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1076)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13화
“저……레이 씨? 그건……?”
아까부터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해서 아무도 지적을 안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물건에 말을 걸며 입을 맞추고 있는 거다.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는지, 결국 천사님이 총대를 메고 레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이게 예절이잖아요?”
하지만 레이로서는 이곳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겠지. 얘는 이게 이곳의 예절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
“……쮸릅.”
내 물건을 입으로 물고 있는 레이와, 내 왼팔을 껴안은 마틸다 사이에서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먼저 깬 건, 바로 천사님이었다.
“아, 아앗. 그렇군요. 예절……저, 저도 해봐도 될까요?”
……처, 천사님? 어째서 수긍한 표정이신가요?
설마 내가 한 짓을 깨닫고 감싸주시려고……아니. 표정을 보니까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진심으로 이해했다는 표정이신데? 대체 무슨 오해를 하신 거야!?
차라리 내 말도 안 되는 장난을 깨닫고 꾸짖거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했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천사님이 저렇게 나오자 괜히 더 불안해졌다.
게다가 레이는 레이대로 또.
“……여기요. 섹스하기 전에는 기분 좋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애무만으로 쌌을 때는 기분 좋았니? 하고 부드럽게 물어봐 주면 돼요. 끝에 키스해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그러면 얘가 까닥하고 고개를 끄덕여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잘못된 예절을 레이아에게 진짜로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태클 걸 데가 너무 많아서 뭐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우선, 걔한테 말 거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말 거는 거야! 걔한테 고유 의지 같은 건 없고, 까닥일 수 있는 고개 같은 건 더더욱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도 아는 예절은 너보다 한참 선배인, 그것도 아예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레이아가 모르는 이 상황에 왜 의문을 느끼지 못하는 건데!? 이상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레이아를 똑바로 보라고! 너 아까 레이아랑 서로 조용히 마주 보고 있기까지 했잖아! 확실히 레이아는 청순하지만, 그래도 구미호로 변한 지금은 청순하면서 동시에 요염한 분위기도 풀풀 풍기고 있잖아! 이런 사람이 너보다 먼저 나랑 이어져서 기초 상식도 모를 거라고……잠깐만. 구미호?
구미호는 분명, 전쟁신 쪽 종족이지? 7계층에도 있었고.
성적인 방면으로는 상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7계층의 일반 상식 같은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실제로 비스에서 동성애가 유행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다시 말해서, 레이도 구미호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신 종족이라는 건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이거,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발생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런 예절이 있었네요.”
“모를만해요. 저도 말해주기 전에는 몰랐으니까요.”
왜 둘 다 오해하고 있는데 대화는 제대로 성립하는 거야!?
젠장. 그냥 가만히 봉사나 받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너무 황당하니까 나도 모르게 참견하고 싶어지잖…….
“많이 쌌네……그렇게 기분 좋았니? 응……쪽.”
아후읏. 아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자.
내 왼쪽에 앉아있던 천사님이 물건에 키스하기 위해서는 상체를 잔뜩 숙여야 했고, 그러면서 그 커다란 가슴이 내 옆구리 쪽에 꾸욱 밀착되자, 지금까지 신경 쓰고 있던 게 정말 아무래도 좋아졌다.
난 대체 왜 그렇게 헛된 심력을 쓰고 있었던 걸까. 이대로 앞뒤 좌우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그저 좋은 것을.
으윽……마틸다. 유두를 간질이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제는 혀로 귓바퀴를…….
“자, 잠깐 기다려요!”
꿈꾸는 것처럼 몸에 힘을 축 빼고 다시 늘어지려고 한 그 순간, 익숙한 일갈이 내 정신을 다시 깨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 욕조 안에서 벌떡 일어나 이쪽을 바라보며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라였다.
그 다리 사이에서 떨어지고 있는 액체는, 과연 욕조물일까 아니면 사라 자신이 만들어낸 액체인 걸까.
“다들 지금 뭐하는 거예요!? 특히 레이아! 마틸다! 둘은 성직자잖아요! 규율에 어긋나는 거 아니었어요!?”
“하읏!?”
사라의 지당하신 일갈에 천사님은 화들짝 놀라서는 입술을 내 물건 끝에서 뗐다.
하지만 그런 레이아와 달리, 마틸다는 내 몸에서 전혀 몸을 떼려 하지 않았다.
“레이아 씨. 괜찮아요. 그저 예절을 배운 것뿐이니까요. 인사였잖아요? 그렇죠? 당시인?”
……마틸다야. 핑크빛 모드로 추기경님 같은 냉철한 상황 판단하지 말아 줄래?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하는 말이지만, 애초에 왜 아직도 핑크빛 모드가 되는 건데? 너 진짜 저주 풀린 거 맞지?
당연히 전라 상태로 있는 마틸다의 몸에 새삼 다시 눈길을 주자, 역시나 그 몸을 잠식하고 있던 검은 저주의 상흔은 완벽히 사라져 있었다.
팔로 은근슬쩍 그 왼쪽 가슴을 들어 올려서 아랫부분을 확인하자, 저주가 완벽하게 지워졌을 때에야 완전한 모습을 드러낼 장소에 새겨둔 사도 인장마저 확실히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저주는…….
“으으응……당시인…….”
아, 눈이 마주쳤다.
“아, 아니. 이건 가슴을 만지려고 한 게 아니라.”
“알아요오. 들으셨죠? 구원 씨와 마찬가지로, 저도 딱히 여러분 앞에서 성행위를 한 게 아니에요.”
내가 당황해서 내뱉은 변명을 마틸다는 황홀한 미소로 받아주고는, 사라의 말을 반격하는 도구로마저 사용했다.
“그게 말이……!”
“바넷사 씨도 그렇잖아요?”
“……네? 아, 저 말입니까?”
물론 사라가 그런 말에 납득할 리도 없었지만, 우리 추기경님은 집사까지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논리를 완성해나갔다.
우와. 그 바넷사가 순간 당황해서 바로 대답을 못 했어. 강하다. 추기경님.
“그래요. 아니면 바넷사 씨는, 성행위를 할 생각이셨나요?”
“……큭. 아, 아닙니다.”
“그렇죠? 그저 기분 좋게 씻겨 드리고 있었던 것뿐이죠? 이렇게…….”
“으윽…….”
마틸다가 이번에는 손을 아래로 내려 내 하복부를 살살 어루만졌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고간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물건을 떨었다.
제, 젠장. 안 그래도 기술 좋은 애가 레벨까지 엄청 높으니까 진짜 죽겠네.
차라리 디아나처럼 매력이 높은 거였으면 나도 높은 매력 스탯으로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겠는데, 레벨 보정은 도저히 못 참겠어.
“씻겨 드리고 있는 것뿐이에요.”
“지, 지금 그 변태 반응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어머. 당시인? 이렇게 만지면 기분 좋으신가요오? 어쩜 좋죠? 전 성행위를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마, 마틸다? 너 오늘따라 진짜 왜 그러니? 그 이상 사라를 도발하면…….
뚜둑.
그 순간,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실제로 대기 중에 울려 퍼진 소리는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사라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잠깐 비켜봐요.”
사라는 욕조에서 나오더니, 그 특유의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모델 워킹하는 것처럼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너무도 간단하게 내 앞에 있던 레이를 치워버리더니, 날 이글이글 거리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왜, 왜 그래 사라야. 무섭잖아. 이성을 되찾아.
“후우……하아……후우…….”
내 마음속 바람이 통했는지, 사라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레이아랑 마틸다는 고개 돌리는 게 좋을걸요? 지금부터 할 거예요.”
“네? 뭘……설마!? 꺄악!?”
“사, 사라 씨!? 진심이세요?! 꺅!?”
되찾기는 무슨!
사라는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그대로 내 위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듯이 허리를 내렸다.
“야! 잠깐만! 진정해! 진정하라고!”
다행히도 삽입 직전에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서 멈춰 세웠지만, 이미 몸을 돌리고 귀까지 틀어막고 있는 레이아와 마틸다에게는 얘기해봐야 소용없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 왜 이렇게 조준이 정확해!? 지금 정확하게 입구랑 물건 끝이 맞닿았어!
“너나 진정하고 말해 이 변태야!”
난 진정하는 걸 뛰어넘어서 너 때문에 찬물이 확 끼얹어진 기분이거든!? 진정하기는 뭘……아, 설마 여기 말하는 거냐?
“네가 이렇게 비비는데 어떻게 진정을 해!? 엉덩이 그만 움직여!”
“나로는 불만이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할 때는 그렇게, 그렇게 흥분해서는……하아……하아…….”
그러니까 흥분하지 말라고 이것아!
제, 젠장. 내가 뭐가 아쉬워서 섹스를 거부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냥 콱 손에 힘 빼고 해버려!?
“얘, 얘들아!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말려!”
“용사를 무슨 수로 말리라는 거야…….”
“자업자득입니다.”
“사, 사, 사라양까지……이, 이 몸도……아니. 하지마안…….”
“때, 때로는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네요…….”
아오! 진짜! 어떻게 도움 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냐!?
특히 바넷사! 넌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 중 하나거든!? 이제 와서 혼자 빠지려고 하기냐!?
그리고 레이첼 누님! 이런 걸로 학습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건 엄청 안 좋은 본보기에요! 얜 지금 그냥 흥분해서 눈 돌아간 것뿐이에요!
“야! 사라야! 잠깐만! 진짜 잠깐만 진정해봐!”
“포기하고 힘 빼! 왜 이렇게 버티는 거야!? 마틸다가 만져줄 때는 그렇게…….”
“그럼 마틸다 레벨이 318인데 내가 무슨 수로 버텨!?”
“너 내가 바보로 보여!? 오늘 전직한 사람이 어떻게 레벨이 그렇게 높아!?”
“아니! 진짜로! 비키면 설명해줄게! 진짜라니까?”
“……말해봐.”
내 필사적인 모습에 겨우 들을 마음이 생겼는지, 아래를 향하던 사라의 엉덩이에서 드디어 힘이 빠졌다.
그래도 비킬 생각은 없는지, 여전히 자기 음부를 내 물건 끝에 맞추고 있었지만.
“사라야. 이왕이면…….”
“싫어.”
말이라도 끝까지 하게 해줘라…….
야. 네가 남자가 아니라서 모르는 모양인데, 보통 남자는 말이지. 이런 자세로 차분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너같이 예쁜 애의 음부가 귀두 끝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손에는 탄력 넘치는 엉덩이가 만져지는데, 내가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어떻게 차분히 얘기하라는 거야!?
“사, 사라양. 일단 진정하고 들어보세.”
“네? 꺄악!? 디, 디아나! 뭐하는 거예요?! 내려줘요!”
“진정하세. 그런 자세로는 저자도 신경 쓰여서 제대로 말을 못할 것 아닌가.”
다행히 디아나는 마틸다가 갑자기 레벨이 저렇게 올라간 비밀이 궁금한지, 마법으로 사라의 몸을 들어 올려 다시 욕조 안으로 담가버렸다.
오오. 대마법사님. 역시 최후의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시는 건 우리 대마법사님뿐이셔.
하긴 디아나는 다른 것 필요 없이 레벨만 올려도 순식간에 강해질 수 있으니, 남들보다 더 궁금하겠지.
“휴우우…….”
……뭐,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것 같지만.
저 녀석,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기도 위험해질까 봐 미리 선수를 친 거였군.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아까 못다 한 얘기를 여기에서 해야겠군. 원래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할 얘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지.
“레이아. 마틸다.”
“꺄아악!?”
“저, 저흰 보면 안 돼요오!”
뒤돌아있던 둘의 등을 톡톡 건드려주자, 둘은 기겁하면서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그 가슴이 무릎에 짓눌리면서,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겨드랑이 쪽 너머로 그 웅장한 자태를……아,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일단 둘을 진정시키고 다 같이 욕조에 들어간 다음, 나는 마틸다의 레벨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앉은 위치는 여성진이 다 같이 반대편에 앉고, 나 혼자 이쪽에 앉은 모양새였다. 욕조에 들어오면서 자기들끼리 살짝 쑥덕이는 것 같더니, 아무도 손대지 않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덕분에 난 조금 쓸쓸했지만, 지금은 눈앞에 여성진의 알몸이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그, 그런 일이…….”
우선 가볍게 마틸다의 레벨이 엄청나게 오른 이유부터 설명하자, 다들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신앙하는 여신님을 이용해서 레벨업을 한 셈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직 제일 중요한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그래. 그래서 실은 내가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운을 떼면서,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여신을 이용한다는 게 얘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원래 세계에서부터 무신론자였던 나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아까 실패하면 여신이 날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조차, 여신에 대한 불평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잖아?
나보다 여신이 중요하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얘들 머릿속에는 여신이란 절대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박여있는 거다.
