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Side Story 95 S-Class Harvest
외전 95화
S급 풍년
도담 사육소 위의 자택은 보안을 위해 평범한 유리창을 달지 않았다. 때문에 수면 모드인 방 안은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부스럭, 이불을 뒤척이며 박예림은 손만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휴대폰에 빛이 들어오고 가늘게 떠진 눈이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열 시?!”
기겁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전 10시 27분. 상상도 못 할 시간에 박예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늦잠이라니.
– 후아암, 예림아 왜 그래?
“벌써 10시야, 10시! 오리야! 아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설정을 시작합니다.]
커튼이 자동으로 걷히며 방이 밝아졌다. TV가 켜지는 것이 박예림이 다시 소리쳤다.
“TV는 꺼! 오리야, TV 꺼! 아니, 오리야, 외출!”
– 내가 하는 게 빠르겠다.
산호가 물방울들을 날렸다. 공중을 빠르게 가로지른 물방울이 얼어붙더니 TV 리모컨과 천장 조명을 탁탁 쳐서 끈다. 그사이 박예림은 침실을 나섰다.
“어떻게 늦잠을 잘 수가 있지?”
박예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S급으로 각성한 후에 박예림이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짧은 수면으로도 몸은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회복되었기에 해가 뜰 즈음이면 절로 눈이 떠졌기 때문이었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다 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얘들아!”
박예림은 자신의 침실에서 멀지 않은 아이들의 방, 예전 한유진의 방문을 열었다. 침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전부 일어난 것이다.
‘애들 밥!’
이미 아침을 먹고 소화도 되었을 시간이다. 급히 거실로 나가자 소파와 바닥에 앉아 있는 세 아이들이 보였다. TV에서는 어린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고모.”
“안녕!”
한결과 한별에 이어 한설도 고개를 까닥 인사를 해왔다. 언뜻 봐도 당황하고 허둥지둥거리는 박예림의 모습에 한결이 변신 장난감을 자동차에서 공룡으로 바꾸어 한별에게 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침 먹었어요.”
“머, 먹었어?”
“네. 고모가 피곤한 거 같아서 사육소에 전화해서 부탁했어요. 사육소 식당에서 가지고 오기만 하면 되니까요.”
집의 어른은 박예림뿐인 데다가 길드 일로 바빴기에 식사는 종종 사육소 식당의 조리사 신세를 지곤 하였다. 보통은 밥은 집에서 하고 반찬만 가지고 오는 식이었지만 오늘은 밥도 가져다줬다고 한결이 말했다.
“고모 것도 있어요.”
“…그래, 결아. 고마워, 고모가 챙겨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고모. 푹 쉬었어요?”
“어, 으응.”
한결이 너무 어른스럽게 말해서 박예림은 도리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주방에 들어가자 덮개가 씌워져 있는 반찬들이 보였다. 사용한 식기는 한 번 헹궈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것도 결이가 한 걸까. 박예림은 냉장고에 이마를 툭 박았다.
“…진짜 어떻게 열 시가 훨씬 넘도록 자 버릴 수가 있지?”
– 피로가 쌓였었나 봐, 예림아. 나도 깨어나질 못했는걸.
“열 받는 일이 많긴 했지만. …이게 다 그 망할 가짜 놈 때문이야.”
자신이 살아 돌아온 한유진이라고 주장하는 가짜.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속이 울컥 뜨거워졌다. 차갑게 얼어붙는 물이 아닌 활활 타오르는 불을 내뿜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런데 예림아, 가짜가 채터박스 금고에 들어간 건 이상하긴 해.
밥솥 뚜껑을 열며 산호가 말했다.
– 결이가 특별한 경우랬잖아.
“…그렇다곤 해도, 외부에서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최근에 명우 오빠와 연락이 안 되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몰라.”
밥을 퍼 식탁 앞에 앉으며 박예림이 말했다. 한술 뜨고 휴대폰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답장을 보냈다. 박예림이 가짜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기에 길드에서는 아예 하루 푹 쉬라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만약.”
