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메데스 재단이 뿌려놓은 씨앗이 곳곳에 있다는 건 알고 있죠?”
엘라트리오는 그리 운을 뗐다.
메데스 재단이라고 해서 모든 인재를 끌어당길 순 없었다.
뭐, 당연하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으니까.
그들이 전부 메데스 가 사람이 되었다면 용가가 아니라 그들이 최강자라 불렸을 거다.
“우리 왕실에도 한 사람 있어요. 궁정마법사.”
각 국가의 왕실에는 그를 대표하는 마법사가 한 명쯤은 있다.
다양한 호칭이 있으나 보통은 궁정마법사라고 불렸다.
쉽게 생각하면 그 나라에서 가장 마법을 잘 알고 잘 쓰는 사람 정도랄까.
“그 자도 메데스로부터 후원을 받았었나?”
“마법학회 영재 아카데미 출신이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유능했다나봐요.”
“간접적으로나마 후원을 받은 셈이군.”
마법학회는 메데스 재단의 대표적인 학회이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는 단연 세계 최고의 마법사 양성 학교로 꼽혔다.
그곳에서 졸업만 해도 어지간한 왕실의 궁정마법사는 물론.
학회에서 한 자리쯤은 쉽게 꿰찼다.
“근데 그 자는 왜? 아카데미 출신이라지만 제국 궁정 마법사라면 연을 끊은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학회로 넘어오라고 회유하고 있어요.”
“회유라. 내 귀엔 도둑질로 들려.”
“그렇죠. 그래도 다행히 마법사님께선 가실 마음이 없나봐요. 계속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다는 건 여태 매달리고 있나보군.”
“그게 참 그래요.”
“무슨 소리지?”
“마법사님께서 매달리는 게 안 되니까 폐하께 매달리고 있거든요.”
후원으로 안 되니까 메데스 재단은 방향을 아예 바꿨다.
거래.
즉, 황제에게 궁정마법사를 팔아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제 선에서 열심히 거절하고 있긴 해요. 마법사님은 매일 싸우다시피 편지를 주고 받고 계시고요.”
“불안한 걸.”
“네? 뭐가요?”
유리는 테라스에 미리 마련된 청포도를 한입에 씹었다.
“후원이 안 먹혔다. 그럼 그만둬야지, 추잡스럽게 사람을 상대로 돈을 주고 사겠다고?”
“사람 빼돌리는 짓은 어느 나라든 해요. 티만 내지 않을 뿐이지.”
돈이 많은 국가, 거기다 국력까지 갖춘 나라는 돈으로 뭐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메데스가 여태 그래왔다.
그런 행위 때문에 반발하는 심한 지식인도 있었지만, 개의치 할 놈들이던가.
오히려 돈이 해결해주는 부분이 많아서 반대할 논리가 부족했다.
그런 마당에 돈이 해결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매달리고 싶은 인재가 있다면?
“죽일지도 몰라.”
“예? 죽인다고요?”
“간단한 이치지. 가질 수 없으면 부숴라.”
“비약적인 발상인 걸요.”
“메데스 재단이 만에 하나 정말로 흑마법사과 연결되어 있다면 마법사에 매달리고 있는 게 이해가 돼. 연구자가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궁정마법사에게 흑마법으로 유혹했다고 가정했더니 거절당했어.”
“궁정마법사님은 못 들을 걸 들었네요. 그리고 어디가서 말할 수가 없겠고요.”
“반대로 흑마법에 대해 들어버린 이상 메데스 재단은 계속 유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겠지.”
비밀을 알아버렸으니까.
마법사들에게 흑마법은 금기의 영역이자 미지의 영역이다.
어떤 자는 흑마법을 제대로 파해치는 순간, 이제까지 풀지 못했던 모든 숙제를 풀 수 있다고 할 정도다.
그만큼 흑마법 지식은 마법사에게 달콤했다.
아카데미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베리온 제국의 궁정마법사가 된 그 자라고 다를리가.
뛰어난 학구열이 한 번쯤은 흑마법으로 이끌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구경만 했느냐, 발을 담갔느냐, 그것도 아니면 전신욕을 했느냐의 차이일 뿐.
