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8
제118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실버윙은 화산 둥지로 돌아와서 알을 낳았고, 대륙의 모든 실버윙이 이 땅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수종 실버윙은 이 화산 둥지에 머물며 이 땅을 지켰다.
그 날도 신수종 실버윙은 찾아오는 실버윙들을 반겨주었다.
키에엑!
그때 일련의 인간 무리가 나타났다.
“대체 여긴 뭐야?”
“그러게. 마수가 널리고 널렸군. 저건 심지어 신수종이잖아?”
“허어, 여기 중요한 거라도 지키고 있나?”
“처리할까?”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어.”
“신수종은 위험하지만, 저것만 죽여다 팔아도 돈이 돼.”
“그래, 해보자.”
겁도 없이 들어온 인간들은 마수가 떼로 공격 자세를 취하는데도 당당히 화산 지대에 들어섰다.
실버윙 몇 마리가 위협을 느끼고 덤볐다.
그러나 고작 마법사 몇 명에 의해 제지되었다.
“하찮은 미물 새끼가.”
퍼버버벙!
인간들은 닥치는 대로 실버윙을 죽였다.
이래 봬도 3급 마수종이었거늘, 마법사 몇 명만으로 일대의 실버윙들이 쉽게 쓸려나갔다.
신수종 실버윙도 싸웠으나 끝끝내 생포되고 말았다.
이윽고 그들은 다양한 크기의 화산에 던져진 알들을 발견했다.
“여기가 말로만 전해 듣던 화산 둥지였군.”
“시시해. 이딴 걸 확인하려고 마나를 낭비한 게 아니다.”
“어, 저거 봐라!”
일행 중 한 명이 굳은 화산층을 발견했다. 수(水)계 마법을 쓰면서 식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흑수정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흑수정이다!”
“여기, 흑수정 광산이었어!”
“하핫! 대박이군! 여기가 전부 흑수정 광산일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얼른 단주님을 모셔와라.”
“하지만 여긴 용가의 관할인데. 이걸 막 캐도 될까?”
“단주님이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이런 걸 보고 그냥 놓칠 순 없어!”
곧 인간 무리가 나뉘었고, 떨어진 무리가 더 큰 무리를 이끌고 왔다.
상단주라 불리는 남자는 튼실한 뱃살을 흔들며 외쳤다.
“오오! 정말로 흑수정 광산이라니! 대체 얼마나 묻혀 있는 거지?”
“확인한 바로는 용암 지대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여기 전부?”
“예,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쩌긴 뭘 어째! 너, 광부 길드에게 손 닿는 대로 전부 연락을 돌려라. 비용은 후하게 쳐주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부르는 대로 다 임금을 줬다간 남는 게 없을 텐데요.”
“이놈아! 광부들 몸값이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얼른 가라. 솔리드녹스는 내가 잘 구슬려 볼 테니까, 얼른!”
“예, 마우리 님!”
*
마우리.
그 이름을 듣자마자 유리와 카이 모두 놀랐다.
진짜 본명은 마우리 칭, 돈이 되면 뭐든 사고판다고 해서 사람들 사이에선 미친 상인이라 불렸다.
악질 상단의 단주이지만, 워낙 벌여놓은 사업이 많아서 과거 많은 권력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때는 용가보다 재력이 많았다고도 한다.
그런데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마우리 칭이 살아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원작에선 과거에 카이가 죽였던 인물이 어떻게?’
원작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마우리 칭은 전형적인 악당이었다.
가난한 자를 수탈하기 일쑤요, 돈 많은 자를 교묘하게 꼬드겨서 속옷까지 털어먹었다.
어지간히 해 처먹은 탓에 결국 카이가 죽였었다.
그런데 그 자가 어째서 여태 살아있을까.
심지어 이 땅에 광산 사업을 버젓이 벌이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솔리드녹스를 구슬린 듯했다.
‘카이, 이 녀석. 진짜로 마우리를 죽이긴 한 걸까.’무소불위의 권력은 돈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마우리 칭이 오랜 시간 미친 상인으로 불리게 된 것도 돈으로 수많은 권력가를 로비하고, 나중엔 로비를 협박 빌미로 삼은 덕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리는 ‘혹시 솔리드녹스도?’라는 발상에 다다랐다.
