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2
제112화
입으로 시체를 뜯어먹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물며 티르빙이 말했던 뱀파이어처럼 피를 빨고 있지도 않았다.
얼굴은 오우거, 팔은 세포가 분열과 재생을 반복하며 계속 울룩불룩 나왔다가 들어가길 반복했다.
그런 팔 끝에 송곳니만 달린 촉수가 한 마법사의 안면에 빨판처럼 달라붙어서 피를 빨았다.
피를 비롯한 수분마저 전부 빨린 남자는 사후 경직을 일으키다가 거죽만 남은 채 늘어졌다.
“키메라를 수도 없이 봤지만, 가장 흉측한 몰골이군.”
그락?
아직 신원을 알 수 없는 얼굴이 갸웃거렸다.
공격성이 없는 걸까.
경계의 눈초리는 없다. 관찰과 관심, 그 정도의 시선이었다.
유리는 바로 마검을 들어 빠르게 마나를 끌어모았다.
정체가 뭔지 몰라도 지금이 놈을 죽이기엔 적기였다. 설령 실험당한 빈민이라 해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한 번 이성을 잃고 사람을 먹은 이상 마수의 본능에 완전히 지배당했다는 증거.
그러나 마나가 모이려는 찰나.
그가 말했다.
“경계심이 많군, 침입자.”
남은 피를 모조리 빨아들인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망가진 육체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얼굴도 평범한 노인으로 변했다.
사람으로 변하자 유리는 잠시 검을 내렸다.
“구엘, 마법학회의 부학회장이군.”
“날 아는가, 젊은이?”
“마법학회의 간판을 모르면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아니지.”
마법학회의 대표적인 인물 하면 단연 구엘 리드먼이 꼽혔다.
신문이나 일간지에도 종종 그 이름과 얼굴이 실렸으며, 현재 가장 존경받는 마법사라 하면 누구나 구엘이라 할 것이다.
물론, 유리가 그를 아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설정집에서 그는 이상하리만치 오래 살았다. 이 세계의 인간 평균 수명이 80세 정도인 걸 감안하면, 구엘은 무려 140살까지 살았다.
지금 나이도 대략 120살을 넘었다고 알려졌다.
그저 살다 보면 장수하는 사람도 있겠거니 했지만.
이 상황을 보니 인위적인 장수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네놈이 흑마법과 관련된 모든 일의 주동자였군.”
“흐음?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하는 겐가?”
“터무니없이 긴 수명에 키메라를 이용한 생체 실험, 빈민들의 기이한 행동. 그리고 방금 네놈이 벌인 이상한 행위까지. 더 말할 게 있나?”
“하하, 상상력이 과한 젊은이로구먼.”
“상상력이 과해?”
“비록 방금 전 추태는 차마 못 볼 꼴이긴 하지만, 흑마법이라니. 금지된 마법을 내가 무슨 수로?”
“……부정하는 꼬락서니가 추태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군.”
“증거도 없이 남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한 자가 그리 말하면 섭하지.”
유리는 슬쩍 마검을 늘어뜨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엘에 반해 유리는 모든 걸 알고 있으니, 구엘 입장에선 황당하겠지.
그러나 그런 입장을 배려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로시 밸바스터 리펠리온, 누군지 알지?.”
“……글쎄.”
“시치미 떼봤자 소용없다. 네놈들은 처음부터 그 애를 살릴 마음이 없었어.”
“또 근거 없는 소릴.”
“오는 길에 용인에 관한 연구자료를 봤거든.”
자료들이 널브러진 연구실을 곁눈질로만 지나오면서 특이한 부서 하나를 발견했었다.
바로 용인과 드래곤 하트에 관한 연구부서였다.
흑마법만 연구하는 그들이 용인과 드래곤 하트는 왜?
자세한 내용을 못 보고 지나갔지만, 이젠 확신이 들었다.
“영생에 용인을 이용하려 했겠지.. 리펠리온의 클라우드 하트가 진짜 드래곤 하트라는 가정으로 실험까지 했고.”
“…….”
