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96
795화 최초의 감정 (3)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강소영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장님, 더럽게 맛없어요!”
“어, 나도 동의.”
문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옆의 박예림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하고 웃었다. 카페 사장 도하민이 아니 어째서! 하고 소리쳤다.
“커피 맛이 거기서 거기지!”
“내가 저런 놈한테 카페를 맡겼다니.”
쯧쯧 혀를 차는 한유진에게 도하민이 눈을 부라렸다.
“넌 시럽만 부어 넣으면 뭐든 잘 먹─ 죄송합니다.”
한유진 옆의 한유현이 도하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하민이 얼른 노아 뒤에 숨었다. 한유진이 시럽이라니, 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난 항상 카페라떼만 마셨는데? 우유에 커피 넣은 거.”
“형, 커피는 몸에 안 좋으니까 차를 마셔. 이왕이면 카페인 없는 걸로. 루이보스 티가 건강에 좋대.”
“티백 있어요. 유진 씨는 차로 새로 내어드릴게요. 다른 분들도 주문하세요.”
“노아 오빠! 전 오렌지 주스요!”
“전 노아 씨의 사랑을 담아 부탁드려요~!”
떠들썩했다. 한유진은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잘 웃고 즐겁게 말했다. 찻잔을 받아 마시곤 그냥 보리차 같은 거잖아, 하고 동생에게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부드럽게 감싸이는 안개 사이로 장면이 바뀌었다.
“…두 분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각성자 관리실의 휴게실이었다. 나란히 선 한유진과 성현제가 대답 대신 환하게 웃었다. 성현제 머리 위의 삐약이가 힘차게 삐약 하고 날개를 치켜들었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던 관리실 직원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 종이는.”
“간단한 설문조사예요, 설문조사.”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을 위하여, 말이지.”
송태원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한유진이 얌전히 설문지를 바쳤다.
“제 이름이 유독 많은 듯합니다만.”
“아 그러니까 연말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아무튼 이건 어디까지나 연말 공적 기부금 같은 걸로 들어 갈 건데, 연말 지나면 송 실장님 생일도 금방이고요.”
“송태원 실장님의 생일은 챙겨 주기 까다로운 편이니. 이번에는 한유진 군도 동참해 주기로 했다네.”
“한유진 씨.”
“송 실장님만이 아니라, 그 전에 현아 씨 생일도 있고 그 뒤론 노아 씨에 예림이에 피스 줄줄이 있으니까요. 두 달에 걸쳐 몰려 있으니까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자 뭐 그런 거죠!”
“송태원 실장님 전에 한유진 군의 생일도 있고.”
-삐약!
“삐약이 생일도 사오월쯤으로 치고 있고요, 신입도 봄이랬거든요.”
송태원의 한숨을 못 본 척하며 한유진이 즐겁게 떠들었다. 벌써부터 들뜬 표정이었다.
“챙겨 줄 사람들도 엄청 많아졌지.”
현재의 한유진도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나는 괴롭고 힘들었어. 동시에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야. 네 눈에도 그렇지 않냐, 유현아.”
콰득, 오락실의 총이 박예림의 손아귀에서 산산조각 났다. 울상 짓는 박예림 옆에서 한유진이 괜찮다 위로하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한유현이 아직도 힘 조절이 안 되냐며 냉랭하게 말하고 박예림이 직접 느껴보고 확인해 보라며 덤벼들려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챙겨 주세요.”
헌터 마켓 직원들이 줄줄이 가져 온 물건들을 가리키며 유명우가 말했다. 옆에 있던 한유진이 과장되게 박수를 짝짝짝 쳤다. 경호원으로 따라온 노아도 얼결에 따라 박수쳤다.
“이야~ 역시 황금 대장장이님!”
“뭐, 뭐 하는 거야, 유진이 너. 실사용이 아니라 분해조사 겸 재료용이라 많이 필요한 거고, 그리고 너도 이 정도는 쉽게 살 수 있으면서.”
“에헤이, 명우 너랑은 다르지. 넌 저기 카드들 결제 대기하고 있잖냐.”
한유진이 유명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주위를 기웃거리는 상급 헌터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애초에 헌터 마켓에서 너한테 자잘한 돈 받을 거 같냐. 그냥 가져가시고 나중에 SS급 장비 우리를 통해 팔아 주십쇼~ 하겠지.”
장난기를 섞은 과장된 목소리와 손짓에 유명우가 부끄러워하면서도 같이 웃었다.
“아빠아!”
한별이 빼앵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한유진의 다리에 달라붙어 젖은 눈을 부비작거렸다. 한결과 한설이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맴돌았다.
“왜, 별아. 무슨 일이야. 응?”
