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리펠리온의 산세는 나이트워커의 영지에 비해 험하지 않은 대신 넓고 복잡했다.
숲과 고원이 끝없이 반복되었으며 산이 있는 곳엔 호수와 계곡이 늘 어졌다.
바람을 상징하는 리펠리온의 고대 드래곤이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풍화작용으로 산과 땅이 전부 깎였다고 한다.
유리는 몇 개의 고원을 지나 한 계곡 위로 접어들었다. 옆으로 펼쳐진 숲 한가운데 얕게 솟은 둔덕이 습격을 받았다던 장소였다.
나무에 둘러싸인 공터엔 수상한 흔적이 가득했다.
땅이 파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든 나무 조각 등등. 한쪽에는 사람과 짐 마차가 지나가면서 생긴 길도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널린 시체들. 나이트워커의 기사들이었다.
유리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시체 하나를 뒤집었다.
‘상흔이 깔끔하다. 전부 일격에 죽였어.’
[마을 크기도 상당한데?]공터 초입부터 끝까지 사람의 흔적이 묻어났다.
규모로만 봐선 인력과 자재, 돈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몰래 마을 하나를 없앴기에 동원된 인력은 숙련되고 입이 무거운 자들이리라.
‘이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길드가 하나 있긴 했지.’
[칼로소?]‘어.’
원작을 봤던 소수의 독자 사이에서 소위 조작 길드라고 악명을 떨쳤던 놈들이 있다.
원래 살인 청부 및 암살 위주의 의뢰만 받는 길드로, 살인 솜씨는 엉망이지만 뒤처리가 깔끔해서 암살 혐의가 있는데도 누구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칼로소가 유명세를 타게 된 여러 사건이 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거라면 단연 미앵비슈 살인 미수 건이다.
‘고모님 한 명 죽이려고 도시 국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가 없앤 놈들이었지.’
돌이켜보면 다이올드가 가주가 될 때, 미앵비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는 의문이 남는다.
사실 당시에 미앵비슈는 세상에 살아있지 않았다.
그 전에 한 도시 국가가 통째로 사라지는 폭발과 함께 그녀도 사라졌다.
그녀가 죽고 나서 나이트워커의 차기 가주를 다퉜던 그녀가 어찌 폭발 따위 가능하냐고 의혹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사인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발견된 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체뿐.
‘카이가 아쉬워했었지.’
나이트워커 자체는 멸망에 도움이 안 됐을지 몰라도, 미앵비슈는 달랐다.
그녀야말로 솔리드녹스라는 가문 이상으로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나서 카이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얼굴을 비칠 정도로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겼으니.
아쉬움에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감정이 있었는지.
그건 원작에도 묘사되지 않아서 확실치 않았다.
분명한 건 그녀의 죽음은 멸망에 앞서 뼈아팠다.
‘고모님이 살아계시거나 가주가 됐다면 카이가 나이트워커를 멸문하진 않았을지도.’
흔적을 살피던 유리는 병사들의 눈을 일일이 감겨 주고 짐 마차가 사라졌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칼로소와 다이올드 백부, 그리고 미앵비슈 고모님…….”
순간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유리는 다이올드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빨리 찾아야겠어.’
다행히 시체들 사이에 샤를린느와 릴림은 없었다.
싸운 흔적도 여럿 발견됐다. 그 흔적은 마차가 사라졌을 길까지 이어졌다.
“릴림과 싸운 흔적이겠지?”
[아마도. 이건 누가 봐도 낫으로 싸운 자국이잖니.]검이 사람을 자르고 베는 도구라면, 릴림이 쓰는 낫은 ‘가른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치 칼날로 된 이빨로 깨물었달까.
그 흔적이 나무나 풀에 고스란히 남았다.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가기 전, 유리는 채럿의 쥐를 풀었다.
그런데 발치로 내려간 쥐가 길로 나가지 않고 도로 위로 올라왔다.
찍! 찍!
“왜 그래?”
찌익!
쥐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길을 못 찾겠다고?
여태까지 채럿의 동물들이 수색에 실패했던 적은 없었다.
냄새나 채취, 혹은 다른 동물들의 목격까지 더해져서 무조건 목표물을 찾아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리는 다시 숲 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거 대놓고 백부님 작품이라고 말해주는 거 아닌가.”
