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0
제130화
리펠리온의 상단주는 곤혹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여자가 대체 뭐라고 하고 있는 건가.
우리들의 무역 협상에 유리의 서약서를 들먹이다니!
“샤를린느 님. 방금 발언, 위험하신 건 알고 계십니까?”
“어째서 위험하죠?”
“이건 무역 협상이지 저희 가주님과 유리 공자가 맺은 서약과는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걸고넘어지는 건 저희의 관계만 악화될 뿐입니다.”
“으음.”
“이해가 안 되나 보군요.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시비라는 겁니다.”
이번 무역 건은 당연히 서약과는 상관없었다.
물론, 다른 협약이나 관계를 무기 삼아서 새로운 관계 형성에 있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건 당연시 되었지만.
두 용가는 이제 막 교류를 시작한 참이었다.
벌써 이리 날을 세우는 건 서로의 체면을 곤혹스럽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샤를린느는 생각이 달랐다.
‘유리 말대로구나.’
식사 자리에서 구태여 무역 이야기가 길어졌던 건 절대로 리펠리온이 만만히 나오지 않을 거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목재와 종이에 대해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분명 겉으로 좋아 보이는 거래서일 테지만, 알맹이가 비었을 거라며.
‘덕분에 신세를 졌구나, 유리야.’
샤를린느는 단호한 음성으로 따졌다.
“단주님, 제가 무리한 걸 요구했나요?”
“아, 그건 아니지만—”
“종이와 목재입니다, 단주님. 기껏 맺는 그 용가의 교류에 정작 특산품이 없어서 그걸 요구했을 뿐입니다.”
체면을 중요시한 단주와 달리, 샤를린느는 생각이 달랐다.
서로에게 있는 물건을 사고파는 건 무역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
결국 큰돈을 남기기 위해선 필요한 물품을 무역으로 주고받아야 했다.
나이트워커는 리펠리온에 없거나 수요가 있는 물품을 최상단에 올렸다. 물량도 다수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리펠리온은 목재와 종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 필요한 물건을 소수만 제공하겠다며 먼저 선을 그으신 건 단주님이죠. 분명 더 제공하실 수 있는데도 말이죠.”
굳이 리펠리온의 상단주가 소수 공급을 제시한 건, 다른 곳에서 파는 종이와 목재 가격을 맞추겠다는 뜻이었다.
물건을 정말 극소량으로만 팔면 가격이 미쳐 날뛸 테니까.
그럼 유통 때문에 불어난 가격처럼 나이트워커에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 터.
그런 폭리를 막기 위해 이런 협상을 벌이고 있는 거였지만, 리펠리온의 상단주는 이 원칙을 어기고자 한 것이다.
‘낭패다.’
솔직히 그는 나이트워커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다 공급받을 줄 몰랐다.
아니, 몰랐다 쳐도.
중요 품목을 이 정도까지 요구받을 줄 몰랐다. 이는 리펠리온 가주인 샤르트앙도 마찬가지였으니.
적당한 물품을 적당한 가격에 주고받을 계획만 세웠었다.
애초에 벤헬링턴이 세세한 부분에 신경 쓸 자도 아니고. 무역을 한다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었었다.
그런데 전혀 상정하지 않은 거래 품목을 알아낸 것부터 서약서까지.
이래선 도저히 협상의 길이 없었다.
“이 문제는 가주님과 의논해서 결정하겠습니다.”
“네, 부디 좋은 거래서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리펠리온의 상단주는 아연실색한 낯으로, 샤를린느는 웃는 낯으로 자신들이 내놓은 거래서를 돌려받았다.
1차 협상은 리펠리온의 완패였다.
* * *
단번에 마무리될 줄 알았던 무역 협상은 결국 다음으로 미뤄졌다.
벤헬링턴은 정작 중요한 품목을 팔지 않겠다는 리펠리온에 노발대발했고, 샤르트앙은 쥐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반면, 유리가 요구한 클라우드 하트에 관해선 바로 답이 왔다.
무역 협상에서 못 볼 꼴을 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약서 때문인지 몰라도.
해링이 리펠리온으로 돌아가고 이틀이 지나서 이런 서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이 유리에게 전해졌다.
* * *
쾅!
오밤중에 유리는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널찍한 방에 모여있던 기사들이 유리의 등장에 동작을 멈췄다.
“어떻게 된 거야.’
잔뜩 상기된 얼굴이 물었다.
기사들은 어찌 대답할지 모르고 망설였다.
하필 오늘 블레이크도 없었다. 그와 이자벨은 유리가 말해준 무기를 찾으러 떠난 참이었다.
그래서일까.
기사단 본부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하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
재차 날이 선 음성이 날아들었다.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실종됐다.”
적막한 공기를 뚫고 카이가 끼어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그는 본부 가운데 펼쳐진 상황판 겸 지도에 다가가 한 곳을 짚었다.
“리펠리온으로 오던 중 습격을 받았다. 절반이 궤멸했고, 살아남은 몇이 살아왔다.”
“어머니는…….”
“…….”
“어머니랑, 릴림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어.”
무섭도록 침착한 목소리를 타고 나온 질문은 침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건은 이랬다.
3일 전.
리펠리온으로부터 재협상 의지가 담긴 서신을 받고 유리가 먼저 리펠리온으로 향했다.
가문에 남은 샤를린느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뒤늦게 출발했으며, 호위는 릴림이 맡았다.
원래 호위는 블레이크나 이자벨이 맡아야 했으나, 그들은 유리가 알려준 아이템을 획득하러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하필 이런 때.
샤를린느가 의문의 집단에게 습격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실종된 상태.
