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63
에필로그 (6)
[유엔 특별총회에서 이종족의 인권 부여 결의안 채택]한유진 사망 한 달 후, 유엔 특별총회가 열렸다. 런던 사태를 중심으로 한 이변과 그에 따라 바뀌어가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였다. 중심 되는 안건은 런던 사태였지만 가장 관심을 끈 주제는 도깨비였다.
[이종족의 인권 부여는 개체와 종족으로 나눠진다.]동등한 사람으로서 대우받는 이종족은 도깨비에만 한정 지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깥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유진의 팀이 되어 직접 겪어 본 헌터들도 다수였다. 도깨비처럼 지구에서 이종족이 탄생할 수도 있으며 지구 밖에서 들어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종족의 대우는 도깨비에 한정 짓지 않았다.
[종족의 과반수가 통역 아이템을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하며 종족 평균 지적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일 시 해당 종족 자체를 인권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한다.]세상 밖 존재를 직접 만난 S급 헌터들 경험으로 문화를 지닌 지성체라면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라 해도 통역 아이템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에 문화가 없는 몬스터는 통역 아이템이 소용없었다.
그렇기에 지성체 종족으로서의 최소 기준은 통역 아이템의 적용으로 정해졌다.
[종족은 기준을 충족치 못하나 개체는 충족할 시 해당 개체만을 인권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한다.]한 개체만이 유독 뛰어날 시에는 그 개체만을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상급 몬스터의 지성체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갑자기 인간 외의 종족을 인간과 동등하게 받아들여 주겠다고 선언한다면 반발이 클 것이었다. 하지만 도깨비의 활약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도깨비에 대해 호의적이기도 하였지만 자신들의 나라, 도시 또한 비슷한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반감을 억눌렀다. 물론 반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도깨비는 인간에게 호의적이며 쾌활하고 무해한 종족으로 보인다. 분명 우리가 도깨비를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실보다 득이 더욱 클 것이다. 도깨비는 먹거리와 장난 외에는 욕심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타고난 성품과 능력 자체가 다르기에 우리와 재물, 직업, 그 밖의 다양한 가치들을 놓고 경쟁하게 될 확률은 낮다.경쟁이 필요 없는 친절하고 도움 되는 이웃이라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이종족이 도깨비와 같으리라고 섣불리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도깨비만이 아닌 모든 이종족에 대해 인권 규정을 만든 것은 너무도 이르다. 도깨비를 받아들인 것 또한 너무도 이른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스스로 문명인이라 규정한 우리의 깊이마저 아직 완전히 파헤치지 못하였지 않는가. 4만 년 전부터 지금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는 도깨비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그 점을 항시 염두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작정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도깨비가 지성체이긴 하나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빠르고 성급한 결정이라는 말들도 나왔다. 그중에는 귀 기울여 볼 법한 이야기도 있었으나 실리 앞에서는 쉽게 밀려나고 말았다.
한국은 도깨비들을 받아들였다. 한국은 안전해졌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도.
“저는 네이(Ney)입니다. 이 년 전 던전이 터지면서 그 힘의 일부를 받아들였으나 왕이 오시고 나서야 겨우 자아를 갖추고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에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직후, 윤윤은 새로운 도깨비를 탄생시키기 위해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그중에는 윤윤처럼 던전의 힘에 영향을 받았으나 도깨비화는 하지 못했던 오래된 물건들도 있었다. 그런 도깨비들은 유독 등급이 높아 B에서 A급까지 달하기도 하였다.
“어험, 나랑 같이 가도 되고 여기 남아도 돼! 되느니라.”
“그렇다면 이곳에 남아 고향과 다른 도깨비들을 돌보겠습니다.”
“알겠다. 너를 이곳 터키 도깨비의 어, 부윤으로 삼겠다. 여기 내 명함이야. 이게 폰 번호. 휴대폰 개통하고 번호 알려 줘.”
새로 태어난 도깨비들은 윤윤을 따라가기도 했지만 고향에 남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등급이 높고 오래되었을수록 자신이 머문 땅에 정이 깊었다.
[터키의 B급 도깨비 네이, 장거리 포털 스킬 소유] [터키 정부, 도깨비 마을 신설]A~B급 도깨비들은 포털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윤윤처럼 전 세계를 넘나드는 초장거리는 아니었지만 긴급 대피용은 물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뛰어난 스킬이었다.
“김서바아앙! 나 여기 시계! 30년 전에 여기 걸려 있던 시계!”
