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int’s Dungeon Business RAW - Chapter (922)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923화 >
앨리시아가 날 이렇게나 좋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할 일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여기서 너랑 섹스하고 싶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자면 뭔가 제대로 이유를 댈 수 없는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뭔가 안 될 일이잖아? 그런 건. 우리 애들도 있고.
그런고로 나는 어떻게 대답하면 앨리시아를 상처 주지 않으면서 이 얘기를 끝마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말았다.
“······그렇게나, 냐.”
그다지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닌 앨리시아였지만, 그런 앨리시아라도 지금 상황에서 내 표정을 보면 대충 어떤 대답을 듣게 될지 눈치는 챌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앨리시아는 내 물건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라니까.
최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란 놈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에 약한 모양이라, 친하게 지내는 애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나도 모르게 표정을 풀어주려고 아무 말이나 내뱉게 된다고.
“아니. 너도 만지고 있으니까 알겠지만 결코 싫은 건 아니지만 말이지.”
이거 봐. 그냥 그대로 넘어갔으면 조금 상처 주더라도 그대로 끝났을 텐데. 쓸데 없는 말을 해서 괜히 희망을 불어넣어 버리고 있잖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입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제멋대로 움직이며 쓸데없는 말을 나불댔다.
“여기가 어딘지 생각을 해봐라. 던전이잖아. 위험하다고. 너도 방금 막 뒤에서 습격당했잖아. 애초에 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나도 남잔데 너같이 생긴 애가 들이대는 걸 싫어할 리가 있겠냐? 난 고자가 아니야. 지금 당장 밀어 넘어뜨리고 그대로 박아버리고 싶다고. 손안에 느껴지지 않냐? 두근두근 힘차게 맥박치는 이······.”
앨리시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그 눈이 서서히 희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걸 머리가 인지하고 나서야, 내 입은 겨우 나불거리는 것을 멈췄다.
이 이상 멋대로 지껄이면, 괜히 더 큰 상처만 줄 뿐이다. 이미 충분히 저질러버린 것 같지만.
“미안. 이렇게 말하면 괜히 또 상처만 줄 걸 알면서도. 네가 그때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봤는데도. 미안. 진짜 미안해. 널 상처 줄 생각은 아니었어. 너와의 관계가 또 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내 다리 사이에 얹어져 있는 앨리시아의 손을 살며시 떼어내고는, 나는 정직하게 사과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장난이랍시고 나불나불 잘도 입을 움직여대면서도, 결국 중요할 때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나라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말은 앨리시아를 울려버리고 말았다.
“나도. 나도 너하고 관계가 더 틀어지는 건 싫다고! 괜히 이렇게 질척거렸다가 또 거절당하면, 그때는 정말 얼굴 보는 것도······그렇게 생각하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야성적인 눈동자에 어울리지 않게도 커다란 물방울을 머금으면서, 앨리시아는 지금껏 쌓아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듯 그렇게 외쳤다.
“걱정 마. 네가 먼저 날 꼴 보기도 싫다고 하지 않는 이상, 우리 관계가 틀어질 일은 없어. 난 친구를 한 번 사귀면 오래가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너도 알잖아? 내가 그날 이후로도 너랑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는지.”
사실 앨리시아가 내뱉은 말은, 앞쪽보다 뒤쪽에 더 무게가 실려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날 향한 마음이 컸다는 그 말.
가슴 속에 품어둔 감정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절절히 배어 나오고 있는 외침이었지만, 그 감정에 대답해주기 힘든 나는 치사하게도 그 말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앞쪽 말에만 주목해서 대답을 해줬다.
“으읏?!”
하지만 그 말이 또 앨리시아의 마음속 한구석을 자극했는지, 앨리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렁이는 눈동자로 날 쳐다봤다.
“왜, 왜 그래?”
이번만큼은 나도 내가 어떤 부분을 말실수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해서 앨리시아를 마주 봤다.
“으, 으읏······! 크흑······!”
