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42
841화 내리는 달 (2)
서로에 대해 더없이 잘 알고 있다. 전투예지가 없어도 움직이는 방향, 노려오는 부위, 각도, 호흡, 버릇 그 밖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송태원은 기교를 부리는 대신 정직하게 들이받았다. 한층 능숙해진 약탈의 그림자를 검게 두르고 전신에 무게를 실어 성현제에게 달려들었다.
으지직- 그렇잖아도 타격을 받은 바닥이 송태원의 발아래 더욱 크게 갈라진다. 길게 내달린 금이 한발 먼저 성현제의 구두 앞에 닿았다. 이어 크게 요동치는 공기와 함께 송태원이 주먹을 뻗는다. 금색 눈은 가만히 그 모든 동작을 바라보다가, 정확한 간격으로 몸을 틀었다. 발은 겨우 반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치는 바람에 옷깃이 흔들렸다. 거의 동시에 송태원의 발끝도 뒤틀렸다. 당연히 흘려낼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예상하고 있었기에 송태원은 당황하지 않고 방향을 바꾸었다.
카득, 강한 힘이 주어진 바닥이 움푹 꺼진다. 송태원의 몸이 틀어지며 다른 쪽 손에 짧은 단검이 두 개 쥐어졌다. 그것이 시간차를 두고 성현제의 머리와 목을 향해 쏘아졌다. 캉, 카강, 단검이 사슬에 가로막혀 튕겨나간다. 송태원은 단검을 던짐과 함께 몸을 크게 한 바퀴 돌리며 발끝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아주 약간 빠르게.
콰르르!
송태원이 서 있던 자리 아래에서 금빛 사슬이 전류와 함께 튀어 올랐다. 어느새 빌딩 안으로 들어간 사슬이 천장을 뚫은 것이었다. 발차기를 하느라 균형이 불안정한 상태였던 송태원은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바닥에 닿기도 전에, 탓! 쏟아지는 잔해를 박차며 다시 위로 솟구쳤다.
높게 뛰어오르는 송태원을 사슬을 휘감은 성현제가 올려다보았다. 파지지직, 황금빛 전류가 요동치며 건물 파편이 함께 춤춘다. 이윽고.
콰르르릉-!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빛과 함께 옥상 전체가 터져 나갔다. 그 아래 빌딩 최상층까지 단숨에 갈리듯 사라지며 실내의 집기들이 이리저리 튀었다. 깨진 유리가 반짝거리며 건물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전류가 쏟아짐과 동시에 송태원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검은 그림자로 스스로를 감쌌다. 금빛은 월식을 넘지 못하고 삼켜졌다. 그러나.
“……!”
빌딩 최상층을 지탱하고 있던 철근이 모조리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나가 담긴 전류와 달리 단순한 물리력은 오히려 더 막기 까다로웠다. 아직 발이 땅에 닿기 전이라 피할 수도 없었다. 송태원은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육신을 보호했다.
텅, 터덩!
쇠로 된 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송태원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간신히 바닥을 디딘 발끝이 주르륵, 창문이 있던 바로 앞에 닿았다. 벽은 사라지고 휑한 바람만이 등 뒤를 스친다.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한 층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다른 건물들이 눈 아래로 보였다.
송태원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와 달리 성현제는 옷깃이 조금 흔들린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조차 않았다. 성현제의 손끝이 흐트러진 옷자락을 천천히 가다듬는다.
“꽤 강해졌지. 그렇지 않나.”
“…….”
“한유진 군의 도움에 더해 한결 군의 힘도 아직 남아 있어.”
종속자들의 마석을 삼키며 두 사람의 기억과 능력의 도움으로 과거를 조금씩 이끌어냈다. 이미 SS급도 넘어섰을 것이다. 금색 눈동자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단숨에 올라가는 것은, 몸이 따라 주질 않는군.”
“…어떤 상태인 겁니까.”
“알고 있는 그대로.”
쌓이고 쌓인 것을 소화시켜 성현제로서 완전해진다. 자아를 유지한 채로 그 자신으로서 자리 잡는다면 시그마로 인해 틈이 생긴 초승달과의 계약 또한 어렵지 않게 끊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극히 가능성 낮은 방법이었다.
“1리터짜리 가죽 주머니에 1톤의 물을 넣으려 하는 꼴이니. 가죽이 늘어날 가능성은 1톤 이상이겠지만 그것은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해야만 하는 작업이지.”
몇백 년, 혹은 천 년 이상.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언제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현제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억지로 늘린다면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송태원은 차분하게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도 성현제도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송태원이 이곳에 서 있는 것이었다.
“마석을 건네주십시오. 당신은 당신으로서 남을 겁니다.”
송태원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한유진 씨도 다른 모든 이들도 기억할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현제로서 끝까지 남은 그의 모습을. 성현제가 입술 끝을 올렸다.
“그럴 계획이었지. 그래서 한유진 군에 대한 감정을 지워냈고.”
