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사고 치지 마라
“피스야! 최고다! 아이고 이쁜 것! 누나한테 오지 않을래? 응? 응? 언니인가?”
화염 뿔사자의 목에 매달린 문현아가 거나하게 취한 주정꾼처럼 소리쳐 댄다. 피스가 귀찮다는 듯 목을 흔들어 대도 꿈쩍도 하지 않고 껄껄껄 웃는다.
높게 일어난 흙먼지에 공기가 뿌옇다. 거대한 두꺼비의 사체 주위로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그 사이에서 한유현과 박예림은 서로를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상성이 맞지 않아 본능적으로 상대를 꺼리는 두 사람이다. 하지만 한유진의 스킬이 적용된 순간만큼은 그런 꺼림칙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빈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옅은 유대감과 친밀감.
거부감이 들 법도 했지만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중간 연결자가 다름 아닌 한유진이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한유현도 박예림도 한유진으로부터 긍정적인 감정을 전해 받는 데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 당연한 흐름이 아주 살짝 비틀려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무 말도 하지 말죠, 우리.”
박예림이 눈가를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스킬 효과가 사라졌지만 감정의 잔여는 아직 남아 있었다. 상대방이 다시 짜증 나기 시작했지만 서로 손발 맞추었던 기분 좋은 유대감은 그대로다.
특히 박예림은 막강한 적을 만나 제힘을 최대한도로 쏟아붓는 전투가 이번이 처음이다. 신나고 즐겁고 흥분되고. 그 결과를 발밑에 깔고 선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려, 눈엣가시던 한유현이 예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인정하기 싫고 기분도 나빴지만.
정도는 덜했지만 한유현도 비슷한 상황이라 떫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 최상급 기승수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문현아나, 상극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껴 버린 한유현과 박예림보다 더욱 크게 영향을 받은 자는 다름 아닌 성현제였다.
절명한 거대 두꺼비의 뒷목은 완전히 파헤쳐진 채였다.
상처의 크기가 어마어마했음에도 피에 해당되는 체액은 흐르지 않았다. 상처 부위는 물론이요 그 안쪽까지 끓이듯 익어 버린 탓이었다.
조그만 인간이 아닌, 바바르와 비슷한 크기의 초대형 맹수가 물어뜯은 듯한 자국. 성현제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안아들고 있는 청년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을까.”
신기하다는 듯 나직이 중얼거린다. 마치 무척이나 흥미로운, 신종 생물이라도 발견한 듯한 투다.
한유진의 유용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승수를 키우는 것이나 각성 예정 등급을 알아내는 것 모두 직접 손 뻗을 필요는 없는 분야였다.
받아가야 하는 대상은 한유진이 아닌 그의 수확물이었으니까.
해연이나 또 다른 길드가 독점이라도 하려 들었다면 모를까, 한유진이 중립적으로 움직이는 이상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선으로도 충분했다. 알아서 일 잘하는 농부를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다. 이미 계약도 체결했겠다, 우수한 수확물을 받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휘 계통 특수 스킬. 이번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S급 헌터에게는 아직 크게 필요치 않은 스킬이다.
‘하지만 중요해질 날도 머잖았지.’
성현제는 던전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S급 헌터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 될 것이라고도 예상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S급 헌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휘 스킬은 더없이 중요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킬 시전자의 스탯이 낮다는 사실도 매력적이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상대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직접적인 간섭을 해 오는 것을 반기는 헌터는 없다. 하지만 한유진은 조금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 스킬 또한 강하게 거부하면 쉽게 파훼할 수 있다.
예민한 상급 헌터들이 해될 일도 없고 유용하니 관대히 받아 주자, 생각할 수준이다. 일부러 맞추었나 싶을 정도로 적절하다.
그리고 또 하나, 공격 스킬 효과 두 배의 공유.
성현제의 입술이 무심코 미소를 그려낸다.
‘말로만 듣는 것과 체감은 확실히 다르군.’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무력은, 결과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나타나기에 한 번 발 들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헌터는 몬스터라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 커다란 보상도 뒤따른다.
제가 가진 인외의 힘을 마음껏 휘둘러 적을 부수고 짓밟아 더욱더 강해진다.
완벽하게 컨트롤되는 강력한 육체와 주위를 장악하는 순도 높은 마력, 그것을 바탕으로 자아내는 상식을 벗어난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스킬. 상급 헌터일수록 전투에서 더더욱 강한 해방감과 쾌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헌터 중에서도 정상에 서 있는 자에게 공격 스킬 효과가 배가 되는 감각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았다. 두 배라는 숫자로만 알고 있을 때와는 다르다. 이미 맛본 힘을 버리고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왜 이건 인간인 걸까. 던전 아이템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형은 괜찮은 겁니까?”
그때 한유현을 비롯한 넷이 다가왔다.
