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Side Story 119 A Story of the Future (1)
외전 119화
어느 미래 이야기 (1)
[이제 곧 나타날 가상의 세상을 현재에 가깝게 만들어 주세요!] 테스트용으로 받았던 이야기 공략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땐 회귀 전의 나와 유현이를 화해시켰었지. 이번에도 비슷한 스토리이려나.“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으니 들어 주세요! 여러분은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세상으로 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미래이자 과거의 세상을 현재 상황과 유사하게 바꾸는 거예요. 예를 들어 브레이커 길드가 사라졌다, 하면 다시 만드는 거죠.”
“브레이커 없어졌어?”
이사벨라가 의아해하며 현아 씨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눈치였다. S급 길드가 사라져 버렸다는 소리이니.
“길드는 망했다더라. 나는 멀쩡하게 해외로 떴고. 이제는 그럴 일 없지만.”
현아 씨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묵묵히 서 있는 송 실장님을 팔꿈치로 툭 쳤다.
“송태원 씨는 무려 사망했는걸.”
“뭐? 크레이지 송이?”
“송태원이 죽었다고?”
“대체 어쩌다가 무슨 수로요?”
이번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다 못해 경악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S급, 그것도 대인전으로는 순위를 다툴 헌터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송 실장님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세상 밖의 존재가 던전에 난입하여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억울한…….”
송 실장님의 목소리가 도중에 뚝 끊겼다. 성현제를 아직 완전히 기억해 내지 못한 탓이었다. 송 실장님이 너무 혼란스러워하기 전에 내가 얼른 나섰다.
“송 실장님은 던전에서 이 사람을 보호하신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아직 들고 있었던 꽃을 향했다. 박하율이 이파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아니, 말하는 꽃 말고.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요! 성현제. 지금은 이런 꼴이긴 하지만 원래는 우리 세상 사람이거든요.”
“송태원 씨는 나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지.”
성현제가 뻔뻔하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니라고 반사적으로 외칠 뻔했다. 근데 또 송 실장님이 성현제 씨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란 말이야.
“아주까진 아니고, 대충 친구 엇비슷한 정도지만요. 덕분에 던전에서 여기 이 성현제 씨만 살아 나왔고, 송 실장님을 살해한 게 아닌가 하는 누명을 쓰게 됐습니다.”
이건 미리 말해 두는 게 좋겠지. 던전 관리자가 사실은 송태원 살해 용의자다! 하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참가자들이 불안해할 테니까.
“덧붙여 회귀 전의 세성 길드장 역시 성현제 씨입니다.”
“제가 저 조그만 미남에게 길드를 빼앗긴 건가요……! 용도 아니랬는데!”
“어, 소영 씨는 원래 A급이었어요. 예림이처럼요. 전기 같은 거 안 튀기고 순수한 드래곤라이더였죠.”
“등급 낮아진 건 아쉽지만 순수한 용기사는 마음에 드네요. 솔직히 저 파직거리는 거 별로예요. 저랑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소영 씨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시간 파편의 힘이 약화되자 자신에게 강제로 주어진 능력이 껄끄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모이는 장소는, 해연으로 하죠! 혹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해연으로 연락만이라도 주세요.”
노아 씨와 리에트 때처럼 자신과 관련된 지역, 한국을 벗어난 해외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으니까.
-던전 공략 시작합니다!
박하율의 말과 함께 안개가 덮쳐 든 듯 주위가 뿌옇게 흐려졌다. 앞뒤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어둑하다. 내 손에 들려 있던 박하율과 성현제도 어느새 사라…져야 하는데.
“…왜 아직 있는 겁니까.”
성현제 씨가 고개를 꺾어 나를 올려다보고 박하율이 잎사귀로 머리? 꽃잎을 긁적였다.
-형이 잡고 있어서인가 봐요. 내려놓으면 사라지지 않을까요.
“어, 그래.”
“외롭다면 데리고 가도 괜찮다네.”
“됐거든요. 성현제 씨야말로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엉뚱한 사고 치지 마시고.”
차라리 내가 농담 따먹기라도 해 주는 편이 낫지. 박하율 꽃을 내려놓자 둘 다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주위를 휘감는 강력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던전이, 회귀 전의 세상이 구성되고 있는 것이겠지.
‘어느 시기일까.’
사실 반가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비록 진짜가 아닌 남겨진 그림자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내 동생이 있으니. 뭐랄까, 내가 모르는 유현이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동시에 반가운 과거의 흔적.
