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전통극 (1)
원래는 유현이 스킬을 봐줄 생각이었지만, 그러려면 자연히 회귀 전 일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게 조금 힘겨워서 감기 기운이 있다는 핑계로 던전만 빨리 깨고 돌아왔다. 추운데 꽤 오래 있어서 그런지 실제로 좀 으슬으슬하기도 했고.
“독 저항 끄고 먹어. 끌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스탯 F면 면역력은 비각성자와 별 차이 없다더라.”
나를 침대에 밀어 넣은 동생 놈이 감기약과 물컵을 내밀며 말했다. 약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순히 받아 삼켰다. 독 저항 끈 거 잊지 않도록 휴대폰 첫 화면에 메모도 해 놓았다. 공포 저항은 한동안 집에서도 끄지 말아야지. 우울 저항 같은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되긴 될 거다.
“너도 어릴 때는 감기 걸리곤 했는데.”
“마지막으로 감기 걸린 지 오 년은 더 넘었을걸?”
물컵을 치우는 유현이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회귀했으니까 지난 5년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다른 세계로 분리되어, 지금 시점의 세계와 합쳐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죽은 내 동생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합쳐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없어진 거나 사라진 거나 별 차이도 없을 텐데.’
그런데도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보다는 가슴일까. 배구공의 단어 선택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삭제되었다도 그렇지만 잘려 나갔다가 뭐냐. 자꾸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그 던전에서, 내가 눕혀 놓은 그대로, 아직도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아서. 차갑고 딱딱한 바닥이었는데. 그렇게 빨리 회귀하지 말걸. 독 저항도 생겼었는데. 좀 더 있어도 괜찮았는데.
– 삐약.
손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동그랗고 까만 두 눈이 보인다. 손을 들어 삐약이를 쓰다듬었다.
상념은 많았지만 지금의 이 현재가 더 중요하다.
“유현아, 그 사이비 종교라는 거 정확히 뭐야?”
“나도 잘 모른다니까.”
“아는 대로라도 말해 봐.”
유현이가 목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래? 뭐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거야?”
“이상한 소리… 라고 해야 하나.”
회귀할 때는 조용히 살 생각이었다.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눈덩이 구르듯 커졌지만 기본적인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었다. 시스템이 접촉해 온 뒤에도 여전히 느긋한 편이었다.
나만 얌전히 있었다면 별다른 문제 없었을 5년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너와 관계 있다는 정도.”
“관계야 당연히 있지. 하지만 형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얼른 자.”
그렇게 말하곤 나가 버린다. 문이 닫히고 피스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피스를 쓰다듬어 주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라는 건 시스템 제작자들과 비슷한 수준은 된다는 뜻이겠지.’
그냥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그런 수상쩍은 놈들이 유현이와 관계가 있다. 심지어 이미 간섭을 했다. 시스템 제작자들이 나를 위한 던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무엇보다도, 이번에 말한 간섭은 회귀 전과는 다른 진행일 것이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으니, 당연히 유현이는 훨씬 더 빠르고 수월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아무 문제 없이. …아무 문제 없어야지. 이번에는.
이번에는.
휴대폰을 들었다. 잠깐 미간을 좁혔다가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로 먼저 전화를 다 하는 거지.]“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성현제. 이 인간이라면 아는 게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회귀 전의 행보만 보아도 수상한 점이 많았던 남자다. 갑자기 한국에서 물러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행방이 묘연해진 것도.
믿을 만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남은 터럭이라도 만져 보지.
“유교 같은 사이비 종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대답 대신 나직한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그것을 듣자마자 제대로 짚었다 싶었다.
[종교 권유라도 받았나?]“아니요.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한유진 군의 개인적인 호기심이라면, 도련님 관련이겠군.]“알면서 굳이 확인하지 마시고 대답부터 해 주시죠.”
[평소보다 날이 섰군. 애지중지하는 형님 괜한 일에 끌어들였다간 도련님이 화낼 텐데.]“제가 화내는 건 괜찮습니까?”
짧은 침묵 뒤, 흥미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가진 걸 강가 조약돌처럼 흩어 놓기만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우리 한유진 군이 어린 도련님보다야 훨씬 위험하지. 말해서 무엇 할까.]성현제의 말대로다. 나는 내내 손 놓고 있었다. 쓸데없이 예리한 이 남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력을 키워 나갈 자신이 있다. 이미 자리는 잡혔다. 블루를 성장시키면 피스를 제외한다더라도 내 소속인 S급이 둘이다. 그에 더해 유일한 아이템 제작자인 명우도 있다. 또 다른 S급인 윤윤을 정식으로 데려오는 것도 어렵진 않을 터다.
