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8
제108화
유리는 순순히 해링을 놓아주었다.
대신, 나이트워커의 기사와 가문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정문을 통해 그를 쫓아내듯 보냈다.
만에 하나 재단 측 사람이 있다면 유리와 같은 편이라고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말에 오른 해링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대로 보냈다간 유리 님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겠소? 댁의 가주께서 가만히 두지 않을 거 같소만.”
“그러니까 빨리 떠나도록. 할아버님 나오셨다간 사지 멀쩡하게 갈 수 없어.”
“……감사하오. 진심으로.”
해링은 나이트워커 기사들과 함께 가문을 나섰다.
그가 충분히 멀어지자 엘라트리오가 혀를 슬쩍 찼다.
“쯧, 믿을 만한 사연인지 모르겠어요. 괜히 속는 기분도 들고.”
“믿어도 된다.”
“어째서요?”
“그냥, 그런 느낌.”
사실 유리는 해링 본인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의심해봤자 리펠리온 내부에 있는 어떤 변절자가 배신했다고만 가정했다.
왜? 단순하다.
원작과 설정은 리펠리온의 가주와 그 가문이 정직하고 숭고하다 일렀으니까.
악마와 싸우지 못했을 지언정, 미뭉의 지식을 거절한 가문의 가주다.
그런 그가 흑마법에 손을 댈 정도로 못난 자는 아니었다.
‘리펠리온이 재단에 굴복했다면 흑마법은 더 성행했을 거고, 악마만이 아니라 흑마법도 위협적이었겠지.’
[그거 확실해?]‘클라우드 하트, 알잖아.’
티르빙이 묻자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모든 용가 중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지혜를 담은 구름 심장.
일명 ‘클라우드 하트’라는 것이 있다.
설정집에선 클라우드 드래곤이 남긴 드래곤 하트라고 했으나, 정확히는 드래곤 하트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 기억 저장 장치와 비슷했다.
그 안에는 만물의 지혜가 담겨있으며, 그 존재는 리펠리온의 가주에게만 계승되어왔다.
다만, 클라우드 하트를 쓸 줄 아는 가주는 역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주인공이었던 카이가 잠깐 엿볼 기회가 있었을 뿐.
그 속에 담긴 지식에는 분명 흑마법, 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겼다.
어쩌면 메데스 재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짜’가 그 안에 있을 수도 있었다.
‘원작에선 클라우드 하트를 빼앗기지 않았어. 나중엔 악마한테 빼앗길까 봐 아예 파괴했지.’
[그 말은 즉, 메데스 재단이 클라우드 하트를 노리고 있다는 거네.]‘연구에 미친 도라이 학자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베끼기 좋은 논문이잖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건데? 설마 ‘나 미래를 엿봐서 범인이 누군지 알아요’, 할 건 아니고.]‘으으음…….’
미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유리는 차마 다른 이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때문에 혹여 누군가 반대하거나 작게 토를 달 줄 알았으나.
“그래요, 공자 생각이 그렇다면 믿어야죠. 뭐, 어쩌겠어요. 블레이크 단장도 그렇죠?”
“전 원래부터 도련님을 믿었습니다.”
“나도 그랬다.”
이자벨까지 수긍해버리니 엘라트리오는 입술을 팔(八)로 만들었다. 그리곤 졸리다며 가문을 나섰다.
이자벨이나 블레이크도 오늘도 연회가 있으니 눈이라도 붙여야겠다며 돌아갔다.
생각보다 허무하리만치 믿어버리는 바람에 유리는 어리벙벙했다.
“괜한 걱정을 했었나.”
언젠가 이런 비슷한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유리만 알고 있는 미래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어야만 하는그런 상황.
되도록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는데.
‘신뢰받는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
유리도 남은 피로를 덜어내기 위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연회 이틀째는 무난하게 지나갔다.
드힐노어는 연회에 참석시키지 않고 본가 내에서 머물토록 했고, 렉슬러가 직접 연구자료를 모두 들고 급하게 가문을 방문했다.
그는 사정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드힐노어의 호위를 맡았다.
그리고 3일째.