그래도 말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내 레벨을 마틸다처럼 확 끌어올릴 수 있다면, 앞으로의 행보가 편해질 건 확실하니까.
“그러니까, 최후의 자존심을 써서 내가 느낀 것의 일정 수준만이라도 강림한 여신님이 느낄 수 있게 하면, 나도 엄청난 레벨업을……!”
“자네 바보인가?”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디아나의 냉혹한 평가가 떨어졌다.
솔직히 이런 말을 꺼내면 제일 먼저 반대하는 건 성직자인 레이아나 마틸다일 줄 알았다. 특히 마틸다는 낮에 내 정기가 쪽쪽 빨리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제일 먼저 반대하는 게 성직자가 아닌 디아나라니. 물론 디아나 역시도 이 세계의 사람인만큼 여신에 대한 신앙심은 넘쳐흐르겠지만, 그래도 제일 머리 좋은 애가 저렇게 딴죽을 거니 불안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혹시 여신님에 대한 태도 운운 이전에, 그냥 내 제안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래요. 당신, 낮에도 그렇게나 괴로워 보이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또 하겠다니…안 돼요.”
그리고 디아나의 말을 거들 듯이, 마틸다 역시도 고개를 맹렬히 저으며 반대했다.
그렇게나 신앙심 투철한 추기경님조차도 여신님에게 불경하다는 얘기가 아닌 내 걱정부터 하는 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지만, 너무 그렇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지 말아 줄래? 넌 안 그래도 물에 많이 뜨니까, 그렇게 흔들면 거기도 같이…아, 아무튼.
낮에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었는데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니. 역시 추기경님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빠른 레벨 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물론 지금도 레벨 부족으로 힘에 부친 적은 없지만, 나중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힘에 부칠 날이 올 거야.
“아니. 하지만 이렇게 멀쩡히 잘 살아 있잖아?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손쉽게….”
“멀쩡히 살아 있다라…. 바꿔 말하면 죽을 뻔 했다는 얘기로구먼.”
그래서 다시 마틸다를 달래주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던 나였지만, 그 시작부터 바로 일이 꼬이고 말았다.
“아, 아니. 에이. 너무 과장이 심하다. 그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성자야. 성자. 디아나 너 어젯밤에 나한테 혼이 덜났….”
“성자라서 문제인 것일세. 결국 힘의 원천이 여신님이라는 것 아닌가.”
일부러 어젯밤 얘기를 꺼내 흔들어 봐도, 디아나는 동요하는 일 없이 그렇게 말했다.
“여신님이 주신 힘으로 여신님을 감당 해내다니. 이 몸에게는 그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구먼.”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자네. 만약 정말로 자네가 괜찮더라도, 자네의 발상이 위험한 건 변함이 없네.”
그러니 고집부릴 필요 없네. 그런 의도를 담아서, 이번에는 타이르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였다.
그리고 디아나의 그 말은, 나한테도 무척이나 와 닿았다.
왜냐하면 내가 괜찮더라도 내 발상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여신을 몸에 강림시킬 레이아나 마틸다가 위험할 거라는 얘기니까.
내가 아니라, 레이아나 마틸다가 위험해져? 어떻게…아, 그, 그런가…!
“드디어 자네도 이해한 모양이구먼. 그렇다네.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여신님의 힘은 힐링 섹스만으로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자네의 그….”
“불굴의 성욕. 그러고 보니 여신님이 내게 경고할 때도, 불굴의 성욕만 콕 집어서 언급했었어.”
다시 말해서 힐링 섹스 같은 다른 스킬은 여신의 힘을 버티는데 최소한의 도움조차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음. 역시나 그렇구먼. 이제 알겠는가? 최후의 자존심은 자네가 느낀 쾌감의 일부를 상대에게 전하는 스킬일세. 이번 경우에는 여신님이 주는 쾌감이 되겠구먼. 아무리 그 일부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쾌감이 아닐세. 아무리 강림상태라고 하더라도, 몸은 여전히 레이아 양이나 마틸다 양 아닌가?”
상당히 단정적으로 말하네. 마치…아, 그러고 보니 디아나는 그랬지. 하긴. 그러니 디아나가 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얘기라는 거야?”
이제 와서는 무척이나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디아나와의 첫 만남. 디아나가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최후의 자존심이었으니까 말이야.
이 레벨이 되고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일세! 였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쾌감에 눈 돌아가서 달라붙는 거라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대사로군.
뭐,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지만.
“…응긋. 그, 그런 걸세.”
오랜만에 돌이켜보니 새삼 부끄러워졌는지, 디아나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경험자가 하는 말이면 들을 수밖에 없네.”
“으, 으음….”
솔직히 말해서, 가능성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때 여신에게 쥐어짜 내지며 정신을 못 차렸을 때, 불굴의 성욕이 내 몸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켜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정신. 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려고 몰려드는 쾌락의 파도를 간신히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강림 상태에서는 몸을 조종하는 정신은 여신. 그러니 만약 그 상태에서 최후의 자존심을 쓰더라도, 죽을 만큼 정신적 충격을 받는 건 레이아나 마틸다가 아닌 여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 보고 도박을 하기에는 걸려 있는 것이 너무나도 컸다.
레이아나 마틸다의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니. 절대 못 하지. 이번에는 순순히 포기하는 수밖에…아니.
“그럼 최후의 자존심은 안 쓰고 그냥 강림상태로 잠깐 버텨서 레이아나 마틸다의 레벨만 엄청 올린 다음에….”
“자네. 조금 전에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여신님이 불굴의 성욕을 언급하며 경고했다고. 그것이 어떤 경고였는지, 그 정도도 이 몸이 알지 못할 것 같은가?”
아, 아차!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 얼버무리는 건데!
아니. 나도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한 번 해보니까 잠깐 정도는 진짜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니까?
“절대 안 돼. 레이아. 마틸다. 나중에 저 바보가 따로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면 안 돼요.”
“네, 네에….”
“알고 있어요.”
“애초에 왜 갑자기 그렇게 레벨 업에 집착하는 거야? 혹시 우리한테 말 안 한 위기라도 있었어?”
레이아와 마틸다에게 단단히 다짐받은 사라는, 곧장 칼끝을 내게로 돌려서 그런 의심까지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런 건 없었어. 진짜로! 그냥 레벨이 높으면 여러모로 편하고 좋잖아? 왠지 나중에 필요할 것도 같고.”
“그런 것 때문에 목숨을 걸겠다고?”
그러니까 딱히 목숨을 걸겠다는 게 아니라….
“저…구원 씨? 그렇게 급하시면, 오늘 차례는 추기경님과 바꿔 드릴까요? 추기경님은 이미 레벨이 많이 올랐으니까, 추기경님과….”
“아, 아니야! 괜찮아! 항복! 알았어! 앞으로 괜히 레벨업에 집착하지 않을게!”
게다가 레이아가 저런 제안까지 하자, 나도 이 이상 탐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자기와의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렇게 날 욕실에 데리고 와준 레이아다. 게다가 바로 조금 전까지 이 이후에 있을 둘만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이 타이밍에 또 자신을 희생해서 순서를 바꾸겠다니.
아무리 천사님한테 응석을 많이 부리는 나라지만, 그렇게까지 하게 할 수는 없지.
“이 얘기는 이걸로 끝! 앞으로도 절대 꺼내지 않을게. 이제 됐지?”
내가 두 손을 들고 항복하자, 그제야 다들 얼굴에서 긴장을 풀어줬다.
“잘 생각했어. 아무리 실패하면 안 된다고 해도, 구원이 네가 목숨을 걸면서 성공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조바심내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차분히 하자. 알았지?”
그리고 레이첼 누님이 다가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나 역시도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꿰뚫어 보고 있었나. 하긴 안내원 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잔뜩. 그러니 자기 남자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예상외의 일이 일어나면 머리가 백지가 되는 성격 때문에 가끔 그렇게 안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보면 역시 누님은 누님이야.
“응. 알았어. 그럼 차분히 긴장 풀고 아까 하던 거나 마저 하자.”
“으, 으응!? 서, 설마 씻겨 달라는 얘기니?”
…레이첼 누님. 모처럼 누님의 누님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렇게 삑사리까지 내면서 당황하면 어떻게 해요.
“왜 그렇게 놀라? 아까 제대로 다 씻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끊겨 버렸잖아. 설마 이대로 방치하려고? 너무해.”
하지만 내게는 지금 이렇게 당황하는 사람이 필요했으니, 마침 잘 됐다. 왜냐하면.
“레이첼.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 변태는 혼자 씻게….”
저렇게 냉정하게 지적하는 애가 존재하니까 말이야.
사라 쟤는 누가 누구한테 변태라는 거야? 아까는 자기가 제일 이성을 잃고 진짜 삽입까지 하려고 덤벼들었으면서.
아무튼 저런 식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레이첼 누님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건 무척이나 도움이 됐다.
“아, 알겠어! 나머지는 누나가 씻겨줄게!”
“레이첼!?”
이런 식으로 말이다. 훗. 사라 녀석 당황하기는. 모처럼 하렘왕의 기분을 만끽하는 거다. 내가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리가 없잖아?
“어, 어디를 씻겨주면 되니!? 누, 누나한테 전부 맡기렴!”
그래도 눈이 팽글팽글 돌아갈 정도로 무리하는 레이첼 누님한테 조금 미안하기는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가세시켜볼까.
“글세? 씻겨준 건 다른 사람이니까 말이야. 레이아. 마틸다. 바넷사. 어디까지 씻겨줬었지?”
“그, 그러네요 왼쪽은 우선….”
“당신. 오늘 쪽은 그냥 제가 직접 마무리를 지어 드리겠어요.”
“아, 앗! 그러면 저도…!”
어느새 구미호 모드가 풀려서 보랏빛 안광만 살짝 내비치며 부끄러워하는 레이아와 달리, 마틸다는 아예 대놓고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 내게 달라붙어 왔다.
그리고 그런 마틸다에게 이끌리듯 천사님까지 내게 다시 달라붙자, 순식간에 아까와 같은 하렘 포지션이 완성됐다.
물론 아까에 비해서 조금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바넷사는?”
“…제가 구원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습니까?”
“그래서 등 뒤는 그대로 방치하려고? 내가 직접 설명하기도 제일 어려운 부분인데. 너무하다. 우리 집사님이 이렇게나 책임감이 부족할 줄이야.”
“…크윽. 디아나 님. 다녀오겠습니다.”
“바넷사!?”
역시나 완벽 집사. 일을 완벽하게 끝내지 않았다는 점을 걸고넘어지니 바로 낚이는군.
디아나가 옆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도, 바넷사는 결국 뚜벅뚜벅 걸어와 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로서 저쪽에 남은 건 사라와 디아나. 그리고 레이뿐.
아까 상태로 돌아가려면 레이도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레이라도 사라와 디아나가 쌍으로 당황하니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까 사라가 섹스하려고 덤벼드는 것까지 바로 앞에서 봤으니까 말이야.
하는 수 없지. 이번에는 대신 레이첼 누님이 이쪽에 붙어 있으니, 앞쪽은 레이첼 누님에게 맡기기로 할까.
아니. 이왕이면 조금만 더 욕심내볼까?
“아, 사라야.”
첫 타겟은 역시 용사님이지.
이렇게 내 주변에 다른 여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변태니까.
“절대 안 갈 거야.”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버텼지만, 이 정도는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아, 그래? 알겠어.”
“잠깐! 왜 나한테는 더 물고 늘어지지 않는 거야!?”
“아니. 너 아까 폭주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뭐어!? 난 필요 없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너도 오기 싫은 것 같고….”
“나도 그쪽으로 갈 거야! 말리지 마!”
훗. 성공했다. 원래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낚이지는 않겠지만, 지금 사라는 흥분한 상태니까 말이야. 낚는 것쯤은 간단하지.
저쪽에서 레이가 “어떻게 저렇게 비열한 짓을…!” 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뭐 어때서!? 하렘은 남자의 로망이라고! 내 여자를 조금 구슬리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여기를 씻겨주면 되는 거잖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모델 워킹하듯이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온 사라는 내 다리 사이, 레이첼 누님의 옆으로 비집고 들어오더니 바로 내 물건으로 손을 뻗었다.
“으헉. 야. 갑자기 그렇게….”
“빳빳하게 세우고 있으면서 불평하지 마!”
아니. 그러니까 변태 용사님. 너 너무 흥분했잖아.
하지만 그렇게 흥분해 있으면서도 손에는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게 절묘하게 힘 조절 하며 내 물건을 자극해주는 바람에,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대신 디아나를 쳐다봤다.
“이, 이 몸!?”
