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04
803화 두 그루 (1)
“왜 청승, 이 아니라.”
말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좀 청승 떠는 것처럼 느껴지긴 해. 모양새 자체는 얼굴과 몸이 되니 뭘 하든 있어 보이지만 뭔가, 뭔가… 음.
“청승맞다니! 아저씨, 혹시!”
예림이가 입을 뻐끔거렸다. 왜 말을 하다가 마니. 일어나 서서 발을 내디뎠다. 유현이가 팔십 먹은 노부모라도 대하듯 내게 바싹 붙어 감싸 주었다. 내 걸음 앞에 흩어져 있던 파편이 불에 휩싸여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유현아, 형 몸뚱이 아직 이십 대다. 피스도 끼앙거리며 따라붙었다.
“송 실장님은요?”
엉망이 된 식당 어디에도 송 실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현제가 기둥에서 가볍게 내려서며 대답했다.
“씻으러 갔지.”
“물에 빠뜨린 겁니까.”
“머리 식히기에 적당하지 않나.”
성현제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전투를 막 끝냈음에도 가벼운 티타임이라도 즐긴 듯 차분한 표정과 태도였다. 제아무리 자제력 높은 S급 헌터라 해도 전투 직후엔 조금쯤은 날이 서 있기 마련인데.
“많이 다치게 한 건 아니겠죠.”
“송태원 실장만 걱정하다니, 서운한데.”
“성현제 씨 능력치를 생각한다면 일방적이었을 텐데요.”
최소 SS급에서 그 이상. 초월자의 소환 여파를 쉽게 막아 낸 걸 보면 SSS급은 되지 싶었다. 송 실장님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뛰어난 S급이라 해도 감당하기 불가능한 등급 차이였다. …그렇게 강한 상대니까 잘 구슬려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왜 자꾸 말이 퉁명스럽게 내뱉어지는 건지.
“아시겠지만 송 실장님 평소에도 많이 힘든 분이십니다. 괴롭히지 마세요.”
“내 잘못인 것처럼 들리는군.”
“그야 송 실장님은 아무 이유 없이 주먹질하실 분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혹 모르니 들어드리겠습니다.”
왜 싸웠는지 말해 보라는 눈짓에 성현제가 대답 없이 손끝으로 제 입가를 쓸었다. 역시 성현제가 먼저 시비건 거겠지.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 실장님이잖아. 안 봐도 훤하다.
“약속한 대로 얌전히─.”
“무슨 약속인데.”
유현이가 돌연 나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예림이와 명우도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다들 좀 과하게 성현제 씨를 경계하는 거 아니냐. 수상쩍은 사람이긴 하지만.
“소환된 초월자를 물리치는 걸 도와주면 마석을 주기로 했어.”
“그것뿐이야?”
“어. 그거 말곤 없어. 마석 필요한 건 아니지?”
유현이가 아니라고 고개 저었다. 예림이랑 명우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송 실장님이 들어왔다. 급히 씻고 왔는지 아직 머리에 물기가 남은 채였다. 가벼운 셔츠와 바지 차림의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깨어나셨군요.”
“네. 송 실장님은 괜찮으세요?”
“식당을 파손시켜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송 실장님을 얼른 말렸다. 그러고 보니 성현제 저 인간은 사과 한마디 없었네.
“신입이 소환된 초월자에 대해 알려 줬어요. 현재 확인된 건 둘로, 정원사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놈은 쏙 빠지고 다른 두 초월자가 내려왔다 하였다.
“그 여파로 꿈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 더욱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번과 같은 제물 없이 초월자가 직접 들어오는 건 힘들다고 하고요.”
“그럼 지금 온 둘만 해치우면 되는 거예요?”
“일단은. 정원사의 나비가 또 같은 방법을 쓸 수도 있으니 마석이 나오면 성현제 씨가 곧장 수거하십시오.”
제물인 마석 없이는 또다시 초월자를 불러 오지 못할 테니까.
“이런 상황이라 다른 초월자들이 새로운 종속자를 보내려 하진 않을 겁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해준 셈이니까요.”
유사근원에게 찝쩍여 보고자 종속자를 보냈더니 엉뚱하게 정원사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마석을 통으로 빼앗겼으니 자신의 종속자를 수거, 되살릴 수도 없고. 그러니 지금 소환된 초월자들만 어떻게 처리한다면 방해받는 일 없이 우리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물한 살의 유현이는… 정원사로부터 구출하는 즉시 태초의 불의 조각이 들어간 팔을 잘라야 합니다. 이 중 누구라도 기회가 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유현의 팔을 말이죠.”
“예림이 넌 빼고.”
“저도 할 수 있거든요?”
“안 돼. 애초에 근접계도 아니잖니. 불의 조각을 떼어 내면 스스로 침식을 밀어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유현이를 구하게 되면 열심히 말해 줘야지. 너희 둘은 다르다고. 내게 있어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라고.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가 한 명뿐이듯 스물한 살의 유현이도 단 한 명뿐이다.
“근데 방법은 있는 거야?”
리에트가 불쑥 물었다.