해링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부가 아닌 해링 밸바스터 리펠리온으로 참석했다.
부는 쫓겨난 이름이었고, 해링은 용가의 이름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되었다.
물론, 다른 용가에 발을 붙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해링은 특유의 넉살과 뻔뻔함으로 무장했다.
“하하, 이리 만나니 반갑구려! 리펠리온 가의 해링이라 하오!”
옆에는 금발을 곱게 땋은 귀여운 딸도 함께했다.
소녀는 아빠 다리 뒤에 숨어서 똥그란 눈동자로 유리를 올려다봤다.
유리는 내민 손을 맞잡으며 분위기를 최대한 죽이듯 일부러 차갑게 대응했다.
“분명 어제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어제는 메데스 왕실의 사위로 왔었다면 오늘은 리펠리온의 직계로 왔소. 내 원체 그대를 보고 싶어야지!”
“내가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허허! 이 사람, 참. 용가끼리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만, 이럴 필요까지 있겠소? 얼굴도 훤칠하신 분이, 하핫!”
용가끼리의 만남에 덩달아 주변 사람들도 둘을 예의주시했다.
갑자기 리펠리온이 나이트워커에?
아무리 봐도 좋은 의도는 아닌 것처럼 비쳤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다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서로 짠 것도 없이 이 정도 연기면 나중에 배우로 전향해도 되겠어?]‘시끄러. 나도 민망해 죽겠어.’
겁을 먹은 해링의 딸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 쫓겨난 해링이 다시 찾아온 걸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딸 때문에 엄청나게 날을 세우진 못했다.
‘그나저나, 많이 야위었어.’
채럿과 비슷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해링의 딸은 팔다리가 앙상했다.
빗질한 머리카락은 끝이 푸석거리고, 목 아래에는 검은 반점이 드문드문 보였다.
팔뚝도 마찬가지. 분칠을 해서 가려봤지만 까만 흔적이 희미하게 비쳤다.
이는 용혈병을 앓는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유리는 기운을 풀고 조심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름이 뭐니?”
“……로시.”
“예쁜 이름이네. 반가워, 로시. 유리라고 해.”
“으…….”
악수를 청해보는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로시는 완전히 뒤로 얼굴을 감췄다.
인제 보니 조금 숨을 헐떡거렸다. 가슴께가 눈에 띌 정도로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이런, 우리 애가 좀 먼 길을 왔더니 힘든가 보오. 미안하지만 혹시 쉴 곳이 있겠소?”
“가지가지…… 아니지.”
아차차, 연기가 너무 과했다.
로시가 지레 질려서 더더욱 해링 뒤로 몸을 감췄다.
유리는 할 수 있는 한 화사하게 웃었다.
“기다리도록. 릴림, 잠깐 봐주겠어?”
“네에.”
뒤편에 있던 릴림이 얌전한 걸음으로 로시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혹여 릴림을 경계하나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로시는 “하얘…….”라며 릴림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뺨을 쿡쿡 찔렀다.
찌르던 손가락이 꼬집고 잡아당기기까지 했으나 릴림은 내색하지 않았다. 정작 능숙하게 손을 뻗어 미미한 성력을 흘려보냈다.
점차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창백하기만 하던 혈색도 조금이나마 홍조를 되찾았다.
그러나 성력을 흘려보내던 릴림이 눈가를 살짝 찌푸리더니 유리를 보고 턱을 주억거렸다.
‘용혈병이 맞군.’
이리 확인을 하고 나니 해링과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게 있었으니.
“이리 된 이상 손님 대우를 해드릴 수밖에 없군요.”
“하핫, 드디어 마음이 좀 풀리나 보오!”
“아이한테 마음이 풀린 겁니다. 마침 베리온 제국 황실에서 온 괜찮은 의사가 있기도 하니.”
“황실의 의사라 하면…….”
“전에 만나 보셨을 텐데요.”
“아……!”
드힐노어.
그는 유리가 데리고 있다.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몰라도, 배링은 그에게 목숨과 가문까지 걸었다.