드루이드 능력은 세상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안다고 해서 대처가 가능한 능력은 아니다.
칼로소 길드의 특성상 이 정도 흔적 지우기쯤이야 어렵진 않겠다만.
드루이드 능력을 모르고서 이 정도로 흔적을 지웠을 리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숲에 들어가봤자 낫으로 벤 흔적까지 남았을 거라고 확신 못 해.]“어머니랑 릴림을 놓쳐서 추적했다면 흔적이 남을 거야. 만약 붙잡았다면 나한테 먼저 접근했을 거고.”
[납치라고 확신해?]“납치야. 확실해.”
정말로 이 사건의 전모가 다이올드라면 무작정 샤를린느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그의 진짜 상대는 유리니까.
그러나 다이올드 측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그들은 샤를린느와 릴림을 잡지 못했다.
“릴림이 싸운 흔적을 최대한 쫓아보자고.”
유리는 숲 안쪽으로 발길을 서둘러 옮겼다.
* * *
예상대로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칼로소가 지나간 자리를 전부 지우긴 했으나, 릴림이 남긴 전투 흔적을 완벽히 없애지 못했다.
그만큼 전투가 격렬했다는 증거였다.
또한 그녀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안도와 걱정을 반복하며 유리는 쉼 없이 발길을 놀렸다.
그러다 갑작스레 한 지점에 멈췄다.
갑자기 흔적이 급격히 남았다. 칼로 벤 자국과 마나까지 느껴진다.
“칫.”
유리는 급히 나무 위로 뛰어올라 몸을 숨겼다.
잠시 뒤, 유리가 가던 방향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복면을 쓴 무리였다.
“젠장, 놓쳤나. 분명 여기서 소리가 들렸는데.”
“매복 치곤 허술했으니 금방 도망갔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대로 함정을 파놓자니까!”
“목표물이 도주하고 있는데 시간이 있어야지!”
유리가 사라진 자리로 무리가 모여들었다.
칼로소 길드원이었다.
그들은 뭐가 잘 안 되었는지,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이고 싸우기 시작했다.
유리는 그들을 숨죽여 지켜봤다.
‘함정이었나.’
노골적으로 남긴 흔적은 아무리 봐도 따라오라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초보적인 매복 방식이긴 했으나, 어머니를 납치했다는 심리를 고려한다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유리에겐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모든 게 꼬여가는군. 목표물을 계속 도망치지. 피해는 늘고 있지. 쫓고 있는 게 사자라고만 했지 마법사도 있다곤 안 했잖아?”
“나중에 돈을 더 청구해야겠어. 목숨값만 해도 이게 얼마인지.”
“후하게 쳐준다고 했으니 됐어. 우린 몰이만 잘하면 돼.”
아무래도 릴림과 샤를린느를 잡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마법까지 써가면서 적들을 따돌리고 있는 듯하고.
‘근데 몰이라고? 직접 납치하는 게 아니라?’
수상쩍은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유리를 매복해서 공격하려던 인원들은 자리를 추스르고 이탈할 준비를 했다.
그들을 이대로 놔줄 순 없었다.
‘6서클이 3명, 나머지는 4에서 5서클 정도인가.’
유리와 비슷하거나 실력이 떨어졌으나, 암살자들은 그런 실력과 무관했다.
그들이 무서운 건 암살을 하며 쌓은 경험과 임기응변이었다.
이걸 타파할 방법은 현재로선 유리에겐 단 하나.
‘속도전으로 밀어붙인다.’
유리는 마검과 게슐츠의 검 모두 뽑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쿵! 서걱!
한 남자의 어깨를 짓밟음과 동시에 목을 갈랐다.
눈을 빠르게 굴려 적을 파악했다.
남은 인원은 6명.
그들은 유리를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검을 뽑고 대응했다.
“죽여!”
일제히 마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섬뜩한 감각이 피부를 찔렀다.
한눈에 봐도 암살과 합격기에 능숙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퍼졌다가 일정 거리에서 동시에 접근했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유리는 포위가 좁혀지기 전 한 남자에게 먼저 접근했다. 그 남자 양 옆에 있는 다른 남자들이 더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위, 아래, 중단으로 서슬 퍼런 날들이 들이친다.
