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
제11화
빌은 아까부터 자꾸 느껴지는 유리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죽 웃었다.
뭔가 불안했다.
“빌.”
유리가 그를 불렀다.
부름마저 무시하지 못해서 결국 고개를 그쪽으로 향했다.
“전에 나한테 맞은 거, 기억하겠지?”
일순 제몬과 겔런이 모두 빌을 바라봤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는 듯했다.
사뭇 창피하거나 부끄러울 법한 기억이었으나 빌은 난처한 기색이 없었다.
“‘딱밤’ 말이십니까.”
“딱밤? 빌, 너 딱밤 맞았어?”
슬쩍 놀리는 말투로 겔런이 물었다. 여차하면 비웃을 작정이라서 이미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정작 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심각했다.
“진짜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때는 빗나갔지만, 걱정 마. 이번엔 제대로 할 거니까.”
사실 그 부분이 더 걱정스러웠다.
일전에 빌이 맞은 딱밤은 빗나갔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허나 제대로 맞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 미래를 이미 엿보았던 입장에선 그리 권장하지 않는 벌이었다.
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제몬은 비웃다 못해 폭소를 터뜨렸다.
“딱밤? 딱밤?! 캬하하하하! 열등분자 대가리에서 나온 발상이 겨우 딱밤? 크크크.”
“…….” “하여간, 출신을 숨기지 못하네. 나이트워커 가에 너 같은 놈이 있다니. 가문의 수치야.”
“…….”
“좋아. 기꺼이 맞아주마. 수준 떨어지긴 하지만, 내가 네놈 수준에 맞춰 줘야지. 안 그래?”
제몬은 때려보라며 기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광경을 겔런은 지켜보기만 하고, 빌은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봤자 딱밤이다.
그래봤자 딱밤일 텐데.
자꾸만 지난 기억이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괜한 기우가 될까봐 차마 말리지 못하겠고, 애초에 무슨 벌을 주든 가주가 유리에게 권한을 넘겼으니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었다.
‘괜찮, 겠지.’
빌은 가주가 시킨 거라 납득하며 그들을 지켜봤다.
마침내 유리가 제몬 앞에 섰다. 막 성장기에 접어든 제몬의 키가 유리를 내려다봤다.
덩치로만 봐선 일전에 어떻게 유리가 제몬을 때렸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자. 어디 한 번 때려봐.”
제몬이 친히 허리를 낮춰줬다.
그런데 유리가 주변 기사들에게 명하길.
“잡아 봐.”
“예?”
“팔. 발버둥 못 치게 잡으라고.”
제몬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 기사들은 막상 사지를 붙들라는 명령마저는 따르기를 망설였다.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유리의 명령인데다가, 명령의 대상이 가문에서 영향력이 있는 제몬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빌과 겔런의 눈치에 팔을 잡았다. 제몬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딱밤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제몬은 그리 생각하며 마음 편히 기다렸다.
그래도 턱이 부서진 경험이 있는지라 혹시 몰라서 몰래 마나를 운용해 신체를 강화시켰다.
제 아무리 딱밤에 온힘을 실어봤자 조금 아플 뿐. 그 정도 아픔은 나이트워커 아이들에게 훈련하다 생기는 부상보다 못했다.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쿠득!
유리가 제 손을 깨물어서 피를 냈다. 그 모습에 제몬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야, 너―!”
분명 마차를 막아섰던 날 보았던 기행과 똑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르륵.
손끝에서 방울방울 나오던 핏방울이 점점 줄기로 바뀌었다가 형태를 갖췄다.
이윽고 핏물은 얇고 기다란 검이 되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로 만든 검이라니!
다들 생각의 속도 차가 있어서 그렇지, 결국 마검 티르빙을 알아봤다.
그러나 그 검을 제몬에게 휘두를 거라고 알기까지, 유리가 검을 높게 치켜들 때까지 몰랐다.
제몬이 그나마 가장 먼저 반응했다.
“으, 으아! 이, 이런 미친 새끼가!”
“꽉 잡으라 했을 텐데.”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제몬. 그러나 유리가 한 마디 하자 기사들은 무심코 손아귀를 꽉 쥐었다.
제몬의 발버둥보다 유리의 명령을 우선시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격해지는 동작에도 붙들린 사지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겔런이 뒤늦게 나섰다.
