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Side story 120 A story of the future (2)
외전 120화
어느 미래 이야기 (2)
본격적으로 망한 지 아직 서너 달 정도밖에 안 지나서인가 거리는 아직 꽤 멀쩡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작은 바이크 가게를 찾아 거의 털린 와중에도 아직 남아 있는 하나를 골라잡았다. 자동차를 털, 아니 쇼핑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길이 멀쩡할 가능성은 낮겠지.
괜히 소음을 내 몬스터를 끌어들이면 귀찮아지기에 큰 도로까지는 바이크를 끌고 이동했다. 가는 길 내내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엉망이구만.’
군데군데 창문이 깨진 빌딩과 부러진 가로수 사이의 6차선 도로. 침묵만이 내려앉은 그곳에 반파된 승용차 한 대가 굴러다닌다. 여기 이 길이 대낮에 이렇게까지 텅 비어 있다니. 신호등도 꺼졌네.
‘아까 그 아저씨가 날 한유진으로 봐 줬으니까.’
유현이나 예림이 등 다른 사람들도 원래 그대로 인식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유현이가 해연으로 가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하면 먹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외모만이 아니라 능력치도 비슷하니 던전이 어쩌고저쩌고 적당히 살 좀 붙이면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여기저기 부서진 도로 위로 서서히 속력을 올려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까마득히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그날이 떠올랐다. 유현이가 죽고 망할 도마뱀 새끼도 죽이고.
‘나도 그냥 거기서 끝내려고 했었지.’
가만히 누워 있으면 저 지독한 독 기운에 죽겠구나, 하고서. 하지만 결국 죽지 못했을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가 독 저항을 부여해 주었을 테니. 간판이 떨어진 편의점을 지나쳤다. 쇼윈도를 뚫고 쓰러진 화려한 옷차림의 마네킹이 언뜻 사람으로 보였다.
‘소원석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가정해서 만들어진 세상인 걸까.’
내가 다른 소원을 빌었을 것 같진 않았다. S급보다 더 강해진다거나 던전과 각성자를 없애 버리는 등의 소원을 떠올리긴 했겠지만, 결국 그런 건 유현이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었다. 동생이 아니었으면 던전 들어갈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이래 봬도 꽤나 소시민적인 성향이라서.
– 까아악!
빌딩 위로 검은 새 떼가 맴돌았다. 평범한 까마귀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중 서너 마리가 나를 발견하곤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한다. 바이크를 옆으로 크게 꺾으며 살쾡이 총을 꺼내들었다.
– 까욱! 깍!
바로 쏘지 않고 바이크를 비스듬히 몰며 총에 마나를 충전했다. 도로를 스치듯 낮게 날아온 검은 새가 2미터쯤 됨 직한 날개를 크게 펼치며 나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사냥감을 덮치기 직전,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총을 맞은 괴조가 크게 덜컹이더니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른다. 바이크 속력을 순간적으로 올려 몬스터 시체를 피하고 쓰러져 있는 트럭 옆으로 바싹 붙어 달렸다. 쿵! 나를 덮치려던 또 다른 괴조가 트럭에 가로막혀 부딪쳤다.
– 까아아!
거참 시끄럽구만. 아직 남은 새들을 돌아보는데 놈들이 돌연 하늘 위로 푸드득 급하게 날아올랐다. 잠깐만, 설마.
콰앙!
역시나! 골목 사이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몬스터가 가로수를 짓밟으며 도로로 뛰어든다. 자기보다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감지하고 괴조들이 도망친 것이었다.
– 크르르르!
오, 쟤 알아. B급이야. 근육질 곰처럼 생긴 몬스터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날카롭게 드러난 송곳니 사이로 침이 질질 흐른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로구나. 상태 안 좋은 길임에도 최대한 속도를 올려 보았지만 굶주린 곰은 끈질겼다. 심지어 속도도 상당했다. 잠깐 멈춰 상대를 해 줘야 하나 싶은 그때.
촤아아아-!
– 크르륵?
곰을 향해 물벼락이 떨어지더니 그대로 완전히 휘감아 버린다. 숨이 막힌 몬스터가 버둥거리고 하늘 위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예림아!”
예림이도 해연으로 향하는 도중이었나 보구나. 얼른 바이크를 세우자 예림이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아저씨! 서울이 엉망이에요! 회귀 직전엔 진짜 심각했었나 봐요. 중국 던전에선 괜찮아 보였었는데.”
