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하루 만에 찾겠다던 물건은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되돌아왔다.
예상대로 사용인들이 잘 숨겨놓고 시장에 팔려고까지 했던 물건이라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유리는 이 상황을 이해해줬다. 덕분에 빌 워독은 한결 마음 편히 일 처리를 해냈다.
물론, 여기에는 가주 벤헬링턴이 직접 나서준 탓도 컸다.
저벅, 저벅.
벤헬링턴을 선두로 겔런과 빌이 뒤따랐다. 벤헬링턴 손에는 되찾은 물건이 담긴 상자가 들렸다.
그들은 유리네가 머무는 별채로 향하는 길이었다.
“으음.”
빌은 가는 내내 이마 한가운데를 문지르며 신음을 냈다.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들어서 계속 이마를 만졌다.
그 날, 유리에게 딱밤을 맞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분명 안 맞았는데…….’
고사리 같았던 유리의 작은 손은 딱밤 때리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손끝이 스치면서 통증은커녕 자국조차 남기지 못하고 체벌이 끝났다.
그런데도 빌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죽는 미래를 보는 경험.
‘대체 뭐였을까.’
도난 사건을 조사하면서 계속 고민해 봤지만 그 날의 일들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유리가 보여준 딱밤에 스스로가 위축됐다는 점이다.
“괜찮냐?”
옆에 같이 걷던 겔런이 물었다. 오늘도 겔런은 셔츠에 양장 바지 차림으로 편하게 나왔다.
반면 빌은 말쑥하게 재킷에 넥타이핀까지 제대로 갖췄다.
상반되어 보이는 차림새와 외모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기도 했다.
빌이 얼른 이마에서 손을 내렸다.
“괜찮다.”
“표정은 별로인데.”
“신경 안 써도 돼.”
“유리 도련님 때문이야? 하긴, 그 분이 한 성격하시지.”
“그분에 대해 뭘 좀 아나?”
“아는 건 별로 없고. 좀 남다르다고 해야 되나.”
“…….”
빌 또한 침묵으로써 동의했다.
딱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유리는 범상치 않았다. 마치 어렸을 적 벤헬링턴을 보았더라면 딱 그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별채에 다다랐다.
갑작스런 가주의 방문에 하녀들이 후다닥 그를 맞았다.
참고로 문제가 되는 하녀들은 이미 교체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릴림이 나왔다.
“오셨나요.”
“샤를린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이리로.”
약속 없이 온 자리라서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
부엌 담당 하녀들은 차와 다과를 준비하러 사라졌고, 청소를 하던 이들은 분주히 길을 비켰다.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서자 자수를 놓고 있던 샤를린느가 보였다.
“어머, 가주님……!”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갑작스런 방문에 샤를린느가 벌떡 일어섰다.
벤헬링턴이 손짓으로 괜찮다며 도로 앉으라 했다.
그가 맞은편에 의자에 몸을 붙였다.
“가문 생활은, 할 만하나?”
“덕분에 많이 신세 지고 있습니다.”
“신세는 지랄. 내 앞에서 괜찮은 척 구는 거 질색이다. 싫으면 싫다, 나쁘면 나쁘다 말해.”
이미 다 알고 왔기에, 벤헬링턴은 들고 온 상자를 테이블에 올렸다.
보석이 들었을 것 같은 화려한 상자를 본 샤를린느는 이게 뭔가 싶어서 만지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벤헬링턴이 “열어봐.”라고 말을 해서야 상자에 손을 뻗었다.
안에는 푸른 보석이 박힌 펜던트가 들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도둑놈들 털어서 찾았다.”
“…….”
멍한 얼굴로 펜던트만 보는 샤를린느.
벤헬링턴이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얹었다.
“블레이머 놈이 줬겠군.”
“어떻게 아셨죠?”
“내가 그놈한테 줬던 물건이니까.”
그제야 샤를린느가 펜던트를 손에 꼭 쥐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담은 듯한 보석이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였다.
소중한 물건을 되찾은 기분에 손끝이 하얘지도록 힘을 줬다.
아련해지는 시선이 펜던트를 향한다.
“저한테 위험할 때면 이걸 깨뜨리라고 하면서 주더군요.”
“헌데 깨뜨리지 않았군. 위험한 일이 없었나 보지?”
“있었지만, 못 깼어요. 그이가 준 선물이라서요.”
