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유리는 마검과 그림자 공간을 한 번에 거두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온몸이 땀으로 흠씬 젖었다. 탈진하기 직전이라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말랐다.
유리는 뒤늦게 티르빙이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4식을 이래서 쓰지 말라고 했었던 거였어?”
[아칸 검법은 어둠과 그림자를 숭상하는 다크 엘프의 검술이야. 네가 드래곤 하트를 지녔다고 해도, 그 근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2식과 4식은 반발력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딱히 몸이 상하거나 다친 곳은 없었다.
문제는 발동자의 조건이 엘프와 완전히 달랐다.
신체적 구조부터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라든가 검술에 대한 이해도 등등.
당연히 검법의 주인인 다크엘프에 비해 유리에겐 한계가 명확했다.
특히 4식은 그림자를 완전히 지배해서 그림자의 주인까지 일부 조종하는 기술.
유리는 구엘의 그림자를 훔쳐 자기 자신의 껍질에 숨겼었다.
이는 유리의 껍질과 그림자부터 분리해야 했기에 훨씬 정교한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거기다 구엘의 그림자까지 끌어와서 숨겨야 했으니.
“아직도 껍질과 그림자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 못 하겠어.”
[이해도 못 하고 썼단 말이야?]“이해해서 썼다기보다 그냥 받아들였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런 느낌?”
[넌 진짜 대단한 걸 아무렇지 않게 본다니까.]“그런가?”
뭐, 아무튼 구엘을 죽였으니 되었다.
아무래도 마법학회의 부회장인 데다가 키메라까지 융합해서 싸움의 결말이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물론, 마검과 아칸 검법의 조합이 그를 이기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약했어. 나이 때문은 아닐 테고.’
생명력을 흡수하는 마법.
원작에서 종종 흡혈이나 식인 행위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었다.
흡혈귀라 불리는 뱀파이어가 그런 족속이니 신빙성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엔 완성도가 높은 마법이 되어서 비싼 가격에 술식이 사고 팔렸다.
‘카이가 말한 영생의 저주 때문이었나.’
그렇게 성행하던 영생 술식은 결국 얼마 가지 못해서 사라지고 만다.
카이가 전부 없애버렸으니까.
구엘이 그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아마 150살까지 살았을 그는 140살에 카이에 의해 죽고 만다.
그를 죽였던 이유는 간단했다.
영생은 삶만 길어질 뿐.
더 강해진다거나 위대해질 수 없다.
그럼에도 영생을 누리다가 남의 것을 탐하고 생명력을 빼앗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다.
카이는 그런 이유를 들며 영생을 추구하는 자들이 악마와 똑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였다.
‘혹시 카이 그 녀석. 이거 때문에 메데스 재단과 만난다고 했던 건가?’
원작에서 메데스 재단과 영생, 흑마법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엮였었나.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가거든 카이한테 물으면 되겠지.”
유리는 구엘의 시체를 그대로 놔둔 채 돌아섰다.
나오는 길에는 챙길만한 자료들을 몽땅 챙겼다.
모자란 손은 실험체로 갇혀 있던 동물들에게, 그 사이 반과 독수리 무리는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밖으로 빼냈다.
남아있던 세계구원기금 관련자들과 마법사는 도망쳤으나 상관없었다.
곧 거대한 소동을 듣고 신 슈레빌에서 군대가 몰려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짓말로 자신들은 이 소동과 무관하다고 해도 그 또한 상관없었다.
하루 만에 구 슈레빌 아래서 흑마법 연구가 진행됐다는 정황이 대륙 곳곳에 까발려졌다.
* * *
연회 4일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 유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4일째 연회에선 유리보다 슈레빌을 포함한 타이카 공국 사람들에게 이목이 끌렸다.
“구 슈레빌에서 흑마법 연구 흔적이 발견되었다면서?”
“허허! 국제법으로 겨우 금지해놨더니 대체 누가?”
“마법학회에서 그랬다더군.”
“마법학회는 메데스 왕국 아닌가! 그럼 메데스 재단과 왕실이 주도한…… 허어!”
