.
“형이 나를 잊으면. 그럼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현아.”
“내 실수야.”
동생의 어조가 돌연 단호해졌다.
“형이 이렇게까지 날 찾게 두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분명 준비를 해놓았었다고 말했지. 아이템도 스킬도 있다고. 스킬은 그걸 얻은 사람이 따로 있었겠지만, 아이템은. 유현이 성격에 항상 가지고 다녔을 확률이 높았다.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섰다. 자전거가 내 몸에 부딪쳐 덜걱인다.
“잠깐만, 유현아.”
“…여기까지 와야 할 이유는, 분명 있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괜찮다니 뭐가. 이유는 또 뭐고. 마른침이 삼켜졌다. 유현이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머릿속에서 빨간 불이 켜졌다. SS급인 유현이에게는 제대로 통하지 않겠지만 은신 스킬을 썼다. 동시에 연막탄을 터뜨렸다.
펑!
작은 폭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는다. 길을 달리는 대신 건물 쪽으로 뛰었다. 도로는 경로가 너무 단순하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나를 시선이 정확히 따라왔다. 젠장.
“은신 스킬을 쓰는 몬스터는 흔해.”
그리고 저 유현이라면 SS급 은신 몬스터도 상대해 본 적 있겠지. 건물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유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발을 떼는 즉시 나는 붙잡힐 것이다. 공포 저항 스킬 창이 뜰 만큼 긴장감이 기어올랐다.
“사실은 말해 주지 않으려고 했어.”
“…야. 너.”
“하지만 형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니 선택권을 줄게.”
도망칠 방법 따윈 생각나지 않았다. 애초에 잡히겠거니 온 것이긴 했다. 다만 유현이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
“이제라도 포기하고 돌아가.”
“내가 분명 포기 못 한다고 했다만.”
“이곳에도 나는 있잖아. 그걸 데리고 가.”
“한유현. 나는 너도 찾고 있었어. 너를 찾고 있었다고.”
“힘들다면 기억의 일부만 지워 줄게. 세성 길드장의 기억도. 잊으면 괴롭지 않을 테니까.”
잊으면 편하긴 하겠지. 회귀 전의 유현이도 성현제도 모두 잊고 돌아가면, 그럼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모르면 그만이긴 했다. 막 시간을 되돌렸을 때도 몰랐으니까 괜찮았다. 유현이를 온전하게 되찾은 줄 알았다. 그래서 맘 편하게 이번에는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싶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고작 그런 식으로 끝내 주겠다고? 웃기지 마!”
“형.”
“나는 여기까지 왔어. 널 죽인 그 도마뱀 새끼도, 도마뱀 주인 놈도 전부 밟고서! 그런데 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한유현. 너한텐 그럴 자격 없어.”
네가 내 목표라 해도. 너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유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두리번거릴 틈도 없이 곧장 달렸다. 고작 한 발 내딛자마자.
턱-
팔이 잡혔다. 단숨에 등 뒤로 돌려진다.
“걱정하지 마, 형. 이제 다 끝났어.”
“끝나긴 뭐가!”
“동생은 이미 곁에 있잖아. 돌아가면 평화롭게 살 수 있어. 더는 아무런 문제 없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아니. 끝이야. 시그마와 세성 길드장이 정원사의 손에 들어가면 안전해져. 세상이 위험해지지도 않겠지.”
달래듯 부드러운 어조였다.
“형. 이제 그만 돌아가 쉬어.”
“…싫어.”
작게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비틀어 봤지만 나를 붙잡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지금 상태로는 폭탄을 터뜨려 봤자 소용없을 텐데. 아까와는 달리 날 놓치지 않겠지.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가진 아이템과 스킬을 전부 뒤져 봐도 지금의 유현이에겐 통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기억을 제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상대의 동의 없이는 세심한 조절이 불가능해. 내가 억지로 아이템을 쓴다면 형의 기억 전체가 날아가 버리고 말겠지. 그래도 현재의 나는 형을 잘 돌보겠지만.”
이게 먹힐지 모르겠다만.
“그러니까 형. 협조해 줘.”
“…유현아, 아파.”
뒤틀던 몸짓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좀 놓아줘. 어차피 너한테서 도망칠 방법은 없으니까.”
잡혔던 팔이 풀어졌다. 과장되게 아픈 척을 하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재차 크게 숨을 토해 놓았다.
“나는, 너도 데리고 가고 싶다.”
“미안해, 형.”
“겨우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겨우 이렇게.”
