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97
796화 깨진 환상
-참 특이해.
하늘거리는 촉수 한 가닥이 길게 뻗으며 끌려 오는 기억을 톡톡 건드렸다.
-감정을 묻었다, 라고 하면서 왜 지금까지 삼키지 않고 놓아둔 거야? 말해 봐. 궁금해.
무해의 왕이 안개 속에서 부드럽게 헤엄쳤다. 스르르- 옷자락이 지느러미처럼 매끄러이 흔들린다.
-한유진의 기억 일부만 깔끔하게 잘라 내긴 힘들 텐데.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내가 거들어 줄게.
“한유진 군을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었나.”
성현제의 시선이 그제야 무해의 왕을 향하였다. 루가 폐야가 까르르 웃었다.
-난 누구의 편도 아닌걸. 기억이 자아낸 꿈의 파편일 뿐이지. 내 흥미를 끌면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기억은 남아 있으니까.”
성현제의 손에 커피 잔이 들렸다. 휘핑크림이 가득 얹어진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달군.”
언젠가의 커피가 그림자 드리운 손아귀에서 사라져 간다.
“고민은 했었지. 감정을 지워 냈다고, 나름의 경고를 했음에도 한유진 군은 경계를 하지 않았어.”
좀 더 날을 세우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한유진은 한번 테두리 안에 들인 사람은 쉽게 잘라 내지 못하는 성정이었다.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잠들고 아무렇지 않게 단둘만 남기도 했다. 그러니 종속자들의 마석처럼 한유진의 존재를 삼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 없는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상대였으니.”
-맞아. 재밌었어.
빙그르 허공을 구르며 루가 폐야가 성현제를 마주 바라보았다. 바닷속의 해초처럼 기다랗게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 성현제의 얼굴을 간질이듯 스쳤다.
“두 명의 동생 사이에 묶인 모양새도 구경할 만했고. 어떻게 끝이 날지 궁금했다네.”
-동생은 요만하게 어릴 때의 기억을 보고 있던데~.
“처음 마주친 시기를 보여 주는 듯하니, 한유진 군이 다섯 살? 여섯 살? 그 즈음이겠군.”
성현제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 아쉬워하며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을 한유진의 손이 붙잡았다.
“그래서 언제 말해 줄 건데요?”
속삭여 오는 한유진의 목을 성현제의 손이 움켜쥐었다. 단순한 기억의 조각은 반응해 오지 않았다. 반항 없이 삼켜졌다.
“양육자 칭호의 힘은 상대에게 호의를 가져야만 발휘되지.”
-그러니 널 알고 있는 일부만으로 충분하다는 거구나?
“마침 테이블도 도구도 준비가 되었으니.”
박예림과 무해의 왕이 한유진의 기억을 끌어 올려 펼쳐 주었다. 기억 속에 스며들어 있던 약탈의 힘은 질 좋은 나이프와 포크가 되었다. 한유진의 존재 자체를 없애지 않고도 필요한 부분만 빼앗을 수 있었다.
-상대를 성장시키는 힘의 근원 자체를 삼키는 편이 더 도움되긴 할 텐데. 하지만 한유진은 여러 가지로 특이점이었으니까~. 장기적으론 한유진을 살려 두면서도 그 일부만 떼어 내는 게 확실히 효율적이겠어.
루가 폐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안개가 움직인다.
“괜찮아요?”
“알뜰하신 성현제 씨를 위해 내려가서 택시 탈까요. 버스나 지하철은 어떻습니까. 교통카드 되긴 하려나.”
“어… 그쪽 이름이……. 성… 모 씨?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손바닥에 이름이라도 적어 줄까요? 손 내밀어 보십쇼.”
“아무튼 저랑 송 실장님 속 뒤집어질 짓은 제발 하지 말아 주십시오.”
한유진의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리다 하나하나 겹쳐졌다. 다른 기억들에는 최대한 타격이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잘라 내진다.
-기억은 유기적인 거라서 너와 관계없는 기억들에도 약간의 손상은 갈 거야. 그래도 내가 손댔으니 크게 지장은 없어.
이런 일에는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며 루가 폐야가 장담했다. 기억은 그녀의 주식이었고 먹잇감이 계속해서 기억을 생산해 낼 수 있도록 일부만 잘라 내어 삼키는 것은 기본적인 포식 행위였으니.