뿐만일까. 다른 S급 헌터들에 대한 정보도 차고 넘친다. 특수 스킬 헌터도 얼마든지 키워낼 수 있다. 계약으로든 또 다른 무엇으로든 헌터들을 묶어 놓기도 쉽다. 던전에 대한 정보에 아이템도, 그 밖의 다른 많은 것들도.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많고 많았다. 심지어 시스템 제작자들에게 부탁하여 내게 유리하게 던전 출현 시간을 맞출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냥.
유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5년 후의 내 동생을. 그리고 그 이후의.
이번에는 순수하게 뿌듯해하고 감탄하며 지켜볼 수 있을 텐데.
“그럼 말씀해 주시죠.”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보여 줄 수는 있을 듯하네만.]말로 할 수는 없다, 라. 사이비 종교도 시스템 측처럼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게 제재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어쩌면 유현이도 잘 모르는 게 아니라 입막음당한 것일지도.
“그것도 나쁘진 않죠. 어떻게 보여 주실 겁니까?”
[그때 그 팔찌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공유를 준비해 두게. 그리고 노아도.]“전부 준비되었다고 치고, 다음은요?”
[미끼를 물기 위해 S급 던전엘 들어가야지. 그 전에 날뛰는 도련님부터 진정시켜야 하겠지만.]…하필 S급 던전이냐. A급 정도라면 설득할 수 있을 텐데 S급은 좀. 게다가 던전이라는 것도 꺼림칙하다.
“A급 이하는 안 됩니까? 제 안전이 보장될지도 궁금합니다만.”
[걱정 말게. 그쪽에서도 자네를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그건 확실해.]목숨은 챙길 수 있다는 소리구만. 도하민과 윤윤에 대해 유현이에게도 말해 둬야겠다. 윤윤이 바로 연락이 될지가 문제지만, 중국 가서도 SNS 업뎃은 꾸준히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부하 찾으러 간 건지, 관광하러 간 건지. 중국은 SNS 차단되어 있을 텐데 잘도 관광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날 해칠 생각이 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시스템도 그렇고 입에 바느질을 해 놨나, 죄다 두리뭉실하다.
[던전은, 바꾸려면 핑계가 필요한데. A급 이하 던전에 한유진 군을 굳이 데리고 갈 이유가……. 데이트 신청이라도 해야겠군.]…왜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튀어 버리는 건데. 이 인간 진짜. 확 끊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들어 보자 나름 그럴듯한 핑계긴 했다.
[저번 A급 던전에서 유적들에 꽤 흥미를 보였지 않나. 구경하기 좋은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어. A급 하위 던전의 호숫가 성이지. 높은 탑이 여럿 솟아 있고 중앙의 가장 큰 탑은 훼손도 거의 되질 않았다네. 날씨도 좋고 비행형 몬스터도 없지. 물속의 몬스터만 잠시 잊으면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풍경이야.]“S급 헌터가 관광 가이드라니, 사치스럽군요.”
[그러게 정성이 대단하지 않나? 한유진 군을 위해 내가 이 정도까지 해 줄 수 있다는 거지.]잘나셨어, 정말.
아무튼 약간의 억지를 덧붙이면 이삼 일 놀러 갔다 올게, 할 수 있는 수준이다. A급이라도 하위에 비행 가능한 노아가 있으니 빠르면 이틀 안에 나올 수 있겠지. 물속에 몬스터가 몰려 있는 식이라면 더 빠를 테고. 전기에 독. 수중을 분탕 쳐 놓기 딱 좋은 속성이다.
“인원이 더 늘어나는 건 안 되겠지요.”
[A급 헌터 몇 정도는 괜찮겠지만 도련님은 안 돼. 감당해 볼 만해야 찔러주지 않겠나. 노아도 약간 불안하지만 안전상 어쩔 수 없으니.]적당한 인원으로 던전에 들어가면 그쪽에서 접촉해 올 거라 이건가. 대충 봐도 위험한 방법이긴 하다. 성현제가 그쪽과 손잡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고. 말하는 내용을 보면 유현이보다도 관계가 깊은 것은 확실했다.
‘윤윤이 도깨비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뛰어들기 꺼려졌겠지만.’
