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899)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0화 >
밤사이에 말 못할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아침에 다시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천사님은 머리부터 질끈 묶었고,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다시금 생각났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곧장 구미호로 변신하셨다.
훗. 내가 저럴 줄 알고 어젯밤에 천사님을 그렇게 꼬셨지. ······지, 진짜라니까?
아무튼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리벤지 매치를 위해 거대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거대 거북이는 자신의 등껍질을 바닥으로 위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고, 우리가 그 위로 올라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크윽! 드디어 만났다! 내 아들의 원수!”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의욕을 보여주지 않으면.
아니. 난 별로 상관없지만, 우리 애들은 또 내가 저번 일로 트라우마 같은 것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난 이렇게 전혀 문제없다고 확인시켜주는 의식이라고 할까?
“꼭 죽은 것처럼 말하네. ······혹시 죽었어?”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놈의 등껍질을 밟고 분노를 불태우자 옆에서 사라가 초를 쳤다.
“아, 안 죽었거든?! 완전 쌩쌩하거든?! 너무 건강해서 주체가 안 될 정도거든?! 너도 사흘 전에 확인했잖아?!”
그 사이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면 어젯밤에 생생히 맛본 우리 천사님을 증인으로······!
“농담이야 바보야.”
뭐, 사라도 오기 전에 엄청 걱정했던 만큼, 자기도 이제 긴장이 풀렸다는 의미로 저런 말을 해준 거겠지만 말이야.
“자네. 이번에는 이 거대 거북이를 건너뛰고 5계층으로 바로 향한다는 선택지도 있네만.”
그렇기는 하지. 사실 디아나의 말처럼 이번에 꼭 이 거대 거북이를 잡을 필요가 없기는 했다.
이 녀석의 성기로 갈 수 있는 건 5.5계층이고, 5계층은 그냥 이 거북이굴의 페이크 보스만 잡고 그 뒤에 뚫린 통로로 지나가면 되니까.
“아니. 괜찮아. 5계층에 가기 앞서서 우리 파티의 화력을 확인해볼 좋은 기회가 이렇게 딱 알맞게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도 아깝잖아? 이 녀석을 상대하지 못할 실력이면 5계층의 중간부터 가면 안 될 실력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고.”
저번에도 한 번 잡기는 했지만, 그때는 아라크네 간부들이 다같이 있었으니까.
뭐, 우리 파티라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야.
게다가 수컷 거북이가 어디에 있는 어떤 녀석인지도 몰랐던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이 녀석을 상대할 작전도 제대로 짜놨으니까.
작전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다.
우선 이 넓은 방에 들어오기 전에 통과한 좁을 통로로 들어가서, 내가 성자의 파동으로 이 녀석을 깨운다.
그리고 이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파티 화력의 대부분을 원거리 딜러들이 담당하는 우리 파티의 이점을 살려 통로에서 공격을 퍼부어 쓰러뜨린다.
통로 안이라면 위에서 종유석 같은 게 달린 것도 아니니 위를 조심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 커다란 덩치 녀석이 통로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으니까.
녀석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지진과도 같은 떨림에서 균형만 잃지 않으면, 딱히 공격을 막을 필요도 없이 멀리서 때리고 끝이라는 얘기다.
뭐, 던전에서는 항상 예기치 못 한 일이 발생하는 법이니 그럴 때를 위한 플랜B나 플랜C 같은 것도 준비는 해왔지만, 이번 작전의 기본 토대는 이게 전부다. 어때? 간단하지?
“그럼 시작할까?”
녀석의 등껍질 위에서 다시 돌아와 통로로 들어온 후, 우리는 우선 사전 준비를 하려고 했다.
내가 성자의 파동을 날리기에 앞서서, 사라와 디아나가 강력한 공격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으면 훨씬 편할 테니까.
쿠르르르릉.
하지만 사라가 활에 마나를 모으고 디아나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 위협을 감지한 건지 녀석이 먼저 몸을 움직이며 거북이굴 전체에 지진을 일으켜댔다.
성자 스킬을 맞고 나서야 움직였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시작이었지만, 우리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딱히 문제 될 것 없다.
어차피 녀석에게 여기까지 공격할 수단은 없으니, 느긋하게 공격 준비를 마치고 공격을 때려 박으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성자의 파동을 날렸던 나였지만, 역시나 이런 곳에 있는 보스급 몬스터가 그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었다.