안 그래도 레이랑 둘이 남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디아나는, 살짝 흥분한 내 시선을 받자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너 말고 누가 있겠어?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전에 먼저 디아나에게 손짓하는 사람이 있었다.
“디아나 씨도 같이 씻겨 드려요. 아까 구원 씨가 해준 말, 디아나 씨도 기쁘셨잖아요?”
바로 오늘 밤의 주인공이신 천사님이었다.
아까 내가 해준 말이라는 건 여신님을 통한 레벨업을 주장하던 그 말이 아니라, 그보다도 전. 욕실에 오기 전에 해줬던 사도 인장에 관한 얘기를 말하는 거겠지.
날 욕실에 데려와 준 것도, 처음에 다 같이 날 씻겨주려고 한 것도 결국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딱히 이런 걸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후훗. 그러니까 더 이렇게 해드리고 싶은 거예요.”
너무 그걸로 우려먹는 건 미안해서 한마디 했지만, 레이아는 오히려 기쁜 미소와 함께 내 팔에 달라붙어 왔다.
그리고 그런 레이아의 태도에 자극받은 건지, 드디어 대마법사님마저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이, 이 몸을 빼놓고 자네들만 즐기지 말게!”
디아나, 너도 진짜로 오려고? 쟤는 어떤 의미로 사라보다 더 위험한데…뭐, 지금은 혹시 있을 일에 대한 걱정보다 하렘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기로 할까.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전신을 뒤흔드는 쾌락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은…그래. 분명 천사님이었다.
“어머, 끝에서 계속 이런 게…이래서는 아무리 씻어도 끝이 없겠어요.”
처음에는 조금 주저하는 것처럼. 하지만 내뱉는 목소리에 점점 요염한 기운을 섞으면서, 내 물건 끝을 검지로 살짝 훑은 후 그대로 입술 사이에 가져갔다.
그렇게 자기 검지를 문 천사님의 모습은, 어느샌가 보랏빛 안광이 밝게 빛나고 등 뒤로는 아홉 개의 꼬리가 넘실거리는 구미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구미호 모습이 되어서는 이런 짓까지 한 거다. 누가 봐도 그 의도는 명백했다.
평소라면 다들 그런 레이아를 말리려 했겠지만, 지금 내 물건을 잡고 있는 장본인은 마침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있었다.
“레이아 말이 맞아! 뭐 하는 거야!? 이래서는 제대로 씻길 수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내 물건을 잡은 손을 더욱 힘차게 움직이는 사라.
하지만 누가 봐도 씻긴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 뿐, 사라는 아까부터 목욕 거품을 이용한 대딸과 다름없는 손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지금 손놀림이 거세진 이유도, 그냥 레이아가 나한테 하는 걸 보고 질투와 흥분이 폭발한 거겠지.
아무튼 그렇게 되니 내 물건 끝에서 새어 나오는 쿠퍼액의 양도 더 많아졌고, 그 모습을 코앞에서 본 사라는 더욱 날 질타했다.
“또 이렇게…이 변태. 싸지 않으면 진정 안 못 하겠어?”
그러고서 사라는 마치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다는 듯이, 아예 새끼손가락까지 펴고 노골적으로 대딸을 시작했다..
“아아…당시인…”
게다가 오른쪽에서는 핑크 추기경님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기랑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오로지 나만 바라보면서 손으로 내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있는 거다.
일단 내 배를 쓰다듬는 저 손으로 씻겨주고 있다는 명분만은 지키고 있을 셈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쾌락을 가중시키는 애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왼쪽에서는 천사님이 아까 자기 입술에 넣었던 검지를 내 허벅지 안쪽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며 자극하기까지.
그냥 나한테 취해서 키스 세례를 퍼붓는 마틸다와 달리, 천사님은 명백하게 날 기분 좋게 해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러고 있는 거라 더 자극이 심했다.
마치 사라의 손에 연동하듯이 허벅지 안쪽을 간질이면서, 때로는 내 귓가에 대고 요염한 한숨 소리와 함께 할짝할짝 귓불을 핥기까지.
용사와 성녀 둘이 펼치는 꿈의 합공.
이것만으로도 이미 난 한계에 몰렸는데, 뒤에서는 그런 내 한계치를 더욱 낮추는 공작마저 펼쳐졌다.
“…이런 식으로 뭉친 근육을 풀면서 마사지하듯이 씻겨 드리면, 한층 기분이 좋아지십니다.”
“오, 오오…그, 그렇구먼….”
바넷사가 뒤에서 자신의 집사 스킬을 디아나에게 전수해주고 있었던 거다.
시범을 보이는 바넷사나 옆에서 보고 배우는 디아나나 둘 다 별로 집중은 못 하고, 모든 신경을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집중 못 할 거면 잘하지라도 말지. 그러면서도 몸에 밴 습관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듯 바넷사는 등 마사지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어서, 내 몸은 노곤하게 힘이 풀려 사정을 참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자, 싸! 얼른 싸 버려! 싸지 않으면 진정 못 하는 거잖아!?”
아마 아까 한 번 싸지 않았다면 벌써 사정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사정만큼은 참고 있었지만, 여기에 남자 모험가들의 아이돌. 접수원 누님이 가세해왔다.
“아, 안 돼요. 사라 씨. 구원 씨의 정력이라면 아무리 사정해도 끝이 없을 거예요.”
얼핏 들으면 이 공간에서 유일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 누님이 제일 심하게 패닉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가 막고 있는 사이에…아으응….”
레이첼 누님이 내놓은 내 쿠퍼액의 해결책.
그건 바로 본인의 입으로 쿠퍼액을 빨아먹고 있는 동안, 사라가 밑에서 손으로 물건을 씻겨준다는 무시무시한 방법이었다.
제, 젠장. 안 그래도 한계였는데 귀두 위를 레이첼 누님의 말랑말랑한 입술이 덮기까지 하니…으윽.
“하으으…진한 냄새애….”
누, 누니이임! 누님까지 발동 걸려버리면 어떻게 해요!?
사라가 실시간으로 닦아주고 있는데 냄새가 날 리가…요, 요도구를 핥는 건 진짜 참아주세요! 설마 냄새라는 게 쿠퍼액 냄새를 말하는 거였어요!? 확실히 그렇게 요도구를 핥으면 쿠퍼액이 더 많이 흘러나오기는 하겠지만, 아니. 이젠 쿠퍼액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사라 씨. 기둥도 중요하지만, 주머니도 신경 써주지 않으면 안 돼요. 이렇게 주름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물건에 느껴지는 레이첼 누님의 입술과 사라의 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 왼쪽에서 내 허벅지 안쪽을 간질이던 천사님의 손이 슬그머니 내 다리 안쪽으로 더 들어왔다. 순식간에 사라가 잡고 있는 아래쪽, 고환을 움켜쥔 레이아는 자기가 말한 대로 섬세한 손놀림으로 날 자극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으윽!?”
싸겠다는 신호도 보내지 못하고, 내 몸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윽!?” “아읏!?”
하지만 뒤에는 이미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어서 내 뒷머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기 때문에, 내게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날 가슴에 안게 된 바넷사나, 그 모습을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보고 있는 디아나는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이지만.
하지만 그 둘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난 지금 정신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건, 허리를 위아래로 바들바들 떨면서 이 엄청난 사정을 조금이라도 오래 즐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응읍! 으읍…응큿…후우우우….”
반사적으로 떨리는 허리 움직임은 제어가 되지 않는 만큼 난폭해서, 내 물건 끝을 물고 있던 레이첼 누님의 입 안쪽을 물건으로 사정없이 찌르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레이첼 누님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입안에 퍼지는 정액 냄새가 황홀하다는 듯 물건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목을 꿀꺽꿀꺽 울리며 내 사정을 받아주었다.
뭐, 그래도 내 사정을 전부 받아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잠깐! 내가 싸게 해준 건데 왜 전부 레이첼한테 싸는 거야!?”
또다시 질투심이 폭발한 용사님에 의해서 말이다.
아직 사정 도중인 내 물건을 레이첼 누님의 입에서 난폭하게 꺼낸 사라는, 남한테 줄 바에야 전부 자기가 마시겠다는 듯 내 귀두를 입술로 물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으윽!? 야. 그래서는 그냥 정액을 받아마시는 게 아니라….
“아앙. 너무해요. 사라 씨. 저한테도 나눠주세요. 구원 씨의…어머.”
하지만 발동이 걸린 건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레이첼 누님 역시도 발동 걸린 건 마찬가지여서, 내 정액을 이대로 놓치기 싫다는 듯 다시 얼굴을 내 물건 쪽에 들이밀었다.
그렇지만 그사이에 이미 내 긴 사정도 끝이 나 버려서, 남아 있는 정액은 이제 사라의 입안에 있는 것밖에 없었다.
“…….”
레이첼의 눈은 자연스럽게 사라의 입으로 향했고, 그 순간 감이 좋은 용사님은 본능적으로 몸의 위기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조, 조흠…드이게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키스 당해서 입안에 있는 정액을 강탈당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정액을 입에 머금은 채로 다급히 말한 후, 사라는 혀를 길게 내밀어서 입안에 있던 정액을 내 물건 끝에 다시 주르륵 내뱉었다.
“고마워요.”
그러자 레이첼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물건 위를 타고 흐르는 정액을 혀로 핥았고, 그 자극은 지금 막 사정한 내 물건에는 너무도 큰 쾌감으로 다가왔다.
“윽….”
내 물건에서 다시 한 발 정액이 쏘아져 나와 레이첼 누님의 얼굴을 더럽히자, 잠깐 레이첼 누님의 기세에 눌렸던 사라의 질투심에도 다시금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여, 역시 저도 줘요!”
그렇게 시작된 사라와 레이첼의 더블 펠라. 둘 다 조금이라도 더 자기가 많은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는 모습이, 마치 내 물건을 사이에 두고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한 명은 차가운 인상의 미녀고, 한 명은 이지적인 인상의 미녀다. 이런 행위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둘이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이러고 있으니, 물건에서 느껴지는 직접적인 쾌감이 아니더라도 정신이 나갈 것만큼 흥분했다.
그리고 그럼 감정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지, 옆에 있던 레이아도 뒤에 있던 디아나와 바넷사도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유일하게 마틸다만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가슴에 키스 세례를…으윽. 이 녀석 지금 유두를 앞니로 살짝 깨물었어.
아무튼 한동안 욕실에는 혀가 무언가를 할짝이는 소리만 울려 퍼지게 됐다.
그 묘한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디아나였다.
“으헷!?”
디아나 본인도 의식하고 침묵을 깬 느낌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돌려 디아나를 쳐다보니, 그 눈은 내가 아닌 레이아 쪽을 향해 있었다.
뭐지? 갑자기 레이아는 왜 그렇게 쳐다보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레이아쪽으로 돌리려고 한 순간.
“자, 자네!”
디아나가 내 턱을 잡고 위를 향해 들어 올렸다.
원래부터 상체를 뒤로 기울이고 뒷머리를 바넷사의 가슴에 파묻고 있었던 만큼,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린다고 해도 그리 크게 자세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후읏….”
뒷머리가 바넷사의 탄력 있는 가슴에 조금 더 파묻히기는 했지만, 바넷사도 살짝 뜨거운 한숨만 내뿜었을 뿐 불평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 얼굴은 이 몸이 씻겨주겠네!”
그렇게 외친 디아나는, 곧장 고개를 숙여서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어붙여 왔다.
이거, 씻는다고 말해도 되는 거야? 차라리 정면으로 마주 보고 하는 키스였으면 서로 얼굴을 비비면서 씻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디아나는 내 뒤. 그러니까 뒤로 넘어간 내 머리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그 위치에서 키스하려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 위아래가 반대로 되게….
“응…쪽. 쭈릅. 하으….”
뭐, 아무래도 좋지만.
이런 식의 키스는 우리 키스 좋아하는 대마법사님과도 별로 해본 적이 없는 키스라 그런지, 입술과 혀에 느껴지는 감각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렇게 입술로는 디아나의 입술을, 가슴으로는 마틸다의 입술을, 물건으로는 사라와 레이첼의 입술을 맞보며 공중에 떠 있는 듯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자니, 갑자기 왼손에 커다랗고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것이 물컹하고 닿았다.
처음에는 팔을 씻겨주듯이 사이에 끼우고 비볐지만, 이내 씻기는 척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손바닥을 덮는 그 감촉.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움켜쥐니, 옆에서 ‘아응….’ 하고 요염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사라 씨. 레이첼 씨. 너무 그렇게 핥으면 또 사정해 버리실 거예요.”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뺏을 생각하지 마세요.
마치 그렇게 말하듯 내 물건 뿌리를 손에 꼭 쥐고 핥으면서 대답한 사라였지만, 레이아는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이나 밖에 싸게 하는 건 너무 불쌍해요.”
