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01
800화 해제 (1)
“다들… 명우야?”
주방 쪽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걱정했는데 건강해 보이는구나, 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명우가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던졌다. 핑그르 날아간 식칼을 성현제가 고개만 약간 기울여 피한다. 턱, 식칼이 테이블에 박혔다.
“며, 명우야……?”
“너 보니까 새삼 열 받아서.”
일단 잘못했다고 머리 숙여야 하나. 그런데 왜 성현제한테 칼을 던진 거지?
“사정은 전해 들었어. 정말이지…….”
명우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재빠르게 비는 게 좋을까. 하지만 최근에는 그렇게까지 무리하진 않았는데. 유현이 문제도 한쪽은 해결된 셈이고.
“성현제 헌터는.”
성현제를 노려보며 명우가 이를 까득 갈았다. …나한테 화난 게 아닌가? 성현제가 눈꼬리를 조금 늘어뜨리며 소리 없어 웃어보였다.
“명우 너도 성현제 씨와 아는 사이였어?”
“그래. 알고 싶지 않았지만.”
명우가 차갑게 말했다. 송 실장님에 이어 명우까지 이러다니 성현제 저 사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심지어 리에트까지 영 탐탁찮아 하는 기색이고.
“음, 하지만 성현제 씨가 아니었으면 무사히 탈출하기 힘들었을 거야. 성현제 씨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이 너도 알게 되면 화낼걸.”
“…내가?”
“그것도 아주 많이.”
확신을 담은 명우의 말에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내가 많이 화낼 만한 일이라니.
“성현제 씨, 혹시 명우를 협박했거나 아이템을 강탈하거나 했습니까?”
“전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 듯하군.”
명우도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사실인 모양인데, 그럼 뭐지. 설마.
“유현이 해친 적 있어요? 지금은 손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전이라면-!”
“해연 길드장과 부딪친 적은 정확히 네 번이네. 처음 한 번은 내가 먼저 적당히 물러났지. 어린애와 드잡이질하는 취미는 없어서. 한유진 군의 소중한 동생은 부상 하나 입지 않았어.”
유현이가 미성년자일 때인가? 해연 자리 잡느라 바빴던 시기에. 태생 S급이라도 미성년자는 보호하다니, 역시 좋은 사람인 거 같… 다기엔 네 번이라니.
“나머지 세 번은요.”
“나로부터 한유진 군을 보호하느라 두 번. 둘 다 한유진 군의 기억에는 없어. 그때도 상처 없이 가볍게 지나갔지. 싸웠다기보단 시비 정도였기에.”
“…절 노린 적이 있습니까? 하긴 당연했겠네요.”
마수 사육 스킬만으로도 날 탐낼 헌터도 국가도 널리고 널렸다. 거기에 다른 능력치까지 눈치챘다면 노릴 법하지.
“마지막 한 번은 회귀 전이야.”
“그때의 기억이 있는 겁니까?”
역시 초월자와 관련되어 있어선가. 보통 사람들은 까맣게 잊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때는 참관인도 구경꾼도 보조와 힐러도 있었지. 전과 달리 부상은 입었으나 약속된 대련과 비슷했기에 오래지 않아 끝나고 양쪽 모두 곧장 깨끗이 치료했어.”
“아니 그렇다고 해도 비공식 대련이라니요! 랭킹전도 있을 시기인데!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랭킹전만은 못한 위험한 짓이잖습니까! 그런 짓을 하니까 송 실장님이 화내셨지! 회귀 전 기억은 없으시겠지만, 아무튼요.”
성현제가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었다. 랭킹전 놔두고 무슨 짓이야.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랭킹전에 참가하진 않은 건가?
“이 정도로 둘러말하는 건 가능하군. 한유진 군이 자리에 없어서일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유현아, 성현제 씨의 말이 맞아?”
유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과 관련된 건 내 기억에 없지만 나머지는 맞아.”
“너도 왜 그런 위험한 비공식 대련을 한 거냐! 길드장이 되어가지고서!”
“…위험한 자리는 아니었고 한 번은 참석해야 했어. 송태원 실장도 참관했었고. 비공식까진, 아니었는데.”
“공식 랭킹전 아니면 비공식이지. 유현이와도 별일 없었다면, 설마.”
내 시선이 예림이를 향했다. 아니 설마. 방금 분명 어린애 건드릴 생각은 없댔는데. 내 눈길을 눈치챈 성현제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불쾌한 추측이로군.”
“죄송합니다, 근데 그게요.”
“…전 세, 성현제 아저씨와 사이좋은 편이었어요.”
예림이가 유독 힘없이 말했다.
“엄청 친한 건 아니지만, 친한 편이었고요. 이상한 아저씨지만 재미있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랬구나.”
“네. 그런데, 그런데…….”
“예, 예림아?”