하지만 앨리시아는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허벅지 위에 올린 두 손을 꽈악 움켜쥐고는 바들바들 떨면서, 침음성을 몇 차례 흘렸다.
“······야.”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앨리시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갑자기 날 불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 목소리만 들어도 앨리시아가 엄청나게 고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응?”
그리고 또다시 침묵.
“······아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피가 배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꽉 움켜쥔 주먹을 바들바들 떨던 앨리시아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국 이 방 전체가 떠나갈 듯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 아무것도 아니라니······.”
직전까지는 완전히 뭔가 고백할 분위기였기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앨리시아에게 따지듯 되물으려고 했지만, 앨리시아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내 말을 딱 잘라버렸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야 새끼야! 꼬추 달린 새끼가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거기 달린 건 장식이냐?! 그러고 보니 아까도 안 썼지?!”
아니. 꼬추는 상관없잖아. 꼬추는.
평소에는 저런 말을 들으면 욱해서 장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했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런 행동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야. 잠깐.”
“뭐 새끼야? 여기서 얼마나 더 꾸물대려고 아직도 바닥에서 엉덩이도 안 떼고 있는 건데? 슬슬······.”
“아니. 슬슬 가는 건 좋은데 아래쪽은 걸치고 가라고.”
“······! 내놔 새끼야!”
결국 진지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던 우리의 대화는, 내가 앨리시아한테 의미 없이 한 대 얻어맞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뭐, 아까 저지른 게 있으니까 얻어맞은 건 별로 상관없지만 말이야. 결국 마지막에 하려던 말은 뭐였던 거야?
그 의문이 며칠 후에 그런 식으로 풀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나는 앨리시아가 갑옷을 다시 챙겨입은 걸 확인한 다음 여전히 뒤를 돈 채 귀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는 레이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일이 있었던 이후로도, 우리는 며칠간 더 보스룸에 자리 잡고 머무르며 조를 짜서 몬스터 사냥을 나섰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이후로 나와 앨리시아는 단 한 번도 같이 사냥을 가지 않았다.
아무리 평범하게 친구처럼 지내려고 해도,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에 평소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건 서로 어려웠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을 더 기다린 끝에, 우리는 겨우 6계층의 주인이 부활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6계층의 주인은 일반 계층의 마지막 보스라는 위치에 걸맞게, 그 부활도 화려했다.
방 중앙에 놓인 갑옷이 덜그럭거리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서 회오리를 만들며 허공에서 차례차례 맞춰지기 시작한 거다.
어쩐지 마석을 캐고도 갑옷이 사라지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가져갈 수도 없게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더라니. 화려하게 부활하네.
하지만 그 화려한 부활이 이번에는 오히려 독이 됐다.
그 갑옷이 다 맞춰지기 전부터, 내가 성자의 파동을 쉴 새 없이 퍼부어댔거든.
“응오오오옷?!”
갑옷이 전부 맞춰진 순간, 녀석이 낮고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제일 먼저 외친 건 그런 기성(奇聲)이었다. 그것도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고간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그리고 그다음 녀석이 고개를 든 바로 그 순간, 녀석의 텅 빈 동공에는 아마 각양각색의 광채가 보였겠지.
마나를 듬뿍 머금은 사라의 푸른 화살. 진홍색의 빛을 발하며 날아드는 디아나의 폭발마법. 사라의 것과 비슷하게 푸른 화염을 휘감은 미리엘의 검. 새하얀 신성 마법을 품은 채 날아드는 성기사 릴리의 철퇴 등등.
이미 모든 공격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우리는 녀석이 내 성자 스킬에 반응한 걸 확인하자마자 곧장 모든 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녀석은 외마디 단말마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소멸해버렸다.
미리 대비하면서 들은 얘기로는, 녀석은 고위 언데드답게 사람 말을 내뱉으면서 근엄하게 전투에 임하는 기사라고 한다.