유리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티르빙을 전신에 갑옷처럼 두르고 노리던 남자만 게슐츠의 검으로 가슴팍을 찔렀다.
파캉!
적들의 검은 유리의 몸에 닿기 무섭게 산산조각 났다. 정면에 있던 남자는 그나마 비어있는 머리를 노렸으나, 유리의 검이 훨씬 빨랐다.
“이 뭔……!”
합격기의 한 곳이 무너지는 순간, 나머지 대열이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유리의 검이 연달아 좌우에 있던 자들의 목숨을 앗았다.
반사적으로 반응한 왼쪽 남자는 팔뚝으로 막긴 했으나, 팔과 목이 동시에 잘리고 말았다.
“여, 연막을 써!”
대열이 무너져서 위험을 직감한 한 남자가 소리쳤다.
퍼버버벙!
일제히 연막탄이 터지고 불이라도 난 것처럼 메케한 연기가 퍼졌다.
“티르빙.”
[잔재주를 부리네.]갑주였던 티르빙이 땅바닥으로 흘러내려 사방으로 퍼졌다.
거미줄처럼 그물망이 만들어지고, 적들이 티르빙을 밟는 것이 느껴졌다.
유리는 곧장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
“어떻게, 컥!”
대열을 찾으려고 가던 남자는 발을 떼보지도 못하고 허리가 잘렸다.
그 사이 남은 두 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섰다.
연기 때문에 그들조차 시야가 보이지 않는 상황.
그리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방금까지 활개를 치던 유리의 기척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귀에 들리는 거라곤 연막탄에서 연기가 나오는 소리와 저 멀리서 지저귀는 새밖에 없었다.
이제 둘밖에 남지 않은 길드원은 조용히 속삭였다.
“뭐 이리 빨라! 이건, 상대가 안 되잖아!”
“어, 어떡하지?”
“뭘 어떡해.”
7명으로 시작한 매복 인원 중 5명이 단 몇십 초 만에 죽었다. 합격기를 위한 진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 점 돌파로 파훼했다.
더군다나 마검이라니.
사전에 정보를 얻긴 했지만, 이건 마검을 떠나 그 주인 자체가 터무니없이 강했다.
이건 그들이 감당할 적이 못 되었다.
적어도 도망쳐야 한다.
빠른 판단을 한 남자가 검을 슬쩍 내리곤 소리쳤다.
“어서 나와라! 나오지 않으면 네 어미와 그 아랫것이 죽을 거다!”
나름 머리를 짜내어 한 협박.
그러나 그건 곧 자충수였다.
“나와서 항복하면―”
서걱!
소리는 곧 위치 발각을 의미했으니.
유리는 지체없이 소리를 지른 자의 복부를 베었다.
“꺼, 꺼억!”
복부가 베인 남자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단번에 죽진 않았다. 대신 피와 내장이 튀어나오지 직전이었다.
그리고 멀쩡히 살아남은 남자 앞에 유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벌벌 떨며 검을 겨눴다.
“이, 이 새끼가! 네, 네네, 네놈 어미가 죽게 할 셈이냐!”
“너까지 그런 대사를 치면 곤란한데.”
“뭐, 뭐?”
“곱게 죽을 걸 고통스럽게 죽겠다는 소리니까.”
“무, 무슨…….”
“셋만 묻는다. 내 어머니 샤를린느와 나이트워커의 사자 릴림은 어디 있지?”
“이놈이 사, 사태 파악도 못 하고! 우리를 겁박하거나 죽이면 그 둘이 무사할―”
휘릭, 퍼억!
이번엔 베지 않고, 검을 든 남자의 손목을 잡아서 엎어치기를 한 뒤 급소를 발로 밟았다.
“끄아아악!!!”
“말했지. 곱게 죽고 싶으면 말을 가려서 하라고.”
“어, 언제, 끄악! 아아악! 미안해! 미안하다고! 제발!”
“두 번째 묻는다. 어머니랑 릴림은 어디 있지?”
“모, 몰라! 모른다고!”
꾸득!
“끄아아악!!!”
무언가 터졌다. 뭔지 몰라도 알 수밖에 없는 게 터진 게 분명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유리는 어느 때보다도 마검의 주인다운 악랄한 모습으로 물었다.
“다이올드가 시켰나?”
(다음 편에서 계속)