성현제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튀었다. 송태원이 몸을 움직인 것은 본능에 따른 반사행동이었다. 불길함을 느낀 즉시 자리를 박찼다. 동시에 송태원이 서 있던 자리가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 아래층에 아래층까지 베어 먹히듯 움푹 내려앉는다.
“그것이 유지되었어야 했다네.”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송태원은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이 발톱을 휘두르듯 그가 닿은 자리가 계속해서 서걱서걱 잘려 나간다.
“하지만 나는.”
순간이동. 송태원의 바로 앞에 성현제가 나타났다. 이동과 동시에 긴 다리가 송태원의 옆구리를 두들긴다. 퍽, 소리와 함께 송태원의 몸뚱이가 반대쪽 건물 끝까지 날려갔다. 내밀어진 손이 간신히 모서리를 잡고 단숨에 몸을 위로 끌어 올렸다. 직후 펄럭.
“살고 싶어졌거든.”
등 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 볼 틈도 없이 송태원의 몸이 다시금 나뒹굴었다. 사자 앞의 고양이만큼이나 격차가 났다. 파지직, 전류가 튄다. 급히 그림자를 끌어 올려 방어하려는 송태원의 팔목을 성현제가 붙잡았다. 성현제의 손에서도 월식이 흘러나온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림자와 그림자가 부딪치고 생겨난 빈틈으로 금빛이 파고들었다.
“-헉!”
송태원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사람의 몸은 고유 마력으로 보호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그 보호의 힘은 강력해 S급쯤 되면 타인의 신체 내부에 직접적으로 마력을 집어넣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성현제의 전류는 송태원의 안으로 파고들어왔다.
약탈. 그 동일한 스킬이 서로 뒤섞여 성현제와 송태원의 마력이 일순간 동기화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약탈의 힘이 송태원 그 자체에 가까웠던 탓도 있었다.
“성, 현…제…….”
이질적인 전기신호가 송태원의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몸이 마비되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 힘들어졌다. 눈앞이 깜박 흐려졌다가 색색으로 번져 뒤섞인다. 비틀, 송태원이 뒷걸음질 쳤다. 스스로의 움직임인지 성현제의 조종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뒤꿈치가 건물의 끝에 닿았다. 투둑, 굽에 쓸린 콘크리트 가루가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진다.
“다시, 감정을…….”
“없애겠다고 했었지. 하지만 처음 한 번이 마지막 기회였어.”
성현제는 송태원을 마주 바라보았다. 달래듯 온화한 눈빛이었다.
“이렇게 즐거운데 지워내고 싶은 마음이 들까.”
하늘 위로 달빛이 짙게 흔들린다. 이리 오라 손짓이라도 하듯이.
“나는 살고 싶어.”
더없이 솔직한 목소리였다.
“그 어떤 길이라도 걸어가고 싶다네. 아니, 길이 없어도 괜찮아. 닿는 대로 걸어갈 것이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가다가 쉬어도 좋았다. 거리낌 없이 웃는 일도 있을 것이고 우는 일도 있을 것이다.
길게 늘어진 사슬 하나만 사라진다면 되었다. 그러면 노래라도 흥얼거릴 것이다. 이제는 잃을 일 없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시간 자체가 즐거울 것이다.
성현제는 웃었다. 송태원은 떨리는 손을 주먹 쥐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굳어가는 혀를 억지로 움직여 힘겹게 말했다.
“당신도, 그리고 다른… 모두도.”
“가 봐야지. 내가.”
“무슨…….”
“초승달에게.”
송태원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성현제가 초승달의 손에 들어간다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하였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얼마가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시간들을 끈질기게 견뎌냈다.
“왜, 당신은. 스스로를, 가장…….”
“그것 또한 나라네.”
성현제에게 있어 가장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변하지 않았던 사실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했다.
“나는 보편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지.”
금색 눈이 즐거운 듯 휘어졌다. 성현제의 손이 송태원의 더러워진 어깨를 가볍게 털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사랑하고, 그렇기에 소중한 내가 살아가는 장소 또한 사랑하고 있어.”
“…성현제.”
“내가 머무는 세계가 아닌가.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져야 내 눈에 차지. 보잘것없어서야 나의 세계라 부르고 싶지도 않을 터이니.”
그러니 가꾸고 지켰다. 스스로가 소중하다. 그렇다면 능력이 되는 만큼 자신의 주위 또한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더욱 좋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방을 꾸미고 집을 넓히고 집 밖의 환경까지 바라보게 되는 평범한 욕심. 다만 성현제는 그 능력과 바라보는 범위가 훨씬 더 넓을 뿐이었다.
“아마도 처음의 나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태어나 오롯이 그 자신으로 살아간 세계.
“나의 첫 세상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을 거야.”
초승달과 어떠한 계약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의 성현제는 아직 미숙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기애는, 세워진 근본은 지금과 다름없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는 지켜냈겠지.”
꽤나 기특하게. 송태원은 웃고 있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성현제에 대해 많이 겪고 많이 알고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당신은.”