끝없이 떠들던 목소리들이 점차 줄어들어 간다. 성현제 씨, 세성 길드장님 부르는 목소리 또한 몇 남지 않았다.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듣지도 보지도 않고 그대로 얼룩덜룩 뭉쳐져 검은 그림자에 먹혀 들었다.
-그래도 너에 대한 기억인데, 볼 생각 없어?
“시간이 부족할 듯하군.”
그럴 여유도 없거니와 이미 겪은 기억들일 뿐이다. 잊는 것은 한유진일 뿐 성현제의 기억은 멀쩡히 남아 있기도 했다.
쿠르릉-
안개와 바다가 흔들렸다. 한 입 크게 베어 물린 기억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어머나, 이런. 거의 다 되살리긴 했는데~.
박예림에게 가 봐야겠다며 루가 폐야의 모습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성현제가 사라져 가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고요하다. 그 혼자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그가 속했던 세계의 그를 기억하는 존재들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에 남아 마지막을 기억하고 그 남은 기억마저 빼앗겨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는 잊지 않을 테니.”
* * *
-예, 예림아! 흔들려!
산호가 박예림의 귀걸이에 매달린 채 소리쳤다.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쪽팔려하면서도 그립게 바라보고 있던 박예림도 당황했다.
“스킬이, 해제되려는 거 같은데!”
“아니야, 토토도 좋아해. 하지만 토토는 부드럽지가 않아. 밥도 안 먹어.”
강아지 풍선에 달린 줄을 꼭 잡은 채 어린 박예림이 엄마에게 주장했다. 진짜 강아지가 얼마나 좋으며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솔아가 동생보다 강아지가 더 좋다고도 했어. 동생은 말을 안 듣는대. 하지만 다울이네 강아지는 ‘앉아’도 하고 ‘손’도 하고 ‘이리와’도 하고─.”
손짓까지 해 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설득하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강아지를 얻어 내지 못한 어린 박예림이 일렁이며 사라졌다. 그사이 사방의 흔들림이 더욱 강해졌다. 스킬을 제어하려고 애쓰는 박예림 앞에 무해의 왕이 나타났다.
-스킬 풀자.
“그럼 아저씨는요?”
-석류로 묻힌 기억들은 전부 되살아났어. 빼앗긴 것만 제외하고.
“빼앗겨요? 무슨 말이에요?”
-먹혔어. 그리고… 불도 난 모양이야.
“네?”
-활활 잘 타네~.
“하, 한유현이에요? 어느 쪽이요?”
콰르르릉-! 물이 크게 치솟았다가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기억이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환상이 깨어졌다. 안개가 구름으로 뭉치고 비가 쏟아져 내린다. 그 사이로 한유진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한유현!”
필사적인 부름 앞으로 나비가 몰려들었다. 스물여섯 살의 한유현이 한유진을 붙잡았다. 버들잎을 딛고 물러난다.
“…나는.”
붉게 물든 눈앞으로 검은 나비가 팔랑인다. 그사이 한유진의 모습이 언뜻 비춰졌다. 형의 곁에는 한유현이 있었다.
[네게 말했었지.]정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물한 살의 한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일부는 이미 한유현이었던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회귀 전의 한유현은 죽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유현은 불안감을 느꼈다. 단순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의 불안이었다. 본디 불인 그를 한유현으로 만든 것은 한유진이다. 그 한유진이 또 다른 누군가를 한유현으로서 받아들인다면, 한유현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유현과 계약했고 그 계약은 네게도 해당이 되지.]검은 나비는, 정원사는 그렇게 말했다. 두 명의 한유현은 다른 존재이나 동시에 같은 존재다. 그러니 한쪽의 간단한 동의만으로도 계약은 옮겨 갈 수 있었다.
검은 나비는 속삭였다. 만약 한유진이 원하는 것이 네가 아닌 다른 쪽이라면. 자신을 지켜려다 사망한, 내내 찾아 헤매던 동생을 선택한다면.
[그럼 너는 네 소중한 형에게 동생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사랑하는 형을 위해, 네가 계약을 대신 받는다면 저 한유현은 온전히 한유진에게 돌아갈 수 있겠지. 한유진은 되찾은 동생의 시신을 끌어안고서 집으로 돌아가겠지.