“원하시면 연회가 끝나도 아이가 편해질 때까지 머물러도 좋습니다. 물론, 당신이 아니라 이 어여쁜 아이 때문입니다.”
유리가 하는 말의 의미는 단순한 배려 이상이었다.
딸을 살려주겠다.
메데스 재단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마침 비슷한 또래 친구도 있으니 불러드릴까요? 채럿이라고, 제 동생이죠. 용가의 특성상 외부 사람과 어울리기 힘들 텐데. 둘이라면 잘 맞을 겁니다.”
해링은 눈물을 감추고 웃느라 또 다른 연기를 해야만 했다.
아무리 슬프고 기뻐도, 로시 앞에서 울 순 없었으니까. 그건 아이가 태어나고서부터의 약속이었으니까.
* * *
로시를 릴림에게 맡기고 채럿을 불러서 잠시 같이 어울리게끔 해줬다.
채럿도 친구가 생길 기회라며 펄쩍 뛰며 좋아했다.
반대로 로시는 여전히 경계심이 강했다.
채럿보다는 릴림이 더 좋은지, 그녀한테 안겨서 계속 뺨을 꼬집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꼬았다.
그렇게 모인 세 사람을 별실에 잠시 두었다.
조금 있으면 드힐노어도 올 것이다.
그는 용혈병에 걸린 아이가 있다는 소식에 자신의 치료법이 운명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유리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꼭 돕겠다며 이리로 오는 중이었다.
‘로시는 이걸로 해결이 되겠지.’
유리는 세 사람을 지켜보다가 방을 나섰다.
참고로 해링은 아직 연회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 역시도 재단의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유리의 발걸음은 별장 제일 꼭대기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가는 동안 해링으로부터 받은 정보와 그것을 다시 조사한 채럿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취합했다.
‘세계구원기금이 슈레빌에서 활동한다고 파악했고, 채럿은 그곳에서 다수의 마수와 사람들을 파악했다고…….’
딸이 붙잡혔다고 해링이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재단의 뒤를 캐내었고, 그 결과 흑마법 연구 정황과 세계구원기금, 슈레빌이라는 키워드를 얻어냈다.
이미 유리에겐 가지고 있는 키워드였으나, 해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새로웠다.
해서 채럿을 통해 확인한 결과.
슈레빌에서 빈민들과 세계구원기금 소속 사람들, 그리고 다수의 마수가 파악되었다.
[슈레빌이 세계구원인지 구제인지 본거지일 수 있겠네.]‘뭐, 처음부터 생각해보면 거기만큼 흑마법 연구를 몰래 하기 좋은 곳이 없지. 제 1차 참사 이후 슈레빌엔 버려진 땅이 많으니까.’
슈레빌의 위치는 메데스 왕국의 서부 국경 너머, 타이카라 불리는 대륙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타이카는 군사 대국으로 분류 되어 있으며, 강력한 만큼 견제를 많이 받아서 실상 정치적인 중립을 유지했다.
타이카 입장에서도 구 슈레빌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으나.
시체로 들끓는 땅 위에는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할렘가가 형성되어서 빈민을 비롯해 폭력배들이 그곳에서 살았다.
이는 달리 말해 세계구원기금 같은 단체가 몰래 활동하기 좋은 환경.
빈민을 구제하고 폭력배를 제압하는 일까지 하고 있어서 타이카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았다.
‘거기가 확실해. 마수가 왔다 갔다 했다면 실험체로 쓴 거야.’
장소가 특정된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유리는 오늘 밤 내로 슈레빌을 조사하고 흑마법과 관련된 것들이 있다면 모조리 부수고 올 계획이었다.
끼익.
계단을 올라 사다리를 통해 다락방에 오른 유리.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종이 있어야 할 종탑 자리에 거대한 독수리 한 마리가 그를 기다렸다.
채럿의 반려 독수리(?)인 반이었다.
“잘 있었어?”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주니 푸드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이 놈은 어째 저번보다 더 커진 느낌이다.
[그런데 말이야, 꼬맹이.]목덜미에 오르기 전, 티르빙이 불현듯 물었다.
[메데스 재단과 만나겠다던 성검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거야?](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