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
제13화
지식의 관은 가문의 넓은 저택 중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작은 언덕 위에 지어졌는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비석 하나를 통째로 얹은 것처럼 보였다. 지식의 ‘관’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그 모양새 때문이었다.
건물 주변으로는 검은 독초들이 깔려서 사방을 둘러싸서 한 층 더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산을 올라 건물로 들어선 유리는 의외의 광경을 보고 놀랐다.
“왔군요.”
빌과 겔런, 가문의 원로들까지 자리에 있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한 여인이었다.
원로들과 어울리는 그녀는 결코 티어가 낮은 직책이 아니었다.
가문에서 저럴 수 있는 여자는 단 한 명이다.
“미앵비슈 님을 뵙습니다.”
유리의 아버지인 블레이머 위로는 두 명의 형제가 더 있었다.
그 중 첫째인 미앵비슈 덴 나이트워커.
유리에게 고모이자 세간에서는 블레이머가 아닌 가주가 될 거라 예상했던 여자였다.
워낙 뛰어난 검술에다가 마법까지 빼어났던지라 그녀는 단연코 가주감에 어울렸다.
그러나 세속과 얽히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일찍이 후계 싸움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지식의 관을 맡았다.
때문에 몇몇 호사가들은 그녀를 가리켜 역대 최강의 겁쟁이 용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듣던 거랑 완전히 달라.’
그녀를 보는 순간, 유리는 숨이 턱 막혔다.
겁쟁이? 말도 안 돼.
미앵비슈를 직접 봤다면 그딴 헛소린 지껄이지 못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하는 위압감은 벤헬링턴보다 부드럽지만 훨씬 무거웠다.
‘티르빙, 저 정도면 몇 서클일까?’
[으음, 9서클? 아냐, 아냐아냐아냐. 9서클보다 더 위라고 해야 되나.]‘애매하게 대답하지 말고.’
[저런 용인은 이 언니도 처음 본다. 용인이라 쳐도 저 여잔 터무니없이 강해.]‘할아버지보다 강하다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니. 그 자는 논외로 쳐야 되고. 그렇지만 미앵비슈, 저 여잔…… 성장할 여지가 더 있다고 봐야겠지.]티르빙이 보기에도 강하다니.
심지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거늘.
‘할아버지한테서 저 정도 기운은 못 느꼈는데.’
[당연하지. 넌 땅을 내려다보면서 대륙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니?]‘……미친.’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
어쩐지 벤헬링턴과 마주했을 때 미앵비슈처럼 압도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도 별로 놀랍지가 않았다.
그냥 엄청 강하다.
말도 안 된다.
유리의 가늠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나마 그의 딸 미앵비슈는 가늠할 수 있는 땅이지만, 이마저도 높아 보였다.
‘역시 세상에 강자들은 널렸군.’
평범한 사람은 그들을 보며 좌절하거나 동경한다.
그러나 유리는 어느 쪽도 아니라,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왜 자신은 아직 여기 있는가. 어째서 땅을 보고도 가늠하지 못했는가.
좁았던 시야로 여전히 가문을 들여다봤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딴 시야로는 세상과 맞설 수 없다. 멸망을 향해 다가오는 적은 더 강하거늘!
‘반드시 합격한다. 이딴 작은 시험에서 질 수 없어.’
유리는 두려움을 지우고 미앵비슈 쪽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인사를 올렸다.
“장로님들도 처음 뵙겠습니다.”
“크흠!”
“흠! 흠!”
원로들은 대놓고 유리를 무시하며 고개를 돌리거나 헛기침을 뱉었다.
미앵비슈만이 똑같이 그를 대했다.
“오늘 여기 온 연유는 들었겠지?”
“네.”
“가주님께는 아직 보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아니?” “네? 그건…….”
벤헬링턴이 허락한 거 아녔어?
가주의 명령이 있어서 지식의 관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진 줄 알았다.
유리의 처지로선 벤헬링턴의 명령만이 특권을 줄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가 딱히 그럴 이유도 없다만…….
미앵비슈는 눈꺼풀을 내리깔며 말했다.