벤헬링턴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영 어색했다.
그래서 블레이머가 어떤 심정으로 그녀에게 펜던트를 주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용인들은 말이야, 선물 같은 걸 안 해.”
“…….”
샤를린느가 고개를 들었다.
가녀리고 약해서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주제에 무섭도록 침착하고 고요했다.
“진귀하다고 여기는 물건들은 죄다 보물 창고에 널리고 널려서. 전부 고대 드래곤이 모은 것들이지. 그래서 보물의 가치나 의미 따윈 몰라. 주고받아도 감흥이 없어.”
나이트워커를 비롯한 용인 가문에게 있어서 재물은 아무것도 아니다.
있어도 그만, 없으면 얼마든지 다시 모을 수 있다.
그럴 능력이 충분하며 그걸 증명해온 것이 용인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진귀한 금은보화를 갖다 바쳐도 용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설령 특별한 아티팩트라 해도 똑같았다.
벤헬링턴은 빌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귀중한 게 아니라 소중한 거라…….’
유리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린놈이 ‘귀중’과 ‘소중’의 차이를 얼마나 헤아리겠느냐만.
적어도 샤를린느가 펜던트를 대하는 태도에선 그 차이가 명확하게 전해졌다.
“감사합니다. 이대로 잃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샤를린느가 그리 말했다.
할 일을 마친 벤헬링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한테 감사할 거 없다. 네 아들이 찾은 거나 마찬가지야.”
“네?”
“그리고, 곧 별채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주마. 이놈의 별채는 구조부터 보안이 엉망이라서, 쯧!”
“아, 아닙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내가 이럴 필요가 있어! 또 이딴 일 때문에 바빠지긴 싫다!”
역정을 내고 나서 벤헬링턴은 그대로 돌아서서 나갔다.
별채 밖까지 빠른 걸음으로 나오고 나서 겔런이 곁에 바싹 붙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뭘? 제몬?”
하녀들을 색출해서 취조한 결과, 제몬이 뒤에서 물건을 훔치라 지시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하녀들은 전부 가문에서 퇴출, 그들이 가진 재산도 몰수했다.
허나 정작 하녀들에게 지시를 내린 장본인인 제몬은 처분 결정이 안 내려졌다.
이번엔 빌이 바싹 붙었다.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원칙적으로 엄연히 범법행위인 절도입니다. 가문의 법도에 따라 마땅한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겔런, 자네 생각도 같나?”
“딱히 어떤 물건을 지정해서 훔치라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마 저번에 당한 일 때문에 보복성으로 한 지시라고 봅니다.”
“요점만.”
“제몬 도련님이 아직 어리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어린놈의 자식이 저지른 실수 정도로 치부하자는 거군.”
두 사람의 의견 모두 타당했다.
범죄이긴 해도 굳이 범죄로까지 키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허술했기도 했고, 아이의 실수라며 다른 가문 사람들이 들고 일어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처벌 없이 경각심마저 주지 못하면 그것대로 문제였으니.
“처벌은 유리에게 맡기지.”
벤헬링턴이 내린 결론에 겔런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가주님. 유리 님께 맡겼다가…….”
“저번처럼 턱주가리 부서지면 어쩌냐고? 흥, 이러나저러나 제 팔자지. 저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당해야 되지 않겠나?”
“자칫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애들 싸움이 애들 싸움 같았으면 좋겠지만.
용인의 싸움은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도가 지나쳤다. 차라리 절도 같은 짓이면 양반이었다.
허나 벤헬링턴이 그딴 걸 신경 쓸 사람이던가.
“원래 애들은 치고받으면서 크는 걸세.”
“…….”
“…….”
빌과 겔런은 왠지 더 큰 사고가 터질 것만 같은 직감을 받고 아연실색했다.
아무래도 미리 상급 신관을 불러야겠다.
* * *
같은 시각, 유리는 연무장에 나와서 릴림이 가르쳐줬던 성기사 검술을 복기해보고 있었다.
[진짜 엄청 늘었다, 너.]티르빙이 보기에 그의 성기사 검술 기초는 벌써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비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반격 동작은 진작 터득했다.
[이 정도면 릴림이 아니라 레벤나랑 붙어도 이기겠어.]‘칭찬으로 춤추게 하다가 저승으로 보내려고? 송별 의식치곤 과하네.’