그런 녀석이 부활하자마자 “응오오오옷?!” 같은 기성이나 내뱉고 다시 소멸해버리다니. 싸움의 세계란 언제나 잔혹한 것이다.
성불하라고 기도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운 모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무너져내린 갑옷 사이로 동그랗게 말린 검은색 연기 덩어리 같은 게 솟아오르더니, 그대로 내 고간으로 돌진해온 거다.
“어?! 뭐야?! 씨······!”
당연히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아래로 내려 고간을 방어했지만, 연기 덩어리는 내 방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손을 관통해서 그대로 내 고간 사이에 스며들었다.
어떻게 손이 아니라 고간 사이에 스며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냐고?
그야 반응이 곧장 나왔기 때문이지.
투둑! 투두둑! 빠각!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물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아예 가죽 갑옷의 이음매를 망가뜨리며 튕겨내고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 버린 거다.
물론, 갑옷 안에 입고 있던 바지나 속옷이 찢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어머. 어머어머.”
“과연. 저건······.”
내 물건에 익숙한 우리 애들조차도 그 엄청난 위력에 놀라는 모습이었고, 내 물건을 제대로 본 적 없는 아라크네 클랜 사람들은 감탄을 내뱉으며 흥미진진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내 다리 사이를 엿봤다. 아니. 대놓고 직시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빨리 이 물건을 폭발시키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걸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물건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천천히 정면의 벽 쪽으로 다가갔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벽화. 그 중심에는, 마침 알맞은 위치에 구멍이 하나 뚫려있었다.
벽에 도착한 나는 두 손으로 벽을 짚고, 물건의 높이를 맞춘 후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자네? 왜 그러는가?”
“아니. 기억 안 나?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 그때 내 아들이······.”
“또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디아나 넌 아들이 가시에 긁히는 그 생생한 감촉을 몰라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다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얼마나 끔찍한 기억이었는데!
게다가 지금 이 구멍도, 내 것을 집어넣기에는 좀 작아 보인다고! 완전히 그때의 그 광경이 재현될 분위기잖아!
하지만 다들 저렇게 나만 지켜보고 있는데,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내 물건도 위험한 상태고.
“에잇!”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는 허리를 앞으로 쑥 내밀었고, 다행히도 벽에 뚫린 구멍은 내 물건 크기에 맞추듯 벌어지면서 내 물건을 담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진과도 같은 땅 울림과 함께 구멍의 크기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물건을 아플 정도로 팽창시키던 그 안타까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성불이라도 한 것처럼.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원래는 진짜 내 물건을 넣어야 열리는 구조가 맞았다니까?!”
“이제 와서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바보야.”
싸지도 않았는데 뭔가 산뜻한 기분이 된 나는 눈앞에 드러난 통로를 가리키면서 기쁘게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사라의 한심해하는 목소리뿐이었다. 상당히 창피한지, 얼굴까지 새빨갛게 붉히고.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창피해할 필요는 없지 않냐.
“자, 그럼 가자! 아, 물론 우리 파티만이야. 미리엘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지.”
“잠깐.”
내 말에 미리엘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여줬지만, 사라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듯 날 멈춰 세웠다.
“왜? 아, 말해두지만 안 쌌어. 통로가 내 정액 범벅이 되어 있을 걱정은 안 해도······.”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안 했어, 바보야! 애초에 그런 것쯤은 보면 알아!”
“봐서 알 리가 없잖아! 내 물건은 싸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굳건하게······.”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사라가 왜 아까부터 얼굴을 붉히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이건 말이지. 뭔가 박고 나니까 기분이 상쾌해져서 살짝 고양되어 있었다고 할까······.”
“빨리 추스르기나 해, 이 바보야!”
“넵.”
통로 구석에 숨어서 찢겨진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고, 튕겨져나간 갑옷 부위를 주워다가 이음새를 대충 끼워 맞춰서 제대로 장착한다.
그렇게 옷을 완전히 갖춰 입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통로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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