일단 밖이 아니라 입안에 쌌지만, 그걸 지적하고 넘어갈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레이아가 지금 한 말의 의도가 훨씬 더 중요하기도 했고.
“밖이 아니면…레이아, 진심이에요?”
레이아가 한 말은 즉, 이제 슬슬 섹스를 하게 해주자는 뜻이었으니까.
그것도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는 성직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거다.
물론 지금까지 한 것도 충분히 성행위였지만, 아직은 아까 마틸다가 그랬던 것처럼 씻겨주는 행위였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삽입하는 건 어떤 식으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라는 그걸 지적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레이아는 사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씨나 레이첼씨만 독점하는 것도 안 돼요. 그러니까…추기경님. 어떠세요?”
“네!?”
지금까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도 안 쓰고 나한테만 집중하던 마틸다도, 그 제안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기 혼자만 규율을 어기기 싫어서 마틸다도 끌어들이려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우리 천사님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천사님이 마틸다에게 저런 제안을 한 이유는…아, 설마. 아까 말했던 레벨업 때문에?
차례를 바꿔주겠다는 말은 내가 거절했으니까, 이런 변칙적인 방법으로 레벨을 올려주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이렇게 다 같이 애무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의 시작도 레이아였지.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으응읍! 으읍!”
레이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내 입술은 디아나의 입술에 단단히 막혀 있었다.
“후훗. 괜찮아요. 저도…꼭 할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천사님은 수줍으면서도 요염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해 줬다.
“그러니까 추기경님. 먼저 어떠세요?”
레이아가 마틸다의 팔을 슬며시 잡아당기자, 방심하고 있던 마틸다는 엉겁결에 내 위로 올라타는 것 같은 자세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마틸다의 몸이 이동하면서 가슴이 내 몸 이곳저곳에 짓눌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사라와 레이첼 누님에게 자극받고 있던 내 물건도 더욱 탄력을 받아서.
“으응….”
마틸다의 엉덩이 사이에 정확히 내 물건이 끼게 됐다.
아마 평소의 핑크빛 마틸다였다면 주저 없이 삽입했을 거다. 실제로 지금도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빼고는 앞뒤로 살짝살짝 움직였으니까. 마치 자기 음부를 내 물건 윗면에 비비듯이 말이다.
하지만 성직자의 규율은 그런 마틸다조차도 선뜻 삽입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특히 마틸다는 추기경으로서 남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있을 테니까.
“분명 알아주실 거예요.”
하지만 고민하는 마틸다에게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아는 살며시 등을 떠밀었다.
아까 사라가 삽입하려고 했을 때는 둘 다 반사적으로 등을 돌렸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미 한번 결론이 나왔던 문제니까.
성직자의 규율은 여신님의 가르침과 크게 상관이 없다. 여신님도 이런 행위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오랫동안 지켜져 온 규율이니 웬만하면 지키려고 해야겠지만, 필요할 때에는 가끔 이렇게 해도 괜찮을 거다. 특히 내 레벨을 올리는 건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레이아의 말에는 그런 의미가 내포된 거겠지.
“그렇…군요. 후우….”
마틸다도 레이아의 뜻을 이해한 거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마틸다는 눈을 감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마틸다의 눈빛은 내 몸에 올라타기 전처럼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당신…오래 기다리셨죠?”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자기 배 아래로 뻗어서 내 물건을 잡아 고정한 후, 마틸다는 엉덩이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어서 내 귀두에 자기 음부를 비벼댔다.
일자로 꾹 닫힌 두툼한 음부가 좌우로 벌어지는 감각이 귀두를 통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반사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아응…후훗. 얼마든지, 만져주세요.”
물론 레이아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도.
하지만 레이아는 아파하는 내색은커녕 오히려 요염한 신음과 함께 내 손등 위로 손을 얹더니, 주물주물 움직여서 내 손이 자기 가슴을 주무르는 것을 돕기까지 했다.
“아아…레이아씨. 그런 식으로 주의를 돌리는 건 치사해요. 그럼 전…으으응!”
그리고 그 모습에 자극받은 건지, 마틸다는 더 애태울 생각도 없었다는 듯 단숨에 내 물건을 끝까지 삽입했다.
“으윽!?”
성기사로서 단련된 좁은 틈을 애액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비집고 들어가서, 단숨에 자궁구에 귀두가 키스하는 감각.
게다가 마틸다는 지금 나보다 훨씬 레벨이 높았다. 이렇게 나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과 하는 건 무척이나 오랜만이어서, 잊고 있던 쾌감이 오랜만에 몸을 덮치자 아무리 나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나마 왼손에 잡힌 레이아의 가슴을 꽉 움켜쥐며 어떻게든 버티기는 버텼지만, 젠장. 이러니까 성녀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고 괜히 더 의식하게 되잖아.
“하아…겨우 다시 이쪽을 보시네요. 쪽. 어떠세요? 당신…성녀가 된 제 안쪽은….”
게다가 당연하게도 마틸다의 행위는 삽입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랑스러운 눈웃음과 함께 상체를 숙여서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준 후, 마틸다는 다시 몸을 꼿꼿하게 세운 후 천천히 허리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 안쪽을 차분히 감상해 보라는 것처럼.
으윽…이런 걸, 참을 수 있을 리가….
“하응…지금 움찔하고 떨렸어요. 당신, 벌써 싸고 싶으신가요? 괜찮아요. 싸고 싶으시면 언제든지…으응…여기에…잔뜩….”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는 조금 더 몸을 아래로 내렸다.
안 그래도 귀두가 자궁구에 키스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더 몸을 내리니 완벽하게 조준이 고정되어서, 이대로 싸면 직접 배 안에 싸게 될 것은 확실했다.
아마 이대로 엄청나게 기분 좋겠지.
상상하는 것만으도로 몸이 떨려오는 쾌감이었지만, 나는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고 간신히 버텼다.
그래도 성자라는 놈이, 벌써 싼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쌀 수는 없잖아? 적어도 마틸다가 느낄 때까지는 버텨주겠어.
그러기 위해서 나는 비어 있는 오른손을 뻗어서 마틸다의 가슴을 덥석 잡았다.
기교를 부리며 허리 아래쪽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마틸다였지만, 그래도 상반신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묵직한 가슴이 내 손안에서 가볍게 출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무게감을 만끽하며 살짝 들어 올리니, 그 아래쪽으로는 예쁜 가슴선을 따라 새겨진 사도 인장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줄곧 저주의 흔적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렇게 제대로 보는 건 나조차도 처음이었다.
엄지를 뻗어서 사도 인장을 슬쩍 훑어주니.
“아으응…당시인…그건…반칙이에요오….”
지금까지 기교를 잔뜩 부린다는 느낌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틸다의 엉덩이가 위아래로 덜컥덜컥 움직였다.
드디어 마틸다도 기분 좋아지기 시작한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기뻐할 여유는 내게 없었다.
기분 좋아진 마틸다가 반사적으로 안쪽을 꾸욱 조이면서 여유 없는 움직임을 선보이자, 내가 느낀 쾌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다.
아, 위험.
그렇게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늦어서.
“하으으응…. 하아…당시인…그렇게나 제 안쪽이…기분 좋으셨나요?”
나는 순식간에 마틸다의 안쪽에 정액을 쏟아내고 말았다.
마틸다 역시도 정액이 안쪽을 때리는 느낌이 기분 좋은지 고개를 살짝 들면서 가볍게 느낀 모양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내 여유를 되찾은 마틸다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허리를 돌려서 남아 있는 내 정액을 전부 짜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모습에 먼저 싸 버린 날 책망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크윽. 왠지 모를 패배감이.
그래도 어차피 내 총탄은 무한이다. 재도전해서 이번에야말로 마틸다를 먼저 무너뜨리면 그만….
“마, 마틸다! 한 번 했으면 이제 비키세요!”
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그런 걸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사라 이 녀석,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라니. 그래도 성직자 콤비가 큰 결심하고 하는 행위인만큼, 한 번 쌀 때까지는 참고 있어준 건가.
내가 다른 여자랑 섹스하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 참는 바람에, 아까보다 훨씬 더 흥분한 모양이었지만.
“싫어요. 전 아직….”
하지만 마틸다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직 자기는 절정에 달하니 못한 만큼 한 번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할 셈이겠지.
그래도 내 위신을 세워준다고 끝까지 말하지 않고 눈치를 봤지만, 그게 더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내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구원! 자기만 싸지 말고 빨리…자, 잠깐. 무, 뭐하려고?”
그리고 흥분한 사라가 날 닦달하는 순간 그 감정도 폭발해서, 나는 드디어 기껏 유지하고 있던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래. 모처럼. 어쩌면 다시 없을 하렘 플레이잖아. 내가 왜 참을 필요가 있지? 좋아. 즐겨주겠어. 엉망진창으로 즐겨주겠어.
몸을 일으킨 나는 마틸다를 바닥에 눕히고, 그 옆에 사라를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왼팔로 레이아의 허리를 휘감아서 그 가슴을 내 몸에 밀착시키고는, 더욱 팔을 뻗어 손은 사라의 엉덩이 위로 얹었다.
“뭐하냐니? 너도 빨리하고 싶어서 닦달하는 거잖아? 기분 좋게 해줄게.”
사라의 엉덩이 위에 새겨진 사도 인장을 손으로 훑으면서 그렇게 말해 준 후, 나는 곧장 손가락을 엉덩이 사이에서 굳게 다물어져 있는 음부 안으로 집어넣었다.
“으응!? 기, 기분 좋아지고 싶다는 게…흐읏!?”
사라는 뭔가 말하며 반항하려 했지만, 내가 손가락을 거칠게 움직이자 바로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흥분 상태였으니, 내 진심이 담긴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이 행위로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아아…하앗…흐읏….”
사라를 공략하는 쪽 팔에 허리를 안겨 있는 레이아 역시도, 내 팔을 통해 손의 움직임이나 사라의 떨림이 느껴지는 건지 내 가슴에 매달려서 깊은 한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볼록하게 서 있던 유두는 내 몸에 짓눌리며 점점 더 딱딱해져 가고,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요기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런 레이아도 동시에 위로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내 몸은 하나여서 말이지. 입술에 가볍게 키스해주는 걸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이 비어 있지 않냐고? 그렇지 않아. 오른손은 오른손대로.
“하읏!? 자, 자네…?”
이렇게 할 일이 있으니까.
뒤로 손을 뻗어서 언제부턴가 멍하니 우리를 보고만 있던 디아나의 몸을 내 옆으로 잡아끌어 온 후, 나는 엉덩이 쪽으로 손을 돌려 중지와 약지를 음부 사이로 파고들게 했다.
무릎으로 서 있는 자세 때문에 음부에 손라가을 침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살짝 손가락을 가져다 대보니 이쪽도 역시나 물이 아닌 다른 액체로 눅진눅진하게 젖어 있었다.
말랑말랑한 음부살을 슬쩍 비집고 손가락을 침입시키니, 굳게 닫힌 겉모습과 달리 너무도 쉽게 내 손가락 두 개를 삼키는 디아나의 음부였다.
“응흐으읏…자, 자녜에…이 모믄…응그읏.”
내 어깨에 매달려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날 올려다보는 디아나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남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 더없이 흥분한 듯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그래도 간신히 이성을 놓지는 않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버티고는 있었지만, 작은 가슴 위로 볼록하게 솟는 유두나 손가락을 꾸욱 조이는 음부를 봐서는 그다지 효과는 없는 모양이었다.
“으응…쪼옥…하으으…냥군니임….”
마무리로 입술에 진한 딥키스를 해주자, 결국 디아나는 입가에 흐르는 타액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내 몸에 매달리며 내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엉덩이만 바들바들 떨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양옆을 내 여자로 채우면서 만끽하고 있자니, 내 허리를 부드럽게 휘감는 다리가 있었다.
“당시인…절 잊으신 건 아니죠? 지금 당신과 이어져 있는 건…으응…!”
난 욕실 의자에 앉아 있고 마틸다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 보니, 나와의 삽입을 풀지 않기 위해서는 마틸다가 허리를 들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페널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추기경님은 내 허리를 다리로 감싸고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날 유혹했다.
마틸다를 제대로 느끼게 하지 못 한 만큼 내 레벨은 전혀 오르지 않아서, 여전히 레벨 차이는 압도적. 그만큼 마틸다가 주는 쾌감 역시도 여전히 압도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안에 싼 덕분인지 아까보다는 버틸만했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기대해.”
스킬까지 쓸 필요도 없어.
좌우로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를 한 번에 만끽하면서, 나는 허리를 거칠게 앞뒤로 흔들어 마틸다의 안쪽을 쿵쿵 찧었다.
“응흐읏?! 흐읏!?”