요란하던 마나의 움직임이 점차 가라앉아 간다. 이번에는 약화되었던 저번과 달리 원래의 능력치를 가지고 나타나겠지만, 그래도 회귀 전 나와 유현이를 화해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오려나.
‘여기는.’
자욱하던 안개가 옅어지며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혼자 살던 집 근처였다. 근데 어째…….
‘헌터들끼리 대판 싸우기라도 했나.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파이고 건물 벽도 한쪽이 크게 갈라져 있다. 반 토막 난 채 나뒹구는 자전거와 깨진 유리 조각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중년 남자 한 명이 골목을 내달려 왔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뛰어오는 남자의 뒤로 날개 대신 가시를 단 작은 타조 같은 것이 쫓아온다.
몬스터? 근처에서 던전이라도 터졌나? 길게 생각할 겨를 없이 곧장 신살창을 빼 들며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몬스터의 부리 끝이 남자의 옷자락을 낚아채기 직전.
촤아악-
연검의 형태로 길게 휘둘려진 새하얀 날이 길게 늘어진 괴조의 목을 후려쳤다.
-키엑!
하급이 아닌, C급 몬스터라 단숨에 목이 잘리진 않았다. 그러나 충격을 받고 움츠리는 놈의 목을 순식간에 형태를 변환한 창으로 꿰뚫었다. 내 유일한 공격 스킬인 찌르기만큼은 버프와 장비 덕에 중급 수준은 되니까 말이야.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바닥에 쓰러졌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붉은 피가 스며든다. 대낮부터 중급 몬스터가 돌아다니다니, 이게 무슨 난리람. 나 살던 주위에 이런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은 없었는데… 던브 때 처리되지 못한 몬스터가 여기까지 도망친 걸까.
“괜찮으세요?”
거의 엎어지다시피 한 채 헐떡거리던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눈을 커다랗게 치뜬다. 참, 나 이 시점에선 평판이 영 좋질 않았었지. 그래도 저렇게 경악할 필요까지야.
“하, 한유진? 대체 어떻게 여기에……!”
“여기 사는 사람이니 당연히 여기 있지, 뭘 그리 놀라신담. 어쨌든 구해 줬으니 감사하다는 소리부터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양심이 있다면 말이야.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창피가 아닌 분노였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인데 뭐? 감사?”
…나 때문이라니. 던전에서 나만 연달아 혼자 살아남으면서 불운을 몰고 다닌다는 욕을 먹은 적은 있었다만 그게 내 잘못도 아니고 말이야.
“아, 예. 내가 던전 만들고 몬스터도 만들고 터뜨리기까지 한 모양입니다. 나도 몰랐네.”
“너만 아니었어도 해연 길드장은 살아 있었어!”
대충 듣고 넘기려던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강하게 찔러 들었다. …뭐?
“해연 길드장이, 유현이가 죽은 겁니까?”
남자가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을 구하다가 죽었잖아!”
유현이가 나를 구하다가 죽었다. 가슴 안쪽이 얼어붙듯 서늘해지면서 입안이 바싹 말라붙었다. 설마, 지금 이 시점은. 마른침을 삼키며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등급이 변해 버린 던전 사고를 말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유현이가 나를 구하려고 던전에 들어갔는데, 유현이는 죽고… 나만 살아 나온 거라고?”
“그래! 전부 다 네놈 탓이다!”
남자의 분에 찬 목소리가 귓가를 왕왕 울렸다. 정말이었다. 지금 이 시점은… 내가 시간을 되돌리지 않은 미래였다. 소원석을 얻지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소원을 빌었는지 나 홀로 살아남아 던전을 빠져나온 후의 이야기.
단순히 회귀 전 시점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내 동생은 이미, 죽은 후구나. 나만 살리고 떠나 버린 뒤로구나.
“…제 동생이 죽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습니까.”
남자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순순히 입을 열었다.
“…2년쯤? 얼굴은 분명 한유진 그놈이 맞는데. 아니, 애초에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대충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설명 좀 해 주시죠. 한유현이 죽고 저는, 한유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때 당연히 해연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지. 해연 길드장은 한국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헌터였으니까. 그런데 F급 하나 때문에… 젠장.”
난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되었겠구만. 그걸 생각한다면 남자의 반응은 내가 구해 줘서인지 상당히 온건한 편이었다. 일단 내 말을 들어 주고는 있으니 말이다.