영생에 관한 추구는 재단이나 학회를 빼고 어딜 가도 있었다.
하물며 금기의 영역을 연구하는 자들이라고 오죽할까.
그러나 이들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넜다.
“감히 용인을 실험체로 삼는 발상을 하고 살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인간인 네가 왜 그리 화를 내는 거지? 영생은 누구나 꿈꾸는 거다. 너라면 이해를…… 잠깐 설마?”
순간 구엘의 입이 멈췄다.
눈앞에 있는 소년은 용인이 아니었다. 인간과 똑같은 동그란 눈동자가 그리 말해줬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 지난날들 일어났던 사건들이 뇌리를 스쳤다.
용가에서 실험 중이던 노엘의 체포. 나이트워커의 채럿을 노리던 더크의 사망.
이때까지는 나이트워커가 꼬리를 밟았다고 여겼다.
이후 언더하울이 망가지고 이단심문국이 무너질 때도 실체가 없었을 뿐. 여전히 나이트워커가 배후에 있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근데.
여기에 인간이 있다고?
“용가에 인간. 네놈, 유리 덴 나이트워커군!”
“머리가 장식은 아니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아니, 그보다 그건 마검?!”
영락없이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마검 티르빙이었다.
‘언더하울과 이단심문국에선 성검이었는데, 여긴 마검? 그럼 이단심문국에서 마검이라고 났던 소문이 진짜였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이트워커에 마검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구엘.
유리는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졌을 온갖 추측성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껏 비웃었다.
“나도 여기서 네놈과 학회가 뭘 더 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늘어졌던 마검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질문 따윈 필요 없겠지. 자세한 사정이야 차차 알아내면 되니까.”
“자, 잠깐! 네 녀석! 고작 로시라는 그 계집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휘익! 푸욱!
유리는 마검이 아닌, 게슐츠의 검을 투창처럼 던졌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구엘의 심장에 칼날이 박히며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죽이진 못했다.
재생 능력으로 인해 칼이 박힌 뒤에도 계속해서 살과 피가 재형성되었다.
유리도 단숨에 숨을 끊지 못할 걸 알았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징글징글한 녀석이네.”
“크윽, 이 새끼가!”
그가 사라진 자리에 촉수 하나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쾅!
역시, 키메라처럼 여러 육체를 조합해서 그런지 속도와 파워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시간 끌지 말자.’
옆으로 피한 유리는 바로 마검을 역수로 잡아 바닥에 꽂았다.
카앙!
티르빙을 중심으로 서서히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아칸 검법 2식인 먹어치우는 그림자가 아녔다. 그와 반대인 검술.
4식.
“심연 뱉기.”
2식과 마찬가지로 검은 그림자가 삽시간에 공간을 뒤덮었다.
그러나 물건들이 가라앉거나 그림자에 먹히진 않았다. 까만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모든 게 까맣게 변했다.
“뭐, 뭐지?”
당황한 구엘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촉수를 거두고 괜스레 뒷걸음질 쳤다.
공간과 물건, 시체마저 까맣게 변하자 보이는 거라곤 오로지 유리뿐이었다.
바닥과 천장, 벽에선 정체 모를 그림자 형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그림자는 부유물처럼 일렁거렸다.
“이게 뭐냐. 이게 뭐냐고!”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에 구엘이 바락바락 소리쳤다.
목소리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그득했다.
그럴 수밖에.
단순히 처음 본 걸 떠나서 어둠만이 깔린 공간, 그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띠는 건 구엘과 유리 밖에 없었다.
유리는 티르빙을 뽑으며 말했다.
“여긴 내 공간이다. 무엇 하나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 여기선 모든 그림자가 내 명령을 따르지.”
“그림자가 명령을 따른다니. 무슨 헛소릴!”
“넌 도망쳤어야 했어.”
“뭐?”
유리도 사람을 상대로 2식과 4식을 써본 건 처음이었다.
2식은 광역 마법이어서.
4식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라서였다.
4식을 방어하거나 피할 방법은 단 하나.
유리를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공간에서 살아나갈 방법은 없었다.
물론, 공간이 형성될 틈도 주지 않으면 되었으나.