콰과가가각!
다른 거북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전에 내 물건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놈은 맹렬하게 자신의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 회전하는 몸으로 벽을 깎으면서, 놈은 지형을 무시하고 우리에게 일직선으로 돌진해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럴 가능성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야. 다른 거북이들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왔으니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 나도 설마 했지. 설마 진짜로 이 덩치가 아예 지형을 박살 내면서 돌진해올 줄이야.
“실비아! 플랜B!”
“넵!”
“으읏?!”
나는 곧장 작전을 플랜B로 바꾸기로 하고, 인벤토리에서 대문을 꺼내 실비아에게 건넸다.
그리고 방금 성자의 파동을 날려서 표적이 됐을 나는 그림자 이동을 이용해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 이동을 쓰기 직전에, 갑자기 거대 거북이의 몸이 우뚝하고 멈춰버렸다.
뭐, 뭐지? 그러고 보니 방금 대문을 건넬 때 실비아의 대답 말고 귀여운 목소리도 들렸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바라보자, 거기에는 보랏빛 불꽃이 일렁이는 한 손을 앞으로 쭉 내뻗고 있는 천사님이 계셨다.
이건 설마······옛날에 완전히 구미호한테 지배당했을 때나 썼던 그 속박을 쓴 건가?
대문을 보니까 어젯밤 생각에 구미호화가 더 심해져서?
뭐, 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보니, 구미호의 본성에 집어 삼켜졌다든가 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보다 거대 거북이를 상대하는 게 먼저다.
레이아가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발휘했어도, 결국 해야할 건 변함이 없다.
“사라! 디아나!”
“나도 알아!”
“음!”
그 사이에 준비를 마친 사라와 디아나는 내 신호에 맞춰서 각각 거대한 푸른 빛줄기와 작열하는 폭염을 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합공이 발하는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레이아도 힘이 빠진 듯 “하으으······.”하고 묘하게 섹시한 소리를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황급히 레이아의 몸을 받쳐서 안색을 살피려고 했지만, 거대 거북이는 또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사라와 디아나의 합공이라도 일격에 저 무식하게 방어력이 높은 녀석을 잡을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녀석은 또다시 몸을 움직여 우리에게 접근해왔고, 실비아는 두 팔로 대문을 단단히 받치고 녀석의 공격을 받아냈다.
게다가 그냥 공격을 막아낸 것으로 끝내지 않고 두 팔과 두 다리에 힘을 가득 준 후 강력한 차징을 먹여서, 아주 잠깐이나마 녀석의 몸을 뒤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정도 틈이면 내가 그림자 이동을 쓰기에는 충분해서, 레이아의 몸을 최대한 부드럽게 바닥에 눕힌 나는 황급히 넓은 방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여기까지 보면 저번에 내가 당했을 때와 비슷한 구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누이 말했던 것처럼, 그때는 일부러 다친 거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울퉁불퉁한 벽 덕분에 사방이 그림자 천지인 이곳에서 당할 리가 없잖아?
결국 내가 그림자 이동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단검 투척이나 성자의 파동으로 녀석을 살살 약 올리는 사이에 사라와 디아나의 공격이 녀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무난하게 거대 거북이를 이길 수 있었다.
“레이아!”
애초에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에게 복수했다는 기쁨에 취할 일도 없었고, 전투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장 레이아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네. 단순한 마나 고갈 증상일세.”
내가 거대 거북이의 시체에서 마석도 캐지 않고 황급히 달려가자, 나보다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레이아의 안색을 살필 수 있었던 디아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날 진정시켰다.
그런가. 그냥 마나 고갈인가. 옛날에 날 속박했을 때는 상당히 오랫동안 묶고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거대 거북이하고 그때의 나하고는 덩치 차이나 레벨 차이나 어마어마하니까.
거대 거북이는 잠깐 속박을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나를 소모하게 되는 거겠지.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으극······.”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아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나 고갈 증상 특유의 탈력감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는 못하고 다시 디아나에게 몸을 기댔다.
그러면서 그 커다란 가슴이 디아나의 얼굴을 뒤덮었지만, 디아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레이아의 몸을 지탱해줬다.
과연 우리 파티의 최고 연장자. 어른스러워야 할 땐 어른스럽다니까.
