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잘려나간 것 (1)
성현제가 돌아간 뒤 자기가 쓸모없는 탓이라고 우울해하는 노아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빼내어 고용한 거나 마찬가지니 내가 책임질 일 맞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울상 된 얼굴이 펴질 줄을 몰랐다. 정말로 괜찮다고, 노아의 가치에 대해 길게 늘어놓고 나한테는 이득인 거래라며 하나하나 짚어 가며 설명을 해 주고 나니 겨우 납득하는 표정이 되긴 했지만.
실제로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성현제가 너무 순순히 물러나 줘서 찝찝할 정도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S급 헌터인데 그렇게 쉽게 손을 떼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요구를 하시려고. 하지만 강제적인 것도 아니다. 증거 하나 없이 말만 오간 데다가 감당 못 할 거 같으면 거절하겠다는 소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직까지는 나한테만 너무 유리한 조건이었다.
…손해 볼 짓 할 인간이 아닌데 무슨 꿍꿍이지. 설마 진짜로 호의인가? 혹시나 싶어 내새끼 스킬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지만 성현제의 이름은 없다.
‘내가 너무 선입견에 빠져 있었나.’
모르겠다. 나한테 뭘 요구하는지 보면 확신할 수 있겠지.
그보다 유현이한텐 비밀로 해야 하나 자진납세 해야 하나 …나는 왜 이런 걸로 고민을 해야 하나. 그래도 내가 형인데. 숨기지는 않을 거지만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이유도 없잖아.
물어보면 말해줘야지.
* * *
성현제가 왔다 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는데 저녁때까지 유현이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하긴 멀리서 보기엔 그냥 꽃바구니 전해 주고 몇 마디 대화 후 얌전히 떠나간 거니까. 그걸 일일이 캐묻는 것도 이상하겠지.
대신 헌터협회로부터 재촉하는 전화는 왔다. 슬슬 특수 스킬 각성자들 배출해 내야 하지 않겠냐면서. 비각성자 감별도 언제부터 다시 시작해 줄 건지도 물어왔다. 내가 하겠다고 나선 일이긴 하지만 공으로 떡고물 얻어먹으려 혈안인 거 보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애초에 저 인간들이 각성센터 관리만 양심적으로 했어도 내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송태원이 살아 있으면 협회도 그대로일 테고,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두기도 뭣하고.’
차라리 송태원이 협회를 삼켜 버리면 안 될까. 애초에 왜 국가직 S급 헌터가 협회장이 아닌 건지가 의문이다. 왜 저 사람은 권력욕이 없지. 나라를 위해서라도 협회 먹어 버리라고 설득이라도 해 볼까.
그 외에 예림이가 던전 갔다 올 테니까 피스 꼭 끌어안고 있으라고 당부해 왔다. 유현이와 S급 던전 빡세게 돌고 나온 피스는 이제 유체 모습일 때도 스탯 S였다. 그에 더해 노아까지 상시 대기 중이니 이제 내 안전은 진짜 신경 안 써도 되지 싶었다.
– 갸르르릉.
피스가 기분 좋은 목울림 소리를 내며 내 다리에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길게 몸을 부볐다. 블루가 집에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름 사이좋아진 줄 알았는데.
블루는 옥상정원 원형파고라 위에 자리를 잡았다. 덩치가 커지자 집은 물론이고 사육 시설도 갑갑해하더니 실내에는 잘 들어오려 하질 않았다. 그래서 옥상정원에 따로 그리폰의 둥지를 본 딴 집을 만들어 줄 예정이었다. 나무를 꺾고 쿠션을 얻어가 제 나름 둥지를 짓긴 했지만 비바람이 불면 죄 날아갈 수준이라.
“피스 너처럼 몸집을 줄일 수 있으면 편할 텐데.”
블루는 피스와 달리 훈련 기간 내내 쉼 없이 쑥쑥 크는 걸로 보아 어린 모습으로 돌아가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었다. 코메트도 비룡종이니 좀 더 크면 밖으로 나가려 들려나.
SNS에 덩치가 커진 블루가 애교 부리는 영상을 올렸다. 완전히 자라면 비행 범위를 더 늘리고 싶어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저번 유현이의 던전 공략 시간 단축 이슈 덕분에 몬스터 사육에 대한 법은 곧 유하게 고쳐질 것이라 하였다. 그래도 도심에 대형 몬스터가 날아다니는 걸 우려하는 사람은 많겠지.
방송 출연이라도 더 해서 우리 블루가 이렇게 착하고 순해요, 라고 알리기라도 해야 하나. 나와 달라는 요청은 많긴 한데.
‘정 안 되면 사람 없는 곳에 땅 사서 목장 같은 거라도 만들까.’
해변 쪽도 괜찮을 것이다.
슬슬 해외에서 몬스터 사육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일단 전부 미뤄 두었다. 해연에서 사들인 몬스터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지만 데리고 오진 않은 형편이다. 유니콘들도 키워드 등록되었으니 그 녀석들에 이어 코메트까지 1차 훈련 마치고 나면 새로 데려오든가 해야지.