[꼬맹이, 진정해. 네가 무슨 마음인지 알지만, 이럴 때일 수록 침착해야 되는 거야.]“알아.”
“……예?”
“아니다. 그보다 정확한 피해 보고.”
“아, 네!”
선임 기사가 나서서 샤를린느가 지나온 루트를 지도 위에 손가락으로 그렸다.
“살아온 인원에 의하면 첫 날, 산사태가 발생해서 가장 빠른 길에서 돌아와야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습격을 당한 건가?”
“정확히는 아닙니다. 예정된 마을과 다른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렀고, 다음 날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공격했다고 합니다.”
“마을 전체를 위장했다는 건가?”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선임 기사는 카이의 눈치를 살폈다. 왠지 그에게 설명을 대신 해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지 못해 카이가 설명해주길.
“다음 날 일어나보니 마을 자체가 없었다고 하더군. 자신들이 머물렀던 건물과 가구만 진짜였다고.”
“환각 마법이라도 썼다고?”
“그건 아니다. 아까 들어 온 소식에 의하면 실종된 자리에서 건물 잔해가 있었다고 한다.”
환각 마법을 쓰지 않고 마을 하나를 하루아침에 만들었다가 없앤다고?
그것이 가능한지 궁금하다가도 이내 고민을 접었다.
인제 와서 가능성을 따져봤자 소용없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중요한 건 누가 이만한 규모로 플레온 기사단과 릴림까지 속였냐는 거다.
‘용가가 움직일 루트를 미리 알고 대규모 자본을 들여가며 마을 하나를 통째로 만들었다가 없앨만한 자라면…….’
“리펠리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기사를 시작으로 이어서 다른 기사들도 동조했다.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리펠리온이 협상을 엎으려고 하는 수작일 겁니다.”
과연 그럴까.
로시가 비록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하나 나이트워커가 그 목숨을 쥐고 있다.
샤를린느와 로시의 목숨, 둘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하냐면 그건 감히 가릴 수 없는 문제지만…….
“이보시오!”
우당탕!
때마침 해링이 요란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달려온 그는 숨이 진정되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헉, 헉, 뭐, 뭔 소리를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아니오! 아, 아니오!”
“진정하십시오, 해링 님.”
“고고, 고고고고, 공자! 진짜 아니오! 우리가 뭣하러 이딴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겠소!”
“해링 님!”
불호령 같은 외침에 그제야 해링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유리는 조심히 인도해서 의자에 앉혔다.
“해링 님. 전 리펠리온 가가 이번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 진심이오?”
“네.”
용가끼리 사이가 나쁘다고 해서 리펠리온이 이런 짓을 벌일 가문은 아니었다.
그건 원작을 본 유리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 진정하시고. 지금 리펠리온에선 어떻게 대처하기로 했습니까?”
“우, 우선 병력을 급히 꾸리고 있소. 사자도 여럿 대동할 예정이오.”
“수색까진 괜찮지만 사자는 빼주십시오.”
“사, 사자 없이? 공자! 용가를 습격한 놈들이오! 사자가 있어야 하오!”
“사자가 움직이면 습격한 놈들이 겁을 먹고 도망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불쾌하지만, 오히려 리펠리온 측에서 비협조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합니다.”
“비협조라니. 이해가 되지 않소.”
“나이트워커와 리펠리온의 관계가 갑자기 틀어진 것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겁니다. 어쩌면 어머니를 습격한 놈들은 이런 걸 바랐을지도 모르니까요.”
습격한 놈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이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다.
현재로선 그 의도가 나이트워커와 리펠리온의 분열을 유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리펠리온 내에서 나이트워커의 사람들이 습격당해서 실종 당했으니, 나이트워커는 리펠리온부터 의심해야 마땅했다.
“놈들이 무얼 바라는지 몰라도 당장은 뜻대로 움직이자는 거구려.”
“그게 더 안전할 겁니다.”
“후우, 알겠소. 가주님께 내가 말해놓겠소. 그 동안 공자는…….”
“전 나가야죠.”
“병력도 없이?”
“리펠리온과 대치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려면 우리 쪽 병력도 남아 있어야 합니다.”
마치 리펠리온에 병력이 억류된 것처럼 말이다.
유리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좋아.”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유리는 별다른 명령 없이 돌아서서 나갔다.
그때, 카이가 그런 유리의 팔을 잡아챘다.
“이봐.”
“왜?”
“흥분하는 건 이해하지만, 이대로 나가서 어쩌려고?”
“쓸데없는 질문을……. 당연히 찾으러 가야지.”
“그들이 함정을 파놨을 수도 있다. 무작정 대책 없이 나갔다간—.”
“오해하고 있군, 카이 안데르센.”
유리는 그의 손을 천천히 내려놨다. 흥분한 사람치곤 너무나 나긋한 말투와 친절한 손길이었다.
“걱정하고 있긴 하지만 흥분하거나 분노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진 않았어.”
“널 어떻게 믿고?”
“내가 아니라 내 어머니와 릴림을 믿어야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걱정이 안 된다면 자식이 아니다.
그러나 샤를린느 옆에는 나이트워커의 사자 릴림이 있었고, 무엇보다 샤를린느 본인이 강했다.
“분명 어머니는 잘 대처하고 도망쳤을 거야. 릴림은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필사를 다 할 거고.”
“…….”
“그러면서도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확신에 찬 한 마디에 카이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특히 레메게톤의 악마 중 하나인 레벤나의 영혼을 가진 릴림이 샤를린느의 곁을 지켰다.
악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카이 본인이 제일 잘 알았으니.
“이제 됐지?”
“……그래.”
그제야 카이는 안심하고 유리를 놔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