“오늘 시험은 내가 주관했단다. 빌이 부탁하긴 했으나, 나 또한 네가 궁금했거든.”
“영광입니다.”
“허나 명심하렴. 지식의 관은 가문의 일원이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지만,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퇴학당한다면 굳이 너를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시험을 치르는 거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앵비슈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유리의 가슴이 두근 뛰었다.
아무리 세간에서 겁쟁이라 욕해도 그녀는 최강의 용인 중 한 명이다.
그런 존재가 관심을 표한다는 건 영광 그 이상의 감격을 주었다.
유리는 거기에 부응하듯 입을 열었다.
“저도 순순히 들어가긴 싫었어요.”
뜻밖의 이야기에 그녀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순순히 들어가긴 싫었다? 왜? 인정받지 못하고 들어가면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니?”
“아뇨, 그냥 들어가면 다른 이들의 자존심을 밟지 못하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저, 저! 열등분자가!”
“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가만히 듣고 있던 원로들이 저마다 언성을 높였다.
그들은 저 맹랑한 꼬맹이가 대체 무어라 지껄이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는 했어도.
서자에, 꼬마에, 별 볼일 없는 인간 혼혈 열등분자가 감히 지식의 관을 들어가기도 전부터 자존심을 밟겠다는 소리를 했다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앵비슈는 조용히 유리를 내려다봤다.
‘아직 작아.’
너무나도 작아서 밟으면 찌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런 애가 도리어 남의 자존심을 밟겠단다.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여태까지 지식의 관을 앞두고 가문에 이런 아이들은 없었다.
어떤 아이는 두려워서 울었고, 누군가는 자만으로 가득 찼다가 된통 당했다.
간혹 덤덤하게 들어갔던 아이가 있긴 했으나,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얼마 전에 죽었다.
‘블레이머, 너보다 더 황당한 아이를 낳고 떠났구나.’
그때 타나토가 지식의 관으로 들어섰다. 어째선지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체된 시간이 있어서 미앵비슈는 인사도 나누지 않고 안쪽으로 먼저 들어갔다.
“서둘러 준비해라. 원로들의 시간이 아깝다.”
유리와 타나토는 그녀를 따라 복도를 지났다.
짤막한 복도 끝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대한 공간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밖에서 봤을 땐 사방이 막혀있던 공간이 안에서 보니 하늘이 훤했다.
검은 잔디가 아닌 푸른 풀과 나무, 꽃이 피어 있으며 그 위로 태양빛이 떨어졌다.
유리는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진 줄 알고 지나가던 중 나무를 쓸었다.
‘진짜잖아.’
[용언 마법으로 만들었네.]‘이게 용언 마법이라고?’
용언 마법은 고대 드래곤들이 부리던 마법으로 뱉는 언어 자체를 구현하는 능력이었다.
돌을 황금으로 만들거나, 죽은 것을 살릴 수도 있었다.
전능에 가까운 능력이지만 마법사들 중에서도 극한으로 통달해야지만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한 마법이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마법이 어떻게 아직도 유지되고 있지?’
[마법이 끊기지 말라고 말했으면 되겠지.]‘…….’
무지막지한 마법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해버리자 유리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겼다.
정원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작은 야외 연무장이 그들을 반겼다.
원로들은 자연스레 한쪽에 마련된 대리석 단상으로 올라갔고, 유리와 타나토는 연무장 양쪽으로 갈라졌다.
갈라지기 전 타나토가 넌지시 말했다.
“이번 대련은 네가 자초한 거니까. 날 너무 원망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유리는 이 상황을 자초했다.
왜냐.
해결할 수 있거든.
감당 못 할 일은 벌이지 않는다. 감당 못 할 일을 벌이고 싶다면 그만한 능력을 키운다.
그것이 원작 주인공이 살아남은 방법 중 하나였다.
유리는 그런 주인공의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
“릴림, 검.”
“진짜로, 이걸로 하실 거예요?”
물음을 던지면서도 릴림은 챙기고 있던 검집을 줬다.
게슐츠가 선물로 준 검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손에 익어서 잘 맞는 검인 줄 몰랐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검을 써보면서 비교하다 보니 유리에게 맞춤형으로 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 검이 아니면 다른 검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이걸로 해야지. 티르빙은 안 돼.”
