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1082)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73화
중2병과 둘이서 때늦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원래는 아라크네 클랜원들을 파견한 즉시 나도 플리투스 지방을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다시 플리투스로 가는 건 밤이 된 후에나 가능해지니까.
그러면 일단 바프라에 가서 사라나 실비아, 레이한테 사정을 설명하는 것부터 하기로 할까.
아직 그 셋은 중2병이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 일단 바프라의 귀족들에게 자리를 비운다는 말 정도는 해둬야 하니까.
다만 그러려면….
“무, 무슨 일이지…?”
내가 힐끔 시선을 주자, 중2병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얼굴로 반응했다.
말투도 조금 변한 것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풍류공자 중2병 컨셉을 다시 밀고 나갈 생각인 모양이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을 다 보여놓고, 심지어 지금도 내 시선에 위축된 게 티가 팍팍 나는데, 이제 와서 저런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뭐,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굳이 태클 걸 이유도 없나.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너한테 선택지를 두 개 주지.”
“서, 선택지?”
“그래.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에 관한 선택지. 하나는 이대로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물론 내 성자 스킬에 당한 채로. 또 하나는 성자 스킬 없이 나랑 같이 간다. 단, 그때는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의심받을 짓을 하는 즉시 여자로 만들어 버릴 거다.”
“큭….”
내 물건을 보고 느꼈던 위압감이 머릿속에 되살아난 건지, 중2병은 아까보다 조금 더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이군. 이래 봬도 배려해서 선택권을 준 건데 말이야.”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라면 이 녀석한테 선택권을 주는 일도 없이, 그냥 성자 스킬을 걸고 저택에 처박아뒀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
아까 잠깐이라고는 하지만 난 잠들어 있었고, 이 녀석은 그 방에서 내가 깨어날 때까지 계속 같이 있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
그걸 보고 생각하게 된 거지. 어쩌면 이 녀석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내게 굴복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이렇게 바프라에 같이 데려가는 것도 고려해 보게 되었다는 얘기다.
어차피 비스 공략을 위해서는 이 녀석을 계속 끌고 다녀야 하니, 바프라에서 데리고 다니며 이 녀석이 밖에서 어떻게 나올지 미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지? 골라봐.”
“…따라가지.”
둘 다 그리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중2병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후자를 선택했다.
그야 그렇겠지. 전자는 성자 스킬에 고통받을 게 확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자기만 조심하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날 일이니까.
“흐음?”
“무, 뭐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의미심장한 미소를 중2병에게 던져줬다.
이렇게 적당히 분위기만 조성해 줘도, 망상벽의 기미가 엿보이는 중2병은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테니까. ‘서, 설마 이 녀석…내가 아무 일도 안 해도 꼬투리 잡아서 날 여자로 만들 생각인가!?’ 같은 식으로.
그러면 이 녀석은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더 행동을 조심하게 될 테고, 그만큼 난 더 편해질 거라는 계산이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나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중2병과 단둘이 하는 식사는 상당히 어색했고, 중2병은 나보다도 더 불편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우리 완벽 집사님이 해주신 식사는 중2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후우. 식후에 즐기는 홍차만큼 각별한 것은 없지.”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던 풍류 공자 기질이 전부 다 컨셉은 아니었는지,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음식 맛을 즐기게 된 중2병이었다.
“프리움에서 나는 홍차와 비슷하지만, 떫은맛이 조금 더 옅군. 내 취향이야.”
프리움이라니. 파란이 다스리는 거기잖아. 바프라 영지의 홍차를 네가 어떻게….
아니. 그야 날 쫓아 왔으니까 프리움도 거치기는 했겠지만, 너 성자 스킬 때문에 반쯤 미쳐 있었으면서도 홍차 맛은 즐긴 거냐. 이쯤 되면 컨셉에 집어삼켜 진 수준이군.
“하아아….”
“다 마셨냐?”
“흐익!?”
마지막으로 컵을 깨끗하게 비우고 한숨을 포옥 내쉬는 중2병에게 말을 걸자, 조금 전까지의 느긋한 풍류 공자는 어디로 갔는지, 중2병은 화들짝 놀라서 우당탕탕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긴장 풀고 즐기는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보통 눈앞에 있는 적의 존재를 잊냐?
“나, 나는 풍류를 아는 자로서…!”
황당한 눈으로 중2병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기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중2병이 다급하게 변명을 해댔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크윽.”
“아무튼 다 마셨지? 그럼 가자.”
내가 날린 카운터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없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중2병이었지만, 나는 그런 중2병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큿…!”
오늘 가면 또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바넷사에게 인사를 한 다음, 나는 중2병을 데리고 저택을 나왔다.
