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빌어먹을! 젠장!”
다이올드는 온갖 욕을 쏟아내며 손에 집히는 물건들을 마구 던졌다.
방에는 성한 물건이나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옆에 선 타나토, 제몬 형제는 그런 아버지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다이올드가 화내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린다고 해서 진정했으면 진작에 말렸으리라.
여기서 한 마디라도 덧붙였다간 날아간 물건이 형제의 머리통을 날릴 수 있었다.
겁먹은 형제는 아버지가 부디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후우, 후우! 그 열등분자 새끼가 감히! 가암히이이!!!”
흑마법 사건으로 인해 유리의 입지는 예전과 달라졌다. 특히 봉신 가문들이 유리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여전히 장로들은 정통성과 혈통을 운운하며 다이올드를 지지했으나.
그에겐 자신을 향한 지지보다 등을 돌린 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했다.
“어떡하면 좋지. 그놈을 끌어내릴 방법! 쫓아낼 뭐라도! 뭐든 좋으니까!!!”
미리 싹을 잘랐어야 했다.
가문에 들어왔을 때부터 죽여서라도 발을 붙이게 해선 안 됐다.
‘아니! 그 전에 죽였어야 했어! 블레이머 그놈이 눈을 돌렸을 때, 마검으로 확실히 죽였어야 했다고!’
오래전, 샤를린느와 유리는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가문의 결정에 따라 쫓겨났다.
블레이머는 그런 가족을 위해서 미리 머물 곳을 마련했고, 자신은 가문에 남아 사명을 다했다.
다이올드는 이때 기회를 노렸다.
블레이머와 그 아내, 자식을 한 번에 죽일 기회를.
사명을 다하는 척하면서 블레이머는 가족을 만나러 종종 이탈했고, 다이올드는 이를 고발했다.
그러나 고발은 고발로만 끝났다.
차기 가주였던 그의 사소한 일탈은 대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다이올드는 전부 죽이기로 했다.
먼저 샤를린느와 유리부터.
마침 마검 티르빙이 있다 하여 시범 삼아 마검으로 둘을 죽이려 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그냥 실패도 아니고 유리가 버젓이 마검의 주인이 되어서 돌아왔다.
‘마검으로 죽었어야 했던 놈이 어째서 살아온 거지?’
지금도 그 부분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역사상 마검의 주인은 단 한 명. 그마저도 악마와 이단으로 취급받아 죽었다.
근데 이놈은 당당하게 마검을 드러내놓고 가주로부터 인정까지 받았다.
“뭐가 되었든 이제부터 유리 그 놈을 죽일 순 없어.”
다이올드는 분명 유리가 허투루 마검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블레이머의 자식이니 특별한 능력이나 감춰둔 힘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마검의 주인에게 힘으로 덤비는 건 무리였다.
다이올드는 그 사실을 채럿이 플레온 기사단 입단 시험을 치렀던 날에 느꼈다.
“칫…….”
아직도 유리에게 맞은 손목이 시큰거린다.
이 치욕을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이대로 물 흐르듯 지나갔다간 꼼짝없이 가주 자리를 빼앗길 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힘으로 유리를 상대할 순 없었다.
심지어 최근엔 벤헬링턴이 유독 그를 아낀다는 기분이 들었다.
‘전처럼 어설픈 의뢰 따위론 안 돼. 좀 더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전전긍긍한 마음에 좌우로 오가던 다이올드는 문득 창밖을 내다봤다.
밖에 한 여성이 집사와 시종장, 시녀들을 데리고 가문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끝없이 뭔가가 기록되었다.
“샤를린느! 그래! 저 여자가 있었군!”
유독 유리는 제 어머니를 많이 아꼈다.
예전에 제몬이 그깟 보석 하나 훔쳤다고 했을 때 그 물건을 굳이 찾지 않았던가!
당시엔 하찮은 인간의 물욕이라며 비웃었으나, 소중한 물건이 분명했다.
“제몬, 타나토.”
“예, 예, 아, 아버지.”