[진심이야. 레벤나는 딱히 전투에 특화된 악마는 아니지만, 그 여자쯤은 이길 거야.]악마랑 싸운다, 라.
아직까지는 먼 얘기라서 감이 안 잡힌다.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때까지는 몇 년이 더 남았다.
만약 원작대로 악마와 주인공이 싸우기 시작했을 즈음엔.
‘나도 거기에 있겠지.’
그때까지 충분히 더 강해져야 한다. 주인공 옆에 서서 필요한 인원이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타다다닥!
그때 저 멀리서 기사단 무리가 뛰어왔다. 철 갑옷이 발걸음마다 절그럭거렸다.
훈련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유리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도열했다.
그들 사이에서 빌과 겔런, 그리고 양쪽에서 기사들에게 팔이 붙들린 제몬이 나타났다.
“이거 놔! 감히 네놈들이! 가주님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오늘 일을 낱낱이 일러서 전부 쫓아낼 줄 알아!”
제몬이 빼액빼액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유리는 제몬보다는 빌과 겔런에게 눈길이 갔다.
‘지금 보니까 둘이 닮았네.’
[형제인가 봐.]두 사람을 따로따로 놓고 봤을 땐 풍기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겔런이 자유분방하다면, 빌은 FM이랄까.
그나마 겔런 쪽이 조금 더 어깨가 벌어져서 군인다웠고, 빌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긴 머리카락 때문에 귀족보다 귀족스러웠다.
그런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묘하게 얼굴이 비슷했다.
그들은 유리를 찾아와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유리도 마주 인사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전에 부탁하신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잡았습니다.”
빌이 뒤에 있는 제몬을 흘깃 훔쳐보며 대답했다.
아, 설마 그건가.
“제몬 형님이 훔쳤나 보군.”
“하녀들을 사주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에 해당 사용인들은 전부 가문에서 퇴출시키고 그들이 벌어간 돈만큼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별채에 머무는 사용인들도 전부 교체했고요.”
빌은 그밖에 이 일이 벤헬링턴에게 보고됐다는 사실과 여타 조사 내용들을 낱낱이 읊었다.
보고가 끝나고 겔런이 이어 말하길.
“가주님께서는 유리 님이 제몬 님에 관한 처분을 맡으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해결하라면서요.”
하! 과연 벤헬링턴답다.
가족을 제 손으로 벌하기는 애매하니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보라는 거네.
물론, 그 방법은 어렴풋이 정해져 있었다.
나이트워커의 방식.
문답무용.
주변에 도열한 기사들이 그 증거였다.
여기서 대련을 하거나 두들겨 패도 되며, 기사들은 도망가는 제몬을 붙잡기 위해 있었다.
다소 폭력적인 방식이긴 해도.
말 그대로 애들 싸움이니 다쳐봤자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 여긴 모양이다.
물론, 저번에는 턱뼈를 아작 냈지만…….
“내가 저딴 놈한테 벌을 받으라고?”
가만히 듣고 있던 제몬은 노발대발하며 발악했다.
“가주님이 진짜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대체 가주님이 왜 그런……! 이, 이거 놔! 믿을 수 없어!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많이 억울한가 보네.”
유리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았어야지.”
“이게 감히 형님에게!”
그놈의 형님.
사실 알고 봤더니 제몬은 형이라기엔 애매했다. 1살 더 많긴 한데 태어난 기간 차가 반년도 안 됐다.
물론 10살이 더 많아도 애초에 제몬을 형으로 모실 마음은 없었다.
그런 유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제몬은 흥분을 죽이고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후우, 잘 들어라, 열등분자. 억울? 그건 당하는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야. 아직 당한 게 없는 나는 억울하지 않아. 당연히 앞으로도 당하지 않을 거고!”
[쟤 주둥이가 팔딱거리는 게, 갓 바다 밖으로 나온 고등어인가 봐. 아우~ 비려.]티르빙의 신랄한 비유에 유리는 나오려던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고등어야 영양가라도 있지.
저건 좀…….
‘대련이나 일방적으로 때리는 건 재미없는데.’
뭔가 확실한 약효가 필요했다.
다신 고등어가 입을 나불대지 않을 특효약.
그때 문득 유리와 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반사적으로 빌이 고개를 돌린다.
반면 유리는 그를 보는 순간 ‘이거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