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19
제119화
근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은 유리와 일행은 다시 화산 둥지로 향했다.
이번엔 베리온 제국에서 올 때 탔던 실버윙의 등을 빌렸다.
“확실한 건가?”
창공에서 휴화산을 내려다보던 유리에게 카이가 물었다.
“확실해. 마우리 칭이 일대에 있는 모든 광산 길드에게 하청을 맡겼어. 임금이 후하긴 하지만, 가스 중독이라든가 간헐천, 갑작스러운 폭발 같은 재해 보상은 안 해준다나 봐.”
“너무 잔인해요.”
채럿이 눈살을 찌푸렸다.
“뿐만 아니야. 확인해보니까 무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노예나 아이들을 동원하기까지 했어.”
“노예는 불법이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아이까지 저 뜨거운 곳에 보낸다고요?”
여관 주인이 전해준 이야기 말고도 이곳의 상황은 심각했다.
노예나 무임금 노동뿐만 아니라 가스 중독으로 인해 매일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 마우리는 동원한 마법사에겐 치료 마법을 절대 쓰지 말라고 명령했다.
종종 오는 실버윙을 막기 위해 마나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외진 곳이라 의사나 신관이 오기도 벅찼으니.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계약으로 묶여버린 광부들은 남거나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숫자만 어림잡아도 몇백 단위를 넘겼다.
“난 그걸 물은 게 아니다.”
카이가 말했다.
“난 솔리드녹스가 눈감아주고 있는 게 확실하냐고 물은 거다.”
카이는 용가인 솔리드녹스가 마우리 같은 놈을 옹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아무리 실리와 효율을 따지는 용가여도 그딴 인간을 돕는다는 건, 뭐.
유리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솔리드녹스를 비롯해 모든 용가가 깨끗하진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없다고.
나이트워커에도 미래에 가문을 팔아먹는 다이올드 백부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도 솔리드녹스가 마우리 같은 놈을 돕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확실해.”
“명분이 생겼군.”
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화산을 다시 폭발시켰다간 광부들의 터전을 빼앗는 꼴이 되고 만다.
그 때문에 고민이 많았으나, 이로써 걱정거리 하나는 접었다.
광부들이 핍박받고 있는 이상, 이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화산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오라버니. 이 광산이 없으면 힘든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알아. 그건 내가 대책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라버니가 그렇다면야, 믿을게요.”
“그보다 채럿, 넌 말 안 해도 알지?”
“네, 물론이죠. 근데 카이 경이 괜찮을지…….”
슬슬 유리는 내려가 봐야 했다. 반면 채럿과 카이는 실버윙 위에 남겨져야만 한다.
둘만의 시간(?)이 껄끄러웠는지 채럿이 카이 눈치를 살폈다.
유리는 괜찮다며 채럿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말했다시피 해코지하면 바로 일러. 내가 저 녀석 구워삶는 거 봤지?”
“누가 구워 삶아졌다고?”
“봐봐, 성질만 내고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 그러네요.”
체념한 카이는 대꾸도 안 했다.
저 멀리 용암 둥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간이 되었다.
새벽부터 나온 광부들이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 사이로 벌써 탈진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는 더 이상 쓰러진 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쓰러졌겠거니 하며 사람을 부르고, 실려 가고, 다시 곡괭이를 들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확인하자 유리는 바로 낙하 준비를 했다.
“채럿.”
“네!”
신호가 떨어지자 채럿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입으로 드루이드만의 언어를 토해냈다.
푸드드득!
작은 체구에서 나온 작은 목소리.
그러나 용암 지대 주변의 숲이 일제히 그 부름에 응답했다.
* * *
마우치 칭은 광산 근처 막사에서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싱싱한 과일에 방금 구운 고기, 거기다 와인까지 곁들이며 아침 술을 마셨다.
바깥에서 얼굴이 까매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광부와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마우리 앞에는 한 남자가 더 있었다.
그는 식사도 하지 않고 로브 아래 얼굴을 감춘 채 마우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또 마우리 옆에는 솔리드녹스의 로브를 쓴 가짜 마법사도 있었다.
다만, 그는 식탁의 두 사람과 달리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단주님. 저, 저희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쯧, 한심한 새끼.”