“도련님, 이건―”
“기다려라.”
헌데 유리도 아닌 빌이 겔런을 말렸다. 어째서 말리냐는 식으로 돌아봤다.
“빌, 저건 말려야 돼.”
“기다리라고. 기다려보면…… 안다.”
명확하지 않지만, 겔런은 빌의 진지함에 아직도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열리지 않은 상자 속에서 과연 뭐가 튀어 나올지.
잠시 뒤, 유리가 검을 치켜들었다가 강하게 내리쳤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으아아악!”
휘익! 캉!
중력을 따라 움직이던 티르빙은 말 그대로 추락해서 허공을 갈랐다.
더 이상 누군가의 피가 튀거나 살점을 도륙하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아슬아슬하게 제몬의 앞머리카락을 스쳤을 뿐.
“……아……?”
비명과 발악을 지르던 그는 티르빙이 지나가고 그야 말로 혼이 빠졌다.
방금 대체 뭐였을까.
내려치는 검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고, 시간은 느렸으며, 머릿속은 과거의 기억들을 그림처럼 스쳐갔다.
같은 현상을 제몬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느꼈다.
옆을 잡던 기사와 사방을 막은 기사들까지. 그리고 겔런과 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빌은 두 번째로 겪으면서 ‘이것’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살의!’
일류급 기사나 마법사들은 살기를 내뿜는 방법을 기본적으로 안다.
만약 상대와 살기로 싸움을 벌인다고 가정했을 땐 당연히 작은 살기 쪽이 질 수밖에 없다.
허나 살기로 졌다고 해서 진짜 싸움에서까지 지지는 않는다.
전투의 결말은 만드는 건 살기가 아니라 살의(殺意)다.
기운(氣運)이 아닌, 본인이 가진 죽이고자 진심.
그것이 밖으로 발현되는 경우는 직접 적과 부딪혀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헌데.
유리는 살기가 아니라 살의를 뽐냈다.
반드시 제몬을 죽이겠다는 의지. 그것이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제몬은 한 번 죽은 셈이나 마찬가지.
그의 가랑이가 축축해 젖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 *
그 날 저녁.
겔런과 빌은 간만에 같이 술자리를 가졌다.
빌의 집무실에 모인 두 사람.
겔런은 와인을, 빌은 탄산이 가미된 에일 맥주를 들이켰다.
둘 다 단번에 잔을 비웠고, 겔런이 대화를 열었다.
“괜히 애꿎은 신관만 불렀네. 후흐, 이렇게 고된 하루는 정말 오랜 만인 거 같아.”
“가주님께서 새로이 증축할 건물 예산을 짜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별채에 계속 샤를린느 님을 둘 수 없으니까. 거긴 손님용이잖아.”
바꿔 말하면 더 이상 손님 대접이 아닌,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가주의 명령이 새삼스럽기만 한 두 사람이었다.
겔런이 와인 잔을 다시 채우며 물었다.
“근데 딱밤 맞았다는 건 뭐야?”
“그건…….”
원래라면 창피한 마음에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빌은 그 날 일들을 모조리 털어놨다.
지금은 창피하지 않았으니까.
겔런도 이야기를 듣고 납득했다.
“미친, 빗맞은 딱밤만으로 살의를 방출했다고?”
“그때는 몰랐다가 오늘 보고나서야 확신했다. ……그보다 티르빙은 뭐지?”
“아아~ 그거.”
이번에는 겔런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차례였다.
원래는 티르빙을 비밀로 하려 했으나, 딱히 가주가 숨기라고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유리가 보여줬으니 감출 수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빌은 쉽게 납득했다.
“진짜 티르빙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가주님 말씀으론 유리 님은 그게 뭔지도 몰랐다고 하더라.”
“뭔지도 모르는데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무기인가?”
“티르빙이 유리 님을 주인으로 인정했다면, 가능하지.”
이야기만 놓고 보면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가문으로 들어온 평민 13살 남자애가 알고 보니 티르빙의 주인이었고 살기가 아닌 살의를 내뿜을 줄 알다니.
이런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천재.”
“천재.”
나이트워커 가문 내에선 죄다 괴물들만 태어난다지만, 그들과 비교해도 유리는 분명 떡잎부터 완전히 달랐다.