“…….”
쭈뼛대며 대답하는 제몬과 달리 타나토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가갔다.
다이올드의 시선이 여전히 밖에 고정되어서 아들들의 표정을 보진 못했다.
“곧 있으면 리펠리온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다. 너희, 그때 할 일이 있다.”
“저, 저희가요? 왜, 왜요?”
“그럼 너희들이 해야지 누가 해! 같은 또래한테 한참 뒤처져 놓고 너흰 분하지도 않더냐!”
솔직히 힘이고 뭐고, 다이올드가 직접 나서는 건 체면이 서질 않았다.
고작 인간 꼬마한테 다 큰 용인이 덤벼서 승리해봤자 더 큰 치욕만 안길 터.
“형이랑 제가 대체 뭘…….”
제몬의 불안한 시선이 좌우로 굴렀다.
다이올드는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샤를린느를 납치해라.”
* * *
리펠리온의 가주 샤르트앙으로부터 서약서를 받아내고 꼬박 한 달이 지났다.
유리는 그들에게 몇 가지 요구사항을 보냈다.
오늘은 그 요구사항을 들고 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도 바빠야 했으니.
며칠 전.
“무역이요?”
“응, 그렇게 됐단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자 대뜸 그녀가 그리 말했다.
“가주님께서 용가끼리 무역로를 만들면 어떠냐고 물으시더구나. 그 시작으로 리펠리온을 해보는 게 어떠냐며.”
“그걸 어머니께 맡기셨다니, 놀랍네요.”
용가끼리의 무역은 몇 년 뒤에 일어나는 대형 이벤트 중 하나였다.
원래는 솔리드녹스를 필두로 용가 간의 무역로가 열린다. 수많은 거상이 몰려들며 실크로드가 만들어졌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투자가 쏠렸다.
이에 뒤늦게 나이트워커도 용가끼리 세력을 뭉쳐서 무역로를 만든다.
그러나 솔리드녹스의 선점 효과와 당시 가주였던 다이올드의 무능함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돈만 쏟아붓다가 망했다.
‘이 이벤트가 벌써 벌어진다는 건…… 할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계셨다고 봐야 하나.’
도저히 다이올드 머리에선 이런 사업 구상이 불가능하게만 보였다.
원작에서도 홧김에 후발주자로 나섰다가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오랜 시간 벤헬링턴이 준비했던 무역 사업이었을 테고.
다이올드가 가주가 된 다음에는 그제야 그 계획을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왜 이 사업을 하셨는지는 말씀 안 하시던가요?”
“어어, 으음.”
“뭐라 하셨군요.”
“그게, 네가 돈을 잔뜩 가져가서 그렇다고……. 아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가주님께서 거짓으로 말씀하신 거 같아.”
“그렇겠죠.”
가문의 예산은 샤를린느가 관리했다. 고로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건 그녀가 더 잘 알았다.
진짜로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용가랑 무역로를 틀 정도로 급하지도 않으리라.
‘잠깐. 어머니는 가문의 자금 흐름을 전부 알고 계시잖아? 그럼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업을 벌이려는 이유도 알 텐데.’
[그게 그렇게 되니?]‘사업은 결국 이윤이 목적이야. 이윤을 바라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이 정도 큰 사업을 맡곁을 리가 없어. 분명 생각을 서로 공유하긴 했을 거야.’
이윤을 배제하면 정치적 목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벤헬링턴 성격에 다른 용가와 친해지자고 교류나 할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용인이라면 더더욱 날을 세웠겠지.
‘어머니랑 할아버지께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너희 어머니가 너한테 비밀로 하는 게 있다고? 이거 귀한 걸.]‘적어도 나쁜 건 아닐 거야.’
어찌 됐든 용가끼리의 교류는 동맹을 의미한다.
즉, 리펠리온이 나이트워커와 함께할 의향이 있다는 뜻.
그리고 이 이면에는 아마도 샤르트앙과 로시가 있었을 것이다.
