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병아리반 선생님 (5)
“던전에서 폰카가 안 된다는 게 아쉬워요.”
예림이가 나를 내려놓아 주며 말했다. 폰카는 또 왜. 처음 나타난 SS급 몬스터니 찍어 두고 싶은 건가.
내가 버티지 못할까 봐 천천히 날아온 탓에 다른 넷은 이미 바바르의 등 위에 도착해 있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너른 등판은 흔들림도 거의 없어 진짜 산 중턱에 올라서기라도 한 것 같다.
“정말로 아무 반응이 없네?”
문현아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날파리가 패딩 위에 앉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다고 창으로 대뜸 찌르진 마세요.”
내 말에 문현아가 창을 들어 올리려다 말고 내린다. 하여간 방심을 못 해.
“김성한 씨는 어디에 있어?”
두꺼비 등판이 워낙 넓어 아래를 살펴보기 힘들었다. 예림이가 살짝 떠올라 주위를 살피곤 대답한다.
“활 들고 멀어지는 거 보니 이미 쐈나 봐요.”
“그래? 그럼…….”
좀 부자연스럽더라도 문현아에게 키워드를 적용시켜야 한다.
선생님 스킬은 대상자들의 능력치가 높을수록 부담이 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S급만 다섯이다. 하니 키워드 적용으로 부담을 줄이는 편이 안전할 터다.
“현아 씨, 우리 피스 잘 부탁드려요. 기승수로서의 경험도 없고 던전도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문현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실제로 걱정되긴 했다. 이렇게 빨리 저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걱정 말라고, 애 아빠. 피스가 잘 따라와 주기만 하면 문제없어.”
“말만으로도 듬직하네요.”
일부러 꾸며낸 티가 나는 억지웃음을 짓자 문현아가 예상대로 못마땅한 얼굴을 한다.
“불안하면 불안하다고 대놓고 말해. 하여간 형님은 나만 유독 못미더워 한다니까.”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요?”
멋쩍어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불안하긴 불안합니다. 하지만 현아 씨가 못미더워서는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든든하고, 또 고맙죠. 던전 들어오기 전에 걱정도 꽤 들었었거든요. 그렇잖아요, 죄다 저로서는 상대도 안 되는 사람들뿐이니까요.”
공포 저항 없는 평범한 스탯 F라면 지금쯤 스트레스로 위경련쯤은 왔을지도.
“해연 길드 쪽이야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니 안심할 수 있었지만 다른 두 분은 제 주제에 괜찮을까 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아 씨가 생각보다 훨씬 친절하시고 제 의견도 잘 받아 주셔서 금방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무심코 너무 편히 대해서 혹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에이, 불쾌할 것까지야 있나. 편하게 대해. 괜찮아.”
웃으면서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흐트러뜨려 놓는다. 회귀 전까지 치면 내가 연상인데.
“정말로 고마우면 그리폰이나 자주 빌려주든가. 내가 최상급 기승수 구하기 전까지 전용으로 해 주는 건 어때?”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대신 제 마음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문현아 씨.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마음만이라니 좀 섭섭한데. 그래도 형님이니 봐준다.”
그러더니 조금 묘한 표정을 짓는다.
“형님이 나한테 핀잔 던지는 거, 의외로 기분 나쁘진 않았어. 선배님 생각나서 그런가? 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선배님 소리가 나오자 상태창 확인할 것도 없이 됐다 싶었다. 선수 활동할 때, 혹은 학교 운동부 때 선배를 말하는 거겠지. 십중팔구 여자 선배님이겠지만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어머니가 아닌 게 어디냐.
이름 모를 선배님, 문현아 씨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만 문현아와 호흡 잘 맞춰 달라 피스를 다독인 뒤 유현이에게 내새끼 스킬 성장 버프로 써 주었다. SS급 몬스터 잡고 나가면 곧장 S급 던전 돌게 될 테니 지금 써 주는 게 딱일 테다.
“지금부터 스킬 하나를 쓸 겁니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시선이 모인다. 나한테 너무 집중해 줘서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다.
“오늘 아침에 얻은 스킬로 일종의 지휘 계통 특수 스킬입니다. 처음 써 보는 것이라 자세한 효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설명창에 따르면 스킬 적용자들이 긴밀하게 협동할 수 있도록 보조해 준다고 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스킬의 정확하고 빠른 연계이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아침에 스킬이 생겼다고?”