“우리 할머니 시계! 옛날에 도둑맞은 그 벽시계 맞네!”
“우와, 요만했던 막내 김서방 엄청 커졌네!”
윤윤이 그랬듯 인간 가족이 생긴 도깨비들도 있었다. 특히 더는 사용하지 않지만 추억을 담아 고이 보관해 둔 오래된 물건들이 그러했다.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쓰이지 않기에 제 용도로는 버림받았다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도깨비들은 가족들 속에 남았다.
소중히 여기던 물건에서 태어난 도깨비들. 그들의 인간 가족들은 도깨비들이 자리 잡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사건사고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깨비들은 빠르게 사회에 섞여 들어갔다.
* * *
“역시 서울 내에는 허가가 안 났네.”
박예림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각성자 전문 교육시설 예정지가 한 달여 만에 결정되었다. 경기도의 기승수 사육시설과 상급 헌터 훈련소 근처였다. 유치원이라도 서울에 세워졌으면 했지만 역시나 허가가 나질 않았다.
“그럼 애들 여기서 등하교 하는 거야? 아저씨는 그쪽에 새로 집을 지을까 했었는데.”
“형이 없으니까.”
한유현이 책상 가득한 관련 서류들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형이 돌아올 때까지는 집을 지켜야 해.”
“하기야 나도 있고 피스랑 블루도 있고 여차하면 소영 언니랑 노아 오빠도 있으니 애들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쉽지만. 유치원이랑 초등학교부터 짓는다고 했지?”
박예림이 해연 길드장의 업무용 데스크를 빙그르 돌며 눈썹을 찌푸렸다 폈다 했다. 뭔가 복잡한 서류들이 많았다. 저 자리를 언젠가 차지하겠노라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아직은 좀 이른 듯했다. 학교 공부만 해도 귀찮은데.
“초기에는 주요 대상이 도깨비들이니까. 사회화 교육 중심이 될 테고.”
인간 각성자 아이들을 받는 건 한결과 한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로 예정되었다. 사회화와 상식 우선으로 입시교육은 필요 없는 도깨비들과 달리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아저씨 애들 유치원 가기 전에는 와야 하는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잖아. 현아 언니 생일도 지났고, 내일모레면 송 실장님 생일인데!”
아저씨도 세성 아저씨도 없다니! 박예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내 생일에도 못 오시는 건 아니겠지.
* * *
강소영은 과자공장을 인수했다. 그리곤 송태원의 사진과 생일축하 메시지가 들어간 사탕과 초콜릿, 과자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송태원이 그것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대신 전국에 나눠주었다. 송 실장님 생일축하로 도배된 이벤트 차량들과 함께.
“송 실장님께 직접 드리는 건 아니니까 괜찮잖아요? 선거 나가실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래도 길드장님보단 낫잖아요. 그럴 거예요. 아마도?”
“…예.”
송태원은 지친 표정으로 확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강소영이 성현제보다 나은 게 맞긴 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생일축하 메시지를 단 드래곤 모양 애드벌룬 수십 개를 보고 나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송태원의 진짜 생일 수난은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생일파티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애들도 기대하고 있다는 말에 못 이겨 참석한 파티장에서.
“친애하는 형님! 하이!”
한동안 소식이 없던 황림이 나타났다. 생일 축하해 형님, 하고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윙크를 보내는 황림과 둘이 그렇게나 친했었나 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송태원은 속이 아려오는 착각을 느꼈다.
“안녕, 송이야. 아빠 동생이란다~♡”
– 매앵.
“리본 넥타이도 예쁘게 맸네. 귀엽기도 하지.”
“…황림 헌터.”
“응, 형아야.”
“이곳에는, 왜 온 겁니까.”
새끼 양 앞에 쪼그리고 앉은 황림이 두 손으로 턱 아래 꽃받침을 만들며 활짝 웃었다.
“형님이랑 같이 사이좋게 살려고 왔지~. 그간 정리도 싹 했어. 이젠 나도 가족과 함께 건전하고 형제애 넘치는 삶-.”
“거절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당신의 형이 아닙니다.”
“알았어, 알았어. 대외적으론 의형제라고 해둘게. 형님이 델리케이트하단 건 자알 알지.”
생일파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 한유현이 조용히 황림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한유진과의 일에 대한 앙금이 아직 남았을 것이다. 애들이 없었으면 이미 무기를 휘둘렀을지도 모른다. 송태원은 순간적으로 지금만큼은 한유현을 말리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문현아가 먼저 나서서 커다란 사탕 지팡이로 황림의 목을 낚아챘다.