“부상은 당연히 없고, 잠든 것뿐이라네.”
“다행이군요. 이리 주십시오.”
한유현이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민다. 성현제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로 한유진을 건네주면 다음번은 또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눈앞의 어린놈이 제 형을 얼마나 과하게 싸고도는지 잘 알고 있다. 설사 한유진이 괜찮다고 해도 상급 던전에 순순히 들여보내려 할 리 없었다.
‘죽일까.’
한유현은 물론 다른 놈들도.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호칭은 아직 공유되고 있다. 여기서 다른 S급들을 몰살시킨다 하더라도 1급 몬스터의 사체와 그 보상이 있으니 핑계도 증거도 충분하다.
그리되면 기승수 관련 계약도 MKC와 한신만 남게 된다. MKC야 제대로 나서지 못할 테고 한신 정도는 쉽게 밟을 수 있다. 대장장이도 아직은 큰 위협이 못 된다.
“돌려달라고 했습니다만.”
심상찮은 기색을 느꼈는지 한유현이 표정을 굳힌다. 피스를 두고서 문현아를 놀리고 있던 박예림도 입을 다문다.
차르르.
수색자의 사슬이 성현제를 보호하듯 둥글게 감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한유현의 눈이 검붉게 가라앉았다.
“꽤나 무서운 눈빛이로군. 덤빌 텐가, 도련님?”
“시비를 거는 건 그쪽 아닙니까.”
“새삼스럽기는. 신호야 어제부터 보냈지 않나. 도련님이 얼마나 컸는지 궁금했거든.”
“기대에 부응해 주고 싶습니다만, 일단 형부터 돌려주고 말해.”
“싫은데.”
성현제가 웃었다. 으르렁거리는 게 귀엽기도 하지.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사이로 박예림의 얼핏 시큰둥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둘이 그대로 붙으면 아저씨는 50조각쯤 날 텐데.”
그냥 툭 던지는 핀잔 같은 어조였지만 말하는 사람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 옆에서 문현아가 일부러 쾌활하게 말한다.
“맞아. 그러니 형님은 이리로 넘기고 싸우지 그래? 입 다물어 줄 테니 둘이서 잘 해보라고. 고자질 안 할게, 약속해”
“언니, 그 거짓말 너무 티 나는데요? 싸움 구경하고 떡고물도 얻어먹을 생각 만만이면서.”
입으로만 웃으며 박예림이 마나포션을 꺼내든다. 문현아도 인벤토리에 넣었던 거창을 다시 제 발 옆에 꽂아 세웠다. 피스 또한 송곳니를 살짝 드러낸다. 그사이 김성한도 도착했다. 분위기를 살피더니 굳이 묻지 않고 성현제를 노려본다.
“응? 친애하는 현제 씨, 유리구슬은 이리 달라고. 막판까지 와서 깨질라.”
문현아의 말에 성현제의 시선이 한유진을, 정확히는 그의 손목을 향했다. 금이 가 있는 투박한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10분은 지난 지 오래다.
‘문현아가 문제로군.’
다른 세 사람은, 화염 뿔사자까지도 한유진이 걱정되어서라도 제대로 된 공격은 해 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현아는 다르다. 공격 스킬 효과 두 배가 아직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한유진부터 노릴 게 분명했다.
‘이후로도 제대로 써먹으려면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할 테고.’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식는다.
“보고 떠들어 댈 눈과 입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군.”
고자질당할 게 귀찮아서 관두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성현제가 한유진을 한유현에게 건네주었다. 돌려받은 코트를 다시 걸치고는 제가 만들어 낸 파괴의 흔적에 눈을 두었다가 곧바로 시선을 돌린다. 미련은 길어 봤자 발목만 잡을 뿐이다.
“자자, 빨리 끝내고 나가자고.”
상황이 일단락되자 문현아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거대두꺼비에 비하면 올챙이, 아니 두꺼비 알 수준만 남았다. 길게 끌 필요가 없다.
* * *
“틀림없어요. 한유진을 노린 거였어요.”
신입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 옆에서 나무가 G-15번 던전, 검은 골렘의 도시를 수복하고 있었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막아 놓았던 5년 후의 몬스터가 튀어나가 버렸다. 하필 S급 헌터들이 잔뜩 모인 채라 그에 맞게 위험한 놈이 나타난 것이다. 빠르게 복구하지 않으면 다른 던전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 버릴 수도 있다.
“벌써 눈치챈 걸까요? 어쩌죠, 우리 허니?”
“그건 아니니 진정해. 한유진을 데려가려던 거였지 죽이려던 건 아니었잖아. 게다가 위치도 허니 세상 내였어. 누군가가 공간이동 스킬을 썼다는 게 맞겠지.”
나무의 말에 신입의 표정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럼 설마 그쪽인가요? 효도하려는 애들?”
