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906)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07화 >
“음. 자네 말대로,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네.”
내 말이 다 끝난 후, 디아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대답해줬다.
역시 그런가. 디아나가 뭔가 명확한 대답을 내려주길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똑똑한 대마법사님이라도 이렇게 정보가 한정적이어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겠지.
“애초에 이 몸은 자네 이외의 이방인들도 전원 여신님께 사명을 부여받았고, 그리고 그를 위한 힘까지 부여받고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부터가 금시초문일세. 지금까지 이 몸도 이방인들을 제법 만나봤네만 그런 말은······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디아나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래?”
“음. 그렇다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할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구먼.”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보니 이방인들이 레벨업에 곤란해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네. 분명 자네가 살던 세계는 성행위로 레벨업을 하지 않는, 그 이전에 레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이지 않은가?”
“뭐, 그렇지. 다른 이방인들이 전부 나랑 같은 세계에서 왔을 것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 잠깐 들은 적이 있지만, 이방인은 딱히 공통점이라는 게 없었다는 모양이니까.
개중에는 처음부터 몬스터와의 전투에 익숙한 전사도 있었고, 아예 몬스터와 비슷한 느낌의 종족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모든 세계의 레벨업 방식이 같지는 않다는 것일세. 하지만 그럼에도 이방인들이 이 세계의 레벨업에 곤란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여신님에게 힘을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물론 여신님께서 처음부터 잘하는 자들을 데려왔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네만······.”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는 어째서인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야. 낭군님한테 그 시선은 대체 뭐냐.
“아, 참고로 나는 후자야.”
“뭐가 말인가?”
찔리는 게 있었던 나는 얼른 그렇게 말해봤지만, 디아나는 대놓고 어색하게 이해 못 하는 척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대마법사님. 어색하게 얼버무리려고 하지 말라고. 네가 이해를 못 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잘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와서 저 여자한테 동정이나 뺏긴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뻔뻔하게 주장을 밀어붙이려고 했다.
돌아온 건 사라의 무자비한 팩트 폭력뿐이었지만.
“이 몸도 자네의 경우를 생각해서, 여신님이 이방인들에게 힘을 줬다는 의견에 힘을 싣는 중이었네만.”
게다가 사라뿐만이 아니라, 디아나까지 무자비한 언어폭력을 행사해왔다.
물론 디아나는 진지한 얘기 도중에 괜히 위로한답시고 자신의 가설을 꺾을 수도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지 않냐?
“크흑! 천사님! 사라랑 디아나가 괴롭혀요!”
“어, 어머. 괜찮아요. 구원씨는 그······.”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는 당장 천사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고, 천사님은 그런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날 달래줬다.
뭐,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말을 끝마치지는 못하셨지만.
“그?”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내가 또 아니지.
내가 얼굴을 가슴에 파묻은 채로 고개만 살짝 들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사님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천사님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이리저리 헤엄치기 시작했다.
“여신님의 힘이 없었어도, 분명 잘하셨을 거예요······.”
그리고는 결국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구미호로 변신까지 되어버리면서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셨다.
역시 내 마음의 오아시스. 사랑합니다, 천사님.
“레이아는 그렇게 나랑 하는 섹스가 좋았······아야!”
“바보 같은 소리 좀 적당히 해. 이 바보야.”
하지만 천사님. 이왕이면 더 제 장난에 어울려주세요.
그렇게 생각하며 1절에서 못 끊고 계속 장난을 이어나가려고 하자, 역시나 예상대로 보다 못한 사라가 내 등짝을 찰싹하고 때렸다.
“너 지금 오빠한테 두 번이나 바보라고 했어? 그리고 이게 왜 바보 같은 소리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
나는 등짝을 맞자마자 미리 준비해놨던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늘어놨다.
“답이 정해져 있고, 너도 다 알면서 그러고 있으니까 바보 같은 소리지. 이 바보야!”
이어지는 사라의 말을 듣고 곧바로 할 말이 없어져 버렸지만.
응? 아니. 잠깐만. 확실히 사라한테 장난치려고 일부러 상황에 안 맞는 장난을 친 건 맞지만, 얘가 이렇게 말할 것까지는 예상을 못 했는데.
저 말은 다시 말해서······.
“······.”
“무, 뭐?”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사라를 가만히 바라보자, 사라도 슬슬 자기가 한 말이 부끄러워졌는지 몸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야. 아무리 천사님을 곤경에서 구해주고 싶었어도 그렇지, 천사님 입에서 들으려고 했던 부끄러운 말을 네가 대신해주기까지 하냐?
너 대체 얼마나 동료 의식이 투철한 거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진짜로 말했다가는 사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화낼 게 뻔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사라 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참. 진지한 얘기 중이었으니까 이럴 때만이라도······잠깐! 손에 마력! 마력!”
“나도 알아!”
뭐, 결국 장난기를 참지 못하고 한 대 맞았지만.
“그래서, 결국 이방인들이 전부 여신님한테 힘을 받았다는 얘기는 사실일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렇게 가벼운 장난으로 사라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시큰거리는 등짝을 필사적으로 문질러보려고 하면서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사라 녀석. 내 손으로는 닿지도 않는 곳에 손자국을 남기다니.
“음. 그뿐만이 아닐세. 대부분의 이방인이 모험가의 길을 택해서 던전을 공략했던 것도, 이방인이 던전에서 자주 사라졌던 것도 전부 설명이 되네.”
이방인들은 사명 때문에 모험가가 됐던 거고, 던전에서 사라진 것도 소계층을 발견해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으면 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못 했던 건데?”