아까처럼 마틸다 자신이 주도하는 게 아닌 만큼 여유도 없어졌는지, 마틸다도 내 허리 움직임에 따라서 아까와는 다르게 허리를 펄떡펄떡 움직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까보다 음부가 더 꼭 조여오고, 자궁구는 귀두가 닿을 때마다 키스하듯이 쪽쪽 빨아들이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마저도 내 허리 움직임에 더욱 불을 붙이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응으으으읏!?”
그리고 마지막으로 쿵하고 내 귀두가 자궁구를 찧은 순간, 마틸다는 브릿지 자세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높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내 허리에 감았던 다리도 힘이 빠져서 마치 뒤집어진 개구리 같은 자세로 바닥에 축 늘어진 마틸다.
평소라면 가슴이든 머리든 쓰다듬어 주며 키스라도 나눴겠지만, 지금의 나는 마틸다가 바닥에 널브러지면서 빠져 버린 물건도 다시 삽입하지 못할 정도로 손이 부족했다.
“레이첼.”
뭐,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이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이번에는 마틸다가 너무 빨리 느껴 버리는 바람에 난 사정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까 사정한 게 있는 만큼 내 물건은 애액과 더불어 정액도 듬뿍 묻어 있었다.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보고만 있던 레이첼 누님을 향해 ‘이런 거 좋아하잖아?’라는 의미를 담아서 허리를 살짝 내밀자, 누님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엉금엉금 섹시하게 기어와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 마셨어?”
안에 남은 정액까지 전부 깨끗하게 빨린 걸 느낀 후, 나는 아래를 향해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손으로는 여전히 사라와 디아나의 음부를 가지고 놀면서.
흥분했어도 아직 부끄러움이 조금 남아있기는 한 것인지 누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래도 입을 벌리고 혀를 빼꼼 내미는 것으로 내 질문에 대답해줬다.
“고마워. 나중에 또 마시게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이렇게 다른 사람과의 행위를 뒤처리해준 레이첼 누님에게 다음 차례를 주는 게 순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의 원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마틸다가 누구에게 등을 떠밀려 규율을 어겼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잖아?
뭐 솔직히 말해서, 성녀 둘을 겹쳐놓고 해보고 싶다는 사욕도 있었지만.
그런고로 나는 레이첼을 뒤로 물리고, 사라의 음부 안쪽을 휘젓고 있던 왼손을 뽑았다.
“응흐읏!?”
안 그래도 내 손기술에 농락당하고 있던 사라는 바로 옆에서 마틸다가 절정하는 순간 성벽을 제대로 자극받았는지 자기도 동시에 절정에 달해버렸었다.
그래서 레이첼이 내 물건을 봉사하는 동안에는 얼굴부터 가슴까지 바닥에 밀착시키고 그 매력적인 엉덩이만 위로 치켜든 채, 내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연장되는 절정의 여운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내가 거칠게 손가락을 뽑으니, 사라의 음부에서 애액이 퓩퓩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런 걸 보니 또 우리 건방진 용사님을 제대로 혼쭐내주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았지만, 그건 조금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우선….
“아응….”
나는 사라의 음부에서 뽑은 손을 그대로 레이아의 가슴으로 가져가, 이미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진 그 유두를 붙잡고 가볍게 비틀었다.
“레이아.”
“응…쪼옥. 네에….”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가볍게 키스해주는 것만으로도 레이아는 내 의도를 완벽히 파악해서,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마틸다의 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 이렇게 하면…되나요…?”
완전히 마틸다의 위로 올라타서 후배위 자세가 된 레이아는, 아무리 자기가 주도했어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건지 떨리는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완벽해.”
정말 여러모로 완벽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림이었다.
이 세계에서 제일 신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녀님 둘이 몸을 겹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다. 물론 레이아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어서 아예 몸을 밀착되지는 않았지만, 둘의 커다란 가슴까지 맞닿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숨을 쉴 때마다 자연스럽게 가슴이 움직이면서 서로의 유두가 살짝살짝 비벼지는 건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레이아뿐만 아니라 바닥에 누운 마틸다 역시도 간헐적으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게다가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건 성녀 둘의 샌드위치뿐만이 아니었다.
레이아가 마틸다의 몸 위로 올라탔다는 건, 사라와 나란히 있게 됐다는 걸 뜻한다. 그것도 둘 다 후배위 자세로.
즉, 지금 내 눈앞에는 용사님과 성녀님의 엉덩이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는 얘기다.
하렘 플레이하면 빼놓을 수 없는 흔한 구도였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이렇게 흥분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맨정신으로는 절대 이런 짓을 안 할 그 사라와, 다른 의미로 이런 짓을 안 해야 되는 성녀님이다.
여기에 만약 대마법사님까지 똑같은 자세로 옆에 엎드린다면….
“디아나. 너도 레이아 오른쪽에 엎드릴래?”
“흥기읏…으응…”
도저히 상상만으로 남겨두긴 아까워서 그 음부 안을 헤집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며 디아나에게 제안해봤지만, 디아나는 내 손가락을 끊어버릴 듯 음부를 조이면서도 내 가슴에 파묻은 얼굴을 도리도리 문질렀다.
계속 자극하며 노출증을 자극하고 있었으니, 이미 진작에 이성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응긋…!?”
디아나의 음부에 넣었던 중지와 약지 사이를 벌려서 그 꽉 조이는 음부 입구를 활짝 열자, 그 사이에서 진한 애액이 길게 바닥으로 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몸은 벌써 이렇게 되어있는데 말이지. 뭐, 좋아. 일단 지금은 이걸로 봐줄까.
“하으응!?”
적당히 안쪽을 휘젓고 있던 손가락 움직임을 바꿔서 이제는 정확히 그 안쪽의 약점을 비벼주자, 디아나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일단 디아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자극을 가하기로 하고, 나는 정면에서 엎드리고 있는 레이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미안. 조금 기다렸지?”
“아흣…아, 아니에요오….”
왼손으로 그 부드러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레이아는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면서도 애써 미소로 대답해줬다.
“그럼 이제 꼬리는 치워줄래?”
레이아는 지금 아홉 개의 꼬리를 한데 모아 하나의 큰 꼬리처럼 만들어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었다.
딱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것이 이건 이거대로 흥분되는 광경이었지만, 계속 이래서야 제일 중요한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네에….”
허리를 움직여서 물건 끝으로 레이아의 엉덩이를 콕콕 찌르자, 레이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천천히 꼬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렇게 천천히 드러난 레이아의 음부는 당장 내 물건을 원한다는 듯 애액을 뚝뚝 떨어뜨리며 야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 바로 아래에는 내 정액을 울컥울컥 쏟아내는 마틸다의 음부가, 위에서 떨어지는 애액이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떨리고 있기까지 했다.
당장 이성을 잃고 덮쳐도 이상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나는 아플 정도로 발기한 물건을 레이아의 음부에 부드럽게 비비기만 하면서 계속 레이아를 말로 괴롭혔다.
“벌써 이렇게 됐네?”
내가 손으로 계속 괴롭힌 사라나 디아나라면 모를까, 레이아는 그냥 품에 안고 있기만 했을 뿐인데. 너무 야한 거 아니야?
그런 의미를 담아서 물건 위쪽에 천천히 레이아의 애액을 바르듯 문지르자, 레이아도 내 말뜻을 이해하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구원 씨…너무 짓궂으세요….”
이런 식의 짓궂은 장난에 대한 내성이 다른 애들보다 떨어지다 보니, 제대로 반박도 못 하고 수치심에 떠는 천사님.
그런 모습이 또 너무 가련해서, 나도 결국 참지 못하고 바로 그 음부에 물건을 꽂았다.
“응흐으읏!?”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젖어있잖아.”
안쪽까지 한 번에 꽂았다가 천천히 앞뒤로. 내 물건에 묻은 레이첼의 타액을 레이아의 애액으로 덧씌우듯 움직이자, 레이아의 안쪽이 움찔움찔 떨리며 내 물건을 자근자근 물었다.
“그렇게 기대했어?”
“그건…아흥…네에….”
천사님. 그렇게 순순히 대답하면 어떻게 해요? 물론 그게 천사님의 매력이지만.
“그래? 그럼 레이아가 직접 움직여봐.”
나는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를 레이아의 엉덩이에 바짝 밀어붙인 채로 멈추고, 그 엉덩이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제, 제가….”
“응. 레이아가. 기대했잖아? 그러니까 레이아가 기대한 대로 움직여 봐.”
“아읏….”
구미호이기 때문인지 천사님의 허리 움직임은 펠리시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기교를 남들 앞에서 보이는 건 역시나 부끄러운 것인지, 천사님은 고개를 홱홱 돌려서 주위를 살폈다.
내 옆에 있는 디아나나, 앞쪽에서 보고 있는 레이첼 누님. 바로 옆에 있는 사라. 그리고 자신의 아래에 깔린 마틸다까지.
전부 눈이 마주치자 더 부끄러워졌는지 목까지 빨개지는 천사님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행위를 강하게 의식한 것처럼 그 눈에서는 보랏빛 안광이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그럼….”
부끄러움과 동시에 요염함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 천사님은, 천천히 엉덩이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배위 자세로 하기에는 꽤나 난이도 있는 기술이었지만, 그 점은 역시나 구미호라고 할까. 완벽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원을 그리면서 동시에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기까지.
정확히 내가 원하는 부분을 자신의 음부로 살살 긁어주는 것 같은 그 움직임에, 내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천사님이야. 정말로 난 움직일 필요도 없겠어.
가만히 왼손을 천사님의 엉덩이 위에 올려놓고 그 움직임을 즐기고 있자니, 문득 옆에 나란히 엉덩이를 들고 엎드려있는 사라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길고 긴 절정의 여운이 끝났는지, 사라는 질투심 섞인 표정으로 옆에 있는 레이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는지, 얼굴부터 가슴까지 바닥에 완전히 밀착시키고 있었지만.
“응흣….”
너무 그렇게 질투하지 말라고.
그런 의미를 담아서 왼손을 그 엉덩이 위로 옮기니, 사라의 엉덩이가 바르르 떨리며 그 음부 틈에서 아까 다 뿜어내지 못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나저나 역시 사라의 엉덩이는 레이아와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이군.
둘 다 훌륭하지만, 레이아는 한없이 부드러운 느낌이라면, 사라는 탄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용사와 성녀의, 이런 극상의 엉덩이를 일렬로 늘어놓고 비교하며 만질 수 있다니.
지금 이 상황을 새삼 재인식한 것만으로도 물건이 더욱 팽창하는 느낌이었다.
“아응…흐읏!”
그리고 그에 맞춰서, 레이아의 움직임에서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왜 그래? 레이아?”
“저, 구, 구원 씨…그, 그게에…응흣….”
부끄럽지만 이제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느낌으로 레이아는 내게 애원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벌써 한계야?”
“네, 네헤에….”
“안 되잖아. 난 아직 멀었는데.”
하지만 난 먼저 느껴도 되겠냐는 레이아의 애원을 그냥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뒤에 밀려있는 사람도 많은데, 레이아가 먼저 느껴버리면 또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지 않겠어?
“하, 하지만 저….”
“하지만?”
“죄, 죄송…응…흐읏…응…응흐으읏!?”
끝내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레이아는 아랫입술을 잘근 물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먼저 절정에 달해버리고 말았다.
마틸다를 위에서 짓누를 순 없다는 듯 간신히 팔에 힘을 줘서 쓰러지지 않고는 있었지만, 이래서는 당분간 움직이지는 못하겠군.
“하아…뒤에 밀린 사람도 많은데. 제일 먼저 제안한 레이아가 이래서야….”
아까의 짓궂은 장난의 연장선 같은 느낌으로 또다시 짓궂은 말을 내뱉자, 레이아가 고개를 돌려서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으윽. 장난이 조금 심했나. 천사님이 그런 눈으로 보시면 죄책감이….
“하응…우, 움직…여도….”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천사님의 입에서 달뜬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건 매도의 말이 아니었다.
“응?”
“제, 제 안쪽은 지금…그게…으응…제일 상태가…흐읏…그러니까 구원 씨가…움직이시면….”
“…….”
한숨이 너무 많이 섞여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천사님은 지금 확실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절정 중인 지금이 제 음부가 구원 씨 물건을 제일 꽉꽉 물 때니까, 거리낌 없이 사용해주세요. 이대로 구원 씨가 움직이시면 금방 구원 씨도 사정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천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노골적인 대사를 이해한 순간, 내 머릿속에서 뚝 하고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응!? 흐읏!? 하읏!? 흐으윽!?”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며 천사님의 안에 사정하고 있었다.