하지만 저택을 나오자마자, 중2병이 손으로 눈 위에 그늘을 만들며 이상 반응을 보였다.
“왜 그래?”
혹시 오랜만에 햇빛을 봐서 적응 안 되나? 라고 가볍게 생각한 나였지만, 사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햇빛이 강해. 거기에 막히는 일 없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의 모습…이게 우리의 신을 봉인한 그 증오스러운 여신의 힘이라는 건가…!”
중2병적인 의미로.
하지만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런 중2병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제일 좋은지, 난 무척이나 잘 알고 있거든.
“…대사 다 끝났냐?”
“대, 대사 아니야!”
흠미 하나도 없다는 듯이 가랑이를 벅벅 긁으며 말하자, 중2병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일단 자기도 자기 말이 연극톤이었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다.
아니. 시선이 내 다리 사이에 가 있는 걸 보니, 그냥 다시 내 물건 생각나서 얼굴을 붉힌 것뿐인가?
“으윽…!”
시험 삼아서 다시 한번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갔더니, 이번에는 몸까지 움찔하면서 더욱 얼굴을 붉히는 중2병.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왠지, 그냥 단순히 내 물건을 떠올리고 위축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여자였으면 그냥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녀석만큼은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내 물건을 직접 빨 때도 언젠가 남자가 될 자신이 이런 짓을 한다는 굴욕감이나, 비스에서 자라며 생긴 거근 신앙 때문에 내 물건에 압도된 것 같은 모습은 보인 적 있지만, 성적인 흥분이나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아까 식사하면서 잠깐 내 물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했을 때도, 위축되는 모습만 보였지 흥분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보인 적이 없잖아?
그런 녀석이 갑자기 내가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가는 것만 보고도 얼굴을 붉힌다? 그것도 마치 내가 거기에 손을 가져가면 곤란한 것처럼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잠깐만. 이 녀석, 혹시 내 물건에 뭔 짓 한 거 아니야? 아까 이 녀석이랑 있을 때 그냥 잠들어 버렸으니, 뭔가 하려고 했으면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뭐, 좋아. 아무튼 끝났으면 가자.”
의심이 의심을 낳아서 점점 더 의심이 커져갔지만, 그래도 난 일단 별말 없이 바프라로 향하기로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해코지를 한 건 아니겠지. 아무리 내가 날밤을 새우고 정신없이 자던 중이었어도, 그랬으면 깨어났을 테니까.
“당신? 오늘부터 플리투스에 가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길드에서 레이첼 누님과 인사를 나누고, 구미호 마을로. 거기에서 또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바프라의 창관 지하로 들어오니, 오늘도 마틸다가 성실하게 출근해 있었다.
“아, 응. 그전에 여기에 있는 셋한테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 너무 서두르려고 하다가 무리하시면 안 돼요?”
“그건 걱정 마. 난 오히려 마틸다가 무리하고 있을까 봐 그게 더 걱정이야.”
“어머, 저라면 괜찮아요. 창관 일도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풀리고 있는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가 힐끔 시선을 준 그곳에는, 창관 건물 내부 곳곳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일을 치르는 방 안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방 안만 제외하면 창관의 모든 곳을 볼 수 있을 만큼 무수히 많은 화면들.
그리고 그 각각의 화면에는 빠짐없이 성기사나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안내를 헤벌쭉한 얼굴로 뒤따라가는 남성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어쩌면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결과가 빨리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야?”
“네. 거기에 여기에 온 이후로 성기사들의 레벨도…아, 지, 직업 레벨을 말하는 거에요!”
응. 나도 아니까 그렇게 당황 안 해도 돼.
여러 대의명분을 내세워서 세워진 창관이지만, 그 진짜 목적은 창관에 드나드는 남성들에게 서서히 여신님의 사상의 주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포교 활동이라는 거지.
그것도 그냥 포교 활동이 아니라, 여신과 대립하는 신을 믿는 이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포교 활동이다.
그 활동이 성직자가 해야 할 행위로 여신님께 인정받는 모양인지, 이렇게 창관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기사들의 직업 레벨이 쑥쑥 오른다는 게 마틸다의 설명이었다.
즉, 창관에서 일하는 성기사들은 나처럼 레벨과 직업 레벨을 동시에 올리고 있는 거다.
“이대로 가면 여기에서 세계 최강의 성기사 부대가 탄생하는 거 아니야?”
“가능성 있는 말이네요.”
마틸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아마 창관은 이제 마틸다가 굳이 보러오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안정된 거겠지.
뭐, 마틸다는 저런 성격이니 그래도 성실히 보러 오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럼 나는 잠깐 다녀올게.”