낯설다. 동시에 여전히 그였다. 처음부터 지금 이 세상까지. 그 어떤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밖에 없었을 사람이다.
“지금 이 세계는 내게 있어 어쩌면 두 번째가 아닐까. 어느 세계든 계속해서 지키려 하였겠지. 그러나 첫 번째를 제외하곤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었으니.”
그러니 손가락 사이로 손쉽게 흘러나가는 모래알들을 놓아두었을 것이다.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스스로를 알 수 없어졌을 것이기에.
“이곳은 충분히 즐거웠어. 내 죽음도 삶도 머무는 곳이니 살아갈 땅이라 아니 말할 수 없을 것이네.”
“그렇다면, 더욱……!”
더욱. 송태원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자신은 그를 위해 마련된 죽음이다. 그런데 살아가라 말할 자격이 있을까. 그런 송태원의 속내를 짐작한 듯 성현제가 말했다.
“포기할 생각은 없어. 싸우고 버텨야지. 이래 봬도 S급이지 않나. 지금은 등급도 더 올랐고. 파트너로서 한유진 군에게 질 수는 없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유진의 앞을 막은 것들은 언제나 그랬다. 성현제의 손에서 검은 그림자가 새어 나왔다. 둥근 구슬처럼 뭉쳐진다.
“내가 떠나면 한유진 군의 기억 또한 사라질 테니까. 전해 주게. 다는 아니야. 완전히 넘겨주면 더는 양육자 칭호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한유진의 기억을 품은 월식이 송태원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
성현제의 손이 송태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살아가려는 내게 있어 죽음은 필요 없다네.”
어깨가 가볍게 밀린다.
“송태원 씨, 당신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야.”
나만이 아닌 다른 어느 누구의 죽음도. 월식이 만들어진 이유를 그 이유 자체가 부정했다. 밀려난다. 송태원이 팔을 뻗었다.
“그러니 살아가. 송태원으로서.”
마지막 힘을 끌어내어 송태원이 성현제의 팔을 잡았다.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말이 너무도 많았으나 지금 이 순간에는.
“…돌아오십시오.”
돌아와서 당신 또한 살아가기를. 성현제가 소리 없이 웃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송태원의 몸이 뒤로 떨어진다. 무게를 줄였는지 충돌음은 크지 않았다. 애초에 S급이니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 해서 큰 부상을 입진 않는다. 그러나 아직 전류의 마비 하에 있으니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
성현제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잘랑.
은빛 종소리가 들려온다. 금빛 눈이 달을 올려다보았다. 사나운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는 더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셨군.”
정원사의 침입으로 꿈의 세계가 열리다시피 하였다. 그것을 막고 있던 정원이 사라졌다. 동시에 성현제에게 옮겨 온 시그마의 계약 또한 흩어졌다. 성현제, 작은 달은 다량의 마석을 섭취하였으며 정원사의 마석 또한 손에 쥐고 있었다. 저것마저 삼키면 완벽했다.
회수의 시간이다.
잘랑.
달빛이 내리고 금빛 사슬이 대답하듯 소리 내었다. 성현제의 수족과 같았던 황금색이 은빛으로 차갑게 물들어 간다.
– 나의 작은 달.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으로 은빛이 흩어진다. 성현제는 정원사의 마석을 들어 보였다.
“성현제. 그것이 내 이름입니다.”
초승달이 어떻게 부르든 과거 거쳐 온 이름이 어떠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스스로 그 자신을 정의했다.
“초승달 씨.”
쾅, 요란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달빛이 닿는 건물의 일부가 깨져 나간다. 성현제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내 세계에서 손 떼.”
– 이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당연하게도.”
달빛이 사슬로 변화한다. 빌딩 아래를 노리려 드는 움직임에 성현제의 몸을 중심으로 금빛이 퍼져 나갔다. 콰지직-! 수많은 은빛 사슬이 단숨에 조각난다.
“그러니 우리끼리 이야기 나누죠. 끊어진 한 줄에 대해서는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잘려나간 시그마. 그는 이미 보호받고 있었다. 초승달이 꿈의 세계를 부수고 그 너머까지 침입하여 시그마를 손에 넣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성현제가 정원사의 마석을 입가에 가볍게 가져다 대었다.
“이것 또한 남아 있으니.”
희미한 사슬 소리가 멀리서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한유진 일행을 향한 것일 터였다.
“자리를 옮겨 천천히 협상해 볼까요.”
–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것인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입니다.”
욕심껏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한 몸부림. 성현제가 웃었다.
“당신 손에서 살아만 남으면 되는 거니까. 별로 어렵지도 않군요.”
온 세상에 내리던 달빛이 거두어졌다. 단 한 곳, 성현제가 서 있는 그곳에는 더더욱 짙게 내린다. 은빛 사슬이 잘랑거렸다. 성현제는 짧게 숨을 삼켰다. 이윽고 달빛이 사라지고 그의 모습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