한유현은 흔들렸으나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저 한유현은 죽은 사람이다. 죽었다고 형이 직접 말했었다. 잠깐의 유예를 얻었을 뿐,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형은 자신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아주 잠시만 참으면 된다. 잠시만.
그러나 한유진은.
[스물다섯 살의 한유현은 한유진에게 있어 스물여섯 살이 되었어. 스물여섯 살뿐일까, 일곱, 여덟─ 계속해서 나이를 먹어 가겠지.]나비가 웃었다.
[한유진의 시간은 죽은 동생의 선물이었으니.]형은 시간을 되돌렸음에도 스무 살이 아닌 스물다섯 살의 동생과 함께 있었다. 그리하여 죽은 한유현은 생일을 보내고 한 살을 더 먹었다.
“유현아!”
한유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도 나비가 가려 막는다.
“…계약을.”
먹혀 들어가는, 아직 한유현으로서 남은 일부가 말했다. 형에게 한유현을 돌려줘야 한다. 흐릿한 머릿속이 그렇게 생각하고 힘을 잃은 입술이 달싹였다. 나비가 입술 위로 내려앉는다.
[하얀 새가 말한 불은 너겠지.]태초의 불의 조각을 품은 순수한 불꽃. 정원사의 계약이 한유현으로부터 한유현에게로 옮겨 왔다. 스스로를 잃어 가는 육신이 불로서 무너져 내리기 전에 나비들이 급히 휘감는다. ‘한유현’이 사라지면 불을 담을 그릇 또한 사라지고 만다.
[그릇을 잃은 불은 흩어져 버리니.]그 불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한유현’이 필요했다. 나비가 반투명하게 굳어진다. 한유현의 두 눈이 감기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더는 흔들려 무너지지 않도록 의식을 잠재우고 그대로 검은 유리질 속에 묻혀 감싸졌다.
* * *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이야!”
흑색의 유리체 너머로 의식을 잃은 유현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춰진다. 목이 콱 막혔지만 연신 소리쳤다. 그러나 유현이에게 다가가려 하기도 전에 나를 붙잡은 또 다른 동생이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렇잖아도 거칠게 뛰고 있던 심장이 다시 덜컥거렸다.
“유현아, 넌─.”
“저 녀석은, 아직 괜찮아.”
-마, 맞아요, 형. 아직은 괜찮아!
이린이 내 어깨로 올라오며 말했다.
-유현이 완전히 삼켜지진 않았어. 오히려 저 나비가 변한 게, 유현이를 지켜 주는 거 같아요.
“그럼 깨면 안 돼요?”
얼음 창을 만들어 내던 예림이가 이린의 말을 듣고 물었다. 태초의 불에게 삼켜지려는 유현이를 저 유리체가 감싸 멈춰 준 거라면. 날뛰는 머릿속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러니까 유현이가 무사하, 헉!”
그때 유현이의 발아래를 받치고 있던 버들잎이 사라졌다. 유현이의 마나가 부족한 것이었다. 그대로 훅 떨어지는 우리를 피스가 재빨리 성체화해 받아 냈다.
“고마워, 피스야.”
– 크흥!
젠장, 다른 사람들은. 급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송 실장님과 리에트도 저 아래 예림이가 만든 얼음판 위에 서 있었다. 일단 다들 무사한 듯했다.
“내 계약을, 저것이 가지고 갔어.”
유현이가 얼마 없는 마나를 끌어모으며 말했다.
“우리는 같은 존재이기도 하니까. 나는 자유로워지고… 스물한 살의 한유현이 붙잡히게 된 것 같아.”
그 말대로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 주위를 맴돌던 검은 나비가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망할 정원사 놈… 얼른 힘겨워하는 한유현을 끌어안았다.
“마나 포션을 마시고 내 마나를 가져가. 은혜가 있으니 괜찮아.”
– 삑!
그때 은혜가 튀어나와 내 어깨 위의 이린에게 날아갔다. 은혜의 삑삑거림을 들은 린이가 펄쩍 뛰었다.
-형! 못된 새가 린이 먹는대!
– 삐익! 바보 도마뱀! 삑!
-…린이가 이 유현이랑도 계약된 셈인 건 맞지만.
“무슨 소리야, 린아?”
-이 새는 형한테만 마나를 주지만, 린이가 마나의 샘에 아예 들어가면 린이도 받을 수 있대요. 린이는 정령이니까.
아… 분명 시그마가 있던 세계에서 마나의 샘은 정령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했지.