“네. 아, 당신. 줄리안 씨도 같이 가실 생각인가요?”
“응? 그런데?”
“밖은 저희만 있는 게 아니니, 줄리안 씨는 이곳에서 기다리게 하시는 게 어떤가요?”
“여기에서?”
보는 눈이 많으니 줄리안을 밖에 데려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의견 자체는 공감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이곳은 창관 관계자들 중에서도 존재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비밀의 방.
만약 여기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진짜로 감당이 안 될 텐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 절 못 믿으시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성기사 대장까지 맡았던 추기경님이, 이제는 혼자 탱딜힐 다 되는 성녀로 전직까지 한 거다.
게다가 레벨도 마틸다가 중2병보다 높으니, 마틸다가 중2병을 제압 못 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안 한다.
문제는 중2병한테 특이한 기술이 있다는 건데….
뭐,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할까. 이미 밖에 돌아다니면서 얌전히 있는 건 위에서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여기에서도 얌전할지 시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야. 너 여기에서 얌전히 있어라.”
“걱정하지 마세요. 다녀오세요.”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마틸다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준 후, 나는 위로 올라가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사라와 실비아, 레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 할 말을 전한 다음에야, 나는 왜 마틸다가 중2병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갈 거야.”
“아니. 사라야.”
확실히. 내 여자들이 나한테 이렇게 행동하는 걸, 중2병한테 쉽게 보여줄 수는 없지.
타협은 없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는 사라에게, 나는 대체 얠 어디부터 설득해야 할지 벌써부터 골이 아파졌다.
게다가 내가 중2병과 단둘이 비스를 공략한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건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기! 전 그게, 남장이….”
지극히 타당한 의견을 내세워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주장하는 실비아부터 시작해서.
“은밀 행동은 여기에서 내가 제일 잘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는 레이까지.
“아니. 레이 넌 여왕이잖아. 여왕 자리 내팽개치고 어딜 갈려고.”
“하, 하지만!”
자기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레이는 나랑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 싫다는 듯 떼를 쓰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 줘. 내가 비스까지 공략하고 이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는 얼마든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라랑 실비아도. 너희까지 없어지면 바프라가 어떻게 될지 잘 알잖아?”
새로 바뀐 바프라는 대대적으로 개편되고 있는 것에 비해 상당히 내부가 안정화되어 있지만, 그 안정감은 어디까지나 내가 귀족들 앞에서 대놓고 보여준 용사의 힘에 의한 것이다.
만약 내가 모습을 감추게 되면, 대체 어떤 놈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나마 사라와 실비아라도 남아 있으면 귀족들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날 떠올리고 눈치를 볼 테지만, 만약 우리 셋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고 레이만 딸랑 남겨두면…바프라가 어떻게 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은밀성과 신속성이 생명이야. 계획을 보면 알잖아?”
“그래도 그 인간이랑 단둘이라니….”
“괜찮으니까. 응?”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럼 느낌으로 말끝을 흐리는 사라에게, 나는 최대한 듬직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물론 이런 중요한 문제까지 미소 하나로 쉽게 넘어가 줄 우리 용사님이 아니었지만.
그렇잖아? 애초에 사라는 나랑 계속 같이 다니고 싶어서 바프라로 온 건데, 바프라 장악이 이미 거의 다 끝났을 때 와서는 줄곧 일만 하다가 이제는 여기에 남으라는 소리까지 들은 거니까.
그리고 사라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날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머리 자르고 남장까지 하고 다닌 실비아와, 긴 도피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순간 애인한테 한동안 못 볼 거라는 소리를 들은 레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셋은 계속해서 반발했고, 그중에는 내가 무심코 수긍해 버린 이유도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바프라를 버리고 모두 함께 떠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얘들을 대체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그나마 저택에서 얘기를 들었던 멤버들은 내가 바프라에 있을 때도 기다렸던 멤버들이니 순순히 이해하고 넘어가 줬는데, 이 셋은 바프라 공략에도 같이했던 멤버인 만큼 나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아니. 잘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아닐지도.
아까 마틸다가 굳이 중2병을 맡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구미호 마을에서 디아나의 반응도 살짝 어색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위에서 얘기를 들었던 멤버들도 말만 안 했을 뿐, 내 결정에 수긍하지는 않은 건가? 그래서 반발하는 역할을 얘들한테 맡겼다?
생각해 보니 아까 얘들이 한 얘기, 감정적으로 반발한 것치고는 너무 논리적이었어.
혹시 디아나가, 아니. 그사이에 이미 모두가 지혜를 합쳐서….
“그렇다면 저희가 나설 때로군요!”