“커다란 벌레가 어디서 초대장도 없이 날아들어서는. 얌전히 나가자, 응?”
“아이 참, 누님도.”
황림은 순순히 끌려 나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정식으로 체류 및 귀화 신청을 하였다. 어느 나라든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S급 헌터이나 예외는 있었다. 기존 자국 S급 헌터들과의 관계 문제였다. 한유현과 노아는 위험 요소가 있다며 반대했고 박예림과 문현아는 송태원에게 맡겼다. 강소영도 성현제를 대신하여 송 실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라는 대답을 보내왔다. 한신의 박민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송태원은 체류는 허가하나 귀화는 보류했다.
“…체류 기간 동안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후 판단하겠습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한 뒤 헌터 협회를 통해 황림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보냈다.
* * *
인형술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이 짙어져가는 4월이었다. 방의 침대에는 시그마가 누워 있었다. 인형술사와 달리 그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몇 달은 더 걸린다는 거지?”
문현아가 인형술사에게 물었다. 인형술사와 시그마는 그간 문현아의 별장에 숨겨져 있었다.
“유사근원과 완전히 분리되면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힘의 소모가 컸어. 내 시간을 받았더라면 잠들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럼 네가 깨어나지 못했겠지. 몇 달 정도야 금방이야.”
문현아는 느슨히 팔짱을 끼며 인형술사를 바라보았다. 한유진과 닮았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사촌 형 정도 될까.
“한 소장 친척이라고 해도 되고, 법안 통과되었으니 이종족이라고 해도 되고. 편할 대로 해.”
“시그마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나갈 생각 없어. 혹시 장소 제공을 더는 해줄 수 없다면-.”
“어차피 거의 안 쓰는 별장이니 원하시는 만큼 머무십시오. 내가 직접 데려온 손님 내칠 생각 없다.”
문현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인형술사가 옅게 한숨을 내쉬며 잠든 시그마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정원사가 죽었다고 하였다. 성현제는 초승달에게 잡혀가고 한유진은 그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
“…한유진이 죽었다고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확실히 이 세계에 포함된 듯하군.”
“초월자 급이면 영향 안 받는다던데.”
“이젠 S급조차 아니야. 간신히 자아를 유지할 정도만 남았지. 기억과 경험은 그대로니 내 한 몸 지킬 정도는 되지만.”
씁쓸하게 말하면서도 인형술사의 입술 끝은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결국 지켜냈다. 그거면 충분했다.
“혹시 말이야, 시그마가 성현제인 척해도 되냐.”
“뭐?”
“아니, 소영이가 부탁을 해 와서. 슬슬 위험하다고.”
세성 길드장 성현제의 칩거가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었다. 한유진과 문현아, 송태원의 생일에 성현제가 한 것처럼 요란을 떨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거 아니냔 소문도 커지기 시작했다나.”
“…이 세계의 사람과 접촉해서 나쁠 건 없지만. 어느 정도 도움도 될 거고. 이젠 유사근원과 혼동된다더라도 문제가 없을 테니.”
잠깐 고민하던 인형술사가 문현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수는.”
“응?”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세성 길드는 거대 기업이며 길드장의 영향이 크지. 그러니 길드장의 생사를 확인하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될 텐데.”
약소한 보상으로는 어림없을 거라는 말에 문현아가 멍하니 인형술사를 바라보다가 풋 웃었다.
“형님 생각나네. 돈 내놓으랄 줄은 몰랐는데.”
“애 키우려면 돈은 필수야. 낯선 땅에서는 더더욱.”
“아, 그럼 그럼. 이참에 성현제 재산 잔뜩 뜯어내!”
다음 날 인형술사와 시그마는 비밀리에 성현제의 별장 중 하나로 옮겨갔다. 동시에 그 별장의 소유권은 인형술사에게 넘어갔다.
[세성 길드장 성현제, 회복을 위한 수면 중] [저주의 영향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최소 반년에서 일 년 이상 소요 예상]잠든 시그마의 사진과 함께 기사가 떴다. 침대 옆에는 강소영과 세성 직원 일부가 서 있었다. 상태 확인을 하러 왔다는 성녀 에밀리의 모습도 보였다. 에밀리는 강력한 저주의 중화를 위해 잠에 빠지는 조건 계약을 하였다고 인터뷰도 해주었다. 그렇게 세성 길드장의 생사불명은 슬리핑 뷰티로 마무리 지어졌다.