천사님은 천사님대로 마틸다를 짓누르지 않겠다는 아까의 노력도 허망하게, 완전히 팔에 힘이 풀려서는 상체가 무너져 마틸다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꽉 밀착시킨 채 엉덩이만 위로 들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허억…허억….”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건을 뽑으니, 천사님의 음부에서 애액이 물총처럼 쏟아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몇 차례 물총을 쏘아낸 후, 완전히 힘이 풀렸는지 위로 들려있던 엉덩이마저 아래로 내려가자, 두 성녀의 음부가 완전히 맞닿으면서 내 정액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장관이 연출됐다.
하지만 난 거기에 신경 쓰고 있을 새가 없었다.
아직 사정이 끝나지 않은 내 물건이 천사님의 예쁜 등 위로 정액을 토해내자,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레이아와 마틸다의 머리맡에서 레이첼 누님이 다가와 다시 내 물건을 입으로 물었기 때문이다.
“으윽….”
사정이 채 끝나지도 않은 물건에는 자극이 강한 청소 펠라였지만, 제대로 불이 붙은 내게는 딱 좋은 자극이었다.
성녀 둘이 녹다운됐지만, 아직도 남은 사람은 많다. 남아있는 멤버들의 면면을 쭉 훑어보면서, 나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어젯밤은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최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뉴턴 아저씨가 그랬지.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이라고. 그 말이 딱 들어맞아서, 난 지금 어젯밤과 사뭇 다른 무척이나 어색한 공간에 내던져져 있었다.
“…….”
“얘, 얘들아? 지금은 즐거운 대책 회의 시간이야. 다들 뭔가 할 말 없어? 아, 알았다. 텔레파시로 알아주길 바라는 거구나? 에이. 우리가 아무리 상사상애에 이심전심하는 사이라도, 너희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발한 대책까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머리가 좋지 않아. 알잖아?”
“…….”
그래.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식사하고, 대책 회의를 위해 다시 모인 지금까지. 날 제외한 누구도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다.
얘들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다 같이 짜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아, 알았어. 그렇게 내 사랑을 시험해 보고 싶다 이거지? 간다! 텔레파시! 이얍! 으그그그극!”
“…….”
두 손끝을 머리에 가져다 대고 인상까지 찌푸리며 광대 노릇을 해봤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건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제, 젠장. 처음 해보는 하렘 플레이라고 신나서 너무 들뜬 게 화근이었나.
평소라면 내 마음의 오아시스 천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저기 마틸다랑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시선을 주고 괜히 꼬리만 만지작거리고 계시거든.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만해. 그런 플레이를 제일 하면 안 되는 성녀님 둘을 겹쳐놓고 한 거니까. 레이아랑 마틸다가 말이 없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아….
레이아와 마틸다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자, 나랑 눈이 마주치는 족족 다들 눈을 피해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어젯밤에 내가 한 짓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응. 그래. 생각해 보니까 사라랑 디아나도 좀…. 그래도 바넷사 넌! 아니. 그러고 보니까 쟤도 디아나랑 할 때…게다가 결국 그런 짓까지 시켰잖아. 하지만 레이는! 그, 그러고 보니 쟤도….
제, 젠장. 생각해 보니까 다들 이럴만하잖아. 제기랄. 왜 하필 이럴 때 레이첼 누님은 출근을 하셔서! 적어도 레이첼 누님이라도 계셨으면! …누님도 같이 어색하게 있었겠구나.
돌이켜 생각하면 생각해 볼수록, 얘들이 이러는 게 확실히 이해가 됐다.
대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지?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그래! 밀어서 안 되면 당겨보자!
“너희 왜 그렇게 어색해? 어젯밤에 다 같이 친목을 도모했으니까 조금 더 친근하게….”
“죽어.”
“죽…!?”
차라리 평소처럼 등짝 스매시라도 날리지.
차갑고 날카롭게 내리꽂힌 사라의 한 마디가 등짝 스매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데미지를 선사해 줘서, 나는 힘없이 무릎 꿇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고개만 살짝 들어서 힐끔힐끔 사라의 눈치를 봤지만.
“…….”
사라의 입은 다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면 ‘안 어울리니까 징그럽게 귀여운 척하지 마.’ 같은 말을 곁들이면서도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게 일반적인 사라의 반응인데.
역시 이번만큼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 주지 않겠다는 건가.
“진짜 미안하다니까. 어젯밤에는 너무 좋아서 이성을 잃었어. 아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 정도면 잘 참은 거 아니야? 저기 가서 거울 한 번 봐봐. 너희 생긴 것 좀 보라고. 너희같이 예쁜 여자들이 다 벗고 한꺼번에 달려드는데 어떤 남자가 그걸 참아!?”
“…구원 님.”
벌떡 일어난 내가 이번에는 역정을 토해내며 말하자, 보다 못했는지 문을 지키고 있던 바넷사가 입을 열었다.
“왜!? 내 말이 틀려!?”
“화내는 척하면서 칭찬으로 무마하려는 생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서 보기 괴롭습니다.”
“쿠헉….”
드, 들켰니? 너 예리하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사나이 구원이 아니지.
“칭찬!? 무슨 칭찬!?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 아님 뭐야? 넌 네가 안 예쁘다고 주장할 생각이야? 그 얼굴에? 그 몸매에? 그렇게 완벽하면서? 하! 억지주장도 할 거면 조금은 그럴듯하게 해야….”
“…크윽.”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바넷사를 타겟으로 삼아서 노도의 칭찬 공세를 퍼붓자, 보기 괴롭다던 아까의 말과 달리 바넷사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하게.”
그리고 그런 집사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건, 역시 주인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네들도 그만 입을 열게. 저자의 말이 맞네. 한시가 바쁜 이때에 언제까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오, 오오오!”
믿고 있었다고 젠장! 역시 대마법사님이야! 어제 그런 짓이나 그런 짓을, 심지어는 그런 짓까지 겪고도 이렇게나 빨리 멘탈을 회복하다니! 역시 3000년 가까이 먹은 나이는 헛것으로 먹은 게 아니었어!
“자, 자네는 이 몸을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아, 아직 완전히 회복한 게 아니었구나. 죄송합니다.
혹여나 디아나의 마음이 다시 꺾일까, 나는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튼 그렇게 드디어 다시 재개된 대책 회의는, 디아나의 주도로 다른 애들까지 점차 입을 열게 되어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직 어색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지. 시간이 해결해주는 수밖에.
어쨌든 다시 대책 얘기로 돌아가자면, 사실 오늘 정해야 할 얘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작전의 기본적인 골자는 어제 다 얘기가 끝났고, 이제 필요한 건 미리엘에게 건네줄 보급품을 정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건 준비 역시도 간단했다.
“원래는 자네의 도움이 되기 위해 준비한 것이네만….”
내가 7계층에서 활약하는 동안 다들 놀고 있는 게 아니었고, 특히 디아나의 경우는 날 위한 물품 제작이나 업그레이드를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까.
원래는 이번에 내가 다시 7계층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물건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미리엘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플리투스의 장악은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특히 바프라와 플리투스가 인접한 전장 부근은 내가 바프라를 장악하는 것보다 빠르게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즉, 미리엘도 그만큼 빨리 보내는 게 좋다는 얘기고, 미리엘을 위한 물품을 추가로 만들 여유도 없다는 얘기다.
“미리엘을 보내는 게 결국 우리 계획을 위한 거니까, 내 도움이 되는 건 변함이 없어.”
아쉬워하는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고, 나는 넓은 탁자 위에 늘어놓은 물품들을 하나하나 분류해나갔다.
그리고 미리엘에게 건네줄 물건까지 준비됐으면 마지막으로 남은 건.
“미리엘이랑 같이 보낼 사람 말인데.”
그래. 마지막 남은 건 바로 이거였다.
어차피 아라크네 클랜에 인재는 넘쳐나고, 감시역이 필요한 것이라면 앨리시아가 있으니까 딱히 사람을 더 붙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미리엘의 계획은 플리투스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아 단숨에 세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리리안 플리투스의 검까지 있으니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춘 계획이지만, 그 계획에는 바로 큰 약점이 있었다. 바로 진짜 용사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 계획의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라도, 용사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동행하는 건 필수 불가결이다.
물론 여기에서 용사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라밖에 없지만….
“…내가 갈까?”
사라와 눈이 마주치니, 절대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애초에 사라를 같이 보낼 거면, 미리엘을 보낼 게 아니라 그냥 리리안 플리투스의 검만 빌려 와서 사라를 보냈겠지. 사라도 리리안 플리투스의 손녀인 건 마찬가지니까.
여전히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미리엘을 보내서 플리투스를 장악하게 하는 것보다, 그냥 아예 사라가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고 플리투스를 장악하게 하는 게 훨씬 든든하다.
물론 미리엘이 그 검을 빌려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사라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그 여정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리엘은 보내는 주제에 무슨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한테는 사라가 훨씬 더 소중하다고. 비정하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어.
그런 위험한 여정에 사라를 보낼 수는 없어.
“아니. 레온을 보낼 생각이야.”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레온을 미리엘과 같이 보내면, 이번에는 바프라를 공략하는 내 쪽에 용사의 힘이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구원 씨. 그래서는….”
“그래. 그럼.”
“사, 사라 씨!?”
다들 그 사실을 바로 깨달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말리려고 했지만, 의외로 사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 뭐지? 사라가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아는 사라는 이럴 때 제일 심하게 반대할 성격인데? 아니. 물론 반대하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쟤 혹시 어젯밤 일 때문에 아직도 화났나? 하지만 아무리 화났어도….
내가 그렇게 혼자 속으로 충격 받고 있자니, 사라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괜찮아요. 어차피 이 바보한테는 제가 붙어갈 테니까.”
그리고 다시 레이아를 쳐다보고는, 또 예고도 없이 충격 발언을 터뜨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붙어가긴 어딜 붙어가!? 너 바프라가 여자한테 얼마나 위험….”
“실비아랑 그 남자 둘이서 밤새 성문 하나를 틀어막았다면서? 누가 날 위험하게 한다는 거야.”
“아니. 네 말대로 거기 사람들이 의외로 실력이 떨어지는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고 레이한테 다 들었어. 레이도 남장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돌아다닌다면서?”
“그건 레이가 바프라…!”
“은사모라는 사람들이랑 손을 잡고 남녀 간의 사랑을 전파하는 게 목적이잖아? 그러면서 여성의 인권도 다시 끌어올리고. 그러려면 바프라를 무찌르는 일행에 나 같이 강한 여자가 한 명 껴있는 게 더 나아.”
아니. 사라야. 나도 말 좀 하자. 무슨 하는 말마다 다 그렇게 끊어 버리니?
게다가 마치 처음부터 준비해놓은 것처럼 술술 반박을 늘어놓다니. 얘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건가? 설마 요즘 계속 레이와 다닌 것도 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어쩐지. 사교성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애가 처음 만난 레이를 계속 데리고 돌아다니더라.
“그리고 위험해지면 너도 실비아도 레이도 마찬가지잖아?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난 무조건 따라갈 거야.”
그 눈에서 엿보이는 강한 의지에, 나는 그 이상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저 고집은 절대 못 꺾을 걸 알아 버렸으니까.
“…그, 그럼 이 몸도! 이 몸도!”
“저, 저도…!”
문제는 그런 사라에게 촉발되어 다른 애들까지 여기저기 손을 들며 자기주장을 시작했다는 점이었지만, 그마저도 우리 용사님은 깔끔하게 해결해냈다.
“안 돼요. 디아나는 구미호 마을에서 모두와 연락하며 작전을 조율해야죠. 레이아는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혼자서 자기 몸을 지킬 힘이 아직 부족하고요. 따라가는 건 저 하나면 충분해요. …그래서 더 할 말은 있어?”
대마법사와 성녀의 주장을 단숨에 쳐부수고, 용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내가 할 말이라고는….
“너 혼자 생각 많이 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나랑 같이 가고 싶었어?”
역시 이런 말밖에 없었다.
“…흥. 알았으면 앞으로 잘해.”
고개를 홱 돌려 버리면서도 부정은 안 하는 게 너무도 사라다웠다.
“야. 그렇게 말하면 꼭 지금까지는 잘 못한 것 같잖아. 어제도 그렇게 잘해 줬….”
“죽어.”
“죽…!?”
이제 좀 분위기도 풀린 것 같아서 장난 한번 쳐본 건데, 대응이 너무 살벌하지 않냐!? 나 진짜 상처받는다!? 너 나 같은 놈이 상처받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으면 얼마나 보기 흉한 줄 알아!?
“이상한 협박하지 마. 이 바보 변태야.”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정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쓰레온과 미리엘을 불러서 직접 얘기해주는 것뿐.
물론 갑자기 플리투스로 가게 된 쓰레온은 당황스럽겠지만, 아마 괜찮겠지. 그 녀석은 지금….