“으악씨! 깜짝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뒤에서 여기에서 들릴 리 없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놀라셨습니까?”
그러면서 등장한 건 바로 노답 콤비 중 일각 그렉이었다.
오랜만에 날 봐서 그런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저 호랑이 얼굴로 미소를 띠어봤자 먹이를 앞두고 좋아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는 점이…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가 여기 왜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대화는 바프라의 인간들한테 들려줄 만한 내용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레이의 처소까지 와서 시중을 다 물리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대체 문 앞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녀석을 들인 거야!? 여기, 이렇게 보안이 허술한 곳이었어?
“저기…제, 제가 잡아 왔습니다아.”
내가 말문이 막혀 하고 있자, 실비아가 죄지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잡아왔다니?”
“하핫. 실은 성자님이 만들었다는 창관의 소문을 듣고 저희도 그 위대함을 체험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마침 지나가던 실비아 님께 딱 걸려 버려서 말이지요.”
“바프라 포교를 위해 만든 시설을 당신들이 즐기면 어쩌자는 겁니까…?”
“하하핫. 반성의 의미로 이렇게 경비도 열심히 서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대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이 왜 이 녀석을 들였나 했더니, 이 녀석이 경비병이었군.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전혀 몰랐어.
그리고 아마 이 자리에 없는 듀크는 여전히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거겠지. 아까 그렉이 창관에 갔다고 했을 때 ‘저희도’라는 표현을 썼으니까.
확실히. 다른 녀석들보다는 사정을 알고 있는 이 녀석들이 문 앞 경비를 서는 게 여러모로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경비라는 놈이 왜 방까지 들어오는 건데?”
“아, 실은 케이로스 경이 급한 용무로 레이님을 찾고 계십니다.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으셔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하지만 설마 성자님이 와계실 줄이야! 그리고 그 얘기! 저희의 차례가 다시 왔다는 것이군요!”
지금 뭔가 흘려들으면 안 되는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이로스라니까 좀 기다리게 해도 되겠지.
그런 것보다는.
“너희 차례라니?”
“성자님을 그런 무뢰배와 단둘이 보내는 게 걱정되지만, 형수님들이 직접 따라가실 상황은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다시 뭉칠 때이지요! 레온님이 빠지시게 되는 건 무척이나 아쉽지만, 그래도 다 같이 이곳까지 함께 온 경험을 살려서, 비스에서도…!”
“잠깐. 잠깐. 자암깐 기다려.”
형수님들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네 형이 됐냐?
그리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나랑 쓰레온까지 껴서 너희랑 같이 4총사인 것처럼 말하는 건 그만둬. 누가 진짜로 오해하면 어떡할 거야?
“알았어. 항복. 항복이야. 확실히 너희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럼 이건 어때?”
이 이상 원래 계획을 밀어붙이면, 진짜로 이 자식들이랑 다시 붙어 다닐 분위기가 되겠어. 그런 끔찍한 경험,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마음을 바로 태도를 고치고, 우리 애들한테 타협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성자님? 그러면 저희는…?”
“물론 너희는 너희대로 할 일이 있어!”
나랑 볼 일 없는 곳에서 말이지!
“좋아. 그럼 그걸로 다들 괜찮은 거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제시한 타협안이 단번에 수리되는 일은 없었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조정에 조정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겨우 모두가 만족할 만한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혹시 상처 하나라도 나면 용서 안 할 거야.”
그리고 그 타협안을 통해서, 나는 일단 중2병과 단둘이 행동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플리투스에 숨어 있는 비스의 숨겨진 검을 찾을 때까지만 이라는 조건이 붙은 허락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렴요. 제 몸은 여러분의 것이라는 사실,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흥. 정말인가 몰라. 바보.”
사라는 마지막까지 토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사라도 수정된 계획에 동의한다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사라는 화나면 진짜로 무서우니까 말이야.
“우으으…밤에 몰래 감정 공유로 확인할 거니까 조심해!”
그리고 레이 역시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케이로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와중에도 끝까지 그런 말을 남기고 갔다.
아니. 중2병이랑 같이 간다니까. 쟤는 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그야 중2병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가끔은 그 입에…아니. 그보다 저 녀석, 역시 감정 공유 마음대로 켤 수 있는 거 아니야!? 끄는 건 전혀 못 하는 주제에!
“실비아.”
“네? 네헤!”
“혹시 쟤가 밤에 허튼짓하는 것 같으면 꿀밤 한 대 때려줘.”
“그, 그거언….”
여기에서도 왕가의 호위기사 노릇을 하느라 레이의 뒤를 쫓아가는 실비아를 향해 그렇게 말하자, 웬일인지 실비아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응? 왜?”
