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35
834화 미래의 별 (3)
어른이 되는 꿈의 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걸까. 그사이 한설이 빛 속에서 빠져나온 한별을 와락 끌어안았다. 한결이 삐약이를 붙잡고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쳤다. 문현아가 설명을 이었다.
“꿈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 나도 아직 꿈인 셈이고. 별일 없었지?”
“없었긴요! 언니 닷새째 깨어나지 못했다고요! 꿈 세계와는 계속 연결이 안 되고요, 우리 길드장님과 한 소장님과 해연 길드장님과 송 실장님이 꿈 세계에 남았어요. 소식도 없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아직 무사하겠네. 그리고 이쪽은.”
문현아 뒤쪽으로 황림이 나타났다. 그의 두 팔에 잠에 빠진 어린아이 두 명이 들려 있었다.
“소영이 넌 처음 보지? 시그마와 인형술사, 그리고 짐꾼.”
“예예, 유아차라고 불러주십쇼.”
박예림이 두 아이를 보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려졌어요?!”
“설마 새로운 결이 동생들? 용인가요!”
“약간의 부작용 같은 거야. 이 통로를 만든 시간이 인형술사와 달이 거였거든. 일종의 동기화 같은 거지. 통로가 사라지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나.”
문현아와 다르게 현실에서의 육신을 지닌 황림이 옥상정원으로 빠져나왔다. 도담 사육소의 이상 현상이 그새 전해졌는지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헬기가 착륙하기도 전에 노아와 리에트가 옥상정원 위로 뛰어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어? 현아잖아?”
“마침 잘 왔어. 저 짐꾼과 두 아이 좀 부탁해. 간단히 말해 여기로 들어가면 다시 꿈의 세계로 갈 수 있어. 다만 어른은 안 돼.”
나는 이미 꿈이라서 들어와 있지만, 하고 문현아가 말을 이었다.
“별이 능력이 아이 한정이라 별수가 없더라고. 진짜 꿈과 같아서 위험하지는 않다지만, 꼭 올 필요는 없어. 당연하게도 말이야. 들어오면, 그러니까.”
“되고 싶은 거 될 수 있어!”
한별이 크게 외쳤다. 그리곤 한설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빠 보러 가자!”
아빠. 한결이 하얀 빛을 바라보았다. 위험하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랬는데. 하지만 아빠가 보고 싶었다. 그때 새끼 순록이 성큼 발을 내디뎠다.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한 듯 서슴없이 펄쩍 뛰어 빛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록아?”
– 빼앵
어린 티가 남은 울음소리도 잠시, 이내 하얀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곧고 단단하게 뻗은 네 다리, 굵은 목을 풍성하게 덮는 은빛 도는 털, 커다란 머리 위에는 왕관처럼 화려한 뿔 한 쌍이 자리 잡았다. 소록이 앞발을 탕, 만족스럽게 구르고 문현아가 입을 딱 벌리며 자신의 기승수를 바라보았다.
“소록아! 너 정말 멋지다!”
문현아는 손을 뻗어 순록의 목덜미를 살살 매만져 주었다. 그리곤 새하얀 등 위로 뛰어 올라탔다.
“가자!”
순록이 땅을 박차며 빛 속으로 달려 나갔다. 이내 둘의 뒷모습이 하얗게 사라졌다.
“빨리, 빨리!”
한결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더 참지 못하고서 뛰어나갔다. 한설이 곧장 동생 뒤를 따르고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볼 사이도 없이 빛 너머로 가 버렸다.
“설아! 별아!”
한결이 당황하며 외쳤다. 아빠가 집에 있으랬는데. 말 잘 듣기로 했는데. 하지만 한결 또한 아빠에게 가고 싶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한결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같이 가!”
분홍색 요정용이 동생들의 뒤를 쫓아 힘껏 날아올랐다. 한결 또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괘, 괜찮은 걸까?”