구엘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어떤 헛짓을 했는지 몰라도, 난 마법학회의 부학회장이다! 이딴 잔재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분노의 열기를 퍼뜨려라, 플레임 샤워!”
구엘의 마법이 시전 되면서 파도 같은 불길이 유리를 덮쳤다.
그 순간.
푸확!
바닥에서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불길을 막았다.
2식 때 먹어치운 건물 잔해 중 하나였다.
“이게 어찌……?!”
놀라거나 궁금해할 틈 따위 주지 않았다.
유리는 옆으로 크게 돌았다가 도약 한 번으로 구엘과 거리를 좁혔다.
놈의 등 뒤에서 촉수가 나와 안면으로 사정없이 돌진해왔다. 이번엔 머리 위 그림자에서 철창 잔해의 그림자가 튀어나와서 촉수를 찔렀다.
뒤이어 다른 촉수를 만들어서 공격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푸부부북!
“크악!”
촉수도 고통을 느끼는 건지 구엘이 고통스러워했다.
마지막 촉수는 티르빙으로 직접 세로로 갈랐다. 좌우로 촉수가 갈라지자 그 뒤로 얼음 덩어리 여러 개가 다음 공격을 재차 준비했다.
“부서져도 부수리라, 프로즌 커터!”
얼음덩어리들이 쏘아지고, 그것들은 정확히 유리를 향해 날아가지 않았다.
몇몇 개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다가 목표물에 닿기도 전에 폭발했다.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에서 유리를 노렸다.
그림자의 특성을 대략 파악한 무차별적 공격.
그러나 대략은 대략일 뿐이었다.
쿠구구구!
유리는 아예 발밑에 잔해를 튀어 오르게 해서 자신의 위치를 높게 만들었다.
아예 사정권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이!”
급하게 파이어볼이나 아이스 볼트 같은 마법을 준비해보지만, 그딴 마법은 더 이상 유리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투둑, 가볍게 검으로 쳐내는 동작만으로 구엘에게 파고들었다.
동시에 다른 마법과 촉수가 일시에 유리를 노렸다. 이대로 공격하면 구엘 본인도 피해를 받게 됐지만, 그걸 감안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림자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뱉고 배치하는 곳이 아니었으니.
구엘은 마지막 순간 유리의 뺨이 묘하게 금이 간 걸 발견했다.
갈라진 껍질 속엔 다른 그림자가 숨어있었다.
파삭!
촉수 하나가 유리로 보이는 형체를 꿰뚫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엘의 복부에 구멍이 나고 피가 솟구쳤다.
“아?”
이윽고 모든 마법과 촉수가 공격을 퍼부어졌다. 가짜 유리는 속수무책으로 맞았고, 진짜 구엘은 방어조차 못 했다.
그제야 그는 가짜 유리의 정체를 알아봤다.
‘내 그림자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격과 술법 따위라 할지라도 마법학회의 부학회장인 그였다.
이건 그림자였고, 구엘은 유리의 껍데기를 쓴 자신의 그림자를 공격한 것이었다.
‘생명! 수명만 쓰면 이딴 공격쯤은……!’
푸욱!
수명을 소모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으나, 지금은 그딴 걸 따질 때가 아녔다.
구엘은 남은 생명력을 모두 털어놓아서 몸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마지막 공격이 뒤에서부터 가슴팍을 뚫고 나오면서 무산이 되었다.
푸욱!
가슴 앞으로 나온 검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마……검?”
“먹어.”
꾸르르르륵!
얼마 남지 않은 피와 생명력이 전부 티르빙에게 빨려들었다. 구엘 나름대로 반항을 해보았지만, 티르빙이 가진 탐식을 이길 순 없었다.
“아, 안 돼! 내 영생! 내 삶! 내, 내내, 내 수명! 끄아아아악!”
비명과 경련이 절정이 달하다가 한순간이 되어서 멎었다.
이윽고 구엘은 미라처럼 마르면서 축 늘어졌다.
완전히 죽은 걸 확인한 유리도 마검을 뽑고 그림자를 거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