“삐약아, 마석 먹을래?”
– 삑.
테이블 위의 꽃바구니에서 꽃을 하나하나 꺼내어 늘어놓고 있던 삐약이가 짧게 대답했다. 싫다는 뜻이었다.
보면 볼수록 진짜 이중조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격 차이가 크다. 마석 좋아하고 이리저리 삐약삐약 뛰어다니며 노는 삐약이와 마석은 먹지 않으면서 얌전하고 호기심 많은 삐약이. 성격은 그렇다 쳐도 얌전한 삐약이는 왜 마석을 안 먹는 걸까.
* * *
명우는 밤이 꽤 늦어서야 나타났다. 공포 저항을 끄고 있었더니 새어 나오는 열기에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냥 열기일 뿐인데 크게 타오르는 불을 가까이서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공포 저항 없이 이스무아르와 마주치면 꽤 무섭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너 괜찮아? 제대로 쉬기는 하는 거냐?”
“괜찮아.”
명우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얼굴은 피로를 감출 수가 없다. 스탯이 올랐다고 해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해서 무리해도 괜찮은 수준은 아니건만.
“대체 뭘 만드느라 그 고생이냐. 아이템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몸부터 챙겨.”
혀를 쯧쯧 차며 쌓여 있는 보약을 뜯어 컵에 따라 주었다.
“지금 만드는 게 생각보다 더 까다롭더라고.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나도 몰랐지.”
“S급 무기 만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SS급 시도라도 하는 거냐? 잘 안 되면 쉬운 거부터 만들어서 숙련도 올리고 다시 잡아.”
“이왕 시작한 거 끝은 봐야지.”
그러면서 웃는 모습이 고집을 꺾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레벨 올리러 같이 던전 가려고 했더니 이대로면 한참 더 걸리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내새끼 스킬 성장으로 써 줄걸. 숙련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참, 전에 그 팔찌는 더 없지?”
“그거?”
명우가 인벤토리에서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투명한 구슬을 다섯 개 꺼내었다.
“깎아 내고 남은 부스러기로 만든 거야.”
“깎아 냈다고? 뭘?”
“나중에 말해 줄게. 이것도 저번 팔찌와 비슷해.”
일단 두 개만 받아들었다. 피해 무효화라면 명우도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편이 좋을 테니까.
[샬로스의 구슬]이번에는 이름이 제대로 붙어 있었다. 효과 설명은 없었지만.
“샬로스? 깎아 냈다는 재료 이름인가?”
“어. 그런 셈이지. 난 바빠서 이만.”
빈 컵을 내려놓은 명우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역시 수상쩍다. 미간을 좁히며 손안의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이 비슷한 걸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재료가 뭔지는 몰라도 부스러기로 이런 아이템을 만들어 냈다니.”
그럼 본체로는 대체… 뭐가 나오는 거지?
‘명우 저 녀석…….’
약간 무서워질 정도인데.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 거야 환영할 일이지만 스킬 얻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몰라.
* * *
“안녕, 형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다음 날 오후, 던전 공략을 끝낸 문현아가 방문했다. 블루가 제집 지어 주는 사람들에게 자꾸 장난을 치려 들어 실내로 데리고 들어온 김에 훈련시켜 주고 있을 때였다.
– 꺄우꺄!
“오, 그리폰도 많이 컸구나. 나도 빨리 몬스터 새끼 구해다 맡겨야 하는데. 형님 때문에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 일어났다니까. 경매장에 나오질 않아. 완전 씨가 말랐어!”
투덜대는 문현아를 무심코 멍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머리 꼴이 저게 뭐야. 오른쪽 머리칼을 3분의 2가량 화끈하게 밀어 버렸다. 남은 왼쪽 머리칼은 붉은 기 강한 적갈색으로 염색해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헤어스타일이 좀… 바뀌었네요?”
“그날 불에 타 버렸잖아. 이참에 확 쳤지.”
그렇게 많이 탔었나. 문현아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스윽 쓸어 넘기며 미소 지었다.
“어때? 어울려?”
“…어울리긴 한데, 주위에서 말리진 않았어요?”
“잔소리 많이 들었지! 특히 나이 잡수신 분들이 말이야, 그 꼴로 길드장이랍시고 나설 거냐고 불만 많~ 았어.”
즐겁게 웃어 대는 태도를 보니 주위의 핀잔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공석에 나서긴 확실히 좀 문제되는 모습이긴 했다. 멋있긴 하지만.
…잘 어울리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더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멋있네.
“왜 그래, 형님? 자꾸 흘끔흘끔 쳐다보고. 반했어?”
“쳐다볼 만하잖습니까. 그리고 몬스터 새끼는 정 안 되면 저한테 대신 먼저 맡겨 준다는 조건으로 구해 보시죠. 최근 들어온 해외의 사육 의뢰는 다 거절했거든요.”