‘은근히 손자 손녀 아끼시는 할아버지들이라니까.’
로시를 어떻게든 치료시켜주겠다고 벤헬링턴이 한 마디 던졌을 때.
그 때 백지 수표 서약서를 써주던 샤르트앙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역 물품은 뭘로 할지 정하셨어요?”
“아직. 리펠리온에 가본 적이 없으니 뭐가 특산품인지도 모르겠구나.”
“종이나 목재 쪽으로 찾아보세요. 리펠리온에서 나는 종이가 최고급으로 칠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으음, 책을 봤어요.”
[책은 책이지. 원작이라는 책.]귓속에서 티르빙이 한참 동안 쿡쿡 웃었다.
실제로 리펠리온에서 나는 나무들은 거센 바람을 버티기 위해 나무 결이 질기기로 유명했다.
가공이 워낙 어려워서 종이로는 가치가 없었으나.
미래엔 리펠리온에서 대륙의 거의 모든 목재를 가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이거 말인데…….”
어쩐지 신이 난 샤를린느는 그간 꽁꽁 숨겨 두었던 사업 아이템을 모조리 쏟아냈다.
유리도 불평 하나 없이 그녀가 하는 모든 말들을 받아주었다. 덤으로 알고 있는 아이템이나 정보를 알려줬다.
‘어머니가 하시는 첫 사업인데. 망치게 해드릴 순 없지.’
그리고 오후가 되자 기다렸던 리펠리온의 사람들이 가문 앞에 나타났다.
전처럼 기사단을 끌고 왔으나, 무장을 가벼이 한 상태였다.
기사단 뒤에는 사과의 의미로 가져온 선물이 가득했다.
해링을 도와준 것만 아니라, 도와주기 전에 그의 무단 침입을 눈감아 주었기에 그 책임을 피할 순 없었다.
오늘 이렇게 해링이 직접 나이트워커를 재방문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해링은 유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올렸다.
“오오! 유리 공자. 이리 만나서 반갑소!”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호들갑은…….”
“하하! 나야 그렇긴 해도, 내 딸이 채럿 양을 보고 싶다며 얼마나 떼를 썼는지 모를 거요.”
“그랬어, 로시?”
“우웅, 죄송해요. 전 그냥 언니가 보고 싶어서…….”
아버지의 바짓자락을 붙잡은 로시가 뒤로 몸을 숨겼다.
아직까지 유리와는 그닥 친하지 못했다.
“그래? 그럼 언니 보러 갈래?”
“어? 그래도 돼요? 아빤 바빠서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바빠도 바쁘지 않게 하는 사람이 나란다.”
기사단 입단 이후 채럿은 정식으로 임무를 도맡으며 지냈다. 그래서 요즘엔 아침 식사 자리 말고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내가 쉬라고 하면 쉬어야지.’
엄연히 내가 기사단의 주인이니까.
유리는 릴림에게 로시를 맡기고 채럿에게 보냈다.
그렇게 로시가 폴짝 뛰며 떠나고.
해링과 유리는 별실로 향했다.
느릿한 걸음으로 가는 길에 대화가 오갔다.
“그나저나 놀랐소. 가주님과 직접 만나서 조건 없는 서약서까지 받아냈다니.”
“가문에선 난리가 났겠군.”
“난리만이겠소? 봉신 가문부터 장로들, 심지어 내 부모와 그 형제들까지 모두 들고 일어나서, 어후.”
“그래도 잘 설득이 된 거 아닌가?”
“설득은 모르겠고. 나보고 전부 책임지고 오라 하셨소.”
이럴 땐 또 매정한 용인 다웠다.
실상 해링의 역할은 사절단 따위가 아니라 포로에 가까웠다. 아마 유리가 받아낸 서약서가 아니었다면 포로가 아니라 사형수였겠지.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공자가 원하는 것에 대해 들어봐야겠소.”
접객실에 들어서자마자 해링은 소파에 가라앉듯 앉았다.
유리도 따라 앉으며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답했다.
“클라우드 하트에 접속하고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