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867)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68화 >
물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사도 임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기세에 몸을 맡겨서 행동하는 바람에 이 자리에서 바로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그림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도 임명은 역시 우리 애들한테 보고부터 한 다음에 하는 게 좋겠지.
“있잖아, 자······아핫. ······자기?”
펠리시아에게 삽입한 채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울음을 그친 펠리시아가 날 올려다보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실컷,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그렇게 불러왔던 주제에, 이제 와서 자기라고 부르는 걸 의식하게 됐는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뭐,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말이야.
자기라는 호칭에 담긴 의미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거니까.
“응?”
아무튼 그렇게 날 부른 펠리시아는, 여전히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그렇게 감동해놓고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우리 사이, 한동안 비밀로 하면 안 될까?”
“으, 응?”
나랑 사귀는 게 부끄럽다는 거야? 뭐야?
물론 그런 건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잠깐 떠올랐을 정도로 펠리시아의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그렇잖아? 차라리 내가 이런 얘기를 꺼냈으면 꺼냈을 입장이지.
그런데 설마 얘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이야.
“아, 물론 다른 여자들한테는 얘기해도 돼. 바람피우는 것처럼 몰래 이렇게 지내자든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내 말은 일단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하자는 얘기야. 관계없는 사람들은 한동안 우리가 지금까지처럼 관계 변화 없이 내 체질 문제만 해결해 주는 관계라고 생각하도록 하자는 얘기.”
내가 상당히 당황한 걸 느꼈는지, 펠리시아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보충 설명을 해줬다.
뭐, 이걸로도 아직 설명이 많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어째서?”
“나, 이래 봬도 공주에 차기 여왕 후보잖아? 그러니까 조금······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 펠리시아는 상체를 일으킨 후 눈을 치켜뜨고 귀여운 표정까지 지으며 내게 매달려왔다.
얘가 이러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네. 아니. 그야 원래부터 자기 남자한테 애교 많을 것 같은 성격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나도 나쁜 기분은 아니고. 오히려 조금 간질간질하기는 하지만 기분 좋았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펠리시아에게 다시 한번 부연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펠리시아가 왜 갑자기 이런 부탁을 하는 건지 대충 이해가 됐다.
뭐, 원래부터 얘가 사랑을 포기한 이유는 단순히 그 성격이나 체질 때문만이 아니라 지위상의 문제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아마 나랑 사귄다고 대놓고 공표하기 전에, 먼저 그런 귀찮은 문제들을 처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알았어. 네가 그러고 싶다면야.”
물론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와 이어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러고 싶을 리가 없잖아? 실은 나도 이렇게 멋진 자기를 한시라도 빨리 자랑하고 싶은데.”
또 다시 애교 부리듯 그렇게 말하면서, 펠리시아는 내 입술······은 아니고 바로 입술 바로 옆쪽 볼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얘는 뭐라고 할까. 마음가짐의 전환이 엄청나게 빠르단 말이지.
지금도 그렇다. 조금 전까지 펑펑 울어서 아직도 눈가가 이렇게 새빨간 주제에, 금방 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애교나 부리고.
뭐, 기분 좋은 건 다른 생각하는 것보다 기분 좋게 즐기는 게 제일이라는 쾌락주의자적 마인드가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닐 테니, 나랑 마음이 통하게 된 것 역시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즐기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아직 부끄럽기는 한지, 자기 스스로 내 입술에 입술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러냐.”
사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내가 적응 안 돼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렇게까지 애교부려주는 걸 보면 그야 기분 좋기는 하지만, 간질간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당사자인 나도 이런 기분인데, 만약 지금 우리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얘기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자기, 뭔가 반응이 석연치 않아.”
하지만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펠리시아는 살짝 입술을 삐죽이면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그렇게 말해왔다.
“아니. 어쩔 수 없잖아.”
누구나 다 너처럼 마음가짐 전환이 빠른 게 아니라고.
나도 그쪽 방면으로는 남들보다 상당히 빠른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도 있는 법이란 거다.
“너무해! 날 가지고 논 거였어?! 흑흑.”
“가짜로 울어봤자 소용없다. 아까 펑펑 울어댄 덕분에 네가 진짜로 울 때는 어떻게 우는지 잘 알았으니까.”
“자, 자기! 그건 말하기 없기잖아!”
이번에는 진심으로 부끄러웠는지, 펠리시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그대로 몸을 뒤로 돌려 버렸다.
이 자세에서 잘도 저렇게 몸을 뒤로 돌리네. 그것도 삽입조차 풀지 않고.
정상위 자세에서 펠리시아가 몸을 일으켜서, 정상위와 대면좌위의 중간쯤 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돌기 상당히 힘든 자세였는데 말이야. 과연 서큐버스라는 건가.
“응······흐읏······.”
내가 묘한 부분을 감탄하고 있자, 뒤로 돌아서 이번에도 역시 상체를 애매하게 굽혀 후배위와 배면좌위의 중간쯤 되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펠리시아가 천천히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먼저 다시 넣은 건 자기잖아? 이럴 생각 아니었어?”
내 질문에 펠리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머리카락 사이로 힐끔 보이는 귀 끝이 완전히 새빨개진 걸로 보아, 아마 그냥 내 머릿속에서 자신의 우는 모습을 지워버리기 위해 이러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차피 네 성욕은 진정시킨 거니까, 네가 더 할 생각 없으면 나도 딱히. 그냥 넣고만 있어도 충분한데.”
물론,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정말 드물게 펠리시아를 놀려먹을 기회가 왔는데, 그걸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조금 전에 막 서로의 마음이 이어졌으면서 너무하지 않냐고?