그 몽실몽실한 감촉을 버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건 못 본 척 해주자.
“아니. 죄송은 무슨. 오히려 엄청 도움됐어.”
“구원씨······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에요.”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네. 이게 전에 구원이 말했던 그 속박이지? 레이아, 전에는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네엣?! 저, 저기 그게······.”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대문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나서 구미호의 힘이 강해졌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는지, 사라의 질문에 레이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말을 끌었다.
그냥 대충 둘러대면 될 텐데. 하여간 우리 천사님은 거짓말을 너무 못 하신다니까.
“뭐, 위기 상황이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잠재 능력이 발휘된 거겠지.”
그리고 그런 천사님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역시 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감이 좋은 사라가 저렇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천사님을 보고 고작 그런 말로 수긍할 리가 없으니, 나는 살며시 사라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몇 마디 더 덧붙여 말해줬다.
“사라 너도 레이아가 어떤 생각을 해야 구미호로 변할 수 있는지 알잖아? 그러니까 너무 파고들지 마. 아마 구미호 기술도······.”
“나,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바보야.”
훗. 봤냐? 이 완벽한 커버 능력을.
이 정도는 하렘을 꾸리는 자로서 기본 소양이라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레이아양. 아까 그 능력을 어떻게 발휘했는지 여전히 모른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랑 사라가 그런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디아나는 은근슬쩍 레이아의 가슴에서 떨어지고는 레이아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아, 아니요. 그게······지금은 왠지 모르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진짜?”
“네. 이렇게······응! 에, 에잇! 하으으······.”
예상 외의 대답에 내가 깜짝 놀라자, 레이아는 조금 괜찮아졌는지 몸을 일으키고는 귀여운 기합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곧바로 다시 힘 빠지는 소리와 함께 비틀비틀 내게 몸을 기대게 됐지만.
하지만 마나가 제대로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다시 속박을 쓰려다가 그렇게 됐을 뿐,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확실히 자신의 몸이 속박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흠. 아무래도 제정신으로 한 번 사용한 것으로 사용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구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고유 마법은 그런 식으로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네.”
“정말인가요?! 그러면 저도 이제 여러분께 제대로 도움이······!”
우리 대마법사님은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서 그런 레이아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주셨고, 레이아는 얼마나 기쁜 건지 힘이 없어서 축 늘어져 있는 와중에도 맹렬하게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기뻐했다.
“무슨 소리야. 레이아는 원래부터 제대로 도움이 되고 있었는데. 레이아가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겠어?”
“구원씨······.”
“그리고 속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남발하는 건 금지니까.”
우리 천사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시니 나도 기뻤지만, 파티 리더로서 이 말은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파티에서 레이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힐러.
물론 속박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면 더 좋지만, 너무 신나서 속박을 남발하다가 정작 필요할 때 힐을 쓸 마나가 남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네.”
레이아도 그런 내 말을 이해한 듯, 내게 몸을 기댄 채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다.
역시 천사님이야.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신다니까.
나는 천사님의 몸을 가볍게 안아줬고, 천사님도 고개를 들어서 애틋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둘 다 여기 던전 안인 건 알고 있죠? 그러다가 아예 여기서 일까지 치르겠어요?”
그리고 그런 우리 모습을 그냥 봐주고 있을 사라가 아니었다.
사라야. 다 좋은데, 넌 항상 왜 그렇게 핵심을 찌르는 것 같은 말을 하는 거니.
“사, 사라씨도 참! 그, 그런! 어떻게 던전에서 그런 짓을······!”
“왜, 왜 그렇게 놀라요? 저도 딱히 진심으로 한 말은······.”
당연히 천사님은 사라의 말에 격하게 반응했고,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던 사라도 그런 레이아의 반응에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코홈. 아무튼, 자네들. 그만하고 각자 할 일이나 하게. 레이아양은 이리로 오게나. 이 몸이 마나 회복을······머리에 가슴을 얹지 말게!”
디아나야. 어른스럽게 잘 수습하려다가 마지막에 그게 뭐야.
아까 그 어른스럽게 참던 모습은 어디로 갔어?
아무튼 디아나의 말대로 던전에서 너무 노는 것도 좋지 않으니, 나는 이쯤에서 끊고 뒤에서 열심히 거대 거북이의 사체 해체 작업에 열중하던 실비아를 도와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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