* * *
“이러다 진짜 제 생일에도 안 오시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랑 보내는 첫 생일인데!”
노아 오빠 생일 축하해요, 하고 선물을 건네며 박예림이 작게 속삭였다. 노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길어야 한 달이면 돌아오지 싶었는데… 유진 씨가 많이 늦어지네요.”
“한유현 없었으면 진짜…….”
박예림은 죽었다고 생각했을 거란 말을 꿀꺽 삼켰다. 불길한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 타라, 꼬마들아!
“큰 용!”
“나보단 작아.”
“지금은 너도 작잖아.”
한결의 말에 한설이 미간을 좁혔다. 한결이 아차 했지만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지금의 한설은 자신보다 조오금 더 작았고 그게 사실이니까. 거의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길이는 확실히 첫째인 자신이 더 길었다.
한별이 리에트의 등 위로 기어오르고 한설과 한결도 따라 올라탔다. 자신을 겁내지 않는데다가 둘은 같은 용족이어서일까, 리에트는 의외로 아이들과 잘 놀아 주었다. 강소영이 옆에서 저도요, 하고 폴짝폴짝 뛰었다.
“유진 씨와 명우 형만 돌아온다면 완벽할 텐데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노아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리에트가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았다. 빌딩 일에 에밀리의 제안에 몸은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다.
“명우 오빠도 아직 소식이 없었죠.”
“네. 제가 대장간 쪽도 신경 쓰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가 어두워요.”
날뛰던 리에트의 꼬리가 생일 케이크를 뭉갰다. 노아는 침착하게 예비용 생일 케이크를 준비시켰다.
* * *
박예림의 생일날에도 한유진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화려하고 멋진 생일파티였다. 축하해주는 사람도 가득이었다. 생일 선물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언니, 전 모르는 사람인데 선물을 보냈어요!”
“원래 그래. 확인은 다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즐겨.”
– 예림아, 저 얼음동상 예쁘다! 가까이 가보자!
사람이 많은 곳에선 조용하던 산호도 잔뜩 흥분해선 박예림의 귓가에서나마 재잘재잘 떠들었다. 마르를 위한 작은 수영장에서는 아이들과 다른 새끼 몬스터들도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박예림도 즐거워했다. 케이크의 불을 끄고 축하를 받으며 선물을 열어 보았다. 창문 밖에선 폭죽이 터졌다.
낮에는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밤에는 S급 헌터로서 주인공이 된 기분을 한가득 즐겼다. 볼이 아플 정도로 웃고 떠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로 행복하게 놀았지만.
“흐어어엉!”
다음 날 아침 남은 미역국을 먹다 말고 박예림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냥 갑자기 터졌다.
“아저씨 보고 싶어!”
엉엉 우는 박예림을 따라 한결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깜박이던 한별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렸다. 한설이 당황하며 동생을 끌어안고 박예림이 그 둘과 한결을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한유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밥과 국이 식지 않도록 가볍게 열기를 휘감아 두었다.
“결이도 아빠 보고 싶어!”
“아빠아아!”
“내 생일에는, 흑, 올 줄, 알았는데! 허엉!”
셋은 실컷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박예림과 한결은 쑥스러워하며 다시 식탁에 앉았다. 멋도 모르고 따라 울었던 한별은 이내 다시 방글거리며 배고프다고 입을 벌렸다.
“…그래도 우니까 시원하네. 그치, 결아.”
“…으응.”
박예림의 말에 한결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유진의 사망 후 두 달 하고도 반이 지나갔다. 도담 빌딩의 대장간에 돌연 툭, 무기 하나가 쪽지와 함께 나타났다.
[문현아 헌터에게 보내 주십시오. 한창 집중 중이라 한동안 더 황금대장간에 머물겠습니다.]유명우의 글이었다. 그렇잖아도 황금 대장장이에 대한 소식을 다들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유명우가 실은 도담을 떠난 것이 아니냐, 다른 곳으로 스카웃되었다, 스킬을 잃었다, 슬럼프에 빠져 더는 장비를 만들지 못한다는 등의 말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무기가 나타났다. 그것도.
[유명우 헌터의 새로운 작품! SS급 거창!] [황금 대장장이 SS급 무기 제작 성공!]문현아 맞춤의 SS급 무기였다. 근래 잠잠하던 헌터계가 떠들썩해졌다. 유명우에 대한 여론도 확 뒤바뀌었다.
– ss급무기 만드는데 두달 반이면 짧지!
