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5
제115화
연회는 얼추 마무리되어갔다.
마지막으로 마법학회의 학회장이 죽은 채로 발견되어서 이 또한 엄청난 가십거리로 회자 되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분위기 선에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특히나 이번 연회에서 유리보다 더 많이 회자된 건 그녀의 어머니인 샤를린느였다.
아침부터 릴림은 집무실로 편지 한 아름을 들고 왔다.
전부 수취인은 유리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바로 샤를린느를 향한 것이었다.
“이거, 태울까요?”
“태워. 모조리.”
내용은 여러 가지지만 이 역시 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샤를린느를 만나고 싶다거나, 자리를 마련해달라거나, 어떤 이는 대놓고 청혼까지 하는 심보를 보였다.
“어째 연회 전보다 편지가 더 많은 거 같아.”
“도련님.”
“왜?”
“팔불출.”
“……어머니께 직접 보낸 편지는 안 태우고 있잖아.”
양심이 있는지라 어머니께 직접 보낸 편지들은 바로바로 샤를린느에게 전달했다.
차라리 그런 편지가 나았다.
치사하게 나한테 돌려서 편지를 보내는 놈들보단 백 배, 아니 천 배, 만 배 더 낫지!
[꼬맹이.]‘왜.’
[팔불출.]‘너까지 이럴 거야?’
[자기가 봐도 한심하진 않고?]“난 그냥……!”
뜬금없는 외침에 벽난로에서 편지들을 넣던 릴림이 멈칫거렸다.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던 유리는 힘을 빼고 털썩 앉았다.
“어머니가 잘되면 나야 좋지. 그런데 실감이 잘 안나.”
“아버지가 생기는 거요?”
“아버지든, 어머니의 반려자로든. 뭐든 다.”
사실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만 해도 이들은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용가의 여자이지 않은가.
직계가 아니라서 프러포즈하기엔 덜 부담스러웠을지라도, 용가 입장에선 무례한 건 무례한 거였다.
“어머니가 잘하시겠지.”
“그럼요. 샤를린느 님은 도련님보다 어른이시니까요.”
“릴림, 그만.”
“팔불출.”
“…….”
유리는 애써 무시하며 다른 보고서를 집었다.
리펠리온에서 보내온 공문과 최근 뉴스가 같이 스크랩된 보고서였다.
며칠 전, 약조대로 리펠리온에선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 표명이 나왔다.
여론은 재단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리펠리온을 비난했고, 리펠리온은 간단한 해명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더 떠들어봤자 믿을 사람은 없었다.
설령 로시가 얽힌 짠한 사연도 그야말로 사연 팔이 밖에 안 되리라.
그래서 이 타이밍에 나이트워커의 이름으로 성명이 발표됐다.
리펠리온 가(家)에서 도움을 청한바.
그들이 곤혹과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고 우리 밤의 가문은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트워커의 성명문은 단숨에 여론을 뒤집었다.
용가가 다른 용가에 도움을 청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는 동정표가 있었으며, 다른 쪽에선 나이트워커가 개입해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거란 기대감이 일어났다.
교국도 이 사안에서 나이트워커를 지지하고 나섰으니.
“조사에 대한 전권은 블레이크한테 넘겨야겠어.”
“도련님이 직접 안 하시고요?”
“학회장이 죽어버렸잖아.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
구엘은 부학회장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학회의 회장이라는 자가 몰랐을까?
합리적인 추론을 해보건대 학회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알고는 있었겠지.
그러나 그런 학회장이 이름 없는 항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목이 깨끗이 잘린 채.
“카이…….”
그 녀석이 확실했다.
왠지 모를 예감이 그리 말해준다.
카이는 환생 이전에 변절자들을 죽일 때가 많았다. 보통 그냥 놔두긴 하지만,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죽였다.
마법학회장이란 사람도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어도 상관없지. 골칫거리 하나가 알아서 없어져 준 격이니까.’
학회장의 진술이 없는 건 아쉬웠어도, 이미 증거나 증언은 차고 넘쳤다.