“바, 밤에도 같이 있으라는 명령입니까아…?”
아. 이제 같이 안 자니? 하긴 내가 없는데 쟤들끼리만 굳이 같이 잘 이유가 없나.
“그래! 그리고 이 호…네가 명령하면 진짜로 때릴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직도 이렇게나 사이가 나쁘니까 말이야.
레이야. 오해가 다 풀렸는데도 아직 실비아보고 호모라고 부르니까 실비아가 그러는 게 아닐까?
“실비아. 굳이 잘 때까지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같이 있을 때 허튼짓하면 가차 없이 꿀밤 날려.”
“네헷!”
우와. 무지막지하게 밝은 표정. 나 실비아가 이렇게까지 신이 난 거 처음 보는 걸지도 몰라.
“나 이제 여왕인데…!”
반대로 레이는 원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거지. 그러니까 진짜 감정 공유 함부로 켜지 마라. 혼난다.
“자, 그럼.”
“갈 거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방을 나간 레이와 실비아의 모습이 사라진 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라가 아까의 그 새초롬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쓸쓸한 눈빛과 함께 날 올려다봤다.
“그런 눈빛 보내지 마. 발이 안 떨어지잖아.”
“흥. 빠아아안.”
이게 하지 마라니까 더 하네. 진짜 자기가 입으로 효과음 넣는 게 귀여워서 봐준다.
나는 계속해서 쓸쓸한 눈빛을 보내는 사라의 뺨을 가볍게 꼬집고 흔들어 줬다.
“너야말로 급하게 한다고 사고 치지 말고.”
“내가 구원인 줄 알아.”
“원래 나 같은 놈보다 너같이 평소에 사고 안 치는 애가 한번 사고 치면 거하게 치는 법이야. 진짜 조심해. 너야말로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나 눈 돌아가서 전쟁신이 부활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다 쓸고 다닐 거야.”
“바보.”
아니. 농담한 거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겨우 우리 애들을 전부 설득시킨 나는, 중2병이 기다리고 있을 창관의 지하로 다시 돌아갔다.
“당시인! 오셨어요? 쪽.”
어라? 중2병의 눈앞이라 자제하는 거 아니었어?
오자마자 내 목에 안겨들어서 키스부터 하는 마틸다를 마주 안아주자, 마틸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역시 오래 걸리셨네요. 줄리안 씨는 데려가지 않기를 잘하셨죠?”
역시나 다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었던 건가.
뭐,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의견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말이야.
“그러게. 그런데 그 줄리안은 사고 안 치고…쟤 왜 저래?”
그사이에 바로 사고 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는 거겠지. 줄리안은 방 한쪽 벽 앞, 창관 내부 화면이 보이는 장치의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장치의 화면에는 여전히 창관 내부의 복도들을 비추고 있어서, 거기에는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헤실헤실 웃으며 따라가는 바보 같은 남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까 봤던 모습과 딱히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중2병은 심하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불러도 반응조차 하지 않다니. 대체 저 화면에서 뭘 본 거야?
같이 있었던 마틸다라면 알고 있을 테니 그쪽을 쳐다봤지만, 마틸다는 묘한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대체 뭐지?
“야.”
“흐이익!?”
가까이 다가가서 그 어깨를 살짝 짚자, 중2병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꼿꼿하게 펴고 굳어졌다.
“벼! 벼, 별로! 아무것도!”
아니.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나마 이 녀석이 본 장면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라면, 계속해서 내 하반신 쪽을 향해 내려가는 그 시선인데.
설마하니 복도에서부터 섹스하려고 달려든 놈이라도 있었던 건가?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분명 성기사가 출동해서 후회하게 해줬을 텐데?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내 물건에 무슨 문제 있냐?”
“그, 그런…꿀꺽.”
…얘 봐라? 얘 지금 내 물건 생각하고 군침 삼킨 거야?
“아, 아니야! 나는…!”
대체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우리 추기경님이 이 녀석을 굴복시키는 것에 협력해 줬다는 사실 말이다.
그냥 내가 이 녀석한테 하는 짓을 눈감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주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
뭐, 마틸다는 그냥 교화 활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협력해 준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냐. 그럼 가자.”
마틸다가 협력해 줬다는 건 알았으니, 여기에서 더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중2병은 뭔가 기대가 빗나갔다는 표정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애초에 저 녀석의 기대에 부응해 줄 생각은 하나도 없으니 상관없다.
“마틸다도 같이 어때? 출발하기 전에 구미호 마을에서 저녁이나 먹을 생각인데.”
