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슈레빌 남부, 이름 없는 마을.
그곳에선 여느 때처럼 가난한 자들이 한 데 모여서 배식을 받는 중이었다.
세계구원기금의 사람들은 신관처럼 백색 옷을 입고 사람 좋은 얼굴로 배식을 해줬다.
“자자! 먹을 건 많습니다! 전부 차례가 돌고도 남을 정도니까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오오!”
“역시 세계구원기금! 신이 보내신 분들이 맞다니까!”
“아무렴, 그렇고 말고!”
식판에 푸짐한 빵과 고기가 올라갈 때마다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그때, 저 멀리서 왠 패거리가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다.
“비켜! 새끼들아! 어딜 거지 새끼들이!”
“비실비실한 꼬라지가 부러뜨리기 좋구먼, 카카칵!”
“으억!”
난데 없는 행패에 빈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맞거나 밀려났다. 놀란 여자와 아이들은 진즉에 길 바깥으로 달아났다.
평화롭게 배식을 하던 세계구원기금 측 사람들만이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우뚝 멈춰 섰다.
그들 얼굴엔 더 이상 웃음기가 없었다.
무표정, 아니. 원래부터 감정이라곤 티끌만치 없는 낯이 몰려든 패거리를 바라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패거리는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팽개치거나, 저항하면 욕과 발길질을 날렸다.
그렇게 배식대 앞까지 접근한 무리.
키가 2m가까이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선두로 나왔다.
그는 마치 배식 받으러 온 사람처럼 식판을 하나를 집었다. 그리곤 쌓여 있는 나머지 배식판을 밀어서 넘어뜨렸다.
쿠당탕탕!
진흙 위에 박힌 식판은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남자 손에 들린 것만 깨끗했다.
“클클클, 이리 좋은 음식들을 자기들만 나누면 쓰나? 나도 좀 나눠주지 그래?”
남자는 더러운 손으로 깨끗한 음식을 한 움큼씩 쥐어 식판에 던 다음, 입안에 넣었다.
맛없는 것들은 마찬가지로 바닥에 밀어버렸다.
그는 배식하고 있던 한 여자 앞에서 멈췄다. 꾀죄죄한 얼굴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후으. 어때? 네 년도 나눠줄 마음이 있던가?”
“…….”
반응이 없다. 얼굴은 여전히 차갑다. 어느 순간 배식을 받던 빈민들도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패거리만이 달라진 공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괜찮으면 나랑—”
“먹으세요.”
패거리의 보스가 손을 뻗는 순간. 여자가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먹어. 먹어라. 먹는다. 먹어야 돼.
우린 배고파.
어? 먹을 거다!
먹자! 먹어!
콰직!
“어?”
한 빈민이 보스의 종아리를 물었다. 이어서 다른 사람이 팔, 다른 사람이 허벅지, 머리, 목덜미에 달려들었다.
부욱, 부욱,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문 자들의 얼굴에 흩뿌려진다.
“으, 으악!”
이 비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 무료 배식소는 식인의 현장으로 변질되었다.
* * *
늦은 밤,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에 마차 5대와 사람들이 한 폐허로 들어서고 있었다.
선두 마차에는 마부와 그 옆에 후드와 금색 가발로 위장한 유리가 탔다.
‘카이…….’
티르빙이 카이의 행방을 묻고 난 이후 쭉 그 녀석에 대해 생각해봤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 사건에 은근히 카이가 끼어 있을 듯싶었지만, 뭔가 애매했다.
물론, 그놈이 흑마법에 손을 대진 않았겠지만.
“나으리, 저기가 구 슈레빌입니다요.”
마부의 말에 유리는 고민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전방에 황량한 폐허가 시야에 들어오고, 나지막한 탄식이 나왔다.
‘여기가 구(舊) 슈레빌…….’
슈레빌은 참사를 기점으로 현재 신(新) 슈레빌과 구(舊) 슈레빌로 나뉘었다.
신 슈레빌은 과거 슈레빌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대도시로 발전한 반면.