당황해 묻는 강소영의 말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매앵, 소리와 함께 새끼 양도 종종걸음 쳐 빛을 향해 걸어갔다. 조그만 모습 그대로 사라졌다. 자신은 갈 수 없다는 걸 아는지 피스가 끄응 안타까운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스 옆에 붙어 있던 뿔여우가 몸을 일으켰다. 저기 가면 자신도 커질 수 있다. 그런 사실이 전해져 오고 호랑 또한 폴짝폴짝 뛰었다. 빛에 네 다리를 담갔다.
– 키힝
새끼 여우의 덩치가 순식간에 커졌다. 다만 여느 성체 뿔여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룩진 윤기 흐르는 털이 붉게 물들고 금빛 도는 풍성한 갈기가 자라났다. 몸집 또한 다른 얼룩 뿔여우에 비해 서너 배 더 커졌다. 마치 뿔여우와 화염뿔사자를 뒤섞어 놓은 듯한 외모였다.
– 크르릉!
호랑이 자랑스럽게 포효했다. 그리곤 왜 오지 않느냐는 듯 피스를 돌아보았다.
– 켕, 케헹!
피스가 앉은 그대로 꼬리를 탁 쳤다. 고개를 갸웃거린 호랑이 빛을 빠져나왔다. 다시 조그만 새끼 여우가 된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빙글 돌아 빛 속으로 들어갔다가, 피스가 여전히 오질 않자 망설임 끝에 옥상정원으로 돌아왔다. 종종종 걸어 피스 옆에 엉덩이를 붙이곤 킹 아쉬운 소리를 낸다.
– 시이
벨라레도 삐약이와 빛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삐약
– 쉿!
새끼 보석뱀이 꼬리를 살랑 흔들곤 빛을 향해 빠르게 기어갔다. 박예림은 그 모습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지난 며칠이지만 막상 길이 놓이자 어째서인지 발이 쉽게 떼어지질 않았다.
– 뀨르르!
“…마르야?”
박예림의 뒤쪽으로 어느새 미니 풀장을 빠져나온 새끼 수룡이 철퍽 물방울을 튀기며 다가왔다. 하얗게 쌓인 눈이 지느러미에 길게 쓸려 길과 같은 자국이 남았다.
“너도 가보고 싶어?”
– 뀩!
“거긴 물이 없을 텐데…….”
마르를 꿈 세계에 보내려면 역시 나도 같이 가야 하지 않을까. 박예림이 고민하며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마르를 담은 물방울이 빛을 향해 날아간다. 통통하던 몸뚱이가 길게 늘어나며 거대한 수룡의 형체를 갖추었다. 푸른빛 짙은 비늘이 물결치며 매끄러운 한 쌍의 뿔이 솟아오르고 가슴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주름진 커튼처럼 활짝 펼쳐진다.
거기까지는 다른 수룡, 아세르나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르의 변화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
등의 지느러미가 더욱 커졌다. 양쪽으로 두 개씩 네 개의 등지느러미가 앞의 둘은 유선형으로 길고 거대하게 뻗어 가고 뒤의 둘은 그 절반 정도의 크기로 자리 잡았다. 얇은 베일처럼 반투명한 네 개의 등지느러미가, 아니, 날개가 크게 펄럭였다.
“마르 너-!”
– 끄르르르
물이 없으면 배를 바닥에 대고 느리게 기는 것밖에 할 수 없던 수룡이 날아올랐다. 마치 헤엄치듯 빛을 따라 오른다. 박예림에게 어서 오라는 듯 건너가진 않은 채 공중에서 춤추었다.
“예림아, 마르가 기다리는 거 같은데?”
반짝이는 눈빛으로 마르를 바라보던 강소영이 말했다. 박예림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게요.”
“왜 그래?”
“저 빛이 그냥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거 같아서요. 그래서…….”
소록이는 평범하게 성체가 되었다. 송이는 어째서인지 변하지 않았다. 호랑은 피스와 비슷하게 자랐다. 마르는 날개를 가졌다. 각자 자신이 바라는 것이, 품고 있는 가능성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박예림이 콧등을 조금 찡그리며 작게 말했다.
“조금, 자신이 없어졌어요. 저 지금이랑 별 차이 없으면 어떡해요? 별로 강해지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거나 아님 더 안 좋아지면…….”