“응. 아마 20레벨 때 얻지 못한 게 조건을 달성해서 나타났나 봐. S급 헌터들이 여럿 모인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정확히는 10레벨 스킬이지 싶지만 대외적으로 10레벨 스킬은 마수사육이라고 되어 있으니 20레벨이라고 해 두었다. 어차피 20레벨 스킬도 안 나왔고.
“아저씨는 전투 관련 적성은 진짜 조금도 없나 봐요.”
예림이가 뼈 찌르는 소리를 했다. 됐어, 어차피 스탯 F급이다. 공격 스킬 좋은 거 붙어 봤자, 효과 두 배 더해 봤자 여기 있는 사람들 눈에는 끽해야 생쥐가 고양이 된 수준이겠지.
스탯 영향 덜 받는 특수 스킬이 낫다.
거부하면 안 된다고 주의 사항 말해 주고 가장 먼저 유현이에게 스킬을 썼다. 스킬이 적용됨과 동시에 한유현의 움직임이 ‘이해’되었다. 그것도 한발 먼저, 힘의 가감까지 포함하여.
한유현이 입을 연다. 아니, 열 것이다.
“아직은 별 느낌 없는데. 형은 어때?”
대답 대신 예림이에게도 스킬을 썼다. 그러자 나를 향한 초롱초롱한 시선이 보지 않고도 느껴진다. 유현이도 나를 보고 있다.
내 것까지 포함하면 세 개의 시선이 동시에 감지되는 것이다.
‘이래서 정신력 스탯이 필요한 거였나.’
머리가 어지러울 법도 했지만 스킬 보정, 혹은 키워드 보정인지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수가 더 늘어난다면 감당키 힘들 듯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각을 스킬이 적용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도, 쌍방향으로도.
“지금부터 두 사람을 연결시켜 볼게.”
이게 그대로 전해진다면 전투 중에 오히려 방해가 될 거 같은데, 어떠려나.
“어? 이거 신기한데요?”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유현이도 놀란 기색이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느껴지다니. 확실히 손발 맞추는 덴 최고겠어.”
“혹시 방해되진 않겠어? 감각이 혼란스러워진다거나.”
“아니, 전혀. 안정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섞일 염려는 없겠어.”
나와는 다른 모양이다. 이거 설마 내가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하는 건가. 시전자를 갈아서 대상자들의 협동성을 높이는 그런 거?
‘…평범한 유치원 선생님이네.’
특히 재롱잔치 시즌에 애기들 율동 맞추게 하느라 갈려나가는 선생님. 그러고 보니 유현이 유치원 다닐 때 병아리 반이었지.
“나한테도 써 봐!”
원하는 대로 문현아에게, 그리고 피스에게도 스킬을 썼다. 네 명쯤 되자 슬슬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약간 어지럽기도 했다. 오래는 못 쓰겠다.
“예림아!”
챙!
문현아의 하얀 거창과 예림이의 얼음나무 창이 맞부딪친다. 원래라면 예림이가 단숨에 밀려나야겠지만, 굵기도 길이도 주인의 힘처럼 뚜렷하게 차이 나는 두 창은 중간에서 딱 맞붙은 채 멈추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두 사람의 힘 배분이 소름 돋으리만치 정확했다는 뜻이다.
“와, 이게 한 번에 되네.”
“그러게요! 아저씨 그냥 던전 같이 다니면 안 돼요?”
누굴 죽이려고.
이제 남은 건 성현제뿐이다. 키워드 노적용에 능력치도 이중에서 제일 좋을 인간. 아, 정말 감당 안 될 거 같은데.
‘제일 중요한 막타니 안 쓸 수도 없고.’
유현이까지는 별 반응 하지 않을 바바르다. 하지만 문현아가 껍데기를 깨뜨리면 즉시 수복하려 재생력 스킬을 발동할 게 분명하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성현제가 물었다. 자신에겐 왜 스킬을 쓰지 않냐는 뜻이다.
“포션 좀 마시고요.”
아직 마나는 반 이상 남아 있었지만 혹 모르니 채워 둬야지. 진저리 나는 사과맛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협회에 포션 주문제작 문의를 해 봤는데 특별대우는 불가능하단다. 융통성 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스킬을 썼다.