“물론 같이할게요!”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장치의 화면을 끄는 마틸다와 부둥켜안은 채, 나는 중2병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구미호 마을로 넘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네?”
구미호 마을의 외진 곳에 있는 건물.
디아나가 혼자 대기하고 있던 그곳에서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나는 문득 생긴 의문을 입에 담았다.
“레이아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아침에 저택에서 모습이 안 보이길래 당연히 신전 쪽에 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레이아는 이쪽에 내려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택에서 디아나랑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고.
“앗…그, 그게…구미호 능력을….”
“아….”
마치 나한테 들킨 게 부끄럽다는 반응의 레이아를 보고, 나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속박을 걸려다가 실패하고도 이유를 몰랐던 리사 같은 케이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컨트롤할 줄 아는 구미호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하면, 구미호 능력의 사용법을 숙지하기도 확실히 더 쉽겠지.
다만 구미호 능력이라는 게 섹스와 많은 관련이 있고, 원래는 나랑 밤에 둘이서 노력하며 갈고닦았던 만큼 레이아가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거겠지.
“미안해. 눈치가 없었네.”
“후훗.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레이아는 여전히 뺨이 살짝 붉힌 상태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게 천사님이 안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대체 뭐지?
식사하면서 디아나나 레이아, 마틸다한테도 바프라에서 합의된 내용을 말해 준 후, 나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플리투스의 진영으로 넘어왔다.
장소는 이미 아라크네 클랜원들을 옮겨줄 때 쓴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한번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고 중2병을 데려왔다.
드디어 비스 공략을 위한 판 깔기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군.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도 플리투스 내를 돌아다니고 있을 비스의 비수를 찾아내는 거다.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막연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내게는 비수를 쉽게 찾아낼 방법이 있었다.
옛날에 중2병과 처음 만났을 때, 저 녀석이 춤추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잖아?
실은 그게 비스의 비수들만이 익힌 특수한 스킬이라고 하더라고.
디아나가 사용하는 투명 마법처럼 아예 몸이 투명해지는 기술이 아니라, 어지러운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라나 뭐라나.
원리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독특한 보법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아무튼 그 기술은 중2병뿐만 아니라 비스의 비수들도 모두 익히고 있는 기술이고, 심지어는 비수들이 쓰는 전서구도 그 기술을 응용하여 날도록 훈련시킨 덕분에 보통 사람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인식 못 한다는 말로 알 수 있듯이, 비스의 비수는 훈련을 통해 그 기술도 꿰뚫어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즉, 플리투스에서 비스를 향해 날아가는 투명한 전서구를 발견만 하면, 자연스럽게 플리투스에 숨어 있는 비수의 위치도 추적이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만약 이런 세계가 아니었다면 그것마저도 너무 막연한 계획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눈만 좋으면 땅이 이어진 모습이 끝없이 보이는 세계.
물론 중2병의 눈이 사라만큼 좋을 리가 없으니까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플리투스와 비스의 길목에서 적당히 진을 치고 있으면 전서구를 발견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을 거다.
그리고 말을 들어보니, 전서구도 주기적으로 상당히 빈번히 보낸다는 것 같으니까.
뭐,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도착하자마자 일단 중2병을 시켜서 하늘부터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여기에는 없어.”
이런 짧은 대답뿐이었다.
뭐, 그렇겠지. 마침 플리투스에 숨은 비수가 근처에 있고, 또 때마침 전서구를 날린 게 아닌 이상에야 당연한 거다.
“그러냐.”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어차피 밤도 늦었고,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기도 했다.
일단 중2병을 데리고 플리투스까지 건너온다는 당면의 과제는 클리어했으니, 지금은 잠부터 잘까.
그렇게 생각하고 인벤토리에서 텐트 하나를 꺼내 설치하자, 오히려 중2병이 당황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말을 믿는 건가?”
과연. 자기 입으로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고 한 주제에, 이렇게까지 신뢰받는 건 또 예상외라는 건가.
“훗.”
“가, 갑자기 뭐가 웃기다는 거지?”
내가 피식하고 웃어주자, 중2병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더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야 이유를 모르겠지. 이 타이밍에 갑자기 웃을 진짜로 이유가 없으니까.
뭐, 지금부터 적당히 이유를 만들어서 늘어놓기는 할 거지만 말이야.
“아니. 아무리 남자가 되고 싶다고 발버둥 쳐도, 결국은 무성별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갑자기 왜 성별 얘기가 나오는 거지?”
역린을 건드린 건지 중2병의 표정이 조금 험악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쟤가 아무리 저러고 있어봤자, 어차피 내 물건을 보는 순간 위압감을 느끼고 무너져 내릴 거라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남자가 아닌 넌 알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바지의 벨트를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철컥철컥 풀었다.