“드, 드디어! 드디어 7계층으로 가는 거지!? 뭐든 시켜! 뭐든 하겠어! 빨리 더러운 마신의 종자들을 감화시켜주자고!”
사람을 시켜서 쓰레온과 미리엘을 부르자, 미리엘보다 쓰레온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만 보면 이 녀석 저택보다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가 훨씬 가까운데 말이야. 어지간히 급했군. 뭐, 피골이 상접한 모습만 봐도 왜 그런지는 알겠지만.
이 녀석, 대체 헬레나한테 기를 얼마나 빨린 거야?
“성자님. 들어가도 될까?”
먼저 온 쓰레온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문밖에서 미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 녀석은 또 왜 메이드를 놔두고 자기가 직접 문을 두드리는 걸까? 설마 나랑 한 마디라도 더 주고받고 싶은 애틋한 여심…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의식과잉인가. 그냥 저런 성격이니 뭐든 자기가 직접 하는 게 편한 거겠지.
“들어와. 조금 늦은 거 아니야?”
쓰레온보다 거리도 가까운 주제에.
뭐, 집에서 헬레나한테 기나 빨리면서 지냈다는 쓰레온과 달리, 저 녀석은 클랜장으로서 할 일이 많을 테니까 이것도 최대한 빨리 온 거겠지만. 그리고 저 녀석이 늦게 온 덕분에 쓰레온에게 따로 주의 사항을 전달할 시간도 있었고.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일단 주의는 줘야겠지. 앞으로 시킬 일이 일인 만큼, 내 명령을 더 빠릿빠릿하게 듣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핀잔을 던져봤지만, 미리엘은 상상도 못 한 대답으로 내 핀잔을 받아쳤다.
“미안해. 성자님을 만날 생각에 들떠 몸치장에 힘을 주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있었어. 하핫. 성자님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여자…이런, 선객이 있었군. 얘기할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줘.”
이제 와서 다른 애들의 존재를 눈치챈 척하지 마라! 내 바로 옆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데 그걸 눈치 못 채는 게 말이 돼!? 다 얘기해놓고 못 들은 걸로 해달라면 끝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우리 애들 주변의 온도가 엄청나게 내려갔잖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쓰레온! 치사하게 너만 살겠다고 구석으로 도망가냐!? 용사면 좀 당당하게 버텨!
“…너 지금 그게 몸치장에 힘을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얘들아. 진정해. 미리엘 쟤 그냥 헛소리하는 거야!
그런 의미를 담아서 우리 애들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미리엘은 내 말에 정색하면서 대꾸했다.
“성자님.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아.”
“헛소리하지 마! 너 그냥 던전 갈 때 입는 갑옷 입고 왔잖아!? 허리에 검까지 차고! 대체 어딜 꾸몄다는 거야!?”
“하핫. 실은 도중에 깨달았거든. 성자님이 이런 때에 날 부를 이유가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애써 공들인 치장을 다 벗어내고 이런 차림으로 오게 됐지. 성자님의 초대에 들떠서 그런 당연한 사실을 바로 깨닫지도 못하다니. 성자님 앞에서는 나도 역시 영락없는 여자…또 지금 할 얘기는 아니었군. 못 들은 걸로 해줘.”
“…음. 앞으로 주의하게.”
연이어 터진 미리엘의 도발에 안 그래도 냉랭하던 우리 애들이 드디어 폭발…할 줄 알았지만, 그전에 디아나가 무게 잡고 말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역시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대마법사님밖에 없어.
“네. 주의하겠습니다.”
제아무리 미리엘이라도 지고의 대마법사님 상대로 너무 막 나갈 수는 없었는지, 디아나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 몸들이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닐세.”
원래 설명은 내가 할 셈이었지만, 나랑 계속 대화하게 두면 미리엘이 또 시답잖은 말로 시간을 질질 끌 거라 생각한 거겠지.
디아나는 날 뒤로 물리고, 자기가 한 발 앞으로 나가서 어제오늘 사이에 결정된 사항들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미리엘은 나와 대화를 더 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는 듯 내 쪽을 힐끔 한번 엿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가 먼저 꺼낸 말인 만큼 다시 디아나 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 말을 경청했다.
“우선은 플리투스와 바프라의 국경지대를 장악…입니까.”
“음. 극심한 전투가 매일같이 이어지는 곳인 만큼, 거친 자들 또한 많을 것으로 예상하네. 그만큼 위험한 임무가 될 걸세. 어쩌면 플리투스의 수도 한복판에서 그 검을 꺼내 드는 것보다 더 말일세. 그러니 자네가 굳이….”
미리엘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자, 디아나는 이때다 싶었는지 미리엘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가. 아까 미리엘이 그렇게 도발했는데도 디아나가 먼저 나서며 분위기를 진정시킨 이유. 아니. 애초에 우리 애들이 그런 도발을 맞고도 폭발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디아나도 다른 애들도, 미리엘이 나한테 눈이 멀어 사지를 향해 제 발로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날 향한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마음에 안 들어도, 그 마음이 일으킨 행동에 대해서는 연민이 생긴다는 건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 애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리엘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진심인가?”
“네. 국경지대를 우선 장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의 도움이 되기 위해 나선 것이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 몸의 낭군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아니었는가?”
얼핏 들으면 비아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것도 디아나 나름대로 경고한 거겠지.
쟤가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낭군님이라는 표현까지 쓴 이유가 뭐겠어? “자네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저자는 이 몸의 것일세. 의미 없는 노력으로 목숨을 버리지 말게.”라는 뜻 아니겠어?
뭐, 그마저도 미리엘한테는 소용이 없었지만.
“하지만 국경지대로 향한다면, 준비가 더 필요하겠군요. 사실 성자님에게 얘기를 꺼낸 후 당장에라도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갖춰두고 있었습니다만.”
디아나의 경고를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로 받아치면서, 미리엘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이걸 기회 삼아서 다시 대화 상대를 디아나에서 나로 바꾸려고까지 했다.
“성자님. 미안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줘. 원래는 간부들로만 이뤄진 소수 정예 파티로 잠입할 생각이었지만, 국경 지대로 향한다면 조금 더 인원을 늘려야겠어.”
“수도에서 국경지대로 목적지가 바뀌는 게, 인원수까지 대폭 바꿀 일이야? 아니. 보채는 게 아니라 진짜로 궁금해서.”
어차피 윗 놈한테 가서 검을 보여주고 플리투스의 정통 후계자라는 걸 인정받는다는 큰 틀의 계획은 변함이 없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리엘로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전쟁신의 세계라고 하더라도, 각 진영의 수도까지 전쟁의 불씨가 튀지는 않지. 그만큼 수도의 사람들은 경계심이 풀려 있을 거야. 하지만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지는 국경지대라면 얘기가 달라져. 수상한 자는 전부 적국의 스파이 취급을 당할 가능성도 있고, 다수에게 둘러싸여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어. 그에 따른 대응이야.”
얼핏 들으면 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도 생각 못하고 질문을 던졌겠어?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아니. 수도로 직행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어차피 국경 지대는 뚫고 지나가야 했잖아. 소수 정예로 거길 뚫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준비를 그렇게 한 거 아니었어?”
“응? 성자님은 각 지역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잖아? 그 정도 도움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어? 성자님은 보기보다 매정하군.”
“그야 물론 도움은 줄 생각이었지만, 그게 아니라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처음부터 그림자 이동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
내가 지금까지 얘한테 그림자 이동을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애초에 그림자 이동으로 7계층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7계층 특유의 구조부터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얘기까지 했으면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데? 그런데 얘는 그 얘기를 어디서 듣고…아. 설마.
“그것도 중2병한테 들었냐?”
어제의 심문을 통해 전쟁신의 사람들은 성자 스킬에 걸리면 내 위치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2병이 강을 건너서까지 날 추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었을 거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그림자 이동으로 구미호 마을에 갔을 때마다 중2병은 느낄 수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미리엘이 중2병을 통해 내 정체불명의 이동법을 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미리엘이 그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는….
“하핫. 드디어 걸렸군.”
“너, 너…! 너 알면서 입 다물고 있었던 거야!?”
전쟁신의 사람들은 성자 스킬에 걸리면 내 위치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내가 어제 그 고생을 하면서 중2병에게 간신히 알아낸 그 정보를, 미리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잖아! 이 녀석, 어제 그 자리에 자기도 같이 있었으면서! 아니. 그것 때문에 나한테 재조교까지 받았으면서!
어쩐지 중2병이 끝까지 미리엘을 믿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니! 어쩐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같더라니! 내가 추궁할 때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어!? ‘역시 용사의 후손답게 모든 걸 실토하지 않았군. 난 널 믿어.’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거 아니야!?
중2병을 완벽히 겁줬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잖아!?
“구원 씨? 갑자기 무슨 말이신가요?”
하지만 나와 미리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지.
물론 성자 스킬이 전쟁신의 사람에게 주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명했지만, 중2병 앞에서 펼친 조교 플레이나 중2병의 입에 내 물건을 물린 것 등은 전부 생략했으니까.
“이 계획은 전부 취소야! 역시 이 녀석은 믿을 수 없어!”
미리엘은 걸렸다면서 시원한 미소를 짓고 끝냈지만, 이건 그냥 장난으로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다. 신용이 제일 중요한 이 계획에서 신용을 잃어버린 거다.
내가 그렇게 외치자, 미리엘도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했는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성자님. 그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미안한데, 잠시만 둘이 나가서 얘기해도 될까? 여기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
또 그 말이냐.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아까 우리 애들을 도발할 때도 써먹었던 말인만큼, 우리 애들도 얘가 나랑 둘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왜요. 그냥 여기서 얘기하지. 괜찮아요. 얘기해 봐요.”
사라야. 너 지금 엄청 무서운 거 아니?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평범한 얘기도 함부로 못 하겠다.
“빨리 얘기하고 올게.”
그래도 사라가 저렇게 나오니 반대로 난 조금 침착해질 수 있어서, 나는 미리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야 구원!”
“진지한 얘기잖아. 진짜 금방 얘기하고 올게. 오빠 믿지?”
물론 뒤에서 사라가 역정을 내기는 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미리엘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와서는 비어 있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별다른 의미는 아니고, 복도에는 메이드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무슨 얘기야. 또 나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내가 그때 바로 얘기하지 않은 건, 물론 오랜만에 성자님의 조교를 받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러는 편이 더 성자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다 큰 처자가 자연스럽게 조교 받고 싶었다는 얘기 하지 마라. 게다가 이번엔 진지한 표정으로 저러니까 더 적응 안 되네.
덕분에 괜히 나만 진지함을 잃을 뻔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미리엘을 추궁했다.
“정보를 알아내는데 괜히 시간만 더 들고, 중2병을 위협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애매해져 버렸는데?”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난 줄리안의 신뢰를 완벽하게 얻을 수 있었어. 이제 뭐든 궁금한 정보가 있다면, 나한테 부탁하면 돼. 줄리안은 내게 뭐든 말해 줄 거야.”
“그런 식으로 나와의 접점도 자연스럽게 더 늘릴 심산이었다는 거군.”
“역시 성자님은 이해력이 빠르군.”
미리엘은 바로 맞췄다는 듯 다시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럼 왜 어제 방에서 나오자마자 얘기 안 했어?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나하고도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만약 오늘 내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 얘기는 계속 어둠에 묻혀 있었을 거다.
“성자님이 내 얘기를 받아들이면 플리투스의 수도로 갈 방법도 얘기할 테니까. 그때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이었어. 뒤늦게 깨닫게 되면, 그만큼 성자님이 분노해서…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군.”
다 말해놓고 또 뭐가 부끄럽다는 거야!? 한마디로 내가 화나서 또 분노의 조교라도 할 줄 알았다는 거 아니야!?
“하핫. 하필이면 다른 사람들도 있을 때 깨닫는 바람에,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설마 국경지대 얘기가 나올 줄이야. 실수했어.”
살포시 얼굴 붉히면서 아쉽다는 표정 짓지 마!
“아무튼 성자님. 전부 성자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으로 벌인 가벼운 일탈이었어. 성자님의 신뢰를 깰 생각은 전혀 없었어. 날 믿어줘.”
황당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리엘은 다시 표정을 다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진짜 얘는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생겨. 진짜 믿어도 되는 거 맞아? 맞겠지? 바로 어제 사도 임명도 확인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하루 지난 지금도 사도 임명이 되나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바로 옆방에 우리 애들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야. 네 말이 다 진심이라도 믿고 한 번만 더 얘기한다. 너 진짜 배신하면 가만 안 둬.”
“으응…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노력하지.”
대신 조교가 아직도 유효한지 확인하기 위해 그 뺨을 강하게 꼬집고 비틀자, 미리엘이 요염한 신음과 함께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이러면서 말하니까 역효과만 나는 것 같은데, 진짜 괜찮겠지?