– 한 일년 잠적하면 SSS급도 나오는거 아니냐
– 은퇴했단 소리 어느멍청이가 했냐 클라스가 다르다
– 역시 도담이 최강이다
– 사육소도 정상운영 한다던데 한유진이 쌓아놓은 자료로 성장시킨다고
└ 유명우도 건재하고 노아도 있고 도담 여전하네
한유진의 부재로 더는 상급 기승수를 키워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했던 도담 사육소도 계속해서 새로운 새끼 몬스터를 맡고 있었다. 한유진이 기록해 놓은 사육 정보들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로 온 아이들도 확실히 성장하고 있어요.”
“특별한 조건 없이 동일한 환경인데도 말이지요.”
“하지만 동종의 새끼 몬스터라도 사육소를 벗어나면 자라지 않습니다.”
도담 사육소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상급 새끼 몬스터들이 자라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육소 직원들 사이에서는 한유진의 영혼이 사육소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한유진이 남긴 정보로 키운다고 해두었다.
* * *
또다시 달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유명우의 생일도 주인공 없이 치러졌다. 도담 카페 앞에 결국 한유진의 동상이 세워졌다. 황금은 아니었다. 시시오는 자신의 자택 정원에 백금 도금 황금 동상을 따로 만들었다. 예전에 만들어 둔 모친의 황금 동상과 나란히 세웠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한유진의 죽음도 서서히 흐려져 갔다. 가끔 입에 오르면 그런 일이 있었지, 안타깝다 정도로 마무리 지어졌다. 런던 사태와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던전은 계속 존재했으나 관리는 잘되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기 좋은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한유현 네가 던전 잘 안 가려고 해서 내가 두 배로 뛰고 있잖아. 고마워해라~.”
한유현이 만들어 놓은 간편식을 챙겨 넣으며 박예림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박예림은 던전 공략을 좋아했다. 마르도 제법 커서 경험을 쌓기 위해 함께 다니는지라 더욱 즐거웠다. 마르 친구 만들어 주겠다며 수생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은 특히나 더 열심히 드나들었다.
“2층 청소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올라가지 말고.”
휴일이라 한유현은 대청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스는 거실에서 아이들을 감시했다. 거실을 가로지르던 박예림의 눈에 밖에 꺼내 놓은 삐약이 둥지가 들어왔다. 그 안에 든 알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역시 아저씨 힘이라도 알은 부화시키지 못하는 걸까.”
– 시잇.
알을 감싸고 있던 벨라레가 머리를 치켜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도담 사육소 건물 내의 새끼 몬스터들은 자라고 있었지만 저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초월자 뱀 알이라서 그럴지도 몰라, 고모.”
한설이 잡은 뱀도 엄청 크고 무시무시했다면서 한결이 말했다.
“하긴 초월자 급이면 쉽지 않겠지. 결이 너도 태어나는 데 오래 걸렸잖아. 아저씨가 내내 데리고 다녔는데도 말이야.”
“으응.”
“셋다 잘 놀고 있어. 한유현 말은 적당히 듣고.”
박예림은 세 아이를 끌어안아 주곤 집을 나섰다. 한유현은 청소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5월도 중반을 훌쩍 지나갔다. 이제 제법 더워져 침구를 여름용으로 교체했다. 이린이 에어컨 안으로 스며들어 그간 쌓인 먼지들을 깔끔히 삼켰다. 옷장도 정리했다. 한유현과 아이들의 옷은 물론 한유진의 옷도 계절에 맞추어 넣고 꺼내었다. 형이 언제 돌아오든 바로 쓰고 입을 수 있도록.
– 시익!
– 쉿쉿!
그때 돌연 뱀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삼촌!”
한결의 외침도 들려왔다. 한유현은 이불을 건조기에 넣다 말고 몸을 돌렸다.
“알!”
삐약이 둥지 안의 알에 금이 갔다. 안에서 툭툭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한유현은 부화하는 알을 바라보았다. 형이 맡겼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알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형.’
한유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한유진이 지닌 힘이 저 알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육소에 남은 흔적이 아닌, 그 자신의 힘이. 알의 일부가 깨져 나가며 새끼 뱀이 머리를 내밀었다. 한별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동시에 한유현은 확신했다.
한유진이 머잖아 돌아올 것이라고.
* * *
“허니, 허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만 아이가 정원을 가로질러 폴짝폴짝 뛰어온다. 그리곤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로 돌아갈 거예요?”
올려다봐오는 동그란 두 눈을 향해 미소 지어 주었다.
“응.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