한유진이 꼬마를 안아 올렸다. 훌쩍거리던 한별이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응, 응.”
“무슨 일이지?”
한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깜박했어.”
“까먹었어?”
“응. 저거 뭐야? 먹는 거야?”
자기가 왜 울었는지 까맣게 잊고 새롭게 호기심을 보이는 한별을 보고 한유진이 웃었다. 현재의 한유진도 함께 웃으며 옆에 선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귀엽지 않냐. 저기 유현이 너랑 닮은 애는 한설인데 정말로 너 어릴 때와 비슷해. 별이 일만 아니면 반응이 별로 없다니까. 별이 앞에선 곧잘 어린애가 되는데 그게 또 네 생각나고 귀여워서. 그 옆의 결이가 첫째인데 동생들 앞에서 어른 행세하는 거 보면 또 얼마나 귀여운지.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형과 비슷하게 생겼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한유현이 한유진 품 안의 한별을 보며 말했다.
“저렇게 작았는데.”
“…뭐? 설마 너? 내, 기억을, 어릴 때 기억을 본 거냐?”
한유진이 쪽팔려 하며 말했다. 한유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를 망쳐서 동생이 싫다고 울었어.”
“나, 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그게, 어린애니까. 애들이 원래 그렇잖냐. 유현이 네가 정말로 싫었다기 보단…….”
“그 모두가 형이야.”
한유진은, 한유현은 여전히 인간의 감정에 서툴렀다. 한유진을 떼어 놓으면 단순한 지식, 사전적인 단어의 조합에 지나지 않았다. 한유진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부분 또한 한유진이었다.
“나는 여전히 형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
“누구나 다 그래. 나도 네가 그러길 바랐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발소리가 섞여 든다.
“유현이 네가 날 떠난 건, 그럴 수 있어. 네가 진심으로 원한 거였다면 나도 결국은 받아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가놓고서 잘살지도 못했잖아.”
한유진의 목소리 끝이 조금 떨렸다.
“내 곁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살 수 있으면 그럼 가도 돼.”
“…그런 건 불가능해, 형.”
“그럼 붙어 있었어야지. 뭐가 어떻게 되든 같이 있었어야지.”
한유진이 커다랗게 숨을 내뱉었다. 쌓인 감정들을 털어 내려는 듯이 깊고 길게.
“그래도 유현아, 너는 나를 지켰어.”
“…응.”
“나는 너를 다시 만났고. 그리고 살아갈 거야. 네가 준 시간 속에서.”
한유진이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면서도 한유현이 손을 마주 잡았다. 나란히 손을 잡고 섰다. 기억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쌓여 갈 것이다. 한유진이 한유현을 잃은 기억 위로, 되찾은 기억이 쌓이고 그 순간을 품고서 새로운 기억들이.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 형.”
스물여섯 살의 한유현이 말했다. 한유진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망설임이 가슴속에 박혀 있었지만 그는 한 살을 더 먹었다. 한유진의 동생은 생일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만 이곳에 있는 한유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추었다. 한유진이 아직 모르는 사실 한 가지. 그것을 반드시 알려야 할까.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스물여섯 살의 한유현이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 나는…….”
화르륵─ 휘몰아치는 열기에 안개가 단숨에 밀려 나간다. 물의 기운이 가득함에도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스물여섯 살의 한유현이 급히 한유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유진이 당황하며 외쳤다.
“유현아? 너도─!”
이곳에 있었던 건가. 기억을 보는 이는 한 명이었다. 산호나 무해의 왕처럼 누군가에게 속한 것이 아닌 이들은 홀로 한유진의 기억 속에 갇혀 자신과 연관 된 기억을 되살려 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라…….”
비록 스무 살을 기점으로 갈라지게 되었으나 동일하게 시작된 존재여서일까. 스물한 살의 한유현 또한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한유진이 당황했다. 그 앞으로 불길이 밀려들다가 안개에 막혀 흩어졌다.
“…형.”
스물한 살의 한유현이 불길 너머 서 있었다. 그 눈이 둘 모두 붉다. 새빨갛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유진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유현아, 내 말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한유현. 그러나 한유진의 곁에 한유현이 이미 서 있었다.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보낸 한유현이. 시간을 되돌린 후에도 줄곧 놓지 못했던 한유현이. 회귀 후의 시간 또한 스물한 살의 한유현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전의 시간 역시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 여기 있는 것은 뭐지.
“넌 내 동생이야! 한유현!”
한유진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스물한 살의 한유현은 눈앞에서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본래의 그였다면 흔들릴지언정 한유진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내뻗는 손을 거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태초의 불의 조각에게 침식당하고 정원사의 나비에게 묶인 상태였다.