목숨만 붙어 있으면 구해 주겠지. 혹여 날 죽일 생각이라면 이런 수고까지 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호랑이가 토끼 사냥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함정까지 공들여 설치하겠는가. 그냥 툭 치면 죽는데.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알아내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까. 배구공의 말과는 다르게 위협적이라면.
상태창을 열고 칭호를, 스킬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보은(L)]키워드 감화 대상이 사망 시 대상의 스킬과 능력치를 두 배로 전이받는 스킬. 보은이라니, 새삼 어이없어지는 이름이었다. 보은 소리 할 거면 기억 전이라도 없애 주든가. 완벽한 양육자 칭호 스킬 이름은 사슴 놈이 지었다고 했지만 이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육자 칭호 스킬인 마지막 보답에서 약간 바뀌기만 했을 뿐이기도 하고.
‘…A급으로도 충분하겠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도 있으니까. 그리고 A급 수준을 적용받으면 S급까지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송태원이 언급한 특수격리소를 떠올렸다. 상급 헌터에게 달콤한 사회임에도 특별한 처리까지 받아야 하는 범죄자. 쓸 수는 있겠지. 스킬 이름들을, 키워드를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도 않는 아이러니함이지만.
– 삐약삐.
한참을 스킬창만 바라보고 있자 무릎 위의 삐약이가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불현듯 상태창을 닫고 삐약이를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 삐약.
“삐약이 너도 괜찮을 거야. 던전에는 실수로라도 들어가지 말고.”
– 삐약삐약!
사랑스럽게 벌어지는 노란 부리도, 동글동글 보드라운 몸뚱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다. 어떻게 이렇게나 귀엽게 태어났을까, 우리 삐약이. 배구공 그 새끼, 진짜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든다.
“아빠가 너 하나 못 지켜 주겠냐.”
물론 다른 애들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 * *
세성 길드장과 데이트… 가 아니라 관광 간다는 소리에 유현이는 당연히 반대했다. 저놈이 순순히 괜찮다 했으면 내가 더 놀랐을 거다.
비행형 몬스터 없고 노아도 있고 독 스킬 독 저항에 구슬까지 줄줄이 늘어놓고 나서야 그럼 괜찮겠지, 가 나왔지만 당연한 수순으로 자기도 가겠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걸 또 좋은 말로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실종되거나 하면 도하민과 도깨비에게 연락하면 돼. 바로 찾아서 무사히 빼낼 수 있으니 걱정 그만해라.”
[그렇다고 해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사이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형 저항 스킬이 좋은 건 알지만 만능은 아니잖아.]“만약 내 상태가 이상하면 나 데리고 아무 던전 게이트로 가서 노크 세 번 하게 하고 들어가. 시스템 관리자가 도와줄 거야.”
아직 날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했으니 무슨 수든 써 주겠지.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대비다. 물론 죽으면 끝이지만.
유현이 녀석 설득하고 명우에게도 말해 두고 애들도 맡겨 놓고. 이런저런 정리 다 끝내고 노아와 함께 건물을 나섰다. 물론 노아에게도 네 탓이 아니란 말을 덧붙였다.
“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에요. 노아 씨와는 관련 없습니다. 오히려 저 때문에 노아 씨를 번거롭게 만드는 거라 미안한걸요.”
“아니에요, 전혀요.”
세성 길드장과 던전에 들어간다는 말에 안절부절못하던 노아가 그제야 진정했다. 그런 그에게 샬로스의 구슬이 달린 목걸이를 효과 설명과 함께 건네주었다. 내 일에 휘말려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대비를 해 줘야지.
“게이트석 있다고 했죠?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이걸 쓰고 게이트로 가서 탈출하세요.”
“한유진 씨는요?”
“제 것도 있어요. 여기.”
똑같은 목걸이 형태로 인벤토리에 여분이 하나 더 있다. A급 던전에 들어간다고 하자 명우가 쓰기 쉽게 목걸이로 만들어 주었다.
주차장으로 가자 성현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답지 않게 들뜬 기색이다. 신이 난 거 같아 보이기도 하고. 차 문까지 직접 열어 주며 눈웃음을 짓는다.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지 않나?”
“추가 비용 덕지덕지 붙는 옵션 관광이 아니길 바랍니다.”
“팁 정도만 받겠네.”
한 재산 넘칠 만큼 있으실 분이 뭔 팁이야. 나름 첫 해외(?) 관광이니 노팁 노옵션 원합니다.
투덜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A급 던전, 호수의 성. 아직 만나 보지 못한 국내 S급 헌터, 윤경수가 길드장으로 있는 수담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