“하지만 원로 분들, 티르빙 보러 왔을 거예요.”
유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갑자기 원로들이 지식의 관 입학시험에 나타난 이유.
뻔하지 않은가.
가문에 갑자기 마검의 주인이 나타났으니 살펴보려고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유리는 티르빙을 쓰지 않을 계획이었다.
마검 따위에 의존해서 승리해 봤자 미앵비슈의 마음에는 안 들 테니까.
‘고모님 입장에선 마검은 관심 없어. 내가 가진 아이템보다 스탯이 더 중요해.’
그러니 쓸데없는 관심에 부응하겠답시고 티르빙은 절대 안 꺼낸다.
지금 중요한 건 미앵비슈, 그녀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게 있다면 5서클에 다다른 타나토의 힘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4서클이야. 힘으로는 절대적으로 밀려.’
고작 1서클이지만 차이가 없다면 애초에 숫자로 구분 하지 않았다.
드래곤 하트와 마나 코어를 합치면 어떻게든 비빌 수 있겠다만, 그런 협잡한 방법으로 승산이 얼마나 될지 확신이 없었다.
유리는 가능성 없는 방법을 쓰기보다 정확한 술수를 고민했다.
“도련님. 여기요.”
릴림이 검을 건네주었다.
검을 받아들고 가볍게 자루에서 뽑아냈다. 부드러운 쇳소리가 청아하게 퍼진다.
검을 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긴장으로 쪼그라들었던 근육이 풀어지고, 어지럽던 생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검을 쥘 운명이었던 것처럼.
그가 능숙한 솜씨로 허공에 검을 휘둘러보았다.
여전히 걱정스런 릴림이 옆에서 첨언을 해줬다.
“가르쳐 드린 대로 수비가 우선이에요. 정보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선공을 해봤자.”
“내 수만 들킨다고? 알아, 알아.”
오늘만 벌써 몇 번째 잔소리에 가까운 조언을 들었다.
어지간히 걱정해주는 것이 고마웠던 유리는 웃음과 함께 검을 들고 연무장을 올랐다.
타나토는 끝이 묵직한 창을 들고 왔다.
딱히 가문에서 꼭 검을 쓰라는 법은 없다. 입맛에 맞는 무기면 뭐든 괜찮다.
‘현생에서 본 언월도랑 비슷하네.’
현대를 살아갔을 무렵 보았던 삼국지가 저절로 떠오르는 무기였다.
크고, 넓고, 무거워 보인다.
형태만 반월을 닮은 반면 뭉툭한 끝이 특이했다.
타나토는 그런 창을 한손으로 가벼이 들며 마주섰다.
잠시 후 중재관이 가운데 서서 무어라 떠들었다.
“대련은 한쪽이 포기를 선언, 혹은 전투 불능이 될 때까지 한다. 알겠나?”
“네!”
“예!”
“그럼, 시작.”
그걸 끝으로 중재관은 금방 연무장을 내려갔다. 참으로 간단한 설명과 스타트였다.
타나토가 슬금슬금 옆으로 돌았다.
“자만심이 심해, 유리. 너랑 나랑은 실력 차만이 아니라 나이와 체격 차도 있는데. 그냥 포기하지?”
“나잇살로 협박하는 건가요?”
“하하하, 그럴 리가. 현실을 모르는 거 같아서 깨닫게 해주려는 거야.”
[저거 네가 살던 현생에선 꼰대라고 하지 않았니?]기껏해야 15살인 형이 저러고 있으니 꼰대는 아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꼰대 중에서도 진짜 나쁜 꼰대였다.
현실 운운하면서 앞길에 훈수 두는 인간들.
유리는 후, 길게 숨을 뽑아냈다.
“현실은 네가 알아야 한다니까.”
그 순간, 릴림이 했던 조언을 무시하고 유리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릴림이 경악했고.
검이 부딪히고 나서 미앵비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검을 받아내야 했던 당사자 타나토는 꼼짝도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피가 튀는 모습을 목격해야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