아파트 단지 하나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면서 예림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이때도 살아 있었어요?”
“그게, 나도 잘 몰라. 지금 이곳은 내가 회귀한 시점에서 2년 후의 미래거든.”
“2년 후의 미래라고요? 어, 그럴 수가 있어요?”
“진짜가 아니라 만들어 낸 던전이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몬스터들이 훨씬 더 강해져서 헌터들의 수가 줄어든 모양이야. 그래서 던전이 툭하면 터져 나가 이 꼴 난 거고. 일단은 해연으로 가자. 유현이는 아마 해연에 떨어졌을 거야.”
예림이가 바이크 뒤쪽에 나와 등을 대고 걸터앉았다. 질식사한 곰 몬스터가 물과 함께 철푸덕 떨어졌다. 멀리서 눈치를 살피던 괴조가 다시 날아들었으나 가까이 오기도 전에 얼음 화살에 꿰뚫렸다. 든든하구나, 예림아.
예림이도 합류했겠다 거침없이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갔다. 탁 트인 도로변의 상가는 멀쩡한 곳이 거의 없었다. 바리케이드를 높게 쳐서 막으려 했지만 결국 뚫린 곳도 보였다.
“…아저씨가 회귀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었을까요.”
“글쎄다. 던전 등급이 점점 오를 거라고 했으니…….”
이런 결말을 벗어나긴 힘들었을 것이다. 꿈이나 환각과 다를 바 없는, 맞닥뜨릴 일 없는 미래라고 해도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길을 따라 교대역 쪽으로 향해 가는데 도로를 막아선 높은 담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에 얼른 파티용 가면을 꺼내 썼다.
“앗, 아저씨 저도 얼굴 가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넌 괜찮을 거야. 이곳의 넌 스물두 살이잖아.”
성인끼리라면 모를까 열여섯 살과 스물두 살을 동일인으로 생각진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동생이나 친척으로 여기겠지.
“정지하십시오.”
방어벽 위에서 중급 헌터가 뛰어내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뒤쫓아 온 몬스터는 없습니까?”
“몇 마리 있었는데 전부 처리했습니다.”
“헌터시군요. 하긴 여기까지 멀쩡히 바이크를 타고 도착했으니.”
“전 하급이지만 제 뒤엔 상급이라 편하게 왔지요.”
예림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헌터가 최근에 각성했느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림이를 알아보진 못했다.
“혹시 해연 길드 면접을 보러 가시는 건가요? 상급 전투계는 전과가 없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해연 소속 헌터였구나. 아마 이 방어벽 자체를 해연이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연 길드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 일부가 서울의 안전구역 중 하나겠지. 헌터의 수신호에 방어벽의 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바이크를 천천히 몰아갔다.
“이 안은 멀쩡하네요?”
방어벽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 비해 훨씬 멀쩡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조금 더 가자 사람들이 오가고 차량도 드문드문 보였다. 구역이 좁아서인가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같은 게 더 많았다.
“좀 한산하긴 해도 평범한 서울 같아요.”
“그러게. 가게들도 거의 다 문을 열었어.”
물론 현재의 서울 시민들보다 표정이 조금 어둡긴 했다. 습관적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 던전이 생각나네. 높은 벽으로 감싸진 도시. 대부분의 던전이 터져 버리면 우리 세상 사람들 역시 방어벽 안에서 숨어 살아가게 되겠지.
이제는 그럴 일 없긴 하지만.
저만치 보이는 해연 길드를 향해 다가가는데 마나로 이루어진 푸른빛 잎사귀가 우리 앞으로 팔랑 날아들었다. 얼른 바이크를 멈추자 다시 잎 하나가 다가왔다. 저쪽 골목 안이구나. 바이크를 길가에 세우고 보는 눈 없는 건물 사이로 들어가자 유현이가 나타났다.
“형.”
“유현아, 별일 없었어?”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유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연 길드 근처로 보내져서 모습을 감춘 채 형을 기다리고 있었어. 얼굴을 드러내면 여기 있을 나와 혼동될 것 같아서.”
“참, 한유현도 두 명 된 거겠네요. 아저씨도 있을 거고.”
“어, 그게…….”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이곳은 그 일이, 유현이가 나를 구하고 죽은 일이 벌어진 후의 2년이야.”
예림이가 움찔 유현이를,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유현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죽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색이었다.