박예림은 야채소시지볶음을 노려보았다.
“만약 진짜 아저씨라고 해도 열 받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 진짜라도?
“당연하잖아. 돌아올 수 있다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 줬어야지.”
절로 높아지려는 목소리를 아이들이 들을세라 급히 낮추며 박예림이 말했다.
“뭘 이제 와서 부활이야, 부활은. 그리고 진짜면 당연히 집부터 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믿든 안 믿든 왔어야 했어. 저 가짜는 집에 올 생각도 안 하잖아.”
숟가락질이 거칠었다. 삐끗한 젓가락 끝이 식탁을 파고들었다.
“나랑 애들부터 만나러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가짜야.”
– 그건 맞는 거 같아.
“어떻게 아저씨가 우릴 보러 안 와? 그럴 리가 없잖아.”
– 맞아, 맞아.
한유진이라면 당연히 애들부터 찾아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낯선 S급을 곁에 두고 채터박스의 유산을 챙기고서 파티를 연다느니 하고 있다니. 저런 건 한유진이 아니었다. 한유진일 리가 없었다.
박예림은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허리를 쭉 폈다. 길드에서는 쉬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가짜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문현아에게 가 볼까 생각하며 주방을 나서는데.
“고모!”
한별이 도도도 달려와 박예림의 다리에 답삭 붙어 끌어안았다.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박예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입을 쫙 벌려 외친다.
“고모 사랑해!”
“…별아!”
분노로 불타오르던 박예림의 심장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말랑말랑 따뜻한 솜사탕이 색색의 꽃을 피우는 듯했다. 박예림은 한별을 번쩍 안아 올렸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맴돈다.
“고모, 뽀뽀해! 뽀뽀!”
“응, 뽀뽀!”
서로의 뺨을 쪽쪽거리는 둘을 멀리서 바라보며 한결이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별에게 가서 고모 사랑해, 안아주고 뽀뽀도 해 줘 하며 보낸 것이 바로 한결이었다.
“어른들은 단순하다니까.”
“내 동생은 귀여우니까.”
“응, 별이 귀엽지. 아직 어리고. 결이도 귀엽지만 저런 건 창피해서 못 하겠어.”
한결은 한별을 끌어안고 위안을 받고 있는 박예림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고모도 얼른 저 아빠가 진짜라는 걸 알면 괜찮아질 텐데.
“아빠도 대체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 집에 안 오고 이상한 일만 하는 거야? 혹시 아빠도 기억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럴지도.”
“어른들은 자주 문제가 생긴다니까. 그거도 툭하면 머리가 이상해졌어.”
“내 계약자도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더군.”
“에휴, 진짜 어쩌지? 아빠가 계속 안 오면 데리러 가야 하나?”
한결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하게 말했다. 자신은 어린아이고 아빠를 믿고 있으니 얌전히 기다려야지, 결심했는데. 한유진은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어른들을 저대로 계속 놓아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지. 한결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검은색 번지르르한 밴에서 내려서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카메라를 들이대어 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각성센터였다. 유현이와 시그마, 그리고 인형술사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취재 열기가 한층 불타올랐다. 그럼에도 일정 거리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세 명 모두 S급 각성자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바로 오늘 한국 헌터로 등록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시간 파편에 의해 한국의 S급 헌터는 전보다 한 명 줄어들고 말았다. 성현제 씨의 빈자리는 강소영 씨가 대신 차지했지만 유현이의 빈자리는 원래 S급인 예림이가 대체하였기 때문이었다.
노아 씨는 도담 소속이며 김민의는 부적격에 가까우니 해연의 S급은 세 명에서 두 명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S급을 무려 셋이나 데리고 있는 집단이 나타났다.
“새로운 S급, 한유현 각성자가 한유진 헌터의 동생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다냐. 떠들고 다니진 않았는데 말이야.