“그래? 가능하면 한동안 더 거절해 줄 수 있을까? 그럼 구하기 좀 쉬워질 거 같은데. 상급 몬스터 새끼 여럿 데리고 있는 해외 길드도 몇 있거든.”
“여력이 안 되어서라도 당분간은 못 맡아 줘요. 세성도 이번에 들어간 A급 던전에서 새끼 몬스터 데리고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고.”
다른 두 길드가 잠잠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관리 들어간 S급 던전, 첫 공략 아니었어요? 좋은 거 나왔을 거 같은데.”
알면서도 슬쩍 물어보았다. 분명 축제의 흰고래 눈물이었지. 장비에 스킬을 부여할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으로 문현아와는 맞지 않는 빙 계열 스킬이라 경매장에 내놓았었다. 그때 정말 떠들썩했었는데. 원래는 해외에서 낙찰받아 갔지만 지금은 예림이가 있으니 사고 싶다. SS급인 인어여왕 귀걸이에 쓰면 완전 딱 맞춤 아니냐.
“물론 나왔지! 엘릭서!”
“…엘릭서요?”
“아, 형님은 잘 모르겠구나. 엄청 귀한 거거든. 여분 목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포션이야. 지금까지 딱 두 개 나왔을걸. 국내에선 최초라고.”
아니, 엘릭서 귀하다는 거야 잘 아는데… 왜 그게 지금 나와?
“다른 건요? 예를 들어 스킬 부여 아이템이라거나요.”
“스킬 부여? 그런 게 나왔으면 이미 쓰고 신나게 자랑했지. S급 장갑은 하나 나왔어. 등급치고 성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진짜 안 나온 건가. 유현이처럼 달랑 둘이서 뛰어 들어간 것도 아니고, S급 신규 던전 공략은 준비 기간 길게 잡아 여유 시간 얼마 안 남겨 두고 들어가니 조건도 회귀 전과 같았을 텐데.
당혹감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지난 한 달여간의 던전 공략 결과를 찾아보았다. 한창 브로커 찾아다니고 각성하려 애쓰던 때라 던전 정보를 많이 찾아보긴 했지만, 오 년이나 지났다 보니 생각나는 건 몇 없었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모두가 기억 속과 같았다. 미국의 백색 산크로스 방패, 필리핀의 자장가를 부르는 책, 인도의 바람을 이끄는 활까지.
유명한 아이템이며 장비 모두 제대로 나왔는데, 왜 흰고래 눈물은 사라진 거지.
‘회귀한 탓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다른 셋은 제대로 나와서 더 헷갈린다. 그냥 우연이라면 상관없지만… 이것도 시스템분들에게 물어볼까.
기승수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문현아가 돌아간 뒤 유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이나 모레쯤 F급 던전에 들어갈 거야. 피스랑 같이. 레벨 올릴 목적은 아니고.] [시스템?]답장은 금방 왔다.
[ㅇㅇ] [나도 갈게.]아직 바쁘지 않나. 혹시 또 문제가 생기더라도 피스용 게이트석만 하나 더 챙기면 괜찮을 거 같은데. 명우가 준 샬로스의 구슬도 있고.
그래도 뭐, 이참에 스킬 봐주기로 한 약속이나 지키자. 이번에는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 * *
원래는 적당한 F급 던전을 입찰할 생각이었지만 유현이가 끼어든 덕분에 해연 관리하 D급 던전으로 목적지가 바뀌었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F급이나 D급이나 그게 그거인 수준이겠지만.
‘이러다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겠네.’
주변에 S급이 너무 많다. 사육 시설에서는 상급 헌터 말고는 볼 일도 없다 보니 기준이 이상해져 버릴 것만 같다. 예전에는 그 반대였는데.
따라오고 싶어 하는 삐약이를 달래 놓고 피스만 안아 들고 빌딩 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삐약이만 떼놓기 미안했지만 어떻게 쟤를 데려가겠냐. 장비도 하나 못 걸치는 보송보송한 솜털뭉치를. 명우한테 삐약이용 아이템 만들어 줄 수 없냐고 물어볼까. 일단 지금 만드는 거 끝이 나야 하겠지만.
명우와 연락하고 싶어 안달 난 헌터들이 가여워질 정도다. 일부러 사육 시설 경비 서는 사람들도 많은데 명우 놈이 나가질 않아.
주차장에 도착하자 차에 기대어 서 있던 유현이가 이쪽을 돌아본다. 그냥 흰 여름 셔츠에 편한 바지 차림이건만 무슨 패션화보에라도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S급 스탯빨만이 아니라 저놈은 각성 전에도 잘생기긴 했어. 태생이 S급이니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
“형은 여전히 피곤해 보이네. 괜찮아?”
“낮잠을 덜 자서 그래. 이제 블루는 정원으로 나갔으니까 괜찮아.”
코메트까지 성장하면 해방이다… 라고 해도 또 언제 야행성 새끼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지만.
차에 올라타 던전 건물을 향해 출발했다. 유현이 놈 안전벨트 안 매는 것 좀 봐라. 평소엔 좀 챙기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