이미 메데스 왕실은 재단의 전권을 다시 틀어쥐고 재단을 해체해서 새 인사 발탁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세간에는 흥미로운 이름 하나가 퍼졌다.
릴림은 편지 사이에 끼어있던 일간 신문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 카데스가 누구예요?”
“엉? 누구?”
“카데스요. 여기 1면에 나왔는데요.”
그녀가 신문지 1면을 유리 쪽으로 돌렸다.
대문짝만하게 타이틀로 “카데스! 그는 누구인가!”라고 적혀있다.
유리는 몸을 살짝 일으켜서 봤다가 다시 기댔다.
“슈레빌에 들어갈 때 썼던 가명. 그게 신문사까지 들어간 거야?”
“그런가 봐요.”
안 그래도 연회 막바지에 카데스라는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갔다.
아무래도 입단속을 시켰던 마부나 용병 중 누군가가 발설한 듯했다.
“가명 활동이라면 마검을 대놓고 들고 다녀도 되겠어.”
“왜요?”
“이름쯤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버릴 수 있으니까.”
딱히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왕 가명이 알려진 김에 더 이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물론, 한 번 이미지가 만들어진 이름을 쉽게 버릴 생각은 없다.
잘 다듬어서 써먹어야지.
“좋아, 이건 얼추 마무리됐고. ……이걸 어쩐담.”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서랍에서 자그마한 보석 하나를 꺼냈다.
조약돌처럼 매끈하면서 속이 비치는 투명한 보석.
일전에 마리가 주었던 ‘드래곤의 알’이었다.
그리고 슈레빌에서 가지고 나온 자료를 중에서 ‘드래곤의 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알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마리와 채럿은 진짜 드래곤이 아닐 수 있다고 했지만, 연구원들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문제는 드래곤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선 헬파이어보다 더 큰 열이 필요하다는 거지?”
연구원들도 이것이 진짜 드래곤의 알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고열을 가했을 때 부화했을 때처럼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도 헬파이어보다 더 강한 열기를 가했을 때란다.
“열, 열…….”
헬파이어보다 더 강한 열이라.
당장 떠오르는 마법이나 비슷한 아티팩트, 혹은 용암 같은 지형이 없었다.
애초에 헬파이어보다 더 강한 열기가 있나?
이자벨의 백염(白炎)은 헬파이어와 온도가 비슷했다.
그보다 높은 온도를 가진 열을 굳이 꼽자면 솔리드녹스의 청염(靑炎)이 있긴 한데.
‘제외. 청염 이상의 불꽃을 만드는 마법사는 빅스터밖에 없잖아. 그놈한테 부탁하는 건 사양이야.’
아직도 빅스터가 나타났을 때를 떠올리면 오금이 저렸다.
협조를 구한다고 해서 구해질 놈도 아니고.
우다다다!
한참 알을 어찌 부화할지 고민하던 그때, 문을 열고 조그만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꺄하핫! 거기 서어!”
“나 잡아 봐라!”
채럿이 먼저 뛰어 들어오고 로시가 그 뒤를 쫓았다.
둘은 방을 빙글빙글 돌면서 술래잡기를 이어갔다.
유리는 그런 둘을 말리지 않고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릴림만이 조심하라며 가볍게 주의를 주었다.
사건 조사 차원에서 돌아간 해링과 달리 로시는 이곳에 남았다.
드힐노어의 치료 때문이기도 했고, 어수선한 리펠리온이나 메데스로 돌아가봤자 회복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해링의 의견 때문이었다.
덕분에 드힐노어도 왕실로 못 돌아갔다.
물론, 엘라트리오가 드힐노어한테 남아서 잠시 쉬면서 그녀를 치료하라고 해놨다.
“어! 릴림! 불장난한다!”
“불장난!”
채럿이 손가락질하자 로시도 따라서 손가락질했다.
그리곤 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그 알 아직도 가지고 계셨어요?”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라서.”
부화가 안 될지언정, 보석처럼 들고 다녀도 예뻤다. 한때는 목걸이로 하고 다닐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유리는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알을 올려놓고 중심 잡기를 했다.