– 여기 유현이가 죽었어요?
유현이의 어깨 위로 올라오며 린이가 입을 쫙 벌렸다.
“그럼, 한유현만 죽고… 아저씨는 시간을 돌리지 않은, 그런 거예요?”
“아마도. 소원석이 아예 나타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 이곳의 나는 혼자 살아 나와서, 스위스로 보내진 것 같아.”
그쪽에 성현제 씨가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유현이와 예림이는 아직 성현제 씨를 기억 못 하니.
“아저씨가… 혼자…….”
예림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물기가 희미하게 감도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일이 아니잖아요. 아저씬 괜찮은 거예요? 한유현이 죽고 아저씨 혼자 살아남은 건데! 그것도, 아저씨를…….”
나를 구하려다 동생이 죽었다. 그리고 이곳의 나 역시 유현이의 기억을 전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독 저항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는.
‘…유현이와 맞바꾼 목숨인데.’
차마 할 수 없었겠지. 사형 여론이 들끓었을 때 오히려 반갑지 않았을까. 어쩌면 해연 길드원이나 또 다른 누군가가 분을 못 이기고 덤벼들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예림아, 우선 여긴 진짜가 아닌 던전이야. 아무리 현실적이라도 현실은 아니야.”
던전 속의 나와 유현이가 진짜 세상의 존재가 되긴 했지만 그건 세상을 창조해 내는 근원이 개입한 특이케이스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던 과거이기도 했다. 시그마와 회귀 전 성현제 씨도 마찬가지고. 시그마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길고 긴 시간을 필요로 했고 회귀 전 성현제 씨는 현재의 성현제 씨의 몸을 빌렸다가 결국은 사라졌다.
마찬가지고. 시그마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길고 긴 시간을 필요로 했고 회귀 전 성현제 씨는 현재의 성현제 씨의 몸을 빌렸다가 결국은 사라졌다.
그렇게나 까다로운 대가가 필요하건만 심지어 이곳은 아예 있었던 적 없는 미래였다.
“또한 나와 이곳의 한유진은 달라. 1년이나, 2년이나 다른 삶을 산 사람을 동일인이라고 말할 순 없어.”
갈라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그래도요. 전 아저씨가 한유현 때문에 슬퍼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고요. 그런데 여기는, 한유현이 아예 없고…….”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며 예림이가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우리 착한 예림이. 예림이를 안아 토닥여 주었다.
“나도 좀 신경 쓰이기는 해.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나름 열심히 살고 있을걸?”
“정말이요?”
“그래도 나이긴 하니까 대충 짐작은 가거든. 뭐, 엄청 힘들긴 했겠지만 지금은 아마… 복수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디아르마 말이야.”
성현제는 디아르마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죽고 싶어 하는 나에게 유현이를 살해한 진짜 범인을 가르쳐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계약으로 인해 디아르마의 손에 들어갔을 유현이의 시체까지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초월자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했으면 나도 지금 여기 못 서 있지. 안 그래?”
“…맞아요.”
예림이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아, 하고 유현이를 홱 돌아보았다.
“여기 아저씨한테 다른 시간? 세상? 아무튼 한유현을 만나게 해 주는 건 어때요? 엄청 기뻐할 텐데!”
“스위스에 있다니까. 너무 멀어. 그리고 그게 그 녀석에게 좋은 일일지도 잘 모르겠고.”
TV 없이 폐관수련이라도 하고 있지 않고서야 소식은 결국 듣게 되겠지. 하지만 직접 만나는 건, 어떨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역시.
“이곳은 진짜 미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 지금까지 봐 온 과거 세상들은 실제라고도 할 수 있어. 정말로 있었던 일들이니까. 하지만 미래는 아니야. 여기는 예림이 네 미래도, 내 미래도 아니야.”
예림이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현실과 뒤섞이기도 했던 예전의 던전들과는 분명 다르다고. 이어 유현이에게 이 세상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 유현이 네가 해연 길드장이 되어야 해. 길드장으로서의 기억도 대충 다 돌아왔지?”
“다는 아니지만, 응.”
좋아, 지체할 것 없이 곧장 해연 길드로 향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 앞에 서서 거리낄 것 없이 가면을 벗어던졌다. 시선들이 쏟아지고 나와 유현이를 알아본 헌터들이 뻣뻣하게 굳어 선다.
“안녕하세요~ 한유진입니다.”
제가 돌아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