구 슈레빌이라 불리는 마을은 초입부터 당시의 끔찍했던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집터였던 곳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타 까맣게 그슬린 흔적이 남았다. 동쪽 멀리 밤하늘 아래로는 수많은 비석이 언덕 능선을 따라 늘어졌다.
“정말로 이리로 가면 됩니까요?”
마부의 어눌한 말투가 근심을 담아 물었다.
“그래. 구 슈레빌만 지나면 된다.”
“허, 참. 왜 여길 가자는 건지, 소인은 당최 모르겠습니다요.”
“돈은 충분히 준다고 했을 텐데.”
“아유~ 그저 궁금해서 그럽죠. 이 야심한 밤에 이 많은 마차와 사람을 끌고 가겠다는데 솔직히 어찌 안 궁금합니까요.”
독수리를 타고 몇 시간만에 이곳까지 도달한 유리는 인근 다른 마을에서 마차와 사람들을 구했다.
마차만 해도 5대, 곁에는 급하게 섭외한 용병들이 지켰다.
그냥 슈레빌로 들어가긴 위험해서 지나가는 상단 정도로 위장한 것이었다.
그냥 잠입을 해도 되었겠으나, 미리 받은 정보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이 인근 빈민촌은 밤이 되면 오히려 사람들이 깨어난다. 그 때부터 해링이 말한 배식이 시작된다, 라…….’
구 슈레빌은 현재 신도시에서 자리를 잃은 빈민이 모여 살았다.
헌데 이들은 낮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밤이 되어서 나왔고, 세계구원기금 단체도 새벽이 되어서 배식을 시작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답은 아직까지 확실치 않았다.
그래서 상단으로 위장해서 직접 동태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유리는 마부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그럼 돈을 더 두둑히 쳐줄 테니까 알아도 모르도록.”
“알아도 모르라니. 허. 전 일개 마부입니다요. 알긴 무얼 알겠습니까. 아마 1시간만 지나도 전 나으리 얼굴을 까먹을겁니다요.”
키득키득.
돈 받을 생각에 기쁜 마부는 괜스레 고삐를 강하게 쥐었다.
* * *
마차와 용병들을 섭외한 마을에서부터 슈레빌까지 가느라 시간이 더 소모되었다.
그러나 빈민촌에 진입했을 때, 딱 알맞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오세요! 배식 시작하겠습니다!”
“자자! 줄 서세요! 오늘도 양은 충분합니다! 모두 드실 수 있어요!”
“더 드실 분은 다 드시고 줄을 서주시면 됩니다! 아이구, 오늘도 오셨군요!”
새하얀 의복을 입은 이들이 빈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빈민들은 익숙한 듯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식판을 받고 음식을 담았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면 그저 사람 좋은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배식대 옆에선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두둑한 포대 자루를 나르는 사람들과 또 다른 빈민들이었다.
포대 자루 주둥이 위로는 벌건 살점이 튀어나왔고, 아래로는 붉은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옷이 더러워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사람 시체? 아니면 동물인가?’
알 수 없는 포대는 그렇게 옮겨져서 구덩이 아래로 굴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물 시체는 아니었다. 마수나 키메라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남은 건 하나.
“계속 갈깝쇼?”
마부의 물음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무리와 가까워지자 슬슬 시선이 쏠렸다.
빈민들은 경계하며 길을 터줬다. 배식을 감독하던 세계구원기금 사람 한 명은 뒤늦게 마차를 보고 뛰어왔다.
“워, 워! 멈추시오!”
“무슨 일입니까.”
“나야 말로 묻고 싶습니다만, 댁들은 누구길래 이 밤에 이곳을 지나는 거요?”
“우리는 메데스 왕국에서 넘어온 상단입니다. 타이카 공국으로 가는 중에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었죠.”
“길을 헤매?”
어설픈 변명……까진 아니었으나, 의심 받기엔 충분했다.
그렇다고 상단이 아닌 것처럼 어설프게 위장하지 않았다.
길을 막은 남자는 슬쩍 마차 뒤를 훔쳐봤다.
뚜껑이 없는 짐마차엔 각양각색의 물건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첫 마차는 목재나 금속류 따위가, 두 번째는 염장 건조한 고기,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곡물류.