예림이의 눈에 글썽 물기가 맺혔다. 얼른 예림이에게 가 안아 토닥거려 주었다.
“이런 건 역시 기분 나빠요, 싫어요!”
“예림아…….”
“전 아저씨가-.”
예림이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눈물을 삼키느라 그런 걸까.
“그러니까, 즐거워 보였어요. 근데 이런 식으로… 무섭기도 하고요.”
– 예림아, 산호는 항상 예림이 곁에 있을 거야!
예림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원인이지 싶은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그가 어깨를 작게 으쓱했다.
“미안하군.”
“대체 무슨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지만 하나같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내가 들어선 안 되는 일인가. 하지만 예림이 일인데. 가족이라고 해서 뭐든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예림아. 언제든지 아저씨한테 말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게. 무엇이든지.”
결국 캐묻는 대신 예림이를 다독여 주었다. 예림이가 코끝을 훌쩍거렸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느라고 눈가가 더욱 발갛게 물들었다.
“이번에는, 성현제 아저씨가 확실히 나빴어요. 하지만 전 예전처럼 돌아가길 바라요.”
“그래, 예림아.”
예림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성현제를 슬쩍 흘겨보았다. 역시 착하기만 한 건 아니구만. 다행히 예림이는 이내 진정했다.
“명우 넌 괜찮아?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단순한 과로야. 신입이 너를 만나길 원해.”
“신입이?”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지금은 도움이 절실했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라 유진이 네 공간에 몰래 들어올 수 있었지만 신입은 아니야. 그래서 내가 무의식의 통로로 연결해 줄 거야.”
“어, 응.”
“저기 누워.”
명우가 식당 한쪽에 놓인 긴 의자를 가리켰다. 유현이가 먼저 앉아선 내게 누우라고 손짓했다.
“눈 감아.”
명우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순간 의식이 흐려지더니 이내 밝은 공간이 나타났다. 부드러운 풀이 깔린 초원에 원래 모습의 신입이 서 있었다. 꽃잎 같은 옷자락이 바람에 부드러이 흔들린다.
“안녕하세요, 허니.”
“안녕, 신입아. 그쪽은 어때?”
“…복잡해요.”
신입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나를 똑바로 마주봐왔다.
“허니, 예전에 우리가 허니에게 S급 이상 각성자를 50명 모으라고 했었지요.”
“그랬었지.”
회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스템 관리자랍시고 던전에 불러들여 내게 S급 이상 각성자 50명에게 키워드를 적용시키라고 했었다. 그럼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라면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지.
“하지만 그거 실은 꿍꿍이가 있었던 거 아니냐? 나도 찝찝했고 신입 너도 중간에 모으지 말라고 말을 바꿨었지.”
“네. 맞아요.”
신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니에게 알려 줘야 할지 망설였어요. 예전 같았으면 굳이 말해 줄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각성자들은 우리들이 이끌어 줘야 하는 작고 약한 이들이니까. 그런 세세한 일까진 알 필요도, 자격도 없으니까.”
초월자들은, 패륜아들은 그러했다. 신입은 개중 덜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장기짝쯤으로 여겼었다.
“그렇지만 저는 허니를 좋아해요. 대장장이 씨도 좋아해요. 허니는, 사람들은 작고 약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요. 우리들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어요.”
“나도 신입 너를 좋아해. 혼돈 어르신도 좋아해. 초월자들이라고 해서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해.”
훨씬 더 강하고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내 눈에 비치는 S급들과도 다름없었다. 유현이만 해도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강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와는 다른 존재였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나란히 설 수 있다.
“그리고 허니는 대단하고 놀라워요.”
커다랗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신입이 말했다.
“허니가 해낸 일들을 지켜봐왔어요. 그런데도 허니를 보호하겠다며 감추는 건, 위선이고 자기만족일 뿐이겠죠. 허니는 제가 돌봐야 하는 작은 존재가 아니에요.”
“나는 여전히 그렇게 강하지 않아. 지금도 F급이고 야단맞고 걱정받을 만큼 엉망이기도 하지.”
어르신이 같이 왔으면 곧장 귀를 붙잡힌 채 등짝을 두들겨 맞지 않았을까. 상상만으로도 귀가 아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 신입아. 내가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한, 정말로 평범한 F급이라고 해도 말이야.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을 지녔어.”
“네. 그래요. 정말로 그래요.”
신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의 허니는요, 스스로를 무작정 희생시키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럴 거라고 믿어요.”
“…응.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나는 나를 아낄 줄 알게 되었어. 무턱대고 날 내어놓진 않을 거야. 희생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어. 하지만 전보다 더욱 고민하고 망설이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 애쓸 거야.”
나는, 그러니까…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걱정스럽게 바라봐오는 신입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S급 50명을 모으라는 것에 대해 말해 주려고 온 거야?”
“네, 허니. 침착하게 들어 주세요.”
