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Side Story 93 What kind of result
외전 93화
어떤 결과
여전히 컴컴한 가운데 저 멀리 빛이 반짝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작은 빛이 튀어 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몽환적인 광경을 자아낸다. 거대한 불꽃놀이를 축소하고 또 축소시켜 아주 빠르고 밀도 높게 연속적으로 터뜨리는 듯했다.
눈이 시리고 어지럽다. 분명 무척 아름다웠지만 무심코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그런 반짝임이었다.
그 속에서 성현제가 나타났다.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얼룩지는 얼굴이,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만 같았다.
“…정신 사나워요.”
“한유진 군이 내 빛은 잊은 듯하여.”
“아, 네. 성현제 씨도 눈 아프게 반짝거리시죠. 불만이면 형이나 동생 하나 만드세요. 시그마 씨 잘 꼬셔 보시든가.”
시그마가 나와 리에트 사이에서 성현제 씨의 반짝임에 대해 주장하는 건…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보호자가 출동할 일이었지만. 내 말에 성현제 씨가 시무룩한 척을 했다.
“내 도련님은 내가 제일 반짝인다 말해 주겠지.”
“입장이 뒤바뀐 거 아닙니까? 보호자인 성현제 씨가 아이한테 반짝거린다 해 줘야죠.”
양심 좀 챙기십쇼. 엉뚱한 헛소리를 주고받다 보니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던 머릿속이 조금쯤 차분해졌다. 어느새 발치로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을 보며 성현제 씨를 향해 눈 따가운 전깃불 좀 끄라고 손짓했다.
“물 차오른 데서 전기 쓰지 마십쇼.”
“나는 소영이가 아니라네.”
소영 씨라면 주위 사람 죄다 감전시켰을까. 성현제 씨가 스킬 컨트롤은 끝내주긴 하단 말이야.
아침 해가 떠오르듯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며 다른 사람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형태로 돌아온 리에트가 입맛을 다셨다.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퀘스트가 끝나 버렸어~.”
“…손가락이라도 깨물어 보든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보고 싶은 건 역시 잘 이해가 안 갔다. 차라리 노아 씨를 먹고 싶다고 하면 태생 S급은 흔히들 그러나 보구나, 할 텐데.
“노아 씨는 정말로 괜찮은 거예요?”
노아 씨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물었다. 지나간 과거는 미련 없이 흘려보내겠다고 해도 그렇게나 생생한 자신과 누나였는데 아무렇지 않기란 힘들지 않을까. 나를 잠시 바라보던 노아 씨가 입을 열었다.
“한유진 씨도 알고 있는 듯합니다만, 원래는 제가 죽고 누님이 홀로 살아남았었지요.”
노아 씨는 중국 던전에서 동생을 잃은 리에트를 만났었다.
“그건 아마도 저와 누님 둘 중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을 결과였을 겁니다.”
“맞아, 노아를 지키지 못했다니 한심해.”
리에트, 그 리에트도 너라는 거 인식하고 있는 거냐. 다른 사람이 아닌 네 과거라고, 네 과거. 누워서 침 뱉기야.
“보편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는 두 명 다 살아남아 화해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문득 내 곁에 서 있는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저 두 사람과 우리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양쪽 다 초월자에 의해 형이, 동생이 노려졌다. 소중한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동생은, 누나는 비틀린 선택을 하였다.
“…그럼 노아 씨가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었을까요.”
“적어도 저와 누님에게는 최선이었겠지요. 누님이 사망함으로서 저는 더 이상 위험해지지 않을 겁니다. 누님과 디아르마, 양측으로부터요. 안정을 되찾고 주위를,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겨나겠지요.”
노아 씨가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살피고 되새겨 본 끝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보다는 더 나아질 겁니다. 저는 어쩌면 누님을 계속 원망하면서, 또 어쩌면 용서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겠지요.”
모든 의욕을 잃고 무반응했던 퀘스트 속의 노아 씨를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그때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리에트와 완전히, 영원히 분리되어 더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서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었을 테니. 그를 도우려 했던 길드원들과 다시 만나 새롭게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리에트의 동생이 아닌 오롯이 노아로서.
“한유진 씨도 보았다시피 누님께서는 안심하며 기뻐했고요. 누님께서도 자신이 없어져야만 제가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혼자 두기에 제가 너무 약해 보였겠지요.”