원래는 진짜로 그냥 잘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자기가 나서서 저렇게 확인시켜주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조금만 어울려주기로 할까.
내가 벨트를 푼 것만으로 몸을 움찔하면서 굳어져 버린 중2병에게 다시 한번 코웃음을 치고 나서, 나는 물건을 드러낸 채 중2병에게 다가가 그 머리를 아래로 눌렀다.
“크윽….”
딱히 힘을 준 게 아닌데도, 이렇게나 순순히 무릎을 꿇어 버리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순종적인 거 아니냐?
아니. 전에 내가 말한 한 번만 더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면 바로 여자로 만든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러는 건가? 그렇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쉬우니까.
아무튼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중2병의 고개를 살짝 들게 하고, 나는 내 물건을 그 얼굴 위에 척 하고 올려놨다.
아직 전혀 발기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래로 향하는 무게감은 더 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흠칫하며 눈동자를 바르르 떠는 중2병을 비웃듯이 바라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억지 이론을 늘어놨다.
“내가 믿지 않을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지? 너 거짓말했어?”
“아, 아니….”
“그렇지? 알고 있어. 나 같은 남자는 그런 쩨쩨한 걱정 따위 하지 않아. 널 믿어서가 아니야. 날 믿는 거지. 넌 나한테 거짓말 따위 하지 못해.”
뭐, 실은 내가 잘 때 옆에 있으면서 아무 짓도 안 한 거나, 바프라의 창관에서 얌전히 있었던 것 등, 충분히 믿을만한 근거가 있어서 믿은 것뿐이지만.
꿀꺽.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압도된 건지, 중2병은 얼굴에 내 물건을 올려놓은 채 그저 멍하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알겠지? 내가 왜 성별 얘기를 꺼냈는지.”
이 정도로 분위기 잡았으면 충분하겠지. 오늘은 할 만큼 했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얘기를 마치고 다시 내 물건을 바지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여기까지 와놓고 입으로도 안 시킬 거냐고? 아니. 필요 없잖아.
다른 여자와 할 필요가 있다면 감정과는 별개로 하겠다고 마음먹기는 했지만, 할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조교 핑계 대면서 즐기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절대 레이 걔가 갑자기 감정 공유를 켤까 봐 걱정돼서 이런 게 아니야.
“하, 하지만….”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물건을 바지 안에 넣으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중2병이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남자라고 다….”
과연. 그런 거로군.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키고 말하는 중2병의 모습에, 나는 얘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바로 이해했다. 실은 짐작 가는 게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모든 남자가 나처럼 자신감이 넘치지는 않는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겠지?”
“그, 그래.”
“생각나는 남자가 있는 모양이지?”
“그…건….”
당황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 실은 나도 생각나는 녀석이 한 놈 있어서 말이지. 아직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적국에는 비수를 각각 한 명씩 보낸 주제에 자기 나라에는 두 명이나 배치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자기 주위를 지키는 역할로 한 병 더 배치한 겁쟁이가 말이지.
“너, 그 녀석의 물건을 본 적은 있어?”
“무, 뭐!?”
뜬금없는 내 말에, 중2병은 역시나 화들짝 놀랐다.
중2병이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인물이라면, 그야 당연히 깜짝 놀라겠지.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어. 그래도 이거 하나는 단언하지. 그 녀석, 분명 엄청 작을걸.”
“그런 건….”
“그리고 너희 나라에서는 동성애가 만연하다는 모양인데. 만약 그 녀석이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면, 분명 자기가 박히는 역할이겠지.”
으윽. 젠장. 아무리 분위기로 이 녀석을 찍어 누르기 위해서라지만, 내 입에 이런 말을 담다니.
아무리 남성 우월주의에 거근 신앙까지 있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 복종해서 아이를 낳는 도구 취급하고, 진짜 사랑은 남자끼리만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야!?
으으으. 상상하지 말자. 상상하지 말자.
“그런 녀석을 진짜 남자로 인정해 줘도 되는 건지, 난 잘 모르겠군. 자고로 남자라면….”
“으윽….”
거기에서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물건을 잡고 중2병의 얼굴에 비벼주자, 중2병의 몸이 끊임없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리고 진짜 남자가 주는 위압감에 굴복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중2병은 천천히 혀를 내밀어서 자기 얼굴 위에 올려진 내 물건을….
“뭐, 아무튼 그런 거지.”