신입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말을 이었다.
“혹시 마지막 보은 스킬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세요?”
“…예전의 보답과 기간 외엔 별 차이가 없었지.”
그래서 왜 L급이나 되는 건지 의아해했었다.
“지금 다시 확인해 보세요.”
신입의 말대로 스킬 창을 열었다.
[마지막 보은(L) – 키워드 감화 대상이 사망 시 대상의 스킬과 능력치를 두 배의 효율로 전이받음지속시간 7일
※중복 불가]
“원래는 없었던 설명이 붙어 있을 거예요.”
“…중복 불가.”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그래, 분명 처음에는 없었다. 어느 순간 추가가 되어 있었다.
“설마, 이건.”
“마지막 보은 스킬은 보답과 달리 중복이 가능해요. 몇 명이든.”
몇 명이든. S급 50명까지도. 어느새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속이 뒤집어질 듯 울렁였다. 굳이 거짓 설명을 덧붙여서, 나를 속였다는 뜻은. 그러면서 50명을 모으라고 한 것은.
“아니에요, 허니! 진정하세요!”
신입이 크게 외쳤다. 무언가 달달한 향이 몸을 감싼다. 풀내음도 섞여있었다. 크게 뛰던 가슴이 조금 가라앉는다.
“우리도 허니에게 그 스킬을 억지로 사용하게 하면, 그럼 역효과가 있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어요! 우리가 각성자들을 가볍게 취급한 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대해 무지한 건 아니에요! 저는 서툰 편이지만, 다른 패륜아들은 지식으로 알고는 있어요! 다들 한때 평범한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럼, 왜…….”
“그래서 허니에게 또 다른 능력을 줬어요.”
“…또 다른 능력?”
“OFF.”
오프라면, 스킬을 끄는 능력? 신입이 설명을 이었다.
“허니는 패시브 스킬을 마음대로 끄고 켤 수 있어요. 오직 허니만 가능한 능력이에요.”
“나만이……?”
확실히 다른 사람들은 패시브 스킬을 끄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L급에게만 적용되는 건가하고.
“저항이나 강화 같은 스킬은 계속해서 유지되는 능력이에요. 그 스킬에 익숙해지면 조절이 가능해지죠. 그래서 허니처럼 능력 대비 너무 강한 저항 스킬을 얻으면 조절에 긴 시간이 걸리게 돼요.”
나는 유현이나 예림이와 달리 아직도 저항 스킬을 조절하지 못했다.
“…왜 내게 스킬을 끌 수 있는 힘을 준 거지?”
“그건 일종의 테스트였어요. 베타 버전이요.”
“테스트라고?”
“이미 적용된 스킬을 끄는, 키워드를 해제하는 테스트였어요.”
키워드. 완벽한 양육자의 사랑한다는 키워드.
“저항 스킬과 달리 키워드를 해제하고 그 효과가 마지막 보은과 연결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인도적으로 마지막 보은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허니의 시스템창에 간섭하고 조정해 왔어요.”
…패륜아들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S급 50명만 모으면 다 해결된다고. 시간은 넉넉하니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내게 소중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50명을 모으길 재촉하지 않은 건, 키워드 해제 적용을 위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구나.”
“…네.”
“내가, 거부하지 않을 거란 말은.”
“허니의 세계는 이미 한 번 실패할 뻔했어요. 허니는 자신의 아이들을 아끼니까,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분명 그랬을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S급 50명을 키워드 해제하면, 어느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게 되는 거지? 키워드 해제의 결과는 어떻게 되고.”
“보통은 더하기예요. 하지만 힘은 더해지다가 어느 구간에 다다르면 배로 뛰어오르게 되죠. 우리가 예상한 최저 구간은 40명. 안정적으로는 50명. S급 50명의 키워드를 한 번에 해제한다면, 허니는 7일간 초월자급에 가까운 힘을 지니게 될 거예요.”
초월자. 세상을 구하고 유현이에게도 갈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그럼 백 명, 이백 명 이상이면 초월자도 능가하는 건가.”
“아뇨. 그 다음 구간은 훨씬 높아져요.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도 우리들이 제압 가능하다고 판단, 시도를 한 거고요. 50명 정도로는 초월자 중에서는 약한 편으로 계산되었거든요. 초월자 급일 뿐 진짜 초월자의 힘에는 아예 못 미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충분했다. 몇 달 전의 나라면 분명 세계를 구하고 눈이 내리는 나무 아래의 유현이를 찾아갔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마지막 보은의 조건은 대상자의 사망이에요. 그러니 원래라면 허니가 키워드 해제 대상자들을 죽었다고 인식해야 하지만, 그래서야 평범하게 보은을 사용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내가 아니면.”
“허니의 키워드 대상자들이요.”
신입이 주먹을 꼭 쥐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모두 허니를 사망하였다 인식할 거예요. 허니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느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