솔리드녹스가 마우리의 뒤를 오랫동안 봐줬다면 차마 죽이지 못했을 수 있다.
아니면 죽었다가 살아났을 가능성도 있고.
‘우선은 카이한테 내색하진 말아야겠어. 저 녀석, 진짜 살아있다고 믿었다간…….’
“그 놈, 지금 어디 있지?”
결심하기 전에 카이가 먼저 물었다.
성급하긴.
채럿은 실버윙에게 묻고 바로 해석해줬다.
“솔리드녹스의 본가 외곽에 가는 것까지만 봤대요.”
순간 카이의 내면에서 그곳으로 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유리에게도 그 감정이 선하게 보였다.
그러나 카이는 가지 않았다.
대신 눈을 깊이 내리깔고 입을 열었다.
“전생에 내가 그 놈을 죽인 적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전생 이야기를 한다고?
당황스러웠으나 귀를 먼저 기울였다. 전생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멸망 때문에?”
“사람 때문에.”
“네가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였다고?”
“그렇다.”
상상이 잘 안 간다.
베아트리체나 엘카를 돌이켜보면 은근히 감성적인 건 알겠다. 하지만 생명 경시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녀석의 살인 고백은 당혹스러웠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네 녀석은 나보다 많은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 하지만 살다 보면 악마보다 더한 족속이 있다.”
“마우리 칭이 그런 족속이라는 거냐?”
“그 놈은 과거 사람 장사를 했었다. 그것도 사이비종교의 제물로 팔았지. 실제로 제물이 아니라 몸을 유린당할 걸 알면서도. 너 같으면 그런 놈을 내버려 둘 수 있나?”
당연히 가만둘 수 없다.
그런 악당을 보고 무작정 지나치기엔 유리는 인간다웠다. 용인보다도 더.
물론, 용인이 그런 몹쓸 현장을 보고 그냥 지나치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저,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카이가 한다는 게 어색했다.
하지만 카이는 인간이었다.
용인이 아닌, 유리와 같은 인간.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는 이유는?”
“나보고 채럿, 아가씨를 지키라고 명령했지.”
이 자식, 중간에 아가씨를 부르는 게 영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억지로 아가씨라 칭했다.
“한 가지 약속해라. 이번 임무, 명령 이상으로 널 돕겠다. 나도 네 비위에 맞춰주지.”
“갑작스러운 호의는 의심부터 하라고 배웠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 놈을 죽여야 하니까.”
전에 없게 놈의 태도에서 적극성이 물씬 풍겼다.
정확한 과거를 알 순 없으나, 이런 자세는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환영이었다.
“명령하기 전엔 함부로 움직이지 마. 세워놓은 계획이 있으니까.”
“귀찮은 과정인 건가?”
“귀찮아. 하지만 그 마우리라는 놈을 확실히 처리할 수 있어.”
“협조하지.”
끝까지 명령을 따르겠다고 안 한다.
그래도 유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채럿, 인근에 마을이 있냐고 물어봐 줘.”
“아까 이미 있다고 말했어요. 광부들이나 마법사들이 그곳에서 온다나 봐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화산 둥지 근처에 아무런 마을이 없었다.
그러나 상단이 화산을 독점하면서 광부들이 몰리자 자연스레 촌락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몇 달 만에 마을 형태로까지 발전해서 광부들이 주로 그곳에서 머물렀다.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고 내일 시작하자.”
“어, 음. 저기 쓰러진 마법사분들은요?”
“대충 치료해놓고 떠나면 되겠지. 신수종한테는 다시 묶여 있어야 한다고 전해줘.”
“에? 하, 하지만 이제 겨우 풀려났는걸요.”
“마법사가 쓰러져 있고 신수종이 풀려났다간 침입자가 있다는 게 티가 나게 돼. 아쉽지만 오늘만 참아달라고 해봐.”
“으으, 설득될지 모르겠지만 말해볼게요.”
곤란해하던 채럿이 신수종 실버윙의 뺨을 쓰다듬으며 중얼댔다.
혹여 반항하거나 거부할 줄 알았으나.
녀석은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리곤 물속으로 알아서 들어갔다.
마치 사람처럼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듯했다.
* * *
마을은 의외로 컸다.