조금 불안한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전부 미리엘의 관심병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한번 믿어보자고.
미리엘과의 대화를 통해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미리엘을 데리고 우리 애들이 있는 방으로 돌아가 남은 얘기를 마저 하기로 했다.
플리투스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7계층의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디아나가 만든 도구를 전해 줬다.
건네준 도구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꼽자면, 바로 통신 마법이 걸린 반지 간이 텔레포트 마법진이겠지.
특히 텔레포트 마법진은 내가 바프라의 칼데라호 밑바닥에 설치하고 온 것보다 개량된 물건이라, 여신의 마나로 변환시킨 주변의 마나를 일정 공간에 가두는 것으로 밖에서 존재를 눈치채기 어렵게 개량했다고 한다.
4계층에서는 마을 주변을 거대한 공기 방울이 감싸고 있었잖아? 그걸 응용해서 마나의 막을 만들고 소형화까지 성공한 획기적인 물건이라나 뭐라나.
디아나가 이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지 열변을 토해냈지만, 마법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뭐, 확실히 편하기는 할 것 같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런 대단한 물건이지만, 이번에는 아쉽게도 써보지도 못한 채 미리엘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어차피 바프라 곳곳에 협력자가 있는 나보다는 미리엘이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칼데라호 지하에 설치하고 온 건 여신의 마나를 가둬두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 각자 용도가 따로 있다는 거지. 괜히 욕심부려서 바꿀 필요 없어.
“정말……우리한테 이런 걸 맡긴다는 거야?”
하지만 미리엘로서는 그런 사정까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디아나의 열변을 통해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만 들었으니, 내가 선뜻 신형을 건네주는 것에 적잖이 감동한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차라리 평소처럼 시원한 미소라도 짓고 있어.
젠장. 이복자매라고 알기 전까지는 사라랑 닮았다는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알고 나니까 쟤가 저런 표정 지을 때마다 사라가 겹쳐 보인단 말이지.
정작 그 사라 씨는 차가운 눈으로 나랑 미리엘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래. 그러니까 만약 수세에 몰려서 죽을 것 같다 싶으면 이거라도 설치하고 도망쳐. 괜히 오기 부리다가 위험해지지 말고.”
“하지만 이걸 타고 오면 적들도 건너오게 될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소형이라 한 번에 건너올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으니까. 너희가 다 건너온 다음에 구미호 마을에 있는 걸 부숴 버리면 돼. 그사이에 몇 명 건너오는 건 이쪽에서 제압할 수 있기도 하고.”
구미호 마을에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거길 지키고 있는 건 기본적으로 대마법사님이다. 건너온 놈 한둘 정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적이 여신님의 마나를 통해 우리 정체를 알게 되는 건 막을 수 없지 않아?”
“너희가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아.”
“…….”
“그러니까 타이밍 잘 봐가면서 꼭 필요할 때만 써라.”
처음에는 어차피 미리엘이 실패해도 우리는 리스크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렇잖아? 미리엘이 가면 당연히 앨리시아도 따라갈 확률이 높은데, 내가 내 여자를 그냥 버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물론 앨리시아가 따라가지 않는 게 제일이겠지만, 의리로 똘똘 뭉친 애가 가지 말란다고 안 갈리도 없고 말이야.
그러니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건 그냥 바프라를 장악하자마자 플리투스와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보니,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거짓말도 우리 애들은 한눈에 꿰뚫어 봐서, 특히 우리 마음씩 착한 천사님이 적극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반지는 하루 한번 짧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신용 반지야. 아마 디아나가 받을 테니까, 별일 없는 한 하루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보고해.”
이쪽은 텔레포트 마법진과 달리 극적인 업그레이드는 안 된 모양이지만, 정기 보고용으로 사용하기에는 큰 문제 없으니 상관없겠지.
“그리고 남은 건……아.”
슬슬 얘기도 다 마무리된 것 같아서 뭐 빠진 것 없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아까부터 구석에 처박혀 있던 놈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얘기를 안 했네.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잊고 있었어.
“너 전력 보강을 위해 인원을 늘린다고 했지? 쟤도 데려가라. 어차피 용사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으려는 거니까, 용사의 힘을 쓸 줄 아는 놈 한 명 정도는 필요하잖아?”
“……용사는 성자님과 같이 행동하는 것 아니었어?”
“우리 쪽은 어차피 대강 정리가 됐으니까 상관없어. 용사의 힘도, 강한 아군도 너희가 더 필요할 테니까. 같이 데려가.”
사실은 우리는 사라를 데려가니 더 상관없는 거지만, 미리엘한테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괜히 얘한테 사라가 또 다른 용사라는 걸 밝히면 여러모로 복잡해지니까. 사라도 이복자매라는 걸 밝힐 생각은 없는 모양이고.
“그, 그런가.”
하지만 이번에도 내 속내를 모르는 미리엘은, 눈동자가 살짝 요동치기까지 했다.
야. 야. 너 왜 그래? 안 어울리게 왜 그런 표정 짓는 거야?
“무슨 문제 있냐?”
“……아, 아니. 하핫. 성자님께 이 정도 신뢰와 호의를 받으니……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마 평소였으면 또 여심이 어쩌고 하면서 우리 애들을 도발했겠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감동했는지 미리엘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그런 식으로 돌려 표현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감동할 일이냐? 애초에 네가 평소에 수상한 짓만 하고 다니지 않았으면, 난 언제나 이 정도 신뢰를 보여줬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지금 미리엘이 저렇게 감동하는 건,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런가……용사로 전력 보강인가.”
“실력 걱정은 하지 마라. 나랑 다니면서 레벨 업 엄청 했으니까.”
“그래?”
“다, 당연하지! 지금이라면 너한테도 안 져!”
미리엘이 시선을 쓰레온에게 돌리자,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던 쓰레온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허세를 부렸댔다.
지금이라면 안 진다니. 그렇게 말하면 전에는 졌다는 거잖아? 너 언제는 비겼다고 하지 않았냐?
“그건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군. 좋아. 어차피 동행하려면 실력 파악은 필수. 한번 여기에서 대련을……그만두지.”
그리고 미리엘도 쓰레온의 허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둘이 맞붙을 분위기가 형성됐지만……미리엘이 갑자기 힐끔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바꿨다.
얘 또 수상하게 왜 이러는 거야? 왜 꼭 믿을만하면 이렇게 수상한 짓을 하는 거야? 진짜 관심병에라도 걸린 거 아니야?
“왜? 해보지. 마침 지하에 마음껏 싸울 수 있는 대련장도 있어.”
중요 임무를 앞두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반응이었다. 옆에서 “대련장이 아니라 이 몸의 연구실이네만…….”이라고 정정하는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는 그런 식으로 둘의 대련을 부추겼다.
생각해 보니 전직한 미리엘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 하지만 성자님. 나에게도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하지만 그런 내 부추김에, 미리엘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더 수상한데. 진심으로 당황한다는 건, 아까 보여준 수상한 행동이 관심 받으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냥 서로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한 대련이잖아. 마음의 준비씩이나 필요한 일이야?”
“아니. 하지만……알겠어.”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속내가 역력히 드러난 표정으로, 미리엘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할까. 서로의 실력 확인이 목적이니, 처음에는 가볍게 하지.”
지하에 오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내 눈치를 살핀 미리엘이었지만, 도착해 버린 이상 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허리에 차고 온 검 대신 실비아가 연습용으로 쓰는 목검을 손에 쥐고, 미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푸른 화염이 검신을 타고 넘실넘실 흘러나오는 모습은, 나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마법 검사 미리엘 특유의 검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던 화염은 점점 압축되듯이 밀도를 높이고 크기를 죽이더니, 이내 목검의 날에 눈부시게 푸른 빛의 코팅이 씌워진 것 같은 형상이 됐다.
발동 과정이 상당히 다르지만, 저 빛나는 푸른 검날의 모습은 마치…….
“네, 네가 어떻게 그걸!?”
그래.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는 쓰레온의 손에 들린 검기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하핫. 용사의 피를 이은 건 그쪽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간다!”
이렇게 둘이 나란히 늘어놓고 보니 자신이 이룬 성과가 더욱 실감 나는지, 미리엘은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쓰레온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미리엘과 쓰레온의 검이 격돌하자,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어느 쪽의 검기도 밀리는 모습은 없다. 그야 물론 쓰레온이 온 힘을 다해서 마나를 퍼부으면 저거보다 더 강력한 검기도 내뿜을 수 있지만, 적어도 미리엘의 검기가 용사가 평범하게 사용하는 검기에 비해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대련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용사 둘이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겠지.
“이전부터 독특한 방식으로 마법을 운용한다는 생각은 했었네만, 이렇게 보니 미리엘양의 마나 운용 방식은 용사의 그것과 무척이나 흡사하구먼.”
마나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의 보증 수표가 달렸으니 확실했다.
“디아나도 구별이 안 될 정도야?”
“아니. 설명하기 복잡하네만, 미리엘양의 마법 검사였던 만큼 검기 또한 용사는 물론 일반적인 검사와도 궤를 달리한다네. 아무리 운용 방식이 같더라도 근원이 다른 만큼 마법 검사 특유의 그 느낌까지 지울 수는 없지. 하지만 마법 검사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 같구먼.”
즉, 전쟁신의 사람들은 충분히 속여 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미리엘이 처음부터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그리고 아까 쓰레온과의 대련을 주저한 것도, 우리한테 자신의 패를 전부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것치고는 희희낙락하면서 싸우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팽팽하던 구도에 드디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나서 몰아붙이는 미리엘에게 점점 밀리던 쓰레온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진심으로 용사의 힘을 개방한 거다.
자연스럽게 쓰레온이 공세를 잡으며 미리엘은 수세에 몰리게 됐고, 그 몸에 쓰레온의 검이 스쳐 지나가면서…….
“아응! 흐읏!?”
미리엘의 입에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요염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쓰레온은 화들짝 놀라서 검을 뺐고, 미리엘은 미리엘대로 검을 멈춘 채 힐끔힐끔 내 눈치만 살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다른 남자에 의해 느끼는 모습, 성자님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서, 설마 갑자기 대련하기 싫다고 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어!?
그런 거였으면 진작 얘기 좀 하지! 왜 넌 꼭 이럴 때 중요한 얘기를 안 하고 얼버무려서 사람을 의심하게 하는 거야!?
그리고 애초에!
“아, 아니! 너 던전에 다니면서 익숙해졌다면서! 그냥 참고 싸운다면서!”
당황한 나는 미리엘에게 따지듯이 그렇게 말했다.
옆에서 “난 우선 상처 나면서 저렇게 느끼는 이유부터 지적하고 싶은데.”라고 중얼거리는 사라를 필사적으로 무시하면서.
“성자님이 눈앞에 있으니……아무것도 아니야.”
다 말해놓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야 이것아아아아아!
“야. 구원.”
게다가 저 말로 인해, 눈치 빠른 사라가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마 아까 지적하고 싶어 했던 것이 누구 때문에 생긴 일인지 깨달은 거겠지.
“자, 잠깐만! 난 잘못한 거 없어! 난 어디까지나 저 위험한 녀석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려고……아,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대련은 어떻게 된 거야!? 앞으로 위험 지역에서 서로 등을 맡길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자리잖아!”
옆에서 찌를 듯이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다급하게 쓰레온과 미리엘을 부추겼다.
뭐든 해봐! 치고받고 싸우든 뭘 하든 더 해봐! 빨리!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성자님 말대로 전보다 더 강해졌군. 용사가 가세한다면, 더 이상의 증원도 필요 없이 바로 출발해도 되겠어.”
다행히도 이대로 놔두면 내가 사라 손에 죽는다는 걸 깨달은 건지, 미리엘이 곧장 내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왔다.
“그, 그래!? 사실 국경지대 장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긴 한데. 그럼 당장 준비하고 출발할래!?”
“난 상관없어.”
잘했어! 미리엘!
매번 수상해 보이기만 했던 저 특유의 시원스러운 미소가, 지금만큼 예뻐 보인 적이 또 있을까?
“나, 나도! 헬레나한테 인사도 마치고 왔어!”
아니. 쓰레온. 넌 대체 얼마나 급했으면 용건도 모르고 왔으면서 작별 인사까지 하고 왔냐.
쓰레온한테만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고? 그럼 고추 달린 놈한테 얼마나 상냥하게 해주라는 거야?
“좋아! 그럼 당장 출발이다!”
아무튼 미리엘도 쓰레온도 준비가 됐다면, 여기에서 지체하고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너 나중에 나랑 얘기 좀 해.”라고 무섭게 중얼거리는 사라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나는 모두와 함께 아라크네 클랜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