항상 최고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다 크면 한유현보다도 더 강해질 거라고. 세계 1위 헌터는 내가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그랬건만 미래를 확인할 기회가 주어지자 불안해지고 말았다.
나는 정말로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강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예림을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예림이 넌 지금도 최고로 멋진걸!”
“언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대로라도 충분히 멋진 어른이 될 거 같은데? 하지만 만약에 말이야, 더 강해지기는커녕 던전과 각성자가 사라지고 평범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예림이 너도 나도 평범한 어른이 된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도 괜찮을 거야.”
“…그럼 용도 사라지는데요.”
“으악! 그건 안 되는데!”
강소영이 호들갑스럽게 비명을 지르다가 다시 미소 지었다.
“그래도 코메트만 사라지지 않으면, 코메트가 평범한 도마뱀이 된다고 해도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괜찮아. 용을 타고 날던 하늘이 그리워지겠지만 그 시간들은 그대로잖아. 나는 드래곤 나이트 강소영이었다고~. 그리고 예림이 너도.”
“저도요?”
“물의 지배자 박예림! 그건 이미 네가 가졌고 사라지지 않아. 예림이 넌 최고였고 지금도 최고니까 결국 미래도 최고일걸!”
– 맞아, 예림아. 네가 최고야!
산호가 속삭이고 박예림이 조금 웃었다. 강소영이 그래도, 하고 끄으응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 나도 불안하긴 해. 요즘 계속 그랬잖아. 세상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들 그러고. 정말로 각성자가 사라지는 건 싫거든. 마음을 다지고 각오를 하고는 있지만~.”
조금 전의 말도 그 고민의 결과인 모양이었다. 박예림이 이번에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강소영의 팔뚝을 찰싹 쳤다.
“다 괜찮을 거예요. 그럼 저 갔다 올 게요. 마르야!”
박예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룡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별아?”
크고 작은 동그란 털뭉치 두 개가 빛과 함께 나타났다. 둘 중 커다란 털뭉치가 어린애로 변해 나를 향해 떨어졌다. 얼른 별이를 받아들었다.
“아빠!”
– 삐약!
“무, 무슨, 삐약아! 설마 네가 별이를 데리고 온 거야?”
여긴 위험한데! 꿈인가? 아니, 꿈이라고 해도 안전하진 않았다.
“하율아! 얼른 애들 좀 돌려보내 줘!”
– 형, 꿈이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동의 없이는 안 돼요. 예림이랑은 형 팀이었으니까 바로 보낼 수 있었던 거고요. 그것도 제 영역이 컸을 때고 지금은 동의해도 안 돼요. 연결 자체가 끊겼어요.
꿈이 아니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느새 성현제가 나 대신 몰려드는 정원을 막아섰다. 천둥소리가 말 그대로 날벼락처럼 들려왔다.
“별아, 착하지. 집에 가자. 응? 삐약아, 얼른 별이랑 같이 집에 가줘.”
목소리가 절로 덜덜 떨렸다. 하늘에서 추락하던 리에트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 마음은 까맣게 모른 채 별이가 천진난만하게 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아빠도 도와.”
“별아!”
무심코 버럭 소리치자 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짝 놀란 아이의 표정에 얼른 사과했다.
“미안해, 별아. 하지만 별이는 여기 있으면 안 돼요.”
– 삐약삐약!
“별이 삐약이랑 커다래지는 길 만들어.”
“…뭐?”
“큰아빠가 이거 줬어.”
별이의 손안에 새하얀 빛이 모여들었다. 내 머리 위의 박하율이 그것을 보고 요란을 떨었다.
– 형! 저거 시간이에요!
“…시간?”
“삐약이도 도와준대.”
– 삐약삐!
삐약이가 내 머리 위로, 박하율 옆으로 올라왔다. 작은 부리가 박하율의 꽃잎을 물고 당겼다.
– 으악, 뭐야! 어? 유진이 형, 얘는 공간인데요?
“별이랑 아빠랑 삐약이랑 꽃이랑 길 만들 거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초조함만이 가득 밀려들었다.
“별아, 삐약아. 제발. 집에 가자. 응?”
