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밤이 깊어질수록 연회는 점점 무르 익었다.
유리와 샤를린느가 떠난 뒤에도 대륙 곳곳에서 모인 인사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은밀한 자리를 갖기 위해 빠져나간 젊은 남녀가 아니고선, 간만에 회포를 풀 듯 밤새도록 왁자지껄했다.
그 동안 유리와 엘라트리오는 드힐노어를 데리고 3층 별실에 머물렀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이 된 드힐노어.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의자에 앉아 들고 있던 물잔을 벌벌 떨면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송구스럽습니다. 나이트워커까지 재단 측 사람이 따라올 거라곤 전혀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리펠리온에서 나온 사람일 거라곤 더더욱 몰랐고요.”
“계속 시달렸으면 저한테라도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엘라트리오가 걱정스레 말하자 그의 입가가 쓰게 웃다가 말았다.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말했다간 메데스 재단과 나이트워커, 두 쪽 모두가 절 죽일 테니까요.”
“죽을 작정이었던 건 아니고요?”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몰랐겠습니다. 저 하나 때문에 제국에 문제를 일으킬 순 없으니까요.”
꽤나 충성스럽군.
유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를 끌고 와 등받이를 앞으로 하고 앉았다.
“대강 이야기는 들었다. 메데스 재단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후원 말입니까.”
“후원을 약속하면서 그들이 뭘 요구했지?”
“…….”
대답이 선뜻 튀어나오질 않는다.
드힐노어는 테이블에 있던 크리스탈 물병을 병째로 들고 마셨다.
심호흡까지 몇 번 하고나서야 목소리가 흘렀다.
“후우, 후우. 흑마법 연구에 대해 말하더군요. 학회의 몇몇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면서요.”
역시.
흑마법으로 접근했군.
“연구 자금을 얼마든지 주겠다면서 저에게 꼭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무얼?”
“아카데미에 다닐 시절에 성력을 대신할 정도로 강력한 치료마법을 연구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 자료가 흑마법 연구에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어디에 쓸지는 말 안 하던가?”
“전혀요. 하지만 예상은 갑니다. 자체적인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마법을 제가 알고 있어서요. 그 자료를 원하는 걸 겁니다.”
그림이 얼추 그려진다.
교국에서 봤던 팀. 그는 무지막지한 자연치유력으로 일반적인 검격으론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어코 죽긴 했으니.
‘완벽에 가까운 치유능력을 가진 키메라를 만들려고 했었군. 실패작이 팀이었겠고.’
[그딴 짓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죽지 않는, 말 그대로 불사에 가까운 생명체는 없어. 있어봤자 악마나 천사겠지. 그럼 악마로 믿게 만들도록 쉽지 않겠어?’
‘진짜 불사가 아니더라도 비슷하기만 하면 됐을 거야.’
키메라는 애초에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와 같았다.
교국의 성기사들도 팀을 보고 악마라고 했듯, 전혀 본 적 없는 것이 등장하면 온갖 상상력이 덧붙으면서 공포와 같이 커간다.
거기다 죽지 않는다면 그들의 상상력에 확신까지 주게 되고.
나중엔 이게 키메라가 맞는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를 터.
물론, 이는 이단심문국의 입장일 뿐.
재단은 정말로 불사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묻겠다. 리펠리온 가에선 왜 그대를 찾아왔지?”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학회 동기들 사이에선 리펠리온이 재단의 뒤를 봐준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진짜인지는 잘…….”
왕실이 운영하는 재단이고, 왕실을 비호하는 용가니까 얼추 연결고리가 그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은 불분명하다.
‘용가에서 흑마법을 장려한다고? 어째서?’
리펠리온은 지혜의 드래곤 후예답게 진리를 향한 탐구심이 뛰어났다.
그렇다 해도.
흑마법에 매달릴 정도로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원작과 설정에서 명확하게 나왔다.
미뭉이 가진 고대의 진리를 보고도 리펠리온의 가주는 의연한 처세를 취했다.
“진리는 스스로 탐구하는 것. 농도가 진한 지혜를 위해선 탐구자의 적극성을 요구한다. 이는 남이 억지로 밀어넣은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미뭉이 보여주는 것들로부터 눈을 가리겠다.”
카이가 멸망의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아서 잠시 리펠리온에 도망쳤던 적이 있다.