임시로 지은 막사에 광부들이 몰려 지냈고, 주변으론 작은 건물이 세워졌다.
건물은 음식점이나 여관, 주점 따위가 주를 이뤘다.
그 중 한 여관에서 머물던 유리는 먼저 일찍 1층으로 내려왔다.
직원이 책상에 올라간 의자를 내리고, 주인은 바 테이블 뒤에서 오늘 쓸 그릇을 닦았다.
주인은 내려온 유리를 보고 시시한 인사를 건넸다.
“빨리 일어났구려. 잠자리가 불편했소?”
“아닙니다. 원래 아침잠이 없어서요.”
“젊은 사람이 늙은이 같은 소릴.”
늙은이가 맞긴 하지. 전생까지 포함해서 40대를 넘어가고 있으니까.
유리가 이리 일찍 일어난 건 듣는 귀 없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몇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사안이 있었다.
“간단한 조식 하나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조리실로 들어가려던 주인이 도로 몸을 돌렸다.
“여기 광부들이 많은 거 같은데, 솔리드녹스의 모든 광부가 다 왔나 봅니다.”
“광부로 왔소?”
“예, 뭐. 흑수정 광산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저랑 제 친구도 일거리를 찾으러 왔습니다.”
“여자아이는 뭐요?”
“동생입니다.”
“쯧, 가족까지 있다니. 그럼 하지 마시오.”
주인은 작은 음성으로 대차게 말했다. 그 속엔 진심이 묻어났다.
“어째섭니까?”
“솔리드녹스만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서 소문 들은 광부 길드가 다 몰렸지. 알다시피 흑수정이 원체 귀하잖소. 하지만 눈이 있으면 보시오. 다친 사람이 많지 않았소?”
주인의 말대로 고작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유리는 다친 광부들을 여럿 보았다.
주인은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말도 마시오. 저곳 화산은 아직 살아있다오. 마법사들이 잠재웠다고 해도 간헐천이든가 가스 중독, 용암이 폭발하기도 하지. 나도 광부로 왔다가 다쳐서 술을 팔고 있소.”
주인장이 팔 하나를 들어 보였다. 하얀 셔츠를 거두자 크고 긴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그것 참 안 된 이야기군요.”
“차라리 다쳐서 돈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에휴. 마우리인지 마우라인지 하는 작자가 재해 보상을 전혀 안 해주고 있소. 하고 싶어도 법적 절차를 밟으라며 우리 같은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고 있지.”
전생에서나 여기서나 법적 절차는 복잡했다.
그나마 전생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으니 망정이지. 이 시대의 법은 만든 자만 알고 일반 평민은 알지 못했다.
마우리는 그 점을 악용해서 고용 계약서를 엉터리로 쓰거나 재해 및 상해 보상을 깡그리 무시했다.
“솔리드녹스에 말해보지 그러죠?”
“그래 봤지. 그런데 마우리란 놈과 한패인 건지, 그것도 무시하더군.”
“허…….”
진짜로 한패였군.
이로써 확실해졌다.
“여동생과 친구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떠나시오. 늙은이가 하는 소리라고 흘려듣지 말고. 젊은 나이에 몸 내던지지 말길 바라오.”
“아닙니다,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관 주인은 씁쓸한 걸음으로 조리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남은 유리는 알아서 진열대에 있던 라임 주스를 가져와 잔에 따랐다.
‘전생이나 여기나 뜯어먹는 꼴은 똑같네.’
[흐아암, 그래서?]‘이런 놈들 몰아내는 법은 간단하면서 어려워.’
[아니, 그거 말고. 중요한 건 화산이야. 그건 어떻게 폭발시킬 거니? 알 부화가 먼저라면서.]티르빙은 이곳 사람들이 어찌 되든 관심 없었다.
그보다는 솔리드녹스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화산을 폭발시킬지가 중요했다.
폭발하는 방법 자체야 여러 가지가 있다. 폭탄을 제조하거나 헬파이어를 쏟아부어도 된다.
문제는 광부들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전부 하청업자였다. 마우리는 그런 하청업자를 수탈하고 있고.
화산을 폭발시켰다간 애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서 화산을 폭발시켜야만 했다.
물론, 유리에겐 다 방법이 있었다.
화산을 폭발시키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할 방법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