– 형, 말은 들어 봐야죠.
“지금 그럴 상황이냐! 넌 왜 그렇게 태평해?”
– 삐약이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거 같은데요. 그러니 차분히 들어주고 설득하는 게 나을걸요?
– 삐약!
깊게 심호흡했다. 그래, 당장 별이와 삐약이가 위험해지는 건 아니다. 예림이 때와 다르게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고 하니까.
“…길이 뭐야? 그 시간이라는 힘은 어디서 가져왔어?”
“큰아빠.”
…큰아빠는 또 뭐냐. 나는 동생밖에 없으니 삼촌뿐일 텐데.
“큰아빠가 누구야? 어떻게 생겼어?”
“아빠보다 커.”
별아, 아빠보다 큰 사람은 널리고 널렸단다. 일단 S급들은 예림이 빼고 다 커.
“이렇게 머리가 길어.”
“…혹시 인형술사? 아빠랑 닮았어?”
별이가 고개를 끄덕했다. 인형술사가 별이에게 시간을 줬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별이가 삐약이랑 오빠 크게 했잖아.”
오빠, 결이를 크게 만들었다는 말에 포식의 왕이 퍼뜩 떠올랐다. 그의 종속자인 큰 뱀과 설이가 싸울 때 결이가 성장한 적이 있었다. 그게 별이와 삐약이의 힘이었던 건가.
“아빠가, 응.”
– 삐약삐이약
“양육자도 더한대. 꽃이 통로 만드는 거 도와.”
– 삐약삐약삑삐야
“삐약이랑 꽃이 길을 열고, 별이랑 아빠가 크게 하는 거야.”
삐약이의 말을 별이가 옮겨 주는 것 같았다. 박하율이 잎을 파닥거렸다.
– 저는 준비됐어요, 형!
“아니, 그 전에, 삐약이 넌 대체…….”
– 삐약!
하얀 새끼 새가 내 앞으로 내려왔다. 동그랗고 까만 눈이 나를 바라봐 왔다.
‘…하얀 새.’
삐약이가 하얀 새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했었다. 혹은 하얀 새 그 자체는 아닐까. 하지만 유현이의 기억 속에서 본 하얀 새는 자신이 더는 앞으로의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미래를 보고 수를 놓아두는 것이 아닌 현재에서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다는 듯했는데. 삐약이는 분명 지금 존재하고 있었다.
– 삐야악!
“삐약이가 아빠 좋아한대. 별이도 아빠 좋아해.”
– 형! 저도 형 좋아해요!
“…아빠도 별이도 삐약이도 좋아해.”
수상쩍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삐약이가 내게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크게 한다면… 성장시킨다는 말이지? 통로를 만들 것 없이 성현제 씨나 송 실장님에게 바로 쓸 수는 없어?”
“어른은 안 돼.”
“…뭐?”
어른이 안 된다니, 어린아이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인 건가? 그래서 그때도 결이를 성장시킨 거고?
“그럼 안 돼. 별이 형과 오빠를 여기 불러올 순 없어.”
정원은 식물뿐이고 기껏해야 나비 정도였지만 그래도 또 무슨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건 안 될 노릇이다. 단호한 내 말에 별이와 삐약이가 동시에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 삐약!
“어린애는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야.”
“별이가 하고 싶어!”
– 삐약! 삐약!
“꿈이래, 아빠. 어린애가 꾸는 꿈!”
– 삐야악
“꿈은 꿔야 한대.”
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꿈꾸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하지만 어린아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구하는 꿈을 꿀 수 있다.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빠가 너희들을 키우는 건… 이런 일을 위해서가 아니야.”
결이가 떠올랐다. 내 바람을 위해서 키워 내려 했던 아이가.
“아빠.”
– 삐약
“별이는 별이가 되고 싶은 거 돼.”
“…응?”
“형이랑 오빠도 되고 싶은 거 할 거야.”
– 삐약삐약
“전부 다. 되고 싶은 거 되는 꿈이야.”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꿈. 그런 꿈이라면, 내가 참견할 자격은…….