“만약 끝까지 재단에 협조하지 않겠다면 정말로 죽일지도 몰라.”
“그런…….”
골똘히 고민하던 엘라트리오는 급하게 잔에 샴페인을 붓고 벌컥 들이켰다.
“후우……. 그거, 추정일 뿐이죠?”
“아직까진. 메데스 재단이 흑마법과 이어져 있다는 정황만 있어.”
“그 정황이 매우 강하고요.”
“그래. 왜? 뭐 짚이는 거라도 있나?”
“아니……. 어쩐지 마법사님이 저한테 했던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거 같아서요.”
“무슨 말을 했길래?”
그녀는 한 번 더 잔을 채우고 들이켰다.
“궁에서 평생 살고 싶다고요.”
“뜬금없이?”
“그땐 뜬금 없었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시기가 교묘했네요. 그 날 마법학회에서 온 사람이 왔다갔었거든요.”
“…….”
정황만으로 상황이 맞춰져 갈수록 유리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물적 증거나 증언이 없이도 정황이 딱딱 들어맞고 있다. 심지어 궁정마법사가 살해협박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리 공자.”
탁!
엘라트리오가 거칠게 잔을 내렸다.
“당장 마법사님을 만나야겠어요.”
“그 자가 여기 있나?”
“렉슬러 대신 제 호위를 맡아서 같이 왔어요.”
“좋아.”
유리는 군말 없이 테라스를 나가 빌에게 오라 손짓했다. 멀리있던 빌이었지만 바로 신호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베리온 제국의 궁정마법사를 찾아오도록.”
“알겠습니다.”
빌은 군말 없이 궁정마법사를 찾으러 갔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 찾던 사람은 안 오고 찾으러갔던 사람만이 돌아왔다.
결국 유리와 엘라트리오는 궁정마법사를 직접 찾으러 가야만 했다.
* * *
베리온 제국 황실의 궁정마법사 드힐노어를 발견한 건 정원에 차려진 연회장에서였다.
그를 발견하게 된 경위가 다소 우스웠다.
정원 한 구석. 일부러 만든 건 아니지만, 파티에서 눈이 맞은 연인들이 오갈 법한 미로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나마 뒤늦게 참석한 채럿이 도움을 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연회가 끝나고서 만날 뻔했다.
이것이 왜 다행이느냐.
유리와 엘라트리오는 참새의 안내를 따라 코너를 도는 순간, 30대를 넘은 듯한 남성과 푸른 자수가 박힌 하얀 로브를 쓴 한 남자를 발견했다.
30대 남성은 드힐노어일 테고.
나머지 한 명의 정체가 모호했다.
흥분한 엘라트리오가 달려가려 하자 유리는 팔로 그녀를 막았다.
“오지 말아야 할 손님이 많긴 했지만, 당신이 올 자리는 아닌데.”
“……!”
드힐노어와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30대 중반을 갓 넘은 드힐노어는 사색이 되어서 소리쳤다.
“화, 황녀님!”
“마법사님. 여기서 뭘하고 계신 거죠?”
“그게 이 자가—!”
“인사 올립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님.”
하얀 로브를 쓴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진한 갈색 머리, 그 아래로 뾰족히 튀어나온 귀.
누가 봐도 미남자인 그는 다름 아닌 엘프, 그리고 청록색 자수가 박힌 로브는 출신을 말해줬다.
유리는 으름장을 놓듯 언어를 토했다.
“리펠리온 용가가 여긴 어쩐 일이지.”
지혜의 용, 방대한 정보를 지배했던 클라우드 드래곤의 후예.
현재는 메데스 왕가를 비호하는 또 다른 용가.
리펠리온.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하얀 로브와 청녹색 자수는 리펠리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엘프라.
“사자인가.”
“심부름꾼입니다.”
“꺼져.”
유리는 일절 망설임 없이 경고했다. 예상치 못한 선언에 엘프가 눈썹을 구겼다.
“꺼지라…… 했습니까.”
“너한테 여기까지 온 사연이라도 물어야 했나?”