“이방인이 이 도시에서 간단하게 벌어 먹고살 만한 일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던전에서 소리 소문 없이 목숨을 잃고 사라지는 모험가가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는 겐가? 실제로 던전에서 사라진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험가 카드가 사라졌······.”
거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디아나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뭔가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는 사람처럼.
“왜 그래?”
“그러고 보니, 던전에서 장기간 실종됐던 모험가가 돌아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네. 그때는 이미 이 몸은 던전 탐험에서 손을 떼고 수도에 있었기에······으음. 역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구먼. 레이첼양에게 물어보면 아마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뭐, 기억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 돌아가서 누님한테 물어보면 되고. 아무튼 결국 미리엘은 사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되는 건가?”
“음. 적어도 이방인의 혈통으로 그 문양을 해석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이네. 그것 이외에는 사라양까지 그럴 수 있는 것이 설명되지 않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되네. 만약 미리엘양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이방인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고, 미리엘양도 그와 비슷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이 몸들에게 사명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이상하네.”
“그렇지.”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방인들은 나와 같은 사명을 부여받았을 확률이 높고, 그럼 결국 미리엘도 내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내가 자신의 사명이 뭔지를 몰라 끙끙대는 걸 봐놓고도, 미리엘은 그에 관한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아니. 사명은커녕 이방인에 관한 얘기마저 꺼내지 않았다.
조금 전 우리가 대놓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전까지는.
“뭐, 아무튼 정리하자면, 지금까지처럼 미리엘을 경계하면서 미리엘보다 빨리 6계층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거지?”
“음. 그렇게 되는구먼.”
그렇게 말하면서도, 디아나는 생각할 것이 많은 건지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왜 그래? 더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 아닐세. 지금은 없네.”
신경 쓰이는 말투네. 지금은이라는 건, 나중에는 할 말이 있다는 거잖아.
뭐, 디아나가 지금 말 안 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만.
“······지금부터 더욱 바빠지겠네요. 적어도 그 전에 제가 여신님을 강림시킬 수 있었다면······.”
확실히 더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여신님을 강림시켜서 사명이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신강림의 쿨타임은 아직 한 달 정도.
지금까지 기다렸던 것에 비하면 얼마 남지도 않은 수준이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한 달이나 더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어졌다.
차라리 그 사이에 천사님의 레벨을 250레벨로 만들어서 성녀로 전직시키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고.
“괜찮아. 그건 레이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신님의 힘을 한몸에 받은 내가 설마 시킨 일 하나 처리 못 하겠어? 뭔진 몰라도 팍팍 처리하고 끝내 버리면 되지.”
“······네. 믿어요. 하지만 여신님의 힘을 받아서가 아니에요. 구원씨이기 때문에 믿는 거예요.”
나는 천사님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 굳이 여신님까지 언급하며 그렇게 허세를 부렸지만, 천사님은 오히려 날 북돋아 주듯이 그렇게 말해줬다.
크윽.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실까.
“레이아······고마워.”
“후훗. 아니에요.”
이대로 천사님과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아까 장난치면서 괜찮은지 확인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확인도 해봐야지.
“그리고 거기서 질투에 활활 타는 눈길로 우릴 보고 있는 사라씨.”
“······딱히 그런 눈으로 안 봤거든?”
에이. 살짝 질투는 했으면서 아닌 척은.
아무튼 지금은 장난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사라의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그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뭐야. 사과받고 싶은 거면, 사과 안 할 거니까.”
아니. 딱히 등짝 스매시로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닌데.
아직까지 그거 신경 쓰고 있었던 거야? 하여간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아?”
“뭐가?”
“아니. 미리엘이 그렇다는 건, 너도 이방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사라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잠깐 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일부러 한숨을 푸욱하고 크게 내쉬었다.
“······하아. 그 얘기였어?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놀랄 리가 없잖아? 확실히 갑자기 문자가 보였을 때는 놀랐지만, 그뿐이야. 이방인이 한둘도 아니고. 딱히 놀랄 일도 아니잖아?”
야. 아무리 그래도 출생의 비밀이 점점 밝혀지고 있는데 너무 가볍지 않냐?
뭐, 확실히 용사라든가 마신이라든가 하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 비하면 임팩트가 약하기는 하지만.
“하여간 쓸데없는 걱정은 잘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라의 표정은 엄청나게 기뻐 보였다.
야. 생긴 건 차가운 도시 여자인 주제에 입꼬리 헤실 거리지 마라. 귀엽게.
“그런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있으면?”
“실비아씨나 신경 쓰는 게 어때? ······죽은 거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는 내 품 안에 있는 실비아에게 힐끔 시선을 줬다.
······아.
“으악! 실비아아아!”
너무 몸에 맞아서 익숙해진 바람에 깜빡하고 있었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정신 안정용으로 들어오자마자 실비아부터 껴안고 있었지!
“흐야으응······구어······니이임······.”
안 돼! 실비아! 성불할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지 마!
네게는 아직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크흑! 이렇게 된 이상! 미안하지만 다들! 텐트 하나 더 꺼내줄 테니까 나가서 다른 텐트에서 자 줘! 난 실비아를 살리기 위해 지금부터 힐링 섹······!”
“적당히 해.”
“아, 역시 안 될까요? 일단 밤 차례가 실비아 차례이기는······.”
“구원씨······.”
“죄송합니다.”
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사라 쟤는 그렇다 치고 천사님까지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시면 진짜로 살아갈 기력이 없어지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서로 머리를 맞대서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는 다 같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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