이럴 때 내가 애용하는 말이 하나 있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그러니까 한 번 더 하고 싶은 거 아니야. 이번에는 내 체질이랑 관계없이.”
하지만 펠리시아는 역시 강적이었다.
이 녀석, 진짜 순발력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 제대로 얼굴 마주 보고 하는 게 좋지 않아?”
펠리시아의 솔직한 대답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나는 끝까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것도, 그러네······.”
결국 펠리시아는 패배를 인정했는지, 다시 몸을 뒤로 돌려 새빨개진 얼굴을 내게 그대로 보여줬다.
나는 그런 펠리시아의 얼굴에 키스하듯 얼굴을 가져가서, 입술 대신 이마를 맞대고는 그 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기, 너무 짓궂은 거 아니야?”
눈치 빠른 펠리시아는 이것만으로도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서 자기 스스로 입술을 내게 가져다 댔다.
이번에는 입술 옆 뺨 같은 곳이 아니라, 제대로 입술에 정면으로.
하지만 짓궂다니.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의 입술 감촉을 맛보며 몸을 겹치게 됐다.
펠리시아의 말대로, 이번에는 체질 같은 것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상대방과 하고 싶어서.
“그럼 자기. 살아남을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안부 전해줘~.”
그렇게 마무리로 달콤한 섹스를 한 우리였지만, 펠리시아는 역시나 펠리시아였다.
일을 다 치르고 방을 나서는 내게, 펠리시아는 침대에 누워서 살랑살랑 손만 흔들며 그런 장난스러운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죽으면 넌 하루 만에 미망인이거든 이것아!”
안 그래도 생각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 일이라 우리 애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는데, 저게 겁까지 주고 있어!
“어머, 자기. 여보라니······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급해.”
“그런 말 안 했거든?!”
확실히 미망인이라고 해버리면 결혼한 사이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그냥 상황에 맞는 표현이 안 떠올라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거든!?
아니. 이거 일일이 설명 안 해줘도 머리 좋은 너라면 알 거 아니야?!
그러니까 괜히 두 손으로 뺨 감싸면서 부끄러운 척 몸 베베 꼬지 마라!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펠리시아와 헤어져 기다리고 있던 바넷사와 합류했다.
많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걸린 시간만 따지고 보면 실은 평소에 펠리시아와 할 때와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섹스 자체가 평소보다 훨씬 진심이 담겨있어서 기분 좋았던 만큼, 펠리시아의 성욕을 달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이 단축됐으니까.
그 때문에 이번에는 바넷사가 내게 화를 내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저택으로 돌아갔다.
“어머, 왔어?”
그리고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처음 마주친 건, 바로 사라의 얼굴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는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우연히 로비를 지나가는 타이밍에 내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 애들한테 펠리시아 얘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던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사라의 얼굴을 마주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 젠장! 하필이면 사라라니! 제일 질투심 심하고, 제일 펠리시아랑 사이가 안 좋은 사라라니!
아, 아니. 침착하자. 지금 당장 말할 필요는 없어.
결코 겁먹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따져서 그렇다는 얘기야.
어차피 아직 레이첼 누님은 퇴근도 안 하셨을 테니까, 이왕이면 다 같이 모였을 때 한 번에 말하는 게 좋잖아?
“으응? 으으으응?”
하지만 우리 눈치 빠른 사라는 한순간 보였던 내 당황한 표정을 보고 뭔가 수상쩍음을 느꼈는지,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허리를 곧게 편 채로 살짝 숙여서 아래에서 위로 날 빤히 올려다보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뭐, 뭐? 왜?”
“······하아아아아······.”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해봤지만, 사라는 그런 날 보자마자 크게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야. 그 한숨은 대체 무슨 의미냐?
“실비아.”
그렇게 한숨을 푹 쉬고 나서, 사라는 갑자기 여기엔 없는 실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네엣?!”
아, 너 거기에 있었냐.
왜 또 옛날 생각나게 모퉁이에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냐. 그러니까 내가 눈치를 못 채지. 대체 뭐 하고 있는 건데?
아, 그런가. 내가 성에 갔다 왔는데 자길 놔두고 갔으니, 펠리시아가 신경 쓰여서 슬쩍 내 반응을 엿보러 온 건가.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축하······.
“축하해요.”
깜짝이야! 사라 얘는 또 왜 내가 할 말을 선수 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초능력 같은 것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번만큼은 내가 뭘 하고 왔는지 알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럼 뜬금없이 실비아한테 축하한다는 건 뭔데?!
“아······!”
하지만 실비아는 또 사라가 뭘 축하한다고 했는지 알아들은 듯, 사라의 눈치를 보면서도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날 쳐다봤다.
아니. 잠깐만. 사라가 저렇게 반응하고 실비아가 저렇게 반응할만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럼 뭐야? 진짜로 알고 있다고? 아니. 대체 어떻게?!
“사, 사라씨······?”
“하아아아······이 바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초능력이라도 있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라를 불렀지만, 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큰 한숨과 함께 그렇게만 말하고 발걸음을 돌려서 사라져버렸다.
이 상황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아니. 뭔가 얘기할 수고를 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석연치 않잖아?!
아, 혹시 나 없는 사이에 마틸다가 미리 말 한 건가?
확실히 그런 거라면 내가 성에서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사라가 알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마틸다가······아니. 그야 못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야.
내가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는 건 단순히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지.
애초에 사라의 반응이 저렇게 미적지근한 것부터 말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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