핥기 전에, 나는 물건을 들어 올려서 다시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
당연히 자연스럽게 자신이 입으로 봉사하게 되는 흐름인 줄 알았던 중2병은 혀를 살짝 내민 채로 굳어 있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뒤로 돌아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뭐해? 내일은 아침부터 일찍 행동할 거니까 너도 빨리 들어와.”
“으, 으, 으아아아…!”
그, 그렇게 굴욕적이었냐?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오열은, 괜히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구슬펐다.
“응…으흐읏…아흐아아….”
그리고 한밤중. 텐트 안. 둘이서 자기에 충분히 넓은 텐트에서, 어째선지 우리의 몸은 위아래로 겹쳐져 있었다.
아니. 얼버무리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상황을 모르겠는데. 난 잠들었다가 지금 막 일어났거든.
그러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어째선지 중2병이 내 위에 올라타 있었다는 얘기다.
혹시 내가 자면서 습관적으로 옆에 있는 중2병을 안았나?
내가 누구랑 같이 잔다면 그건 무조건 우리 애들이었던 만큼, 그런 습관이 아예 없다고는 나도 자신 못 하니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내 위치는 잘 때 그대로란 말이지. 위를 향하고 누워서, 잠든 자세 그대로 꼼짝도 안 한 느낌이야.
아니. 애초에 잠들고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어.
잠든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시야 구석에 떠 있는 시계가 아직 새벽 1시도 안 됐음을 나타내는 걸 보면, 그건 확실했다.
그럼 대체 뭐라는 거야?
혹시 중2병 이 녀석, 자기 전에 그런 분위기만 만들고 결국 못 빤 것 때문에 발정이라도 났나?
하니 하지만 그런 거라면 입으로 내 물건을 빨고 있어야 하지 않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2병은 지금 내 쪽에 등을 향한 채로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풀어 해쳐진 바지 위로 내 물건이 빳빳하게 솟아있었다. 지금…이런 걸 스마타라고 하던가? 내 물건은 중2병의 허벅지와 음부 사이의 삼각지에 끼워져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안 일어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건에 느껴지는 물건을 감싸고 있는 중2병의 허벅지 안쪽과 음부 말고는 나와 중2병의 접촉이 전혀 없거든.
중2병을 손을 뒤로 뻗어서 각각 내 허리 옆쪽 바닥을 짚어서 상체를 지탱하고, 가지런히 모은 발은 내 다리 사이에 둬서 나와의 접촉면 전혀 없이 몸을 공중으로 띄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 유일한 접촉부인 물건도 그냥 따뜻하게 감싸여 있다는 느낌만 있을 뿐, 별다른 쾌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역시나 주먹과 발로 싸우는 녀석인 만큼 밸런스 감각이…아니. 그건 그다지 상관없나?
“나, 나도…남자가 되면….”
아무튼 그렇게 상황 파악을 하고 있자니, 중2병이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이런 걸….”
과연. 그런 거였군.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했더니.
꿈이 크다고 해야 할지, 이렇게라도 하면서 허황된 꿈을 좇는 모습은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으학!?”
내가 깨어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말을 걸자, 바닥을 짚고 있던 중2병의 두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 엉덩이가 내 다리 사이에 찰싹하고 부딪혔다.
불륨감 전혀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막상 느껴보니 엉덩이의 탄력은 훌륭하군.
“이, 이, 이건….”
중2병은 못된 짓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 손을 붙잡아서, 여전히 중2병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내 물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남자가 되면, 너도 이런 물건이 달릴 거라고, 나같이 남성성을 뿜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그, 그게 어쨌다는 거지!?”
내가 지금 이 상황 자체를 따지지는 않자 조금은 자신감을 얻은 건지, 중2병은 목소리에 살짝 힘을 담으며 내 말을 받아쳤다.
“아니. 불가능한 꿈을 꾸는구나 싶어서.”
“뭐!? 너, 너…!”
“아아. 오해하지 마. 네가 남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 내가 널 여자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니까. 난 그저, 넌 모르겠지만 말이야.”
배신당한 표정의 중2병을 진정시키면서, 나는 내 물건을 감싸 쥐고 있는 중2병의 손에 더욱 힘을 주게 했다.
“으윽….”
그제야 자기 손에 닿은 감촉의 정체를 깨달은 건지, 중2병은 고개를 앞으로 돌려서 자기 다리 사이에서 우뚝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내 물건에 시선을 줬다.
“이 녀석은 특별한 녀석이라서 말이지. 아무리 남자가 된다고 해도, 누구나 이런 훌륭한 걸 달고 다니는 게 아니야. 너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중2병의 손등 위를 감싸고 있던 손을 뗐지만, 중2병은 내 물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떼기는커녕 마치 보물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더듬더듬 내 물건을 표면을 쓰다듬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