– 한번 해봐요, 형! 진짜 꿈 아니고 위험한 거다 싶으면 제가 바로 막을게요. 제가 통로니까 될 거거든요. 재밌겠다, 나도 아직 어린 편인데 안 되나?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불안함과 걱정이 남아 있었지만 박하율이 안전장치를 마련해 준다고 했으니까. 무엇보다 별이와 삐약이가 순순히 돌아가려 하지도 않으니 차라리 원하는 대로 해주고 여차하면 막는 편이 나을 듯했다.
“알았어, 별아. 아빠가 어떻게 하면 돼?”
“무럭무럭 자라라~ 해줘~.”
“무, 무럭무럭 자라라~.”
별이가 다시 새끼 마수로 변했다. 동그란 빛의 공에 올라타듯이 둥실 떠오른다.
– 퓨잇!
– 삐약!
– 연결되고 있어요! 우리 세상이랑!
빛이 눈부시게 커지고 별이와 삐약이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빛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점점 더 커지고 커져서 하늘 위로 뻗어 간다. 지상에서부터 솟아난 거대한 무지개처럼.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유진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송 실장님이 내 쪽으로 조금 물러나 다가오며 아이는 무사히 돌아간 거냐고 물었다.
“가긴 간 것 같은데요…….”
– 다시 와요!
텅! 무언가 땅을 강하게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빛 사이로 새하얀 형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크리스털 왕관 같은 뿔이 찬란하게 빛나고 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형님! 무사했구나!”
“…현아 씨?”
잠깐만, 그럼 저 순록은… 설마.
“소록아? 소록이니?”
– 삐이이
마치 어릴 때처럼, 하지만 훨씬 높고 가는 소리를 내며 하얀 순록이 인사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소록이가 성장했어? 현아 씨가 창을 꺼내들며 말했다.
“별이 설명 들었어? 안전한 꿈이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듣긴 했는데, 인형술사가 도와줬다고 했어요.”
“달이가 설득하고 나를 믿어 줬지. 정원이 아니라 숲인데?”
현아 씨가 성현제와 송 실장님을 돌아보았다. 다들 꼴이 말이 아닌데, 하고 웃고는 창을 앞으로 치켜세웠다. 소록이가 크게 발을 구른다. 쾅, 소리와 함께 둘이 하나가 되어 달려 나갔다. 순록이 희게 숨을 들이마시자 네 발굽이 얼음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쩌저적, 얼음길이 퍼져 나간다. 덩굴과 나무가 하얗게 얼어붙고 문현아의 창이 그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낸다. 소록이 주위에만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얼음조각이 희게 흩날렸다.
– 아빠!
별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별…아?”
– 빠앙!
…노란색 동글동글하니 귀여운 자동차가 폴짝 뛰었다. 그 위에 설이가 올라타 있었다.
“우리 별이는… 자동차가 되고 싶었구나.”
빙글빙글 도는 노란 자동차를 보자 걱정하던 것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정말로 꿈이네. 되고 싶은 꿈. 하지만 설이는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설이가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는, 지금이 좋아. 아버지. 아직은 별로 크고 싶지 않아.”
“그래. 얼마든지 그래도 돼!”
설이가 워낙 감정 표현이 적어서 걱정했었는데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구나. 지금이 제일 좋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아빠.”
이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은색 머리카락의 성현제였다. 그러니까… 결이겠지……? 결이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결이 이렇게 되어 버렸어어!”
“겨, 결아.”
“그랬었군.”
어느새 근처로 다가 온 성현제가 결이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그 능글맞은 눈빛에 결이가 울먹이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결아. 그럴 수도 있지.”
“저게, 아빠를 잘 도와주긴 하니까. 아빠도 의지하니까. 아주 조오금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결이도 저렇게 크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긴 있었지만!”
“어, 일단 잘난… 할 줄 아는 거 많은 어른이긴 하잖니. 진정하고 용으로 변하자. 변할 수 있지?”
결이가, 아, 하고 얼른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예전에 봤던 성체 요정용의 형태였다. 그리곤 괜히 성현제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팩 돌렸다. 되고 싶은 대로가 맞기는 한데, 아이들 저마다 제각각인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