– 삐이, 싫지만!
-그리고 이 유현이도 린이 계약자니까. 린이가 마나를 전해 줄 수 있어요.
은혜가 날개를 파닥파닥 거칠게 쳤다. 정령을 자기 안에 들이는 게 정말 싫지만 나를 위해서 참겠다는 듯했다.
“정말 고마워, 은혜야.”
– 삐이!
“그럼 유현이는 괜찮아지는 거야?”
-응! 원래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외부 마나를 많이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지금 이 유현이는 반발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니까요. 괜찮아!
린이가 머리를 끄덕하곤 은혜와 함께 팔찌 안으로 스며들었다. 푸른색 보석에 붉은색이 일부 섞였다. 그와 동시에 유현이가 내게 기대어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 괜찮─.”
“아저씨! 저거 마석 아니에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예림이가 소리쳤다.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나비들이 마석을 들고 있었다. 종속자들을 잡고 나온 마석들을. 그것을 본 유현이가 급히 말했다.
“형, 저걸, 아니. 피해!”
“유현아?”
“이미 늦었어!”
“피스야! 리에트!”
설명할 시간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유현이를 두고 돌아서야 한다는 강한 거부감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저 유리체를 부술 수도 없었다. 피스가 날개를 길게 펼쳤다. 리에트가 전룡화하며 어째서인지 지쳐 보이는 송 실장님을 낚아채 자신의 머리 위로 던져 올렸다. 예림이도 곧장 우리를 따라왔다.
“종속자들의 마석으로, 초월자의 힘을 불러들일 수 있어. 박예림을 상대한 파도도 그렇게 이끌어 낸 거고.”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며 유현이가 말했다. 그래서 파도 속에서 약화된 마석이 나온 거였구나.
“저렇게 마석의 수가 많은 데다가.”
유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 또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유리체에서 붉은 불꽃이 새어 나온다. 그 주위로 마석을 든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태초의 불꽃, 이었지.”
“불은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 쓰이니까. 저 불이라면 아마도.”
[위험! 허니!] [형! 이거 진짜 진짜 위험한 거 같아요!]연달아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내내 잠잠하던 신입까지 경고를 보내온다.
“초월자 자체를 불러낼 수 있을 거야.”
쩌정-!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의 마나가 뒤틀린다. 비명을 지르듯 요동치고 피스의 날개가 사라졌다.
– 크륵!
스킬이 순간 취소되었다. 피스가 비틀, 바닥에 착지해 다시 달려갔다. 악, 하고 추락한 예림이를 리에트 위의 송 실장님이 무사히 받아 냈다. 콰드드득, 콰득! 비틀리고 찢기는 굉음이 귀를 울린다. 진득하게 마나가 모이는 공간을 바라볼 수조차 없어 고개를 돌렸다.
“유현, 이는!”
“괜찮아. 정원사가 보관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잘못될 일은 없을 거야.”
스물한 살의 유현이가 완전히 갇히긴 했지만 희미한 연결은 남아 있다며 스물여섯 살의 동생이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구구궁- 잔뜩 압축된 마나가 연달아 펑펑 터져 나간다. 예림이가 그 여파를 몇 번 막아 냈지만.
“아, 아저씨! 이번엔 위험해요!”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위험하다. 리에트가 달리는 것을 멈추고 땅을 향해 단절의 힘을 날렸다. 콰과과! 땅의 일부가 깊게 파이고 흑룡이 그 안으로 뛰어든다.
-자기야! 이리로!
나 또한 피스를 리에트 뒤로 숨게 했다. 그 위로 얼음이 겹겹이 벽을 만들고 직후 마나 폭풍이 몰아쳤다. 카르르륵, 마나가 하늘과 땅을 휩쓴다. 우리가 숨은 구덩이도 무사하진 못했다. 예림이의 얼음벽이 단숨에 깨져 나가고 리에트의 비늘에 길게 긁힌 자국이 남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더욱 강한 힘이 치닫는다. 크게 숨을 삼켰다.
“리에트! 내 뒤로 숨어!”
엘릭서가 있으니 은혜로 최대한 막아 어떻게든 다들 목숨은 붙어 있게─.
콰르릉!
빛이 번득였다. 밀려드는 마나 폭풍을 황금색 찬란한 전류가 가로지른다. 낯선 흰 코트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