물론 아직 실력 면에서 더 뛰어난 형제나 가문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지만.
“지켜볼 재미는 있겠어.”
“동감이다.”
“엄청 바빠질 거 같기도 하고.”
“역시 동감이다.”
“후우.”
겔런은 마지막 잔마저 한 번에 비우고 일어섰다.
“잘 마셨어.”
“벌써 가나?”
“말씀 드린 대로 내일부터 바빠질 예정이라서 말입니다~. 신축 건물도 그렇고, 1000만 골드 예산 확보를 해야 해”
“아아.”
그러고 보니 1000만 골드 건이 아직 해결 되지 않았다.
가문의 예산에서 그 정도 돈이야 아무것도 아니겠다만,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다.
봉신 가문들에 가주의 명령서를 보내고 여기에 대해 의논을 하고서 결정해야 한다.
물론 벤헬링턴이 내린 명령이기에 이미 결정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
겔런이 떠나고 혼자 남은 빌도 마지막 잔을 채웠다.
맥주를 찬찬히 들이키면서 아까 들었던 새 건물에 관한 이야기를 돌이켜봤다.
“새 건물이면, 새 사용인도 필요하겠군.”
이미 도난 사건으로 인해 하녀들을 전부 바꿨으나, 빌이 생각하는 사용인은 하녀가 아니었다.
하녀보다 직급이 높은 시녀나 시종이 필요했다.
가령 가정교사가 될 만한 시녀라면 더욱 좋을지도…….
“나도 바빠지겠군.”
술을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빌도 내일을 위해 집무실을 떠났다.
* * *
제몬을 혼쭐 내주고 난 이후로 유리는 그가 방에서 못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시에 제몬의 부모님이 당장 그 길로 벤헬링턴을 찾아가 따졌단다.
뭐라고 따졌는지까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가문 내에서 절도를 저질렀고, 훔친 물건이 꽤나 중요했으니.
이 정도 선에서 끝낸 게 다행인 줄 알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옆에서 들려주던 릴림은 찻물을 내리며 덧붙였다.
“가주님이 즐거워하셨어요.”
“방금은 역정 냈다면서.”
“화 내셨는데, 즐거워하기도 하셨어요.”
[뭐야, 그게. 조증도 아니고.]의아해하는 티르빙처럼, 유리 또한 알다가도 모를 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아버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릴림.”
“네.”
“넌 왜 할아버님을 찾아갔던 거야?”
“에에? 으, 아, 어……?”
참 거짓말 못하는 타입이다.
사실 처음부터 감시역으로 붙여놓은 릴림이었기에, 유리는 그녀를 의식해서 행동하려 했다.
바꿔 말해서 행동을 조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대놓고 실력행사를 보였다.
제몬 같은 경우가 그랬다.
어머니의 물건을 훔친 놈에게 복수하되, 평범치 않은 수를 둘 것.
그리하여 벤헬링턴의 귀에 그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간다면 그의 신뢰를 살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원작대로 실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시는군.’
[나이트워커 대대로 다 그렇지. 블랙 드래곤 아저씨도 강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좋아했어. 그런 존재를 자기편으로 만들길 더 좋아했고.]‘그러니까 더 이해가 안 돼.’
[어째서 가문이 망했는지?]‘응.’
원작에서 주인공이 활약할 시점에 나이트워커 가문에서는 큰 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가주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누구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실치가 않았다.
확실한 건 그 가주가 가문을 말아먹었다는 사실 정도.
아버지 블레이머가 돌아가신 지금, 능력주의 벤헬링턴은 그 다음으로 능력이 좋은 자를 차기 가주로 지목했을 것이다.
헌데도 미래의 가문이 주인공에 의해 망했다.
‘좀 더 정보가 필요해. 원작에는 없는 다른 정보들.’
[예를 들어서?]‘예를 들어 가문 사람들 정보. 누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해서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을 미리 색출하면 되겠지.’
[…….]티르빙도 대답만 안 했지 그 의견에 완전 동의했다.
가문의 멸족에 대비하고, 그 속에 포함된 유리 자신이 주인공으로부터 죽지 않는다.
원래는 이런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문을 구하기 위해서 대비한다는 식으로 들렸다.
뭐,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으리라.
그러니 티르빙은 달라진 뉘앙스에도 구태여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