“그럼 박예림 해연 길드장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자의 말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지금의 예림이는 나의 유일한 의동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갑자기 유현이가 튀어나오게 된 셈이었다. 망할, 예림이 또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냐. 예림아! 유현이를 기억해 줘! 너희도 남매 비슷한 거였잖냐. 사이도 좋았다고!
“어서 오십시오, 한유진 헌터!”
각성센터 센터장이 건물 밖까지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S급 각성자 셋이 한 번에 헌터 등록이라니, 초유의 사태긴 했다. 해외에서도 특종으로 나가고 있지 않을까. 시간 파편 잘 모이겠구만. 팍팍 모아서 팍팍 처리해야 예림이 기억이 돌아오고 나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이미 말씀드렸듯이 여기 있는 두 명은 국적이 불분명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며 센터장에게 말했다. 그가 아무 문제 없다면서 하하 웃었다.
“S급에게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렇지 문제없지. 그래도 전에는 여러모로 귀찮아지는 데다가 내가 S급 위상에 묻힐 가능성이 높아 일부러 등급을 낮춰 등록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한유진은 S급을 지휘하는 F급으로 유명했고 나름 단체도 만들어졌으니까.
“한유현 님과 한시현 님, 그리고 성소원 님. 맞습니까?”
“시그마로 등록해라.”
이름을 확인하는 센터 직원에게 시그마가 말했다. 성소월 나름 괜찮지 않나. 작은 달이란 뜻이니 계속 쓰기엔 꺼림칙하긴 했지만. 초승달이 또 튀어나와서 나의 작은 달, 이럴 거 같고.
세 사람은 곧장 등급 확인 절차를 거쳤다. 유현이와 시그마야 가볍게 S급을 상회하는 스탯이 나왔다. 반면에 인형술사는 힘이 봉인된 여파가 커 마력을 제외하고는 기준치가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마력이 워낙 높기에 무사히 S급으로 등록되었다.
“이렇게 빨리 레벨을 올릴 순 없으니, 역시…….”
센터장이 대충 알겠다는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셋 다 막 각성한 능력치는 아니지.
“한국 국적 취득도 바로 가능합니다만 하시겠습니까?”
헌터협회와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죠, 당장 하시죠, 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으나 모른 척했다. S급이면 한동안은 국적 없어도 문제없으니까. 어차피 유현이는 한국 사람 맞고 시그마는 뒤틀림이 해소되면 다시 잠들 거라고요. …시그마는 국적 취득해도 되려나? 나중에 애 보호자한테 물어보지 뭐.
“일단은 이대로 지내려 합니다. 보호자인 저와 한시현 씨가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으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한국 국적을 취득하시면 많은 혜택이 있으니 고려해 주십시오!”
“절차도 아주 간단합니다. 지문만 등록해 주시면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인 S급을 둘이나 더 늘릴 수 있는 기회다 보니 무척 적극적이었다. 이거 내가 너무 묻히면 안 되는데.
밖으로 나가자 또다시 열렬한 눈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세 명 다 무사히 S급으로 등록 되었다는 사실이 그새 퍼져 나갔는지 들어갈 때 이상으로 강렬한 시선들이었다.
“우선, 한유진 부활회의 명칭은 오늘부로 채널 한유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속으로는 쪽팔려 죽을 것 같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채터박스 놈 얼굴 가죽이 무척 두껍, 아 가면 썼었지. 그래서 그렇게나 뻔뻔할 수 있었던 건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창피했다. 내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엔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부끄러워 죽겠다.
“곧 채널 한유진의 첫 방송 일정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당연히 생방송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상급 각성자 위주가 되는 겁니까?”
“참가 등급 제한은 없습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무래도 상급 각성자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등급 높은 게 유리하냐면 글쎄올시다였지만. 상품에 S급 이상 아이템들도 있으니 S급도 여럿 한국으로 오겠지.
음, 이거 송 실장님에게 죄송해지는걸. 각관실도 비운 상태인데 상급 헌터들이 모여들 예정이라니.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단 집에 돌아가고 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