그는 미뭉의 지식을 대가로 리펠리온에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헌데 리펠리온의 가주는 지식을 거부한 채 그를 도왔다.
그 정도로 숭고하면서 인성 좋은 가주가 있거늘. 정작 가문은 흑마법을 탐낸다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자면 흑마법 타도를 위해서 흑마법을 배우려는 거고.
‘나쁜 쪽으로 해석하자면 원작에서 보여준 모습은 가식이라는 거지.’
복잡한 추측과 생각이 머리를 마구 휘저었다.
유리는 그러한 머리를 정리하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연구는 완성된 건가?”
“거의 다 됐습니다.”
“황녀.”
“네, 공자.”
“황실에 내부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 진행 상황을 알고 오늘 리펠리온의 사자를 보냈을 수도 있어.”
“그 말은 즉…… 세상에. 죽여서 자료만 뺏으려 했군요!”
“확신은 없어.”
확신이 없다 했지만, 그렇지 않고서 리펠리온의 사자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 목숨을 걸고 와야 했을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만약 드힐노어 암살이었다면, 사안이 중했다.
“엘라트리오, 황실 측에 연락해서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우리 가문으로 옮겨라. 렉슬러 경이 맡아주면 더 좋고. 그 동안 드힐노어는 우리가 보호하겠다.”
“그래주면 감사하죠. 하아, 빌어먹을. 쉬러왔더니 쉬지도 못하고. 내 팔자는 웬 종일 고생만 있나.”
엘라트리오는 곧장 튕기듯 방을 나갔다. 그 사이 유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릴림.”
타닥!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릴림이 민첩한 몸놀림으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부름만으로 그녀가 나타나자 드힐노어는 기함을 지를 뻔하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정작 릴림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유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부르셨어요?”
“최우선 호위 대상이야. 오늘부터 어머니랑 같은 등급으로 이 자를 보호해. 머물 곳을 정해주고.”
“으음, 이 사람을요?”
“귀찮아하지 말고. 중요한 사람이야.”
“우으, 알겠……어요. 다른 시키실 건요?”
“없어. 넌 지키기만 하면 돼. 혹시라도 리펠리온을 포함해서 누가 접근하면…….”
“죽일, 게요.”
살벌한 포부(?)를 남긴 릴림은 드힐노어를 데리고 나갔다. 드힐노어는 나가면서 끝까지 감사를 표했다.
홀로 남은 유리는 아까 하다 말았던 고민으로 집중력을 옮겼다.
‘발상을 바꿔야겠어.’
[어떻게?]‘지금까지는 메데스 재단과 왕실이 주도적으로 뭔짓을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리펠리온이 끼어들었단 말이지.’
[리펠리온이 주동자라서 그랬겠지.]‘그럴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말했잖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지금부터는 그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빠르되, 신중하게. 리펠리온이라는 거물이 끼어있어서 더더욱 사안을 파헤치고 조심해야 했다.
반대로 리펠리온의 입장도 같으리라.
나이트워커에 자신들의 치부를 들킨 이상,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사단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네.”
* * *
자정을 넘어서 새벽 초승달마저 저물고 나서야 연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유리는 불이 다 꺼진 별장을 보며 마차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옆에는 샤를린느가 알딸딸한 얼굴로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술도 못 드시면서…….”
그래도 오늘의 어머니는 상당히 즐거워보였다.
뭐, 사심으로 접근한 남자들이 있었지만, 빌이 말하길 잘 쳐냈다고 한다.
오히려 너무 능숙해서 놀랐다고.
반면 친분이 맞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들과는 내일 술이 아닌 피크닉을 가기로 약속했단다.
“즐거우셨으니 됐지.”
덜컹.
마차가 흔들리며 어머니의 고개가 틀어졌다. 유리는 조심히 머리를 고쳐 받혔다.
뒤에 따라오던 마차도 같은 돌부리에 걸렸는지 덜컹거린다.
뒤쪽 마차에는 릴림과 드힐노어, 엘라트리오가 탔다.
바로 그들을 가문으로 보낼까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덜커덩!
마차가 급정거했다. 샤를린느가 앞으로 쏟아지기 직전, 어깨를 감싸서 고정했다.
다행히 깨어나진 않았다.
창밖에는 빛이 사그라든 밤하늘과 그 아래 수목이 깔렸다.
“도, 도련님!”
마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유리는 맞은 편 자리에 있던 쿠션을 가져와 자신의 자리에 대신 깔아놓고 어머니를 눕혔다.