리에트는 유현이가 내게 그러했듯이 노아를 떼어 놓지 못했다. 유현이만큼 요령이 없었던 탓도 컸을 것이다. 동생의 위치인 덕에 나로부터 인간 사회에 대해 배웠던 유현이와 달리 리에트에게는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었으니까.
“위태로운 동생을 어떻게든 끌어안고 있던 누님의 앞에 제가 나타났습니다. 누님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 미래의 제가요. 그때 누님께서는 저를 홀로 두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응, 분명 그랬을 거야. 노아 넌 훨씬 더 반짝반짝 강해졌으니까. 그리고 그 노아는 나와 멀어지길 원했어.”
리에트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난 그러기 힘들 테니까. 잠깐 멀어졌어도 금방 보고 싶다고 불쑥 나타날걸?”
“누님은 제멋대로시니까요.”
결과적으로… 회귀 전의 리에트와 노아는 서로 원하던 것을 얻었다. 나로서는 잘되었단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 두 사람은…….
“…그래도 전 역시 두 사람 다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살아 있잖아?”
리에트가 노아의 뒤쪽에서 두 팔을 뻗어 흔들어 보였다.
“네, 살아 있지요.”
노아 씨도 웃으며 말했다. 둘 다 퀘스트 속에서 있었던 일에는 별다른 미련이 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노아 씨는 오히려 남아 있던 무언가를 떨쳐낸 듯 후련해 보였다.
“솔직히 그쪽 누님께서 죽을 때 조금 속 시원하기도 했어요.”
“…노아 너 아직 나한테 화난 거 남았어?”
“네. 그럼 전부 다 풀렸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으, 으응.”
리에트가 쪼그라들었다. 노아 씨 그간 쌓인 화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구나. 하긴 용서를 했다더라도 이따금 울컥울컥 할 수는 있는 법이니까. 리에트가 노아 씨를 괴롭힌 게 일이 년 치도 아니고, 심지어 여전히 사고 치고 다니잖아. 만약 리에트가 동생이었으면 노아 씨한테 하루가 멀다 하고 등짝 맞았을 거다.
“동시에, 누님께서 절 많이 아끼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동생이니까 당연하잖아!”
“그러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괜찮았어요.”
노아 씨가 나를 돌아보며 한층 유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내게는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던 그 모습이 노아 씨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노아야, 나 칼로 한번 푹 찌를래? 그럼 기분이 나아질지도 몰라.”
“그러지 말고 제멋대로 움직이기 전에 제게 말이라도 해 주시고 폭력보다는 대화를 먼저 하도록 노력해 주세요.”
“그냥 찌르면 안 돼?”
“밤 열 시 이후론 혼자 말없이 돌아다니지 마시고요. 사유지 무단 침입 좀 자제해 주세요.”
“세 번쯤 찔러도 돼.”
누가 동생인지 모르겠구만. 폭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리에트를 노아가 능숙하게 막아 냈다. 누나의 그림자만 봐도 주눅 들었던 예전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범하게 사이좋은 남매처럼 보였다.
정말로… 잘되었다.
“이제 정리가 된 모양이로군.”
한발 물러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제 씨가 입을 열었다. 리에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성현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너 좀 낯익은 거 같아. 어? 자기 동생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시간 파편이 줄어들어서인가 리에트가 유현이와 성현제 씨에게 기시감이 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다, 노아 넌 기억나니?”
“전 잘 모르겠어요.”
태생 S급인 리에트와 달리 노아 씨는 아직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 예림이도 유현이를 기억하지 못하려나. 예림이가 얼른 유현이를 알아봐야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텐데 시간 파편을 대체 얼마나 없애야 하는 거야?
“유현이 넌 뭐 떠오르는 거 있어?”
“…형.”
“그래, 유현아.”
유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운동도 해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지?”
“어… 뭐, 그렇다고는 하더라.”
하필 그것부터 떠올렸니. 이제 내 자유로운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건강… 중요하긴 중요하니까. 내일 마지막으로 야식 시켜 먹어야지.
“최근에는 운동 안 하지 않았어?”
“빈이 안고 업고 놀아 주고 하잖냐. 육아가 운동이야.”