‘…버틸 만하네.’
키워드 적용자에 비해 느껴지는 부담감은 확실히 더 크다. 그래도 1.5배 정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
“특이하군.”
순간 전신이 거칠게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아찔해진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성현제가 내 팔을 붙잡아 부축한다.
시발 성현제 개새끼…….
“거부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가볍게 건드려 본 것일 뿐인데.”
뻔뻔한 얼굴로 대꾸한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이 인간아. 혹시 키워드 미적용자면 부담이 크다는 게 이런 것도 포함된 건가. 다른 사람들은 문현아까지 다 얌전한데 이 새끼만 지랄이다.
“무슨 일입니까?”
유현이가 성현제를, 내 팔을 잡은 손을 노려보며 다가온다. 하여간 성현제 망할 새끼가. 나이는 제일 많이 먹어 놓고 분란이나 일으키고.
“아무것도 아니야. 스킬 대상자가 늘어나니 약간 어지러워져서 그래.”
“괜찮은 거 맞아?”
“멀쩡해.”
내 옆의 삐뚤어진 인간만 얌전히 있어 주면 버틸 만하다. 그때 성현제가 코트를 벗더니 내 어깨에 걸쳐 준다.
“화염 저항 S급이 붙어 있으니 입고 있게. 이중에서 도련님 스킬이 제일 파장이 클 테니. 방어력도 쓸 만한 편이야.”
“팔찌가 있으니 괜찮습니다만.”
“내가 자네라면 사냥 성공 확신이 들 때까지 쓰지 않겠지만, 아닌가?”
정확하네. 그래도 유현이 없을 때 말하지. 쟤 봐라, 또 눈꼬리 사나워진다.
“형?”
“아니, 여차하면 방어막 이어링도 있고 한 번밖에 못 쓰니까… 코트 입고 있을게.”
주섬주섬 옷소매에 팔을 끼워 넣었다. 헐렁하던 품도 손을 덮던 소매도 딱 맞게 줄어든다.
‘들고 튀고 싶다.’
이거 없으면 나중에 랭킹전 때 유현이가 덜 고생할 텐데. 미친 척하고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면 안 되겠지.
“팔찌는 타이밍 맞춰서 잘 쓸 테니 걱정하지 마.”
동생 놈이 여전히 뚱한 얼굴로 돌아선다. 던전 나가면 어찌 달래 주든가 해야지 저러다 또 터질라.
그때 예림이가 그림자 없는 낮을 펼치는 것이 느껴졌다.
“준비 다 됐어요!”
직후 성현제가 한쪽 팔로 나를 안아든다. 내 팔 힘으론 전투 중에 매달려 있기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도 심란하네.
나는 짐이다. 그냥 짐 A다.
“스킬 공유할 테니까 떼놓지 마세요.”
덤으로 하나 더(S), S급 이하 스킬 칭호를 상대와 접촉함으로 공유하는 스킬을 성현제 대상으로 사용했다. 공유할 스킬은 베테랑 F급(S).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칭호다.
성현제가 인벤토리에서 고상한 수색자의 사슬을 꺼내든다. 손가락 굵기의 금색 사슬이 공중을 헤엄치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주위를 맴돈다. 품고 있는 강한 뇌기가 이따금 타닥 튀어 오르며 반짝인다.
지금 내 시선은 필요 없기에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줄이고 싶기도 했다.
깎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바바르의 뒷목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장이 펼쳐져 있다.
그림자 없는 낮.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 위에 박예림이 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만하다. 제 힘으론 상처도 제대로 못 낼 상대를 앞에 두고도 즐거워하고 있다.
얼음나무 창의 빙 속성 강화 스킬이 발동된다. 미처 내뱉지 못한 숨결까지 얼려 버릴 강력한 냉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어제 레벨을 올려 냉기 저항을 얻지 못했다면 시전자에게도 타격이 갈 정도다.
사르르륵.
차가운 탄식이 베일처럼 내리깔린다. 원래는 희던 안개가 최대한도로 끌어올린 마력과 빙 속성 강화가 더해져 시퍼런 빛을 띠고 있다.
그 위로,
쏴아아—!
얼어붙은 비가 쏟아져 내린다.
범위를 최대한 좁혀, 비가 아닌 창날처럼 굵게, 얼음 안개를 휘감아 돌아 내리꽂힌다.