“상대가 초월자라며~.”
“약화되긴 했는데, 그래도 우리가 감당할 정도는 아니겠지. 신입이 추가 정보는 더 전해 주기로 했어.”
“하율이 오빠가 기절해서인지 인어여왕의 바다도 끌어올 수 없게 되었어요…….”
“SS급 도검이… 현재 시점에는 몇 없겠지. 내가 가지고 있던 건 도검 포식자로 거의 소모했어.”
예림이와 유현이가 연달아 말했다. 등급 높은 도검은 거의 다 스물한 살 유현이가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서랍에도 SS급 무기가 있긴 하지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건 세 자루고. 어디서 보충을 하나 고민에 빠져 있는데 명우가 입을 열었다.
“유진이 네가 잠들어 있는 사이 루가 폐야와 이야기를 해 봤어.”
“응?”
-대장장이가 여기 있는 아이템을 재구성하겠대.
해파리가 살랑살랑 명우 주위를 맴돌았다.
-새롭게 만들면 제한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나갈 수 있을 거란다. 완성품이 아닌 재료로 취급되니까~.
“정말로?”
“금속이 포함된 아이템 한정이고 시간도 부족하니 그리 많이 만들진 못하겠지만 넉넉히 쓸 정도는 될 거야.”
“명우야! 역시 네가 최고다! SS급 장비를 하루 만에 우르르 쏟아 낼 수 있다니 이러다 초월자 뺨치는 거 아니냐!”
“아니야. 아직 한참 멀었지. 원래 SS급인 아이템을 재료로 쓰는 거니까 하나 만드는 데 둘 이상 들어갈 수도 있어. 상황이 특수해서 그렇지 효율로 따지자면 손해라고.”
명우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가지고 나갈 수 없는 그림의 떡을 현실화해 주는 건데 세 개가 하나로 줄면 뭐 어떠냐.
“정말 고맙다. 잘 부탁해!”
“응. 필요한 장비 있으면 말해 줘. 바로 지하로 가서 시작하게. 송태원 실장님께서도요.”
“저는… 예.”
송 실장님이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팍팍 받아 쓰셔야죠. 명우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해파리와 함께 아이템 보관실로 내려갔다. 내게 밥은 꼭 제대로 챙겨 먹으란 말을 남기고서.
“음, 장비 보충은 해결되었고요.”
내 앞에 놓인 샐러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명우의 말에 유현이가 굴러다니던 테이블을 가져와 세우고 예림이는 의자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음식이 차려졌다. 다들 서 있는 가운데 나만 앉아서 밥 먹고 있기는 좀…….
“유현아.”
“나는 먹을 필요가 없어. 에너지 전환도 불가능하고.”
“으, 응.”
리코타 치즈 묻은 풀 쪼가리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맛은 있네. 그 옆의 유현이가 다시 데워 준 스테이크도 한 조각 집었다. 아무리 나 혼자만 먹으면 된다고 해도 말이야… 그렇게 빙 둘러 서서 쳐다보진 않았으면 싶은데.
“크흠.”
“여기 물입니다.”
송 실… 71번이 물을 따라 주었다.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떠서 눈치를 보며 입에 넣었다. 역시 이건 아니야.
“다들 좀… 돌아서 주면 안 될까.”
“미안해, 형.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아냐! 그냥 봐도 돼! 얼마든지 봐라!”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아이고 맛있네, 하면서 밥을 퍼먹었다. 맛있는 건 사실이니까.
“우선은 그거 아시죠? 일본 던전에서도 썼던 버프 스킬. 그걸 유현이에게 쓸 생각입니다.”
종속자의 몰살로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초월자들은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입에게 그 시선들이 우리 애가 잘났다 스킬에 적용되게 살짝 틀어 달라 부탁했다. 거리가 엄청나게 멀긴 하지만 키워드를 인식할 수 있는 지성체들이라는 조건에는 부합하니 가능했다. 신입 쪽 패륜아 소수를 제외하곤 초월자들도 사랑한다는 키워드에 대해서는 모를 테고.
“거기에 버프를 쏟아부으면 한쪽은 상대 가능하지 싶어요.”
신입이 준 정보에 따르면 방법이 없진 않았다. 스테이크 한 조각을 더 입에 넣으며 리에트를 돌아보았다.
“신입도 노아 씨를 찾지 못했어. 한 명이 아닌 둘 이상의 초월자가 감추고 있는 듯하다면서.”
이정도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노아가 그 초월자들과 계약 관계에 있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리에트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노아 씨는 괜찮은 거야? 데려올 방법은 없어? 전투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아 씨만 두고 갈 순 없잖아.”
“노아가 그랬어.”
리에트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금속성 눈동자가 내 시선을 피하듯 데굴 옆으로 구른다. 자세한 말은 못 하게 되어 있다고 해도 답답하네.
‘리에트도 꽤 풀이 죽은 느낌이고.’
평소에 워낙 제멋대로다 보니 티가 덜 날 뿐이지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말을 잘 듣고 시비도 덜 걸고 싸움도 안 하고. 하지만 노아 씨를 찾을 방법이 없으니.