“하지만-.”
“자, 슬슬 나가자! 얼른 돌아가서 일찍 자야지. 그래야 일찍 일어나고 운동도 하고!”
방이 사라지고 우리는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으로 다시 이동되었다. 백사장 한쪽에 던전 게이트가 둥실 떠 있었다.
“유진 씨를 사칭하는 것은 여전히 불쾌하지만 한유진 씨에게도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거대 열대어 박하율과 일광욕 중인 해파리를 바라보며 노아 씨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유진 씨와 유진 씨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은 두고만 보진 않을 겁니다.”
“아하하,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마주치자마자 사칭범 죽어라, 하고 칼 휘두르는 것만 아니면 뭐 괜찮답니다. 우리 모두 대화를 합시다. 대화를.
“재밌는 일 있으면 또 불러 줘!”
노아 씨와 리에트는 먼저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시간 파편도 처리하고 노아 씨와도 가까워졌으니 성과가 꽤 좋은걸. 이제 얼마쯤 남았으려나.
“하율아, 파편 많이 처리됐냐?”
– 음, 한 30퍼센트 정도 사라졌어요!
박하율이 지느러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30퍼센트? 저번에 없앤 게 14퍼센트라고 했는데?
“뭐야, 이번이 전보다 더 많다고 하더니 합쳐서 30퍼센트면 저번과 비슷하잖아.”
– 형이 도중에 나가면서 일부가 따라 나간 데다가 퀘스트 예외 사항이 이것저것 많아서 그래요! 멤버도 바뀌고 인식도 조절했고요. 그런 거치고는 많이 처리된 거라고요.
그렇긴 하지만 아직 70퍼센트나 남은 셈이잖아. 이대로라면 앞으로 최소 네 번은 더 공략해야 할 텐데.
“…50퍼센트 넘어가면 예림이가 유현이를 떠올릴 수 있을까?”
– 알 수 없어요. 예림이는 시간 파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절반 정도로는 부족할 확률이 더 높아요!
“뭐? 예림이도 걱정이지만 애들도 내 사칭범이 나타난 줄 알 텐데…….”
시간 파편 제거가 생각보다 더뎌지니 애들 생각이 절로 났다. 한숨을 내쉬는 나를 따라서 성현제 씨도 근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 역시 도련님이 잘 있을지 걱정이로군.”
“그러게요. 성현제 씨 쪽도 어르신한테 갑자기 어린애를 떠맡기게 된 셈이니까요.”
“관리자 선으로 내 상황을 전해 주기는 하였다만…….”
“전 그마저도 못 하니 더 답답해요.”
서로 비슷한 한탄을 하고 있자니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성현제 씨와 사사로운 고민을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었는데. 세상일이란 참.
“다 잘 끝나고 나면 우리 꼭 한번 만나요. 애 데리고서.”
첫 번째 근원으로든 어디로든 멀리 떠나기 전에 얼굴 한번 봐야지.
던전을 빠져나가기 전에 루가 폐야에게 채터박스 금고에서 가지고 온 검은 미로의 감시안을 보여 줬다. 해파리 촉수가 흐물흐물 검은 구체를 휘감아 흔들었다.
– 이 정도면 쓸 만해. 약간만 손보면 S급 던전까지 영상 송수신 가능할 거야.
“S급도?”
– 내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A급 이하가 안전하겠지만.
A급으로도 충분하긴 하지만……. 아, 혹시. 고개를 돌려 물이 출렁이는 던전을 바라보며 물었다.
“루가 폐야, 이 던전에도 등급이 있어?”
– 여기? 여기는, 일단은 F급일걸.
“F급?”
– 공략을 시작하기 전까진 몬스터 한 마리 없는 깨끗한 던전이잖니. 그러니 가장 낮은 등급이야.
“그럼 혹시 공략을 시작한 후에도 이 던전에서 감시안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내가 깬 퀘스트에 등급을 매긴다면 모두 S급 이상일 터였다. 그러니 사용 불가능할 확률이 높았지만.
– 음, 되겠는데?
“진짜?”
– 이 던전은 열려 있는 상태니까. 일반적인 던전과 달리 외부와의 연결이 어렵지 않아.
참, 그랬었지. 여기서 실시간 방송이 가능하다면.
“꽤 재미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