“리펠리온이 그랬을 수도―”
“어허! 이 사람! 입 조심하게! 여기 누가 있는 줄 알고!”
마법학회 주도로 연구가 진행됐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졌다.
그러나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서 마법학회와 연결된 모든 집단이 순식간에 같은 범죄자로 몰렸다.
덕분에 메데스 왕실에서는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고, 리펠리온에서는 아직 아무런 성명 발표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연회 사람들의 이목이 해링에게 쏠렸다.
‘해링이 나와서 해명해주면 좋겠지만, 당장은 무리겠지.’
로시를 데려온 뒤로 해링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드힐노어가 로시를 치료하느라 봐주고 있었고, 해링은 그런 로시 곁을 지켰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 큰 소동을 벌인 걸까요?”
여성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의문을 표했다.
흑마법과 관련된 엄청난 사태가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도 정작 일 처리를 했다는 이가 없었다.
“교국에서 오늘 아침 뭐라고 하지 않았었나요?”
“교제 성하께서 이단심문국이 키메라 실험을 했다고 밝히시면서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교국에서 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그럼 이 일을 세상에 알린 의로운 그 사람은 조용한 거죠?”
“뭐, 부끄러운가 보죠.”
꺄르르, 꺄르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시시콜콜한 농담에 금세 웃음이 터졌다.
구석에 앉아서 오렌지 주스를 들이키던 유리는 피곤함에 눈두덩을 주물렀다.
“릴림, 나 한 잔만 더.”
“차라리 술 드셔요.”
“나 미성년자야.”
“미성년, 상관없어요.”
“그거야 여기…… 아니다. 어쨌든 오렌지 주스.”
아무래도 중세를 기반으로 만든 세계관이라 미성년자에게 관대한 관습이 더러 있다.
술이라든가 담배, 결혼도 이르면 10살에 하기도 한다.
물론, 유리는 그 중 무엇도 하지 않았고, 할 마음이 없었다.
“피곤해…….”
철인 같은 체력을 단련했어도 하룻밤만에 메데스를 넘어 타이카까지 가서 세계구원기금을 몰살하고 오기는 부담스러웠다.
그 뿐이랴.
유리는 세계구원기금에서 빼낸 정보를 들고 엘카에게 향했다.
교국에 몰래 다시 잠입해야 하는 수고까지 해가면서 그녀를 만나 정보들을 전부 넘겼다.
“밀리샤가 잘해주고 있어서 다행이네.”
“교국에 정말 다 넘기셨어요? 증거?”
“어.”
“왜요? 도련님, 공적이 없어지잖아요.”
“귀찮아서.”
혼자서 감당 못 할 사안은 아니지만, 당장 조사를 해야 할 주체는 교국이 적당했다.
이단심문국 건도 있고, 그것과 연계해서 사안을 부풀리고 터뜨리면 충격은 더 커질 것이다.
거기서 유리 본인의 이름을 뺀 건, 그런 여파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내 이름을 정직하게 알리긴 곤란해.”
“그으, 피로 된, 검 때문에요?”
“흑마법과 키메라, 마검, 연결 짓기 좋잖아. 잘못하면 나까지 범인으로 몰려. 보다시피 사람들 입에서 꼬리를 마음대로 매듭지어서 과장하고 있잖아.”
“그치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라고 실속 없이 봉사만 한 거 아냐.”
나쁜 놈들 한 번 죽이자고 지금껏 흑마법사한테 매달린 게 아니다.
권위를 잃은 엘카와 그녀의 딸 밀리샤를 위해선 더더욱 아니고.
로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부수적인 마음의 위안에 불과하다.
“그런데 말이야, 교국에선 성검의 주인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예에? 그게 진짜입니까?”
이번엔 또 다른 무리에서 이야기보따리가 터졌다.
중심에 선 남자 주변으로 남녀 가리지 않고 모여들었다. 남자는 흥미진진한 표정과 억양으로 풍문을 전했다.
“내 교국에 친우가 있어서 들은 이야기라네. 성력을 쓴 누군가가 이단심문국을 휩쓸고 갔다고.”