짜악— 쩌어억!
급격히 내려간 온도.
제가 만들어 낸 결과물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예림이의 몸이 사라진다.
그와 거의 동시에, 예림이가 있던 자리를 단숨에 삼키며—
콰과과과!
성난 파도처럼 쏟아지는 불길.
얼어붙었던 암벽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그 위를 탐욕스럽게 갉아먹는 불꽃의 색이 빠르게 짙어진다.
적자색에서 검보라, 이윽고 완전한 흑염으로.
화염 저항 덕분에 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음에도, 전해지는 정보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극고온.
“지금이 딱 아니냐?!”
감당 못 할 거라는 위험 정보를 보내는데도 문현아는 뛰어들지 못해 안달이다. 성질 하고는.
물론 지금이 제일 말랑해졌겠지만 그걸 깨부숴야 하는 창수가 화상으로 제 힘을 못 내어서야 무용지물이다.
문현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타격은 감안한다. 충분히 튼튼한 그녀이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
돌격 속도, 거리, 불길의 잔여 시간, 속이 조금 메슥거린다. 머릿속이야 이미 엉망이다.
바로 지금.
까드득—
피스의 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튀어나온 발톱이 바닥을 긁는다.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기수와 기승수가 강하게 땅을 박참과 동시에 팔찌의 스킬을 썼다. 문현아의 창끝이 껍데기를 부순 직후 전격을 쏟아부으려면 성현제도 지금 움직여야 한다.
입 밖으로 내뱉을 거 없이 성현제의 발끝이 내디뎌진다.
직후,
콰앙—!
귀를 찢는 폭음이 들려왔다. 파편을 흩뿌리며, 어마어마한 기세 그대로 창끝이 거대한 드릴처럼 바바르의 껍데기를 파고든다.
옷이 타고 손이며 얼굴 일부가 벌겋게 짓무르는데도 문현아는 웃고 있다. 아주 신났다. 그와 반대로,
– 구르륵.
거대 두꺼비가 드디어 반응한다. 당황한 듯 산울림 같은 소리를 토해 내며 몸을 움직인다. 반쯤 부서졌던 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곧장 재생력을 쓰겠지만 이미 늦었다.
속살이 드러났다. 맹렬한 창끝이 굵은 핏줄까지 꿰뚫어, 뿜어져 나온 진녹색 체액으로 뒤덮인 살덩이가.
문현아와 피스가 미련 없이 빠르게 뒤로 빠진다. 정확한 타이밍으로 성현제가 준비를 끝마쳤다.
차라라락.
제 주인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받아들인 수색자의 사슬이 넓게 퍼지다가,
콱! 콰득!
화살처럼 날아가 바바르의 속살을 파고든다.
쿠르르릉!
그 완벽한 피뢰침 위로 낙뢰가 쏟아졌다.
창백한 빛이 튀어 오르며,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인다. 고기 타는 냄새. 파편이 또다시 날린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전격이 지치지도 않고 폭우처럼 퍼부어졌다. 웬만한 물리력으로는 뚫기 힘든 두터운 살덩이가 타오르고 끓어오르고, 그 주위가 진득히 녹아내린다. 설핏 하얗게 뼈가 드러났다가, 그마저도 검게 타들어간다.
거대한 몸뚱이를 온통 잡아먹을 듯 단숨에 전류가 퍼져나간다.
– 구어어엉!
바바르가 비명과 함께 몸을 뒤튼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지면이 울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버둥거림에 공기마저 떨려온다.
하나 그 발버둥은 길지 않았다.
– 구우우웅!
단말마의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져 내린다. 바바르의 전신에 단단히 붙어 있던 껍데기가 결합력을 잃고 뚝뚝 떨어졌다.
말 그대로 산사태다.
비처럼 쏟아지는 바위 더미 사이로 모두가 무사히 피해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선생님 스킬을 껐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에 당황하다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감아 버렸다. 보상창이 얼핏 뜬 거 같은데 확인할 기력도 없다.
‘죽겠네, 진짜.’
영혼을 뽑아다 착즙기에 넣고 끝까지 쭉 짜낸 것 같은 기분이다.
“…전 잠깐 눈 좀 붙일 테니까, 싸우지 말고요.”
제일 연장자답게 애들 데리고 던전 공략 잘 끝내 줘라, 제발. 불안했지만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