“깨지 않게 조심할게요. 좀만 기다려주세요.”
삐걱대는 마찰음이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나가자 창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나무 아래 그림자, 그 속에 복면을 쓴 괴한이 녹아 들어있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반사시켰다.
뒤늦게 릴림도 사태를 파악하고 나왔다.
“제가 싸울까요?”
“아니. 내가 죽일 거야.”
“죽여요? 생포 안 하셔요?”
“릴림, 내가 복면만 보면 화가 난다고 얘기했던가?”
“처음 들어요. 화, 나셨어요?”
“엄청.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못하거든 네가 말려줘.”
어렸을 적 티르빙에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일까.
유리는 진심으로 복면 쓴 사람들을 싫어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 모든 복면이 사라졌으면 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익숙해지고 유리도 착용했지만, 암살자의 복면은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었다.
“귀찮아요.”
릴림이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유리는 실소를 흘겼다.
“생포하자며?”
“귀찮, 아요.”
“부탁해도 안 말려?”
“자제력 없는 도련님. 애 같아요.”
“그냥 말려. 명령이야.”
“애 맞네…… 아니에요. 알겠어요.”
확답을 듣고 나서야 유리는 암살자와 몇 걸음 좁혔다.
복면에 새카만 로브를 쓴 그는 외모는커녕 덩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암살자답게 작은 마나조차 안 느껴졌다.
“용가에 살수를 보내는 배짱이라니. 너희 상사의 결심에 찬사라도 보내야겠군.”
“드힐노어를 내놔라.”
“여기가 전당포도 아니고. 누가 들으면 맡겨놓은 줄 알겠네.”
금니라도 박았다가 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유리는 게슐츠의 검을 빼들었다.
스릉.
날이 얼마나 어두운지 반들거리는 칼날조차 빛을 반사시키기지 못했다.
오죽하면 복면만 보이고 눈가나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암살자도 유리를 볼 수 없었고. 이 같은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내 표정이 어떤지 봤다면 네놈에겐 도망갈 기회가 있었을 거다.”
“헛소리를.”
“헛소리 아냐. 난 암살자를 제일 싫어해서.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지.”
“드힐노어는 어디 있나.”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겠다. 암살을 말리진 않을 테니까 그 복면이라도 벗어.”
“드힐노어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안 벗으면 죽을 때까지 팰지도 몰라. 아니지. 죽으러 온 네놈한테는 그 결말이 바라던 바인가?”
“네 녀석이—!”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유리는 비수처럼 검을 던졌다. 검은 스스로조차 놀라운 속도로 허공을 날았다.
마나 하나 없이 오로지 근력만으로 던진 검이 빙그르르 돈다.
이윽고 서늘한 풍압이 암살자의 목덜미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큭!”
암살자는 간신히 목을 비틀어서 피했다. 간신히 칼끝이 목젖 아래를 스친다.
입구가 막힌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피가 솟구쳤다.
목숨을 건질 순 있었으나, 그 뿐.
유리는 검과 동시에 날아 녀석의 모가지에 초크슬램을 걸었다.
“커억!”
쾅, 하고 녀석의 등짝부터 바닥과 맞닿았다. 갈비뼈가 폐부를 찌르는 감각이 숨이 멎는 신음이 나왔다.
마운트 자세로 바꿔보려 했으나, 팔꿈치가 먼저 안면을 강타했다.
한 방, 두 방.
손을 들어 방어하던 암살자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서 세 방, 네 방.
방어하던 팔뚝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부러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근육으론 더 이상 방어가 불가능했다.
급해진 암살자는 다리로 유리를 감쌌다. 하단에 깔린 입장에선 거리를 내줘선 안 됐다. 그랬다간 팔로 가격 가능한 공간을 내준다.
하지만.
다리로 몸을 붙들자 유리는 그대로 기립했다.
“무슨 힘이!”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해서야 쓰나.”
그리고 포대자루를 팽개치듯이 암살자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태산이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놈의 사지도 떨어졌다.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입에선 개거품이 줄줄 흘렀다.
“컥! 꺼어어어어…… 꺽, 꺽……!”
결국 호기롭게 찾아온 암살자는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10초 만에 넉다운 되었다.
그러나 참지 못한 유리는 더 때리려고 했고.
릴림이 말리고 나서야 놈에게서 떨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