“성검의 주인이라면서 성력을 썼다는 건 뭡니까?”
“글쎄, 그 친구가 말을 좀 이상하게 하더군. 뭐라더라. 검이 생긴 게 마치 티르빙처럼 생겼는데 성력을 쓰는 성기사 검술을 썼다고.”
“말도 안 됩니다. 잘못 봤겠지요!”
“어허, 이 사람! 진짜라니까! 이단심문국에서 일하는 요원에게 들은 이야기라네!”
아무래도 소문이 빠르게 퍼지려나 하나 보네.
이단심문국에서의 소문은 굳이 막지 않았다. 막을 필요도 없었다.
일부러 마검으로 성력을 쓰는 모습을 보여줬던 거라서 언젠가 이런 소문이 퍼지길 바랐었다.
예상보다 빠른 소문에 유리는 피곤함마저 잠시 잊었다.
‘그보다 리펠리온이 너무 조용하네.’
해링이야 그렇다 쳐도.
분주한 메데스 왕실과 달리 리펠리온 가(家)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이쯤에서 생색이라도 내야 하나.
그렇다고 나이트워커가 직접 개입한 적도 없는 마당에 막상 따지려니 애매하고.
“유리 도련님.”
앉아서 좀 쉬려는 찰나.
빌이 불쑥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할아버지께서 오셨다고?”
하지만 오늘은 어디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거늘.
“……가자.”
피곤함을 잊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빌이 앞장서서 유리와 릴림을 안내했다.
가주가 왔다는데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빌은 연회장을 나가 정원을 가로질러 다른 별관으로 그를 안내했다.
연회 동안 쓰지 않아서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별실이 열려있고, 통유리로 비친 안쪽은 청소한 듯 깔끔하고 불까지 환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빌의 안내는 여기까지였다.
비장하다 못해 긴장한 그를 보니 유리도 조금은 더 무거운 손길로 문을 밀었다.
그러나 발을 딛자 바로 멈추고 말았다.
‘이게 뭔…….’
별채 로비 가운데를 기점으로 오른쪽엔 벤헬링턴과 검은 갑주의 기사들이.
반대편엔 아이보리색의 의복을 걸친 노인과 같은 색의 갑주로 무장한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한치의 미동도 없었다. 갑주가 흔들리는 소리는커녕, 호흡조차 무뎠다.
끼어들었다간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 이를 먼저 깬 쪽은 유리를 본 벤헬링턴이었다.
그는 무섭게 지었던 표정을 풀고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유리야! 이리 와라! 얼른! 할 얘기가 무척 많다!”
“……예…….”
당최 남들 앞에서 잘 웃지도 않으시는 분이 웃으니 없던 불안감까지 솟았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아서 여기까지 올 때보단 한 시름 놓았다.
유리가 가까이 가니 벤헬링턴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기 옆에 그를 앉혔다.
“날 두 번이나 이곳에 오게 만들다니! 크하하핫! 정말이지 네놈은 여러 번 날 놀라게 하는구나!”
“무슨 일인가요? 저분은 누구신데 자기 기사를 나이트워커에 끌고 들어와서 차까지 마시고 있는 거죠?”
“넌 누구인 거 같으냐?”
“건방진 자의 정체를 제가 알아야 하나요?”
“크하하하하! 그래그래! 넌 몰라도 되지! 알아봤자 하찮은 노친네를 뭐하러 알겠다고!”
“이보시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이보리 기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보니까 노인의 머리카락 사이에 귀가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리펠리온의 직계라도 되나 봅니다.”
“이, 이 녀석이 끝까지!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아직도 기사가 대신해서 소리쳤다.
유리는 고개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였다.
“모른다니까. 알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그대는 내가 누군 줄 알고 언성을 높이는 거지?”
“그야―”
“그만!”
노인이 거칠게 찻잔을 내렸다. 찻물이 흘러넘쳐서 바닥을 적셨다.
그는 헛기침 몇 번을 하곤 유리를 쏘아봤다.
“난 리펠리온의 가주 샤르트앙 밸바스터 리펠리온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