붙잡혀 온 남자는 다름 아닌 신수종을 지키던 경비 사수였다.
“갑자기 저희를 기습하는 바람에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그 기습을 막으라고 너희들한테 돈을 주는 거다.”
“그, 그야…….”
“그런데 네 부사수는 다리를 다쳐서 여기까지 못 오고 있고, 네놈은 또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군.”
“하,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습니까!”
“그래, 아무 일도 없었지.”
마우리가 불편한 건 침입자가 아니다.
안 그래도 흑수정을 몰래 빼돌리거나 훔치는 자들이 있어서 여간 골치가 아녔다.
그 피해가 쌓이고 쌓여서 손해액만 해도 어마어마한 상태.
물론, 그 비용을 감당하고도 수익이 한참 더 많았으나.
마우리는 그 손해가 싫었다.
돈 받아먹고 제대로 일 안 해서 발생하는 손해는 더 싫었고.
“끌고 나가라. 네놈과 그 동료는 해고다.”
“다, 단주님! 제 사정 아시잖습니까! 제 처자식은 뭘 먹고 살라고!”
“내 알 바냐, 퉷!”
마우리는 보란 듯이 입속에서 씹던 포도씨를 경비한테 뱉었다.
치욕에 치를 떨어야 했으나, 경비에겐 직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먼저였다.
“단주님!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단주님!!!”
결국 경비는 동료 손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제 두 경비는 절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침입자 놈이 거슬리긴 하지만, 나야 잘 됐지. 크흐흐.’
이참에 인근 광부나 마을을 뒤져서 다른 도둑놈도 끌어낼 작정이었다.
그동안은 광부 사이에서만 도둑을 골랐지만, 이젠 광부가 아닌 자 또한 수색할 수 있게 되었다.
“후우, 겨우 조용해졌군. 송구합니다. 어제 웬 피라미 새끼 하나가 기어들어 와서.”
“…….”
마우리는 입속에 한가득 음식물을 머금고 말문을 열었다.
정작 상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 상대가 익숙해서 마우리도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쪼록 저희의 편의를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대금은 언제쯤이면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 주.”
“허헛!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참 화끈하십니다.”
“넌 내 앞에 흑수정만 갖다 바치면 된다.”
“암요! 솔리드녹스의 이름을 빌려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용암 지대를 지키는 마법사는 전부 마우리가 운영하는 용병단이었다.
그런 그들이 솔리드녹스의 로브를 입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마우리의 사업 수완이 해낸 결과였다.
흑수정 광산을 먼저 발견해낸 마우리는 솔리드녹스와 협상을 벌였다.
이곳 광산 사업을 독점케 하고 그 수익을 솔리드녹스와 나눈다.
대신 솔리드녹스는 가문의 이름을 빌려준다.
이 협상의 효과는 실로 유용했다.
사업 독점권을 솔리드녹스에게 인정받음과 동시에.
외부인이 흑수정을 몰래 탐하려 해도 솔리드녹스의 마법사가 지키고 있어서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쓴 돈이 많긴 하지만, 이만큼 돈 되는 장사도 없지. 암!’
그는 이미 흑수정 광산 이후로 어떻게 처리할지도 계산해놨다.
광부들은 길드 측에 돈 좀 찔러넣어 임금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아이들은 쓸만한 녀석만 추려서 노예로 팔고, 지금 있는 노예는 죽여서 처리해버리면 그만.
그야말로 깔끔한 처리가 아닌가.
“끄아아악!”
“도, 도망쳐!”
그때,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여유로운 남자와 달리 마우리는 체할 거 같은 얼굴로 식사를 멈췄다.
“뭐야? 거기 무슨 일이냐?”
“단주님! 큰일 났습니다!”
마침 한 병사가 부랴부랴 뛰어 들어왔다.
“밖에 실버윙이! 마수종이 쳐들어왔습니다!”
“무슨 소리냐?! 똑바로 말해! 실버윙이 쳐들어오다니? 놈들은 독립 개체다!”
“그치만 사, 사실―!”
푸확!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기 전, 막사 전체가 들렸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천막이 걷히듯 막사 위가 사라진 것이다.