그리고 마지막은 자물쇠로 이중삼중 채운 상자가 가득 실렸다.
남자는 마지막 마차에서 눈길을 못 뗐다.
‘저거 혹시…… 전부 돈이나 보석인가?’
길을 잃었다는 의문은 차치하고.
작지만 알짜배기 상품으로 가득한 마차들을 보니 마지막 마차에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마차 주변으로 호위하는 용병들이 훨씬 많았으며, 마차를 끄는 말도 8마리나 되었다.
분명 귀중품을 실은 마차가 확실했다.
“크흠. 길을 잃었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려. 가는 길이 어디시오?”
“신 슈레빌입니다.”
“아하, 그럼 헷갈릴만 하겠군. 여기는 구 슈레빌이오. 간혹 이곳으로 잘못 오는 사람들이 있지.”
“이런, 그랬군요. 이 놈 마부야! 여기가 맞다고 네놈이 주장하지 않았느냐! 네놈 때문에 이 야밤에 모두가 고생이구나!”
“아이구, 나으리. 죄송합니다! 분명 이길로 전에도 왔었는데, 쩝.”
“돌아가면 네놈 월급에서 이 시간만큼 깎을 테니, 그리 알아라!”
“아이구! 아이구!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갑자기 갑과 을의 싸움이 벌어졌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형국이 되었고, 남자는 실소를 흘기며 대놓고 마차를 훔쳐봤다.
물론, 전부 연기였고 마차에 실린 물건은 진짜였다.
연기를 하려면 진짜 금은보화 정돈 있어야 했으니까.
‘혹시 몰라서 채워본 게 효과가 좋네.’
마부와 실랑이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다시 배식이 되고 있었다.
유리는 그 광경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시기에 이 늦은 시간대에 여기서 배식을 하고 있는 겁니까? 구 슈레빌이라면 빈민들이 산다고 들었는데. 구제 활동을 하고 계신 겁니까?”
“부끄럽지만 소박하게 사람들을 돕고 있지요. 늦은 시간에 배식을 하는 건 물자가 좀 늦게 도착해서 이렇게라도 하고 있지.”
“호오! 성품이 남다르십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어디 자랑하기 창피한 수준이오.”
“아닙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있다니. 비록 길을 잃어 우연으로 만났으나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복스러운 어휘를 잔뜩 구사한 그는 옆에 미리 둔 가방을 뒤졌다.
어차피 가방 안에는 별 거 없었다. 그냥 뒤지는 척이었을 뿐.
그리하여 사람 머리보다 큰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이거, 내 작은 성의입니다.”
“예? 이게 무엇…… 헉!”
묻기도 전에 하얀 옷의 남자는 주머니를 열어제꼈다.
안에서 황금빛이 오색찬란하게 빛이 났다. 언뜻 봐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저, 전부 금화!”
“현재로서 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아, 아, 아니, 이만한 돈을 선뜻 내주시다니. 배포가 남다른 사람이군!”
“하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 우리 단체 이름보다 그쪽 상단 이름을 알려주시오. 내가 그리로 사람을 보내놓지! 아, 아니! 내가 직접 찾아가지!”
“저는 타이카 공국 소속…….”
유리는 가짜 신분을 일러주며 꼭 연락해달라는 말까지 남겼다.
처음 들어보는 상단 이름이었으나 돈에 홀려버린 남자는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만한 후원자라니.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신원파악을 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되었다. 그보다는 이런 돈을 주머니 속에 넣고다니는 거상이 더 중요했다.
“저희 상단 직원에게 미리 일러두겠습니다. 찾아오시면 카데스라는 이름을 대십시오.”
“카데스…… 그게 그대의 이름이군! 이름도 참 멋져!”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전 발길이 바빠서 이만.”
“조심히 가시오!”
유리와 가짜 상단원들은 유유히 구 슈레빌을 빠져나갔다.
하얀 옷의 남자는 한 손에 금화 주머니를 들었고, 떠나는 그들을 향해 다른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때까지 하얀 옷의 남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금화 주머니 속에 파리 몇 마리가 끼어 들어갔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