“글쎄. 못해도 SSS급 스킬이거나 L급 스킬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직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못할 텐데 확인은 해 봐야지. 자, 됐다!”
새까맣게 죽어 있던 창 위로 메시지들이 떠오른다.
“앗, 바바르 벌써 잡았네요! 엄청 빨라요!”
“그러게. 지금 전력으로는 애 좀 먹을 줄 알았는데. 허니도 기여도가 높구나. 스탯 F급 포함 팀으로 공략 시간도 빠르고, 업적치 상당하겠는걸.”
던전 공략 및 몬스터 사냥의 보상은 업적치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은 시스템이 자동 계산하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는 관리자들이 직접 계산, 보상을 정해 주었다.
나무가 손가락을 톡톡톡 움직여 각각 알맞은 보상을 연결해 준다.
“마지막으로 우리 허니는, 일반적인 장비는 쓸모없을 테고.”
“정수 증가 상급 장비는 필요한 거 같던데요?”
“대장장이 있잖아. 필요 없어. 그보다는… 이게 좋겠다.”
보상치를 다 끌어다 특수 아이템 하나와 연결 짓고는 창을 껐다.
* * *
– 삐삐삐 삐야.
조그만 웅얼거림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일단 던전은 나온 모양이다.
– 삐약! 삐약!
머리 옆에서 삐약이가 파닥거린다. 그래, 그래. 얼굴 그만 쳐라, 아프다.
“아저씨!”
“유진아!”
예림이와 명우다. 삐약이를 집어 들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냐. 꽤나 넓은 방에 창문은 없다. 그리고 옷이… 환자복 같은데. 병원인가?
옆을 돌아보니 명우가 거의 울먹이고 있다.
“내가 오래 잤나?”
“이틀이나! 병원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아니 S급 헌터가 넷이나 따라갔는데 왜 사람 하나 제대로 못 지켜?!”
명우의 화난 외침에 예림이가 스으윽 시선을 피한다. 피곤하긴 했지만 이틀이나 내리 잘 줄은 몰랐네. 그래도 몸에 별 이상은 없는 듯했다. 머리도 맑고.
그때 문이 열리며 김성한이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활짝 웃는다.
“깨어나셨군요!”
그리곤 명우의 째림에 예림이처럼 고개를 돌린다.
명우가 갑이긴 하지. 특히나 여기 이 햇병아리 S급 둘에겐 더더욱 갑이다. 예림이는 물론이고 경력 꽤 되는 김성한도 S급 장비는 몇 없을 것이다. 아직 S급 장비가 흔하지 않아 S급 헌터가 우선적으로 가져가게 되니까.
빠르게 장비 다 갖추려면 명우의 힘을 빌리는 게 최선이다.
“그러지 마. 갑자기 1급 몬스터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S급 헌터라고 해도 어떻게 그런 비정상적인 일까지 예측해서 막아 주겠냐. 1급 몬스터 사냥도 다들 협조적으로 잘해 주었고.”
그 뒤로도 별문제 없이 공략 잘 끝내고 나왔겠지? 설마 그 와중에 또 시비 걸고 싸워대진 않았을 거다.
“블루는?”
삐약이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걘 너무 까불어 대서 병원엔 못 데리고 왔어요. 아저씨가 계속 안 보이니까 좀 시무룩해지긴 했는데 건강해요. 밥도 잘 먹고.”
“삐약이는 이틀째부터 종일 울어대서 안 되겠더라고. 병원과 협회 허락받고 데리고 온 거야.”
그랬구나, 우리 삐약이, 아빠 보고 싶었어요.
“유현이는 던전 들어갔어?”
“아, 네.”
예림이가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내 눈을 피하는 게 숨기는 것이 있는 기색이다. 그러고 보니 김성한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성한 씨도 같이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아… 그게.”
김성한도 시선을 피한다. 뭐지.
“피스는?”
“피스도 같이 갔는데, 그게요…….”
예림이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길드장님이랑 피스, 둘만 들어가 버렸어요.”
“…응?”
순간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둘이, 둘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공포 저항 스킬 메시지창이 뜬다. 미친, 동생새끼 진짜, 미쳤나.
“…S급 던전?”
“네. 다른 길드원들이 따라 들어갔었는데 전부 쫓겨났어요. 분위기가 진짜 험했다나. 그래도 상성 좋은 던전이라 고생은 해도 무사할 거라고 하던데…….”
그렇다 해도 S급 던전이다. S급 헌터 필수였으니 최소 중위급이고. 거길 피스만 데리고 들어가? 피스는 또 무슨 죄야. 아니, 억지로 끌려갈 애가 아니긴 한데……. 감당할 만한 곳이라도 S급 던전 공략 기간은 길다. 둘뿐이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텐데.
진짜… 유현이 이 미친 새끼가.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라, 동생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