졸지에 실내는 야외가 되고, 마우리 칭은 머금고 있던 음식을 흘렸다.
“뭐, 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깥은 실버윙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낚아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미리 잠복시켜놨던 실버윙 무리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낚았다.
무기로 위협하려 하면 입으로 무기부터 물어서 달아났다. 무방비가 된 사람은 다른 실버윙이 재차 부리나 발로 잡았다.
그러나 교묘하게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일명 낚시질이었다.
“공격해! 놈들을 쫓아내라!”
마법사 무리가 공격을 위해 응집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합격(合擊) 마법를 준비해놨었다.
이때 유리가 나섰다.
“어딜.”
서걱!
마법사 한 명의 지팡이가 잘리는 것을 시작으로 연달아 무구가 잘렸다.
이어서 팔과 발목만 크지 않게 상처를 내서 제압했다.
“으억!”
“커억!”
조잡한 수준의 마법사 따위 유리에겐 손쉽다 못해 우스웠다.
그렇게 마법사를 제압하면 역시나 실버윙이 나타나서 데려갔다.
“살려줘!”
“살려주려고 데려가는 거니까 발버둥 치지 마세요.”
조언을 해줬지만 이미 마법사는 저 멀리 날아간 뒤였다.
못 들었다면 어쩔 수 없지.
실버윙이 낚은 사람들은 최대한 멀리 보냈다. 곧 있으면 화산을 폭발시킬 예정이었다.
‘낚시질은 순조롭고. 마우리의 막사가…….’
미리 봐뒀던 장소로 시선을 돌리자 황급히 달아나는 마우리를 발견했다.
식사하고 있었나.
떠난 자리에9먹다 남은 음식과 테이블이 덩그러니 남았다.
‘아직 사정권 안에 있군.’
특별히 마우리는 낚아채지 말라 일러뒀다.
놈은 화산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죽게 할 것이다. 안 되면 카이가 상공에서 지켜보다가 녀석을 죽일 계획까지 세워놨다.
어쨌든 당장 마우리보다 애꿎은 피해자가 없도록 돕는 게 먼저였다.
예측했던 대로 마법사들은 로브만 빌려 입었을 뿐, 솔리드녹스 병력치곤 허술했다.
물론, 이들의 서클이 6서클 언저리임을 감안하면 절대 부족하지 않았으나.
‘불의 영혼 계승자한테서 특훈을 받은 게 도움이 되는군.’
마법사는 어쩔 수 없는 습관이나 본능이 있다.
가령 영창 시간 동안 발생하는 공백.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지난 수 백 년간 부단히 마법사들이 노력했으나, 쉽사리 답을 찾지 못했다.
이자벨은 그 답을 검에서 찾았다.
공백 동안 마법을 외우면서 검으로 대응할 수 있게끔.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투술이었으나, 이자벨은 자신의 방식을 완성해나갔다.
그리고 유리는 그런 이자벨과 수 없이 대련했다.
그녀와 달리 검을 들지 않은 마법사는 그야말로 무방비일 수밖에 없었다.
설령 다른 자들이 마법을 시전하는 동안 대신 싸워줘도 이자벨보단 못했다.
‘굳이 귀찮다면 살생을 피해야 한다는 거지.’
서걱! 투둑!
다른 무리의 마법사 지팡이가 반쪽씩 떨어졌다.
원래는 광부나 노예, 아이만 살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마우리의 천막을 보던 중, 어제 신수종을 지키던 경비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났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말 그대로 신경만 쓰면 될 일이었다.
“얼른 막아!”
“저지라도 해라! 더 이상 날뛰게 해선 안 된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마법사는 자신들끼리 독려했다.
그런 그들 사이를 누비며 유리는 여유작작 적들을 쓰러뜨렸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키에엑!
지상에 내려왔던 실버윙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는 땅에는 사람이 없었다.
있어봤자 마우리와 그를 지키는 소수의 병력밖에 없었다.
드디어 무대가 준비됐다.
유리는 마검을 지팡이처럼 뽑아 주문을 외웠다.
“하늘보다 무섭게, 바다보다 압도적이게, 대지보다 묵직하게, 그리하여 세상을 가라앉혀라! ……메테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