일부가 무너진 한유현의 존재 자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사라졌다. 한유진의 인정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한유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불이었고 불은 더욱 강한 불에게 삼켜진다.
“유현아!”
“위험해!”
달려가려는 한유진을 스물여섯 살의 한유현이 붙잡았다. 저 불은 한유현의 것이 아니다. 한유진을 해치지 않는 그의 동생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어! 너는 앞으로 계속─!”
콰르르릉! 물과 안개가 동시에 크게 떨렸다. 누군가 붙잡고 흔드는 어항 속처럼 물이 높게 치솟아 뒤집어진다. 간절한 외침도 타오르는 불길도 모두 삼켜지고 한유진과 한유현, 그리고 한유현이 물과 안개에 휩쓸렸다.
리에트에 의해 떠오르는 기억은 몇 없었다. 한유진과는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아가 아니었다면 그다지 깊게 엮일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짧은 기억 이후엔 리에트가 포함되지 않은 노아와 한유진의 기억이 나타났다.
“잠이 안 오면 언제든지 전화해요.”
눈이 살짝 부은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진이 내어주는 주스를 홀짝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S급인데 이만큼 티 날 정도면…….”
한유진이 뒤의 말을 삼키며 같이 점심 먹을래요? 하고 말했다. 노아가 대답 대신 순순히 털어놓았다.
“잠깐씩 잠들었는데, 울었나 봐요. 어릴 때 꿈이었던 것도 같아요. 지금이라도 치유 스킬을 쓸까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그냥 잠 조금 설친 정도로밖에 안 보여요. 음, 역시 리에트인가요?”
노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정말로 누님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하지만 무서워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무서운 거 한둘쯤은 있고요, 특히 그게 어릴 적 기억이라면 쉽게 떨쳐지지도 않는 걸요. 단지 노아 씨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조금은 덜 무서워하게 노력해 보자~ 라는 거죠.”
사람이 어떻게 단숨에 안 좋은 일을 떨쳐 내겠냐면서 한유진이 웃었다.
“금방 감쪽같이 낫는 상처도 있지만 오래 남는 흉터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그 모든 게 노아 씨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래 아파할 수도 있죠.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 단지 스스로를 위해 얼른 깨끗이 나았으면 좋겠다, 하는 거지.”
만약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 해도 그게 잘못은 아니니까. 한유진은 괜찮다고 거듭 말했다. 노아 씨는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그런 상처가 있다 해도 저도 다른 사람들도 노아 씨를 좋아 하고 배려해 줄 것이라고.
“저도 나름 아픈 곳 꽤 있거든요. 다 그렇게 사는 거죠 뭐.”
노아가 작게 웃었다. 리에트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유현처럼 감정을 아예 모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웃고 화내고 욕심을 가졌다. 하지만 리에트는 항상 강했다. 부모가 그녀를 무서워하고 밀어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긁히지도 않았으니까.
“여전히 잘 모르겠어.”
리에트는 항상 느낀 그대로 입 밖으로 꺼냈다. 사실에 상처받는 것은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니 노아가 강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여겼었다. 죽지도 않고 상처입지도 않고.
“하지만… 노아가 없어지는 건 아파.”
그리고 우는 것보다 무서워하는 것보다.
“누님을… 정말로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웃는 얼굴이 더 좋았다. 한유진의 기억 속의 노아는 점차 밝아져 갔다. 아주 어릴 적처럼 잘 웃었다.
“어려워.”
한유진의 행동은 리에트가 아는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노아는 강해졌다. 리에트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고 그리고.
“…노아 보고 싶다.”
노아는. 내 동생은. 리에트는 한유진의 기억 속에서 반짝거리는 금빛 용을 지켜보았다. 리에트의 동생은 언제나 예뻤다. 그녀가 아는 그 무엇보다도. 황금색 깃털의 날개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그 아래로 검은 용이 있었다. 리에트는 길게 목을 빼고 노아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태양 같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콰르릉!
그때 사방이 흔들렸다. 물이 치솟고 안개가 흩어지며.
-끼앙!
어디선가 조그만 털뭉치가 데굴 굴러왔다. 기억 속의 한유진에게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던 피스가 벌떡 일어나 당황하며 두리번거렸다.
“피스─.”
리에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이 둘을 덮쳤다.
-무슨 짓이니?
안개 사이로 무해의 왕이 나타났다. 성현제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손에 기억의 잔해가 쥐어져 있었다.
-너와 관련 된 기억만 전부 끌어모았네?
단 하나도 남김없이. 성현제의 발치에 물 대신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성현제 씨. 너무 늦었어요.”
“해피 아홉수! 이젠 진짜 내일모레 마흔!”
한유진의 목소리가 그림자 속으로 삼켜졌다. 하나씩 남김없이 깨끗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