“그리고 이 알을 부화하는 방법이 있다나 봐.”
“진짜요?”
“응, 엄청난 열기가 있다면 된다는데. 헬파이어보다 강한 불이 있을까.”
“으음. 으으음~. 으으으으음!”
“없지?”
“네에…….”
혹시 다른 연구 자료에서 열기를 만들어낸 아티팩트라도 있을까 서류를 뒤지려는 찰나.
로시가 조심스레 걸어와서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이걸 달라고?”
“네!”
전보다 경계심이 없어진 소녀는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뭐, 잠깐 주는 거라면 괜찮겠지. 그런 마음으로 조막만 한 손 위에 알을 올렸다.
유리한테는 액세서리 크기인 알이 로시에겐 주먹으로 간신히 쥘 정도로 컸다.
이리저리 양손으로 굴리던 로시는 불현듯 물었다.
“제가 품어도 돼요?”
“어?”
“제가 품을래요!”
허락하지도 않고 로시는 제 품속에 드래곤의 알을 끌어안았다.
계란을 품는다고 병아리가 꼭 태어나리라는 법은 없다지만.
그 광경을 본 모두가 같은 발상을 했다.
그래, 알이라면 품어야지!
* * *
마수의 알인지, 드래곤의 알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알을 들고 유리는 까만 나무 숲을 찾았다.
노엘이 드워프로 위장하며 지냈던 터는 건물만 남긴 채 아무것도 없었다.
같이 온 채럿과 로시, 릴림은 숲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섰다.
“오라버니, 이거 진짜 괜찮을까요?”
“해보고 싶지 않아?”
“진짜 드래곤의 알이면 어쩌시려고요.”
“진짜 드래곤! 로시 궁금해!”
그렇다는데.
유리가 그리 묻듯 쳐다보자 릴림은 외면했고, 채럿은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드래곤인지 아닌지 궁금한 건 둘째치고.
마리가 그냥 이 알을 줬을 리가.
“할머님께서 이거 주실 때 채럿, 네 얘기하시더라.”
“제 얘길요? 뭐라고요?”
“네 능력,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진짜요?!”
“응.”당시엔 알을 부화하지 못한다고 치부해서 어찌해보려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슈레빌 아래서 마수를 연구하던 그들이 유의미한 연구를 만들었다. 로시는 품어서 부화하면 된다는 힌트를 줬고.
“아마 내가 아니라 널 위한 선물일 수도 있어.”
“에, 에이. 마리 할머니는 저 싫어하시는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매번 절 보면 혼내기만 하시니까요.”
“…….”
마리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평소에 소심해서 기죽은 채럿을 보고 쓴소리만 잔뜩 했으리라.
그나마 최근에는 활발해져서 아무런 말도 안 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채럿에겐 아픈 감정으로 남았나 보다.
“아무튼,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해봐야지.”
“우으, 전 모르겠어요.”
“실버윙 때문에?”
“네.”
3급 마수종 실버윙.
와이번의 일종으로 녀석들은 다른 와이번과 달리 평야나 숲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했다.
그런 실버윙이 번식을 할 때면 항상 알을 들고 어디론가 여정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 ‘어딘가’를 실버윙만 알고 녀석들만 갈 수 있는 ‘화산 둥지’라 불렀다.
채럿과 같이 온 건 그 실버윙을 불러서 드래곤의 알을 화산 둥지에 놓기 위해서였다.
정작 그녀는 질색한 얼굴로 신음소리를 냈다.
“실버윙을 부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제 말을 따르지 않아요. 여기 사는 애는 너무 고집이 세서요.”
“뭐야. 전에 본 적 있어?”
“얼마 전에 반이랑 싸운 적 있어요. 예전에도 싸웠었고요. 그때마다 말리기가 너무 힘들었다고요.”
“그렇지만 화산 둥지가 어디인지 알려면 그놈 말곤 없어.”
아니, 유리는 그 둥지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저 가지 못해서 그럴 뿐.
왜냐하면 그 둥지는 솔리드녹스의 화산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