“처형하자는 말까지 나왔지만, 사실 한유진이 일부러 죽인 건 아니긴 하니까.”
“범인은 따로 있었고요.”
“…뭐?”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원흉인 디아르마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내가 욕먹을 일은 아니었다. 난 그냥 던전 공략을 했을 뿐이니까. 설사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디아르마는 나를 노렸을 것이고. 이때는… 이때의 우리에게는 빠져나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양심의 가책은 있었던지 거의 미쳐 버렸다고 하던데, 어째서인지 세성 길드에서 책임지고 한국에서 추방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떠난 뒤론 아무도 소식을 몰라.”
“세성이요? 아, 하긴.”
성현제 씨겠구만. 그에게는 꽤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양육 대상을 잃은 양육자를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심지어.
‘…유현이가 나를 구하고 죽었다면, 칭호도 얻었겠지.’
이곳의 나 역시 완벽한 양육자 칭호를 가졌을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도 덤으로 얻었으니 그 잘난 성현제로서도 놓치기 아까운 패였다. 아마도 정신 줄 놓은 나를 잘 달래어 회복시키려 하고 있지 않을까. 마침 휴양하기 좋은 동네이기도 하니.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끼리 양 떼에 둘러싸여 설산 바라보는 풍경을 떠올리자 영 싱숭생숭해졌다. 기분 묘한 미래구나. 이렇게 될 수도 있었다, 라.
“그 후로 한국 헌터계가 불안정해지고 던전도 몬스터도 점점 더 강해지고…….”
남자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중하급 헌터들은 물론 상급 헌터들의 피해도 늘어났지. 결국 요샌 중하급은 툭하면 터지고 상급까지 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고. 던전이 가장 많은 서울은 몇몇 안전 구역을 제외하곤 폐허로 변했어.”
“…서울이 망했어요?”
“망했지. 망한 지 서너 달쯤 됐어. 다른 나라들도 던전이 많은 중심 도시는 포기하는 추세야. 다행히 몬스터들이 던브 지역에서 잘 벗어나지 않거든.”
그렇다고 지방의 한 도시에 사람이 모였다간 그곳의 던전 발생률이 올라가기에 서울에 안전 구역을 만들고 지방의 인구를 조절 중이라고 하였다.
“그나마 상급 몬스터는 어떻게든 최대한 처리하고 중급도 우선 제거대상이라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대부분 하급이지. 그래서 안전 구역 밖에서 숨어 사는 사람들도 많아. 서울 인구를 죄다 옮기고 보호하는 건 불가능하니, 어쩌겠어. 나라에서도 그걸 권장하면서 아무 빈집에 들어가 신고하면 수도 전기도 공짜로 연결해 주지.”
한강 뷰 펜트하우스에서 며칠 살아 봤다며 남자가 씨익 웃었다. 높은 층은 위험하니 지하가 최고라지만.
“나도 E급까진 상대할 수 있는데 쇼핑 좀 멀리 나왔다가 C급한테 걸리는 바람에. 참,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 중급 헌터 같던데 얼굴만 닮은 거 맞지?”
아무래도 내가 진짜 한유진은 아니다 싶었는지 남자가 적의를 지우면서 넉살 좋게 감사 인사를 해 왔다.
“그렇다고 치죠 뭐. 근데 이 상황에 쇼핑이요?”
“어, 피난 간 사람들이 남겨 둔 물건 뒤지는 거지. 나라에서 허가도 했다고.”
남자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위험하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주위는 유독 고요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몬스터 사체 주위로 파리가 날아든다.
‘이 세상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점점 강해지는 몬스터를 당해 내지 못하고서. 유현이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겠지만. 송 실장님이 살아 있었다면, 현아 씨가 떠나지 않았다면, 예림이가 S급으로 각성했다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와, 이 사태를 대체 어쩌라는 거냐. 설마 이 망한 세상 구하라는 건 아닐 테고 최대한 현재와 가깝게 만드는 정도면 되겠지. 그것만으로도 시간 파편을 상당 부분 정화하는 게 가능하댔으니.
‘정 안 되면 공략 한 번 더 하지, 뭐.’
아직 던전을 한두 번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우선.
‘해연부터 바로잡아 볼까.’
예전 퀘스트 때처럼 뿔뿔이 흩어지면 해연으로 모이자고 약속해 놓았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리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은 멈췄을 거고 어디 가서 바이크라도 슬쩍, 아니 쇼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