“그야 당연—”
“오만한 놈이군. 나이트워커에 초대장도 없이 제 발로 와놓고 나한테 들켰다. 그렇다면 무릎 꿇고 빌면서 변명을 늘어놓아도 모자랄 판에, 내가 너한테 질문하는 수고를 해야 되나?”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을 다 받아줬다. 이건 찾아온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유리에게 필요했기에 베풀어진 아량이었다.
하지만 용가는 아니다.
용가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드래곤의 고집이 서로 부딪히면서 현 상황을 유지했다.
그걸 알면서도 정체 모를 엘프는 몰래 남의 용가에 발을 붙였다.
“가주님이었다면 당장 찢어발겼겠으나, 연회의 주인으로서 최대한 자비를 베푸마. 그러니 아량에 머리를 조아리며 꺼져라.”
“……감사, 합, 니다.”
엘프는 띄엄띄엄 힘겹게 없는 감사함을 끌어내곤 유리를 지나쳐 미로를 나갔다.
뭐라 더 하고픈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랬다간 유리는 맨손으로라도 목을 비틀 분위기였다.
“유리 님!”
때 마침 유리의 살기를 느낀 나이트워커의 기사들이 미로 입구 앞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엘프와 리펠리온 가의 복장을 확인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태 파악을 하느라 눈동자가 마구 굴러다닌다.
유리가 말했다.
“영지 밖까지 배웅하도록. 저항한다면 죽여도 좋다.”
“예, 옙!”
기사들은 엘프를 감시하듯 따라갔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드힐노어가 황녀 앞으로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다.
“소, 송구합니다, 황녀 마마!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유유유, 유리 님! 황녀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부디 저에게!”
손발이 닳도록 그는 빌고 또 빌었다.
아무래도 리펠리온 가를 나이트워커 안에서 만나는 바람에 자신도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엘라트리오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요, 마법사님. 기껏 차려 입은 옷이 더러워지잖아요. 얼른 일어서요.”
“그치만 유리 공자님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 제가 잘못한 겁니다! 저들과 완전히 연을 끊었어야 했는데……!”
“괜찮다니까요. 그쵸, 공자?”
“그렇다, 드힐노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으니 일어나도록.”
“아아……. 그래도 됩니까?”
“그래, 얼른 일어나. 나도 그대에게 물을 게 많아.”
“가가가, 감사합니다!”
일어나라 했더니 드힐노어는 이마를 흙바닥이 연신 처박았다.
이후 엘라트리오가 좀 더 드힐노어를 다독였지만 좀처럼 진정할 줄 몰랐다.
결국 연회의 첫 날이 끝날 때까지 유리는 아무런 이야기도 못 들었다.
* * *
리펠리온의 심부름꾼으로 온 엘프는 산맥을 내려가자마자 기사들에게 붙들려 가야만 했다.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했다간 죽는다.
영지 경계에 있는 검문소 밖까지 팔이 붙들린 채 끌려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못내 멈추고 말았고 뒤를 돌아봤다.
영지 경계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 북적거렸다. 입구엔 플레온 기사단이 가벼운 무장을 하고 지켰다.
“하아아. 만만치 않군, 유리 덴 나이트워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그나마 들키고 나서 살아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긴 했지만.
이는 더 큰 굴욕을 주었다.
차라리 죽을 위기라도 넘어서 리펠리온에 돌아가면 할 말이라도 있지. 들켜서 살아 돌아갔다간 무슨 뒷거래를 했냐고 의심을 받을 것이다.
유리가 그런 의도를 갖고 살려보낸 게 확실했다.
‘인간이면서 서자 주제에 생각보다 제법이군. 어쩌면 벤헬링턴보다 더 악독할지도.’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유리에 관한 생각을 털어냈다. 중요한 건 그 자가 아니다.
드힐노어를 포섭하고자 했던 건수가 엉망이 됐다.
“흑마법 연구를 위해선 베리온 궁정 마법사가 필요하다. 반드시 끌어와야 해.”
어차피 돌아가면 죽을 것이다. 살아도 믿는 자가 없다.
그럴바엔…….
“다시 들어가봐야겠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