“…제 버프 스킬은 30분 제한에 대기시간도 단축한다 해도 5일입니다. 그러니 남은 초월자 하나가 문제입니다.”
말을 하며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다른 하나를 상대할 수 있을까. 내 눈길에 그가 송 실장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송 실장님이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성현제의 손이 더 빨랐다. 덥석 송 실장님의 어깨를 붙든 성현제가 입술 위로 미소를 그린다.
“송태원 실장님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약화된 초월자쯤이야 쉽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송 실장님은 S급입니다만.”
“유사근원을 삼키라 만든 존재인데─.”
탁, 송 실장님이 성현제의 손을 쳐내며 한 발 물러선다. 성현제가 길고 가늘게 뜬 눈을 휘었다.
“고작 초월자를 소화 못 시킬까.”
“가능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송 실장님이 낮게 말했다. 검은 눈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성현제가 한 걸음 내딛는다. 송 실장님이 다시 한 걸음 물러난다.
“회귀 전부터 말이야. 송태원 씨는 안 하는 쪽에 가깝지.”
또다시 한 걸음. 박자를 맞추듯이 한 발씩.
“스스로를 억누르는 짓을.”
파직, 벽의 파편이 구두 아래 가루로 으깨져 흩어진다.
“한 번이라도.”
송 실장님이 물러나려는 순간, 이번에는 엇박자로 성현제가 먼저 발을 내디뎠다. 둘의 사이가 급격히 붙는다. 송 실장님이 뒷걸음질 치는 것보다 빠르게 성현제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는다. 속삭이기라도 하듯 바싹 목소리가 다가와.
“멈춰 보았던가.”
웃었다. 동시에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진다.
“성현제 씨!”
“왜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지.”
“송 실장님을 놓아주세요!”
성현제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가볍게 뒤로 뛰어 거리를 벌린다. 송 실장님은 우두커니 선 채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한유진 군.”
성현제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한 겹 막에 가려진 듯한 미소를 짓는다.
“대체─.”
“내게도 있다네.”
성현제의 손이 들어 올려지고 그 끝에 검은 그림자가 맺혔다. 송 실장님의 약탈과 동일한 힘이.
“훨씬 약하고 흐리지만, 우연한 기회로 얻었지.”
“얻었다니, 무슨…….”
“송태원 실장님의 협조가 있다면 다른 한 명의 초월자를 상대해 봄 직하네.”
“약탈로요? 약탈이 분명…….”
유사근원을, 삼키기 위한 월식. 바로 앞의 성현제가 그 유사근원이었다. …그런데 피식자인 유사근원이 월식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건가? 애초에 어떻게 저 힘이, 성현제에게.
“초월자 자체를 삼키긴 힘들겠지만 그 힘을 무효화할 수는 있으니.”
“…약화되었다지만 초월자입니다만.”
“그러니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네. 송태원 실장의 육신은 무효화, 삼킨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니. 월식의 힘 자체는 초월자와 맞먹어. 다만 몸이 버티지 못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블랙홀처럼 뭐든 다 빨아들일 수 있지만 수용력이 작다는 건가? 비교하기 뭣하지만 흡입력은 강한데 먼지 통이 작은 청소기 같은 걸까. 집도 흡입할 수 있지만 먼지 통은 작아서 오토바이만 들어가도 터져 버리는. 그래서 흡입구 자체도 통에 맞게 줄여 버린 상태… 같은?
“송태원 실장은 인간이어야 하니.”
“인간 맞습니다만.”
성현제를 째려보며 송 실장님 앞으로 가 섰다. 말하는 것 좀 봐라, 착하다는 거 취소다. 내 눈이 삐었지.
“하지만 나는 수용력이 충분한 편이지.”
“그래서, 송 실장님의 부담을 대신 받아가겠다고요? 가능한 겁니까?”
“동일한 스킬이지 않나. 직접 부딪쳐 보니 약간의 연습만 거치면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하겠더군.”
아슬아슬하다니. 송 실장님을 돌아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협조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예.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무작정 안 된다고 막을 수도 없었다.
“…성현제 씨는 왜 그렇게 송 실장님을 못 괴롭혀 안달인 겁니까.”
“나는 송태원 실장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어.”
성현제가 매끈한 얼굴로 거짓말을 지껄였다. 그리곤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다.
“한유진 군 또한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지.”
“아, 네. 좋아한다는 말 한번 쉽게도 하시네요.”
생긴 것까지 반반해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홀리고 다녔을지. 나와는 별로 안 맞는 타입이었다. 첫 인상과는 다르네. 실수인 척 발등이라도 콱 밟아 버리고 싶지만 내 발만 아프겠지.
“약속대로 마석은 전부 드릴 테니 그 후엔 각자 갈 길 갑시다.”
“바라시는 대로.”
성현제가 몸을 돌렸다. 그 뒤통수를 잡아채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왜 자꾸 이러지.
‘유현이를 구하고 다 함께 집에 돌아가면 돼.’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러니 괜한 것에는 신경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