연기할 필요 없이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두 팔을 벌렸다.
“근데 계속 싸우기나 하고. 잠깐 한 번만, 안아나 보자.”
유현이의 어깨가 움찔 희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팔을 잔뜩 뻗어 나보다 훨씬 커진 동생을 끌어안았다.
“우리 유현이.”
자연스럽게 유현이의 등을 토닥였다. 살짝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된다, 통한다. 토닥토닥(B) 상대를 진정시켜 주는 스킬에 이어.
“…형.”
“자장, 자장.”
자장자장(A) 잠재우는 스킬. 상대가 내게 가지는 신뢰와 호감에 효과가 비례해서 예전 유현이에게는 효과 만점이었는데.
비틀. 유현이의 몸이 허물어졌다. 두 눈이 완전히 감기고 나비가 흩어진다.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철렁였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미안.”
유현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박하율이 끌어다 준 바이크를 향해 뛰어내리기 무섭게 유현이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려왔다. 역시 오래는 유지되지 않는구나. 이젠 경계할 테니 걸려들지도 않을 테고.
“형!”
얼른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유현이의 외침이 멀어졌다. 지금은 튀어야 한다.
“하율아! 종속자들 주위에 있냐?”
[네, 형! 많아요!]망했네. 괜히 왔나 봐. 아니지, 유현이의 계획을 몰랐더라면 더 위험했을 것이다. 급히 확성기를 꺼내들고 외쳤다.
“아아, 전 지금 제 발로 갇히려 가는 중입니다! 이미 잡혔어요! F급이에요!”
이미 주인 있어! 건물 옥상 위에서 무언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덤벼들지는 않았다.
“저를 잡은 사람은 정원사 놈의 종속자입니다! 소유권 변경을 원하시면 한유현에게 연락 주세요! 이미 잡힌 F급입니다!”
임자 있음. 효과가 있었는지 덤벼드는 종속자는 없었다. 그래도 빼앗으려 드는 놈 한둘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유현이가 유독 강해서 엄두를 못 내는 걸까. 열심히 외치면서 길을 살폈다. 유현이를 피해서 돌아가야 하는데 일단 서울역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건너갈까. 아예 지하철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지금은 운행 안 할 테고.
[유진이 형, 위요!]박하율의 메시지가 외쳤다. 동시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인간형 종속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이미 잡혔어요!”
“아니라던데?”
날개 인간이 웃었다. 잠깐, 그새 유현이에게 연락을 받은 거야? 비행형 속도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휘익! 바람이 머리를 거칠게 두들겼다. 급히 방향을 꺾었다. 갈고리가 달린 부츠가 내 바로 옆을 헤집고 다시 상승한다.
“착하지.”
가지고 놀고 있네. 지하철역이 저만치 보였다. 다행히 다른 종속자들은 아직 모르는 눈치였지만.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단검을 손에 쥐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내 어깨를 잡아오는 발을 향해 찌르기 스킬을 썼다. 고작해야 D급. 하지만 공격 스킬 두 배의 힘을 더해-.
“따가워!”
…응, 따갑구나. 칼날에 부츠가 찢어지며 단단한 피부를 긁었다. 그것뿐이었다. 하는 수 없네. 붙잡혀 들린 상태에서 폭탄이라도 먹여야지. 당기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바이크를 놓으려는 순간.
콰득!
용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와 날개 인간을 물었다. 날개 인간이 바둥대며 나를 놓는다. 검은 드래곤은 그대로 종속자를 내던지곤 나를 돌아보았다. 이거.
“…리에트?”
– 안녕, 허니! 어디로 갈 거야?
“어, 지하철!”
급히 바이크를 다시 잡고 지하철 입구로 달렸다. 리에트가 인간화하며 나를 쫓아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일단 지하철로 들어서며 물었다. 리에트가 바이크를 가볍게 들어 주었다.
“노아는!”
“응, 다른 곳에 있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종속자들이 뭐 하나 살펴봤지~. 종속자인 척하고. 용종으로 있으니까 속았어!”
…그, 그렇겠네. 회귀 전의 유현이는 리에트를 잘 모르니까 현재의 유현이만 피하면 감쪽같았을 것이다. 지하철 철로로 내려가 다시 바이크에 탔다. 리에트도 뒤에 올랐다.
“자세히 좀 설명해 봐. 어떻게 된 건지.”
“그게~.”
